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6일의 반달참가기 - 2본 동시 상영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우광호 작성일02-06-16 15:22 조회706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6월16일의 반달참가기(1)
오랜만이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 남산에서 30km를 달리고 처음이었으니까요.
잘 뛰어보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양평대회와 강릉경포대회에 갔는지 인원이 다소 적더군요.
출발했습니다.
몇 미터 앞에 탐라국 출신 이중식님과 잘 달리신다는 박희숙님이 갑니다.
잘 됐습니다, 오늘은 저분들만 따라가면 되겠군요.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는군요.
부럽습니다.
저도 저런 여유를 갖으려면 잘 달려야 할텐데 어렵더군요.
사는 것도 그렇잖아요?
마음 먹은대로 안되는 현실로 속 상할 때도 많고 미안한 사람도 많고요.
이런 저런 생각에 오늘도 마음이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앗, 그런데 박희숙님이 사라졌습니다.
어디로 갔을까요.
제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꽤 잘달린다고 들었기에 따라붙으며 좀 배우려고 했는데 할 수 없군요.
한참을 찾아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잊어버리고 이내 제 마음은 평정을 찾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원래의 페이스로 돌아옵니다.
반포와 한남교 사이에 묘한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저는 원래 대교란 말을 싫어합니다. 쬐꼬만게 대교는 무슨 대교랍니까?)
'추억의 밀 서리 대회'
사과서리, 수박서리, 닭서리...하는 서리있지요?
그제서야 눈을 돌려 왼 쪽을 보니 누우런 밀밭이 장관이더군요.
'우리밀 살리기 협회'에서 경작한 것 같았습니다.
수확하면서, 아마도 이벤트로 여는 것 같군요.
저는 밀서리 보다는 보리서리가 생각이 났습니다.
배고프던 시절, 아마 춘궁기 즈음이 아니었나요?
보리 목 부분을 낫으로 싹뚝 잘라다가 인근 야산에서 불을 피웁니다.
까실까실한 보리수염이 끄슬려지고, 보리알맹이들이 익습니다.
손으로 비벼 불면 쌔까맣게 재 묻은 손에 노릿한 보리알맹이가 남습니다.
우리는 보리가 익기도 전에 배가 고팠습니다.
맛있었지요.
보리밭 주인은 노발대발 고함을 질러댑니다.
'어느 놈의 짓인지 잡히기만 해봐라, 손모강지를 콱, 짤라버릴테니까...'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습니까.
추위에 얼어죽지 말라고 온 가족이 손을 호호불면서 밭 밟아주었지요?
봄에는 파릇한 싹 베어다가 국 끓여먹고 싶어도 참았지 않았습니까?
아직 보리는 여물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밭에 나가보니 누가 머리부분을 싹, 베어가버렸습니다.
그 목없는 보리를 보는 농부의 심정은 어떨까요?
요즘 쓰기 시작한 '친구에게'를 생각했습니다.
시작은 했지만, 참 망설여지네요.
사회에서 만나서 진정한 친구되기는 어렵다고들 하잖습니까?
그래도 저는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시작했지만, 이 나이에 정말 하기 어려운 말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할 겁니다.
드문드문, 띄엄띄엄,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술 한잔 먹고 그냥 푸념도 하고, 즐거운 일 있으면 초대도 하고요.
갑자기 접물렌즈가 생각났습니다.
물체에 가까이 대고 대상을 보면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땀구멍에 렌즈를, 확대경을 대면 어마어마하게 보입니다.
우주의 분화구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아마 사람들의 단점도 그렇게 보일겁니다.
무엇처럼 생겼을까요?
전방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인간의 아들이라서, 현역으로 비무장지대 근무를 했습니다.
우리나라 남자는 군대얘기라면 아무것도 안먹고도 3박4일은 갑니다.
당시에 군인수첩이 있었습니다.
'군인의 길'과 같은 암기할 것들과 '육군가' 같은 군가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메모장 기능도 했습니다.
저는 깨알같은 글씨로 습작들을 했습니다.
심지어 산악에서 공격전술훈련을 하면서도 적었습니다.
엄폐물 밑에 엎드려 '돌격 앞으로'를 기다리는 1분 동안에도 몇자 썼습니다.
천리행군 중간의 5분간 휴식 시간에도 그랬습니다.
서울하늘이 그리울 때도, 고시촌의 친구가 생각날 때도 썼습니다.
그 수첩을 찾고 싶어 미치겠습니다.
생생한, 정말 생생한 제 젊은 날들이 들어있을테니까요.
무념무상, 영어로는 런너스하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반환점을 한 2km 가까이 남겼을 때입니다.
'우광호님, 히이임...' 하는 낭랑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람처럼 박희숙님이 나타났습니다.
'어디 가셨었어요, 한 참 찾았었는데...' 물었습니다.
그냥 씨익 웃으시더니, 달리기만 합니다.
저도 따라 가기로 했습니다.
근데 큰 일 났습니다, 이거 장난이 아닙니다.
일단 보조를 맞춰 몇 백미터를 달렸는데 스피드가 무지 빠릅니다.
순식간에 우리 반달과 다른 런너들 여럿이 힘없이 뒤로 쳐져갑니다.
이 분은 숨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들리는 것은 제 가쁜 숨소리 뿐입니다.
사실 저는 폐활량이 큰 편이어서 호흡으로 인한 애로사항은 없는 편입니다.
그래서 노래도 무지 잘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호흡에 이상 신호가 오려고 하다니...
기왕 맘 먹은 것, 죽기살기로 가자고 맘 먹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반환점이 저어기 보입니다.
살았습니다.
태연자약하게 호흡을 가다듬고 급수대로 갔습니다.
급수봉사하던 양경석님이 절 건듭니다.
아마 매우 심심했나 봅니다.
다음부터는 허창수님하고 짝을 지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우광호님이 박희숙님하고 같이 왔단 말이요?
솔직히 말해 봐, 차 타고 왔지?'
아, 이런 경우가 있나, 내가 어디가 못나서 이런 말을 듣는다 말인가?
'에에이... 형님도. 저도 잘 달려요. 아무렴 여자분한테 질까 봐.'
'어어? 우광호님이 뭘 모르는구만. 희숙님은 정말 잘 달리는 선수야.'
'그럼, 내기해요? 돌아갈 때 제가 이기면 형님 술 살래요?'
'좋아요. 이기기만 해. 맛있는거 사줄게...'
이렇게, 본의 아닌 내기가 또 시작이 되어버렸습니다.
먹던 찰떡쵸코를 서둘러 삼키고, 출발했습니다.
출발하기 전, 박희숙님을 향해 말했습니다.
'들으셨죠? 절 이기면 안됩니다?'
애절한 제 부탁을 아셨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저만큼 30km LSD 팀이 갑니다.
한참을 뒤에 붙어서 달렸습니다.
글자 그대로 LSD여서 몸과 마음이 편하기 그지 없습니다.
한택희님과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며 즐겁게 옵니다.
그런데, 이래서는 않된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습니다.
박희숙님이 쫓아오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상황을 고하고 뛰쳐 내달렸습니다.
천달사 김대현님이 마주 오며 손을 좌우로 흔듭니다.
흔드는 손의 속도가 'slow'로 놓은 자동차 window wiper 수준입니다.
달리기만 천천히 하는게 아닌가 봅니다.
이정표상으로 15km, 12km, 10km... 잘 달리고 있습니다.
갑자기 뒤에서 여성 분 목소리가 들립니다.
소스라치게 놀라 돌아보니 싸이클 타는 분입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한 참을 달리는데 또 여자분 목소립니다.
이번에는 인라인 스케이터입니다.
저는 원래 달리면서 거의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두 번이나 돌아보면서 간이 콩알만하게 오무라듦을 느낍니다.
이제 9km 부근으로 2km 남짓 남았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박희숙님이 부릅니다.
'우광호님, 좀 쉬고 뛰세요.' 그럽니다.
제가 바봅니까? 내기 중에 쉬다니요.
제가 쉬면 자기가 앞지르려는 속셈 아니겠습니까?
더 열심히 달렸습니다.
'좀 쉬고 뛰시라니까요?' 다시 한번 권유를 하시더군요.
'예'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오기로 더 빨리 달렸습니다.
흘끔 돌아보니 한 2-300m는 되는 것 같습니다.
다소 안심은 되었지만 그래도 불안했거든요.
2km에서 200m면 좀 안심해도 안되나요?
비슷한 실력이면 잡기 힘들겠지요?
이제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저만 죽어라고 달리면 승리는 제것입니다.
8km, 철탑부근에 왔으니 이제 남은 것은 1km 남짓에 불과합니다.
아직도 뒤에서 숨소리가 들려오지 않습니다.
아니, 그래도 안심이 안됩니다.
숨소리도 없이 달리는 분인 것을 제가 겪었으니 안심하면 안되겠습니다.
반포교 밑, 즉 언덕을 다 올라섰으니 이제 저 아래에 골인지점이 보입니다.
아아... 짧지만, 길었던 반환점 이후의 달리기를 생각하며 상념에 잠깁니다.
오늘은 좀 그렇고, 양경석님이 술을 산다면 언제 먹어야 하나?
그나 저나 박희숙님이 잘 달린다고 하던데, 지금 얼마나 뒤에 있을까?
한번 돌아볼까?
에에이, 그냥 가자. 우선 골인하고, 들어오면 박수를 쳐주지 뭐.
정말 이제는 한 400m나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뭐가(죄송) 휘익... 지나갑니다.
으윽... 박희숙님하고, 탄천교에서 자원봉사하던 남자회원분입니다.
손에는 물병을 들고, 날렵하게 지나갑니다.
주법이 가볍기 짝이 없고, 역시 숨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아니, 그럴 수 있어요? 그러면 안되잖아요...'
등에 대고 외치는 제 목소리는 힘없이 허공에 흩어집니다.
아... 낭패로다, 낭패야...
...
베이스 캠프입니다.
애꿎은 수박과 냉커피와 빵만 아구아구 입안으로 밀어넣습니다.
귓등으로는 듣고싶지 않은 말들이 오고갑니다.
'박희숙씨는 울트라 상위 입상자야... 뭘 알고 덤벼야지, 쯔쯔...'
'큰 일 날 뻔 했네. 오늘 크게 바가지 쓸 뻔 했잖아.'
'얼음 물 마시고 가시라니까, 왜 좀 기다리지 그러셨어요?'
지금 이글을 쓰기위해 과거 게시판의 글들을 몇 개 조회 해보았습니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습니다.
저는 정말 몰랐었거든요.
다음 내용들 좀 보세요.
(1) '01년 서울 울트라 마라톤대회 : 63km 부문 여자부 1위 박희숙
(2) 3월 31일 제3회 충주마라톤대회 참가기 : 박희숙
'...충주종합운동장 붉은 지붕이 보인다.
웅성 웅성 큰 함성과 마이크를 통해 들려오는 고형식님의 소리도 들린다.
그 함성을 들으니 저절로 보폭이 넓어지며 다리가 쭉쭉 뻗어 나간다.
3:26:19초 골인라인을 통과 했다...'
(3) '박희숙님 충주대회 여성부 2위 입상...'
즐거운 반달이었습니다, 모두들 즐거운 달리기 되십시오.
참,
가을까지,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6월16일의 반달참가기(2)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배속이 불편해옵니다.
사실은 강릉경포대회를 가고 싶었습니다.
어제 내려가, 낙산사도 보고, 정동진역도 가고, 회도 먹고...
오늘 대회에서는 분명히 입상도 할테니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낭군님이 바쁘시다고 안된답니다.
그래서 속이 불편한 것일까요?
역시 마음이 평안해야 몸도 좋은 것인가 봅니다.
잠시 화장실을 들렸습니다.
몸을 다스리고 서둘러 괘도에 진입했습니다.
오늘은 고수들도 별로 안보이고, fun run이나 해야겠습니다.
반환점에 가까워오니 우광호님이 가고 있습니다.
우람한 등치에 뒤뚱뒤뚱 애를 쓰고 달리는 모습이 안되어 보입니다.
이해도 잘 안됩니다.
'드림개팀'이라는 허창수, 송재익, 이윤희님을 보아도 꼭 같습니다.
뭐하러들 달리는지, 원...
한택희님은 좀 나아 보이지만, 그 역시 부상을 핑계로 매번 slow입니다.
급수대까지 같이 달려주었습니다.
확, 기를 꺾어줄까도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내 실력을 잘 모르나 봅니다.
한사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냥 둬야겠습니다.
급수대에 가니 양경석님이 기어코 한마디 하십니다.
우광호님이 급격하게 받아칩니다.
절 두고 내기가 벌어집니다.
이 싸람들이...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하지만 참기로 했습니다.
다들 살자고 하는 짓인데, 야단쳐서 뭐하겠습니까.
그냥 씨익 웃어줬습니다.
여유있게, 어차피 fun run이니, 5분여를 쉬다가 출발했습니다.
우광호님은 벌써 몇백m를 갔나 봅니다.
그냥 두지요, 뭐.
(중략)
이제 한 2km 남았나 봅니다.
들고 있는 시원한 얼음물이 정말 맛있습니다.
우광호님이 저기 가는군요.
역시 여전히 뒤뚱뒤뚱 기를 쓰고 있습니다.
아마 저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일까요?
사실 저는 내기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또 게임이 안되겠지요.
'우광호님, 얼음물 좀 마시고 가세요...'
불러도 돌아만 보고 그냥 갑니다.
잡힐까봐 그러나요?
점차 거리는 좁혀져, 이제 한 50m나 되나봅니다.
아직 돌아보지도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어떻게 하지요?
맘 먹고 달리면 금방 잡을텐데... 잠시 고민이 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원칙대로 해야겠습니다.
스포츠맨쉽이란 정직한 것 아니겠습니까?
고의로 천천히 달리거나, 누구를 도와준다면 그것은 옳지않은 일이니까요.
안됐지만, 반포대교를 지나 마지막 언덕에서 추월합니다.
그래도 한마디는 해줘야겠지요.
'우광호님, 히이∼임!'
p.s.
반달참가기(2)편은 본인의 허락 또는 상황문의없이 100% 창작한 것입니다.
내용에 이의가 있으시다면 얼른 수정하거나, 삭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