열대의 나라 스리랑카에서 달림이의 첫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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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병택 작성일03-11-24 05:05 조회1,52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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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곳을 가끔씩찾는 스리랑카에서 자원봉사라는 명분으로 한국국제 협력단
소속으로 이곳에서 젊은 아이들을 가리키는 한갑을 넘긴 좀! 늙은 청년이랍니다. 저의
이야기는 이곳에서 제이름으로 검색하면 제글을 조금은 있기에 저와 이곳 생활을 이해
하실줄믿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첫경험(?)을 하였기에 저의 일기일부를 보여드립니다.
이런것들에 관심있는 분들게 조금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2003년 11월 23일 양병택 (btyang@hotmail.com)드림
11월 22일 토요일
내일 아침에 이곳 스리랑카에 있는 힐튼호텔주관 이곳 주간신문선데이옵서버 후원으로
단축마라톤( 6키로 FUN RUN) 행사가 있다기에 이곳 같이 간 동료들의 권유와 나의
호기심 이 작용하여 참가신청을 하여 놓았기에 매주 토요일 새벽에 연습을 하고
오늘은 마지막 연습으로 나의 집에서 기리받고다까지 왕복 10키로를 뛸려고 생각
하고 집에서 올전화를 생각하여 내가 미리 집에 일찍전화하였다. 아침 5시
정각에 출발하여 뛰니 사방이 어둠만 가득하고 별빛과 간간히 집근처 보안등의
불빛를 의지하여 뛰어 길받고다에 갔더니 28분정도 되었다. 이제 다시 집으로
뛰어 가는데 미인 눈썹처럼의 하현달이 나를 반기며 안내하는 듯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집에 거의 정도 도착하니 그달빛도 없어졌다. 걸린 시간은 59분 45초이다.
자취솜씨가 아직도 설어 마라톤을 하기에는 영향이 부실한 것 같아 큰마음을 먹고
시장에 가서 통닭 두마리를 사서 한 마리를 오늘 삶아서 아침 점심 저녁을 먹고
또한마리는 마라톤 출전후에 손실된 영향을 보충할량으로 잘 냉장고에 두었다.
내일 뛸동안 먹을 것은 그전에 집에서 보내온 당밀과자, 그리고 이곳에서 준비한
꿀물, 그리고 위에 티싸스는 주최측에서 주기에 바지만 예전에 입던 테니스복
하의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다음 구름이 끼기 시작하여 큰비가 올것같기에 비맞기전에
가려고 하였다. 내일 열리는 곳이 이곳 수도 콜롬보이기에 아침에 그곳에 일찍
가기는 무리라 생각하여 저녁전에 유숙소(코익카에서지방요원 들을 위한 숙소) 에
도착하니 그곳에 태권도 단원과 다른 컴퓨터 단원 이 아버지(이곳에 친구들은 나이가
아들뻘이 되기에 나보고 아버지라고 부른다.) 식사하려 가시지요 한다.
나도 영향을 미리 보충하여야 될 입장이라서 따라 나셨다. van택시를 타고 한식집인
이곳 한양가든으로 가서 그들과 어울려 나는 육개장을 시키고 다른 어린 친구들은
감자탕을 시켜서 먹는데 내가 소주를 한병 사서 같이 먹었다. 요새 애들은 어른들
앞에서 술한두잔정도야 먹는 것쯤은 아무렇지않게 받아 먹는다. 이런 것을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다간 이곳에서 백여나지를 못한다. 그러나 나는 내일 뛸 것을
생각하여 최소한의 술잔만 받고 자제를 하고 내일 아침을 어떻게 할가 생각
하다가 같이 참여하는 다른 용접공과 단원과 같이 먹어야 겠기에 2인분을 주문하여
비닐에 담아서 달라고 하여 가지고 유숙소로 와서 그친구에게 내일 아침을 이것으로
챙기라고 하고 나는 일직 잠을 청하였다.
11월 23일 일요일
아침 일찍 잠이 깨여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이다. 일어나 박에 바람좀 쏘이라고
나오니 유숙소정문을 잠기어 그냥 들어가서 억지로 잠을 청하다가 시계를 보니
5시가 되어 백승인(오늘 나와 함께 뛸 친구) 이를 깨워 어제 식당에서 가지고 온
육개장을 데워서 먹고 걸어서 마라톤 개최장소인 자야트 힐튼에 가니 아직준비에
부산하다. 그리고 내 이름을 확인하니 45세 이상참가그릅 에 배번호는 226번으로
되었다. 그곳에서 붉은 티사스와 모자를 지급받고 같은 자원봉사지인 백승인 것을
확인하여 보니 그는 1번이다. 그는 일번이라서 기분이 상당히 고조되어있고 상금이
얼마인지 궁금한지 물어본다. 나는 내가 나이가 제일 많이 들었다고 생각하기에
중간정도만 하였으면하고 바랬다.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초조해서인가 변소만 들락
날락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경찰선도 차가 도착하고 나더니 45세이상의 우리 그릅을
제일 먼저 출발시킨다. 나는 모두가 젊은 사람들이기에 그리고 더운 열대나라에서
공식으로 출전하는 것은 처음이기에 후반에 아주 약할 것으로 생각하고, 그리고
단거리이기에 일단 처지면 따라잡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처음부터
있는 힘을 다하여 달렸다. 한참 선두에서 달리는데 경찰차가 멈춘다. 철도 횡단도로
인데 기차가 돌어올 모양이다. 나는 그곳에서 선도차를 앞질러 달렸는데 그 다음
길을 몰라 당황하였다. 마침 길가에 배치되어 있는 진행요원에게 질로를 물은 다음
그곳으로 달리니 잠시 뒤에서 선도차가 다시 내 앞으로 와서 천천이 내 페이스에
맞추어 달린다. 그냥 마음이 조급해서 일까 아니면 좀더 발리 뛰고 싶은 충동에서
일가? 나는 호송차에게 속도를 내라고 제스추어를 하니까 그곳에 탄 선도차가
서서히 속도를 낸다. 잠간 뒤를 돌아보니 젊은 친구가 열심이 달려오고 있었다.
이제는 뒤도 돌아보기가 불안하여 그냥 앞만 보고 달린다. 생전처음 선두자리에서
달려보니 선두에 달리는 마음이 얼마나 괴로운지를 새삼 실감하였다. 거리에 나와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손을 흔들어 용기를 복돋아준다. 나도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하면서 뛰었다. 이렇게 여유가 생기다니!! 그래서 뒤를 돌아보니
내 뒤에 아무도 없었다. 이제는 포기만 안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뛰면서도 그래도
들어갈 때는 웃으면서 들어가야지 하면서 지금까지 모자를 벗어 손에 들고 뛰던
것을 다시 머리에 쓰고 그리고 뛰는 것이 줄거운 것이라는 인상을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사람들은 끈기와 집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양으로
최선을 다하여 결승점을 26분 55초에 밟았다. 30도가 헐씬넘는 더위와 시내 아스팔트
길에서 복사되는 열로 몸은 땀범벅이 된것을 음료수로 사워를 하면서 낯 모르는
여러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면서 막상 인정서 없이 부상으로 소액(우리에겐)의
상금은 받아 쥐니 섭섭한 감은 있지만 이런 것은 이나라의 문화차이라 할까한다.
그리고 이것이 나에게는 내 생애에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래도
마음에 위안을 삼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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