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글 :아름다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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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순학 작성일02-05-27 05:31 조회37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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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진님
귀천에 가셨군요.
좋은 글을 아주 시각적으로 표현해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귀천에 가서 모과차를 맛보아야 할 것 같군요.
사무실이 전에는 공덕동이였는데 얼마전에 종각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이전후 더 가까워졌는데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일,
바쁘다는 핑계로 가보지 못했는데
박복진님의 글로 인해 귀천에 갈 핑계가 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가보신 인사당의 그림전시회는 어떤 전시회인가요?
인사당에는 많은 전시회가 열리지만
님이 보셨다는 전시회가 어떤 그림인지
아주 궁금합니다.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십시오.
권순학 드림.
박복진 님 쓰신 글 :
> 그림 보러 가는 날, 방울 사러 가는 날.
>
> 얼레 ?
> 이-야 ! 이 양반 그림 좀 봐 ! 영희야 !
>
> 아침 조간신문에 실린 그림 전시회 안내를 보며
> 나는 다급하게 아내를 불렀다. 아내가 무언가 하고 다가왔다.
> 아들놈 젖은 바지를 널려다가 한 손에 철사 옷걸이를 들고서...
>
> 우리 오늘 오후, 인사동 갈까 ?
> 여기 이 작가 그림 전시회를 보고 , 오면서 고양이 방울도 사 가지고 오게...
> 찻집에 들러 차도 한잔 마시고......
>
> 이 작가의 그림은 아주 독특합니다.
> 내가 아주 좋아합니다
>
> 우리의 한지에 먹과 붓을 사용하여
> 노쇠한 할머니의 표정을 잔인하리 만치 사실감 있게 그려낸
> 그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
> 깊게 패인 주름들,
> 이가 다 빠져서 홀쭉하니 들어간 양 입 언저리,
> 동해의 거친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헝클어진 백발들...
> 낡고 헐은 희뿌연 안경 속 초점은 가까이를 보지 않고
> 먼 곳을 힘없이 응시해서 더 더욱 사실적인 그림들..
>
> 인간이 꽃보다 아름답고,
> 세월이 겹겹이 쌓여 차분히 내려앉은 쭈글쭈글한 그 주름이
> 분바르고 눈썹 붙인 젊은 여인보다 저렇듯 더 이쁜 것임을.....
>
> 나는 세월의 질곡을 감춤 없이 다 드러낸
> 인간의 벗은 모습 그대로를 좋아합니다
> 그러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가와 그의 작품을
> 좋아합니다.
>
> 가뭄 끝에 쏟아지는 잠깐의 소나기 속에서
> 깨 모종을 하는 촌부,
>
> 작렬하는 칠. 팔월 태양의 뙤약볕에서
> 구멍 숭숭 뚫린 삼베 적삼을 입고 밭고랑을 메는 늙은 할망구..
>
> 구불구불 논두렁 잡초더미 위,
> 엄마의 살 부러진 분홍색 양산 밑에서
> 엄마 젖 빨다 잠들어
> 새곤새곤 잠든,
>
> 진흙 투성이 아기 엄마와 갓난 아이
>
> 이런 것들을 사실감 있게 그린 우리네 옛날 살림 언저리 그림들을
> 좋아합니다
>
> 그림 앞에 서서 보고, 두어 걸음 뒷걸음해서 다시 보고,
> 안경을 낀 체로 보고, 훌러덩 윗머리에 걸쳐놓고 벗은 체로도 보고.
> 가만 가만 앞 걸음, 다가서며 보고...
> 이 양반의 그림은 참으로 포근합니다.
>
> 벼 베고 난 후, 질펀한 논바닥에 난 수레바퀴 자국들.
> 조그만 그 곳 물웅덩이에 내려 비친, 넘어가는 노을 빛들...
> 이런 그림들은 나 자란 고향의 모습 그대로여서 정말 좋습니다
>
> 우리 두 내외는 오랜만에 잔잔한 기쁨을 맛보고,
> 이제 찻집으로 향합니다
>
> 가는 길에 길거리 좌판장수에게 조금은 두꺼워 무게가 나가 보이는
> 고양이 방울 두 개를 삽니다.
>
> 마라토너 시각 장애우의 곁 달림이로 같이 달릴 때
> 나의 왼손에 감고 흔들어 대던 방울 철사 끈이 떨어져 나가
> 새 방울이 필요했기 때문이지요.
>
> 평균 보폭을 50 센티로 잡고 마라톤 전구간을 달리려면,
> 팔만 오천여 번을 흔들어 대니,
> 세 번의 출전으로 방울 철사 끈이 그만 떨어져 나갔습니다
>
> 새로 산 이놈은 좀 더 틀시럽게 생기어서 마음에 듭니다
>
> 아주 흡족해서
> 주머니 속에 넣기 전에 딸랑 딸랑 흔들어 봅니다
> 됐어, 이 정도면 ! 그리고 나서 또 한번 흔들어 봅니다......
>
> 찻집에 들어섭니다.
>
> 귀천,
> 이 찻집은 내부 공간이 다섯 평이 체 안되어 보입니다
> 찻집 주인이 다가와 따뜻하게 맞이해 줍니다
> 돌아가신 어느 시인의 미망인이지요.
>
> 두분 자리가 있긴 한데 덩치가 커다란 개가 옆에 앉아 있어서....
> 괜찮으시겠어요 ? 주인께서 우리 두 내외의 양해를 구합니다.
>
> 안으로 다가가 자리를 잡고 보니
> 이 개는 시각 장애우 보조견 이었고
> 끈을 잡고 모과차를 들고 있는 분은 스무 살이 갓 돼 보이는
> 시각장애 소녀이었습니다
>
> 조심스레이 말을 걸어 봅니다
> 말하는 도중 그 소녀 맹인은 습관적으로 손을 아래로 내리어
> 무릎 밑에 엎드려 있는 개를 확인하는데 그 모습이 우리 두 내외
> 가는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
> 그 개는 카나다산 " 리트리버 " 라 합니다
> 국내의 모 대기업이 들여와 시각 장애우 들에게 지원해 준 것이라 합니다
> 영리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귀찮게 만지고,
> 금지된 먹이를 주고 해서 속이 상한 적이 많다 합니다.
>
> 택시를 탈땐 승차거부를 하는 운전자도 있다 하는군요.
> 장애인 복지법 36 조에 명시된 200 만원 벌금을
> 몰라서가 아니고, 잘못된 편견이라서 속이 상하다고 하더군요
>
> 내가 요즈음 새로이 눈뜨게된 시각 장애우들의 삶,
> 오늘은 무슨 인연으로 또 이 시각 장애우 소녀와 같은 자리에
> 앉게 되었을까 ?
>
> 보이지 않는 어떤 인연이 자꾸 나를 이끌어 가는 것 같아
> 잠시 숙연해 지기도 합니다.
>
> 시각 장애.
> 우리는 미처 느끼지도, 의도하지도 않고 하는, 할 수 있는 작은 동작을
> 그들은 평생 소원으로 염원하는 간절한 삶을 살고 있는 그들,
>
> 그들은 혼자 스스로 전철을 타고 광화문 앞으로 나가
> 세계 타악 연주를 보는 게 간절한 바램 일겁니다
> 붉은 악마와 함께 대형 전광판 위의 역동적인
> 축구 경기를 보는 게 평생 소원 일 수 있습니다.
>
> 우리는 맘만 먹으면 숨쉬기 보다 더 쉬운 나들이 인데...
> 우리는 귀챦아서 하지 않는 일들이 그들에게는
> 평생을 두고 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입니다.
>
> 내 작은 힘이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
> 사회의 다른 편견과 싸워 보고 싶은 욕망이 가만히 떠오릅니다
> 내가 잊고 있었던 , 적은 힘이지만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앞에
> 조심스레 펼쳐지는 순간입니다
>
> 저렇듯 바로 앞, 우리의 형제, 자매에게도 할 일을 다 못하며
> 다른 나라를 구원한다고 출국 비행기 앞에서 큰 간판 들고
> 사진 남기며 떠나는 거창한 구호 단체 분들을 자못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
> 우리 두 내외는 그 시각 장애우 소녀의 옆에 앉아 있는,
> 20 대 후반 아가씨로 보이는 그 도우미의 잔잔한 설명에
> 귀가 기울여 집니다.
>
> 그 도우미 여성분은 나누시는 대화가 아주 조용하고 차분합니다
> 두 분 사이가 어떻게 되느냐는 아내의 질문에
> 조용한 미소로,
>
> " 친구예요. 그냥 친구예요 " 라고 말하며 도우미라는 단어를
> 쓰지 않았습니다 . 말끝마다 얼굴 전체를 덮는 미소가 너무 좋아 보입니다.
>
>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찌 어찌해서,
> 시각 장애우 마라토너 도우미라고 신문에 나고, 방송에 나고,
> 책에 나오고, 잡지에도 나오고....
>
>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격이 돼버려 부끄러웠던 나의 지난 몇 달의 못난 행적에,
> 여지없는 직격탄이 떨어지는 순간입니다
>
> 그 여성 도우미, 아니 여성 친구 분과 시각 장애우 소녀의 조용한 대화가
> 나와 나의 아내의 귀에 흘러 들어옵니다
> 아니, 우리는 듣고 싶어 우리의 대화를 끊었습니다.
>
> 나와 아내는 서로의 손목을 꼬옥 잡고,
> 바로 옆자리 그들의 도란도란 대화를 들으며 코끝이 찡해옴을 느낍니다
> 봉사의 참 방향을 연설이 아닌 몸으로 구현하고 계시는 어린 그 여성분의
> 모습이 정말 훌륭해 보입니다.
>
> 방금 전 보고 온 그림의 감동을 훨씬 더 앞지르는 살아있는 명화의 실체를
> 보고 있습니다
>
> 그 여성분이 시각 장애우, 맹인 소녀에게 말합니다
> 그 소녀는 환한 웃음으로 그 뜻을 이해하고 있음을 나타내며
> 다음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
> 이야기 끝마다,
> 한 손으로는 발 밑에 엎드려 있는 보조견 리트리버를 다시 쓰다듬으며,
> 여성 도우미, 친구의 설명에 귀를 기울입니다.
>
> 이야기가 끝나면, 보이지는 않지만 잠깐, 잠깐 고개를 들어 이야기 주제의
> 위치를 고개로 더듬어 보고, 캄캄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을 더듬는,
> 보통사람 보다 약간은 더 높은 각도로 들려진 턱끝을 끄덕입니다.
>
> " 응, 저기 문 입구 주방 탁자에 밤색 큰 항아리가 있어.
> 그 항아리에 하얀 꽃이 가득 있어. 아주 많아.
> 들국화 같은데, 누가 꺾어 왔나봐. 굉장히 큰 묶음이야.
> 꽃이 하얀 색이야 ! "
>
> " 네, 들국화입니다. 꺾어서 가져다 놓은 지 얼마 안된 것 같네요.
> 아주 싱싱합니다. 들에서 자란 야생화지요 " 라고 내가 옆에서 거듭니다.
>
> " 응, 네가 마시는 이 차는 모과차야 ! 색이 옅은 밤색이야 !
> 얼음 조각을 몇 개 넣었어. 점점 색이 옅어 지고 있어.
> 이 잔은 머그 잔이라고 하는데, 굉장히 투박하지 ?
> 좀 울퉁불퉁하고 겉이 거칠지 ? 색은 오래된 시골 마루 색깔처럼
> 진한 밤색인데, 중간 중간에 겨자를 물에 풀어놓은 것 같기도 해 ! "
>
> 잠깐의 설명인데도 그 어린 여성분의 설명은 시각과, 감각적인 것에
> 주안점을 둔 정말 훌룡한 설명임을 우리 두 내외는 알아차립니다
>
> 나와 나의 아내.
> 서로 잡은 손목에 힘이 점점 더 들어갑니다
>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두 개의 고양이 방울의 감촉이 나의 체온과 같아집니다.
> 적고, 크지 않은 감동이지만 우리 두 내외에게는 그 무게가 느껴집니다
>
> 찻집의 음악이 점점 더 감미로워 집니다.
>
> 아름다운 우리 나라 대한민국,
> 서울 인사동의 어느 작은 찻집,
> 우리 두 내외는 살아있는 명화를 옆에서 감상하고 있습니다.
>
> 인간만이 인간을 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 그리고 그것의 위대함을, 비교할 수 없는 숭고함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
> 서울
> 고덕 달림이
> 박복진
>
>
>
>
귀천에 가셨군요.
좋은 글을 아주 시각적으로 표현해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귀천에 가서 모과차를 맛보아야 할 것 같군요.
사무실이 전에는 공덕동이였는데 얼마전에 종각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이전후 더 가까워졌는데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일,
바쁘다는 핑계로 가보지 못했는데
박복진님의 글로 인해 귀천에 갈 핑계가 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가보신 인사당의 그림전시회는 어떤 전시회인가요?
인사당에는 많은 전시회가 열리지만
님이 보셨다는 전시회가 어떤 그림인지
아주 궁금합니다.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십시오.
권순학 드림.
박복진 님 쓰신 글 :
> 그림 보러 가는 날, 방울 사러 가는 날.
>
> 얼레 ?
> 이-야 ! 이 양반 그림 좀 봐 ! 영희야 !
>
> 아침 조간신문에 실린 그림 전시회 안내를 보며
> 나는 다급하게 아내를 불렀다. 아내가 무언가 하고 다가왔다.
> 아들놈 젖은 바지를 널려다가 한 손에 철사 옷걸이를 들고서...
>
> 우리 오늘 오후, 인사동 갈까 ?
> 여기 이 작가 그림 전시회를 보고 , 오면서 고양이 방울도 사 가지고 오게...
> 찻집에 들러 차도 한잔 마시고......
>
> 이 작가의 그림은 아주 독특합니다.
> 내가 아주 좋아합니다
>
> 우리의 한지에 먹과 붓을 사용하여
> 노쇠한 할머니의 표정을 잔인하리 만치 사실감 있게 그려낸
> 그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
> 깊게 패인 주름들,
> 이가 다 빠져서 홀쭉하니 들어간 양 입 언저리,
> 동해의 거친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헝클어진 백발들...
> 낡고 헐은 희뿌연 안경 속 초점은 가까이를 보지 않고
> 먼 곳을 힘없이 응시해서 더 더욱 사실적인 그림들..
>
> 인간이 꽃보다 아름답고,
> 세월이 겹겹이 쌓여 차분히 내려앉은 쭈글쭈글한 그 주름이
> 분바르고 눈썹 붙인 젊은 여인보다 저렇듯 더 이쁜 것임을.....
>
> 나는 세월의 질곡을 감춤 없이 다 드러낸
> 인간의 벗은 모습 그대로를 좋아합니다
> 그러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가와 그의 작품을
> 좋아합니다.
>
> 가뭄 끝에 쏟아지는 잠깐의 소나기 속에서
> 깨 모종을 하는 촌부,
>
> 작렬하는 칠. 팔월 태양의 뙤약볕에서
> 구멍 숭숭 뚫린 삼베 적삼을 입고 밭고랑을 메는 늙은 할망구..
>
> 구불구불 논두렁 잡초더미 위,
> 엄마의 살 부러진 분홍색 양산 밑에서
> 엄마 젖 빨다 잠들어
> 새곤새곤 잠든,
>
> 진흙 투성이 아기 엄마와 갓난 아이
>
> 이런 것들을 사실감 있게 그린 우리네 옛날 살림 언저리 그림들을
> 좋아합니다
>
> 그림 앞에 서서 보고, 두어 걸음 뒷걸음해서 다시 보고,
> 안경을 낀 체로 보고, 훌러덩 윗머리에 걸쳐놓고 벗은 체로도 보고.
> 가만 가만 앞 걸음, 다가서며 보고...
> 이 양반의 그림은 참으로 포근합니다.
>
> 벼 베고 난 후, 질펀한 논바닥에 난 수레바퀴 자국들.
> 조그만 그 곳 물웅덩이에 내려 비친, 넘어가는 노을 빛들...
> 이런 그림들은 나 자란 고향의 모습 그대로여서 정말 좋습니다
>
> 우리 두 내외는 오랜만에 잔잔한 기쁨을 맛보고,
> 이제 찻집으로 향합니다
>
> 가는 길에 길거리 좌판장수에게 조금은 두꺼워 무게가 나가 보이는
> 고양이 방울 두 개를 삽니다.
>
> 마라토너 시각 장애우의 곁 달림이로 같이 달릴 때
> 나의 왼손에 감고 흔들어 대던 방울 철사 끈이 떨어져 나가
> 새 방울이 필요했기 때문이지요.
>
> 평균 보폭을 50 센티로 잡고 마라톤 전구간을 달리려면,
> 팔만 오천여 번을 흔들어 대니,
> 세 번의 출전으로 방울 철사 끈이 그만 떨어져 나갔습니다
>
> 새로 산 이놈은 좀 더 틀시럽게 생기어서 마음에 듭니다
>
> 아주 흡족해서
> 주머니 속에 넣기 전에 딸랑 딸랑 흔들어 봅니다
> 됐어, 이 정도면 ! 그리고 나서 또 한번 흔들어 봅니다......
>
> 찻집에 들어섭니다.
>
> 귀천,
> 이 찻집은 내부 공간이 다섯 평이 체 안되어 보입니다
> 찻집 주인이 다가와 따뜻하게 맞이해 줍니다
> 돌아가신 어느 시인의 미망인이지요.
>
> 두분 자리가 있긴 한데 덩치가 커다란 개가 옆에 앉아 있어서....
> 괜찮으시겠어요 ? 주인께서 우리 두 내외의 양해를 구합니다.
>
> 안으로 다가가 자리를 잡고 보니
> 이 개는 시각 장애우 보조견 이었고
> 끈을 잡고 모과차를 들고 있는 분은 스무 살이 갓 돼 보이는
> 시각장애 소녀이었습니다
>
> 조심스레이 말을 걸어 봅니다
> 말하는 도중 그 소녀 맹인은 습관적으로 손을 아래로 내리어
> 무릎 밑에 엎드려 있는 개를 확인하는데 그 모습이 우리 두 내외
> 가는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
> 그 개는 카나다산 " 리트리버 " 라 합니다
> 국내의 모 대기업이 들여와 시각 장애우 들에게 지원해 준 것이라 합니다
> 영리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귀찮게 만지고,
> 금지된 먹이를 주고 해서 속이 상한 적이 많다 합니다.
>
> 택시를 탈땐 승차거부를 하는 운전자도 있다 하는군요.
> 장애인 복지법 36 조에 명시된 200 만원 벌금을
> 몰라서가 아니고, 잘못된 편견이라서 속이 상하다고 하더군요
>
> 내가 요즈음 새로이 눈뜨게된 시각 장애우들의 삶,
> 오늘은 무슨 인연으로 또 이 시각 장애우 소녀와 같은 자리에
> 앉게 되었을까 ?
>
> 보이지 않는 어떤 인연이 자꾸 나를 이끌어 가는 것 같아
> 잠시 숙연해 지기도 합니다.
>
> 시각 장애.
> 우리는 미처 느끼지도, 의도하지도 않고 하는, 할 수 있는 작은 동작을
> 그들은 평생 소원으로 염원하는 간절한 삶을 살고 있는 그들,
>
> 그들은 혼자 스스로 전철을 타고 광화문 앞으로 나가
> 세계 타악 연주를 보는 게 간절한 바램 일겁니다
> 붉은 악마와 함께 대형 전광판 위의 역동적인
> 축구 경기를 보는 게 평생 소원 일 수 있습니다.
>
> 우리는 맘만 먹으면 숨쉬기 보다 더 쉬운 나들이 인데...
> 우리는 귀챦아서 하지 않는 일들이 그들에게는
> 평생을 두고 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입니다.
>
> 내 작은 힘이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
> 사회의 다른 편견과 싸워 보고 싶은 욕망이 가만히 떠오릅니다
> 내가 잊고 있었던 , 적은 힘이지만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앞에
> 조심스레 펼쳐지는 순간입니다
>
> 저렇듯 바로 앞, 우리의 형제, 자매에게도 할 일을 다 못하며
> 다른 나라를 구원한다고 출국 비행기 앞에서 큰 간판 들고
> 사진 남기며 떠나는 거창한 구호 단체 분들을 자못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
> 우리 두 내외는 그 시각 장애우 소녀의 옆에 앉아 있는,
> 20 대 후반 아가씨로 보이는 그 도우미의 잔잔한 설명에
> 귀가 기울여 집니다.
>
> 그 도우미 여성분은 나누시는 대화가 아주 조용하고 차분합니다
> 두 분 사이가 어떻게 되느냐는 아내의 질문에
> 조용한 미소로,
>
> " 친구예요. 그냥 친구예요 " 라고 말하며 도우미라는 단어를
> 쓰지 않았습니다 . 말끝마다 얼굴 전체를 덮는 미소가 너무 좋아 보입니다.
>
>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찌 어찌해서,
> 시각 장애우 마라토너 도우미라고 신문에 나고, 방송에 나고,
> 책에 나오고, 잡지에도 나오고....
>
>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격이 돼버려 부끄러웠던 나의 지난 몇 달의 못난 행적에,
> 여지없는 직격탄이 떨어지는 순간입니다
>
> 그 여성 도우미, 아니 여성 친구 분과 시각 장애우 소녀의 조용한 대화가
> 나와 나의 아내의 귀에 흘러 들어옵니다
> 아니, 우리는 듣고 싶어 우리의 대화를 끊었습니다.
>
> 나와 아내는 서로의 손목을 꼬옥 잡고,
> 바로 옆자리 그들의 도란도란 대화를 들으며 코끝이 찡해옴을 느낍니다
> 봉사의 참 방향을 연설이 아닌 몸으로 구현하고 계시는 어린 그 여성분의
> 모습이 정말 훌륭해 보입니다.
>
> 방금 전 보고 온 그림의 감동을 훨씬 더 앞지르는 살아있는 명화의 실체를
> 보고 있습니다
>
> 그 여성분이 시각 장애우, 맹인 소녀에게 말합니다
> 그 소녀는 환한 웃음으로 그 뜻을 이해하고 있음을 나타내며
> 다음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
> 이야기 끝마다,
> 한 손으로는 발 밑에 엎드려 있는 보조견 리트리버를 다시 쓰다듬으며,
> 여성 도우미, 친구의 설명에 귀를 기울입니다.
>
> 이야기가 끝나면, 보이지는 않지만 잠깐, 잠깐 고개를 들어 이야기 주제의
> 위치를 고개로 더듬어 보고, 캄캄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을 더듬는,
> 보통사람 보다 약간은 더 높은 각도로 들려진 턱끝을 끄덕입니다.
>
> " 응, 저기 문 입구 주방 탁자에 밤색 큰 항아리가 있어.
> 그 항아리에 하얀 꽃이 가득 있어. 아주 많아.
> 들국화 같은데, 누가 꺾어 왔나봐. 굉장히 큰 묶음이야.
> 꽃이 하얀 색이야 ! "
>
> " 네, 들국화입니다. 꺾어서 가져다 놓은 지 얼마 안된 것 같네요.
> 아주 싱싱합니다. 들에서 자란 야생화지요 " 라고 내가 옆에서 거듭니다.
>
> " 응, 네가 마시는 이 차는 모과차야 ! 색이 옅은 밤색이야 !
> 얼음 조각을 몇 개 넣었어. 점점 색이 옅어 지고 있어.
> 이 잔은 머그 잔이라고 하는데, 굉장히 투박하지 ?
> 좀 울퉁불퉁하고 겉이 거칠지 ? 색은 오래된 시골 마루 색깔처럼
> 진한 밤색인데, 중간 중간에 겨자를 물에 풀어놓은 것 같기도 해 ! "
>
> 잠깐의 설명인데도 그 어린 여성분의 설명은 시각과, 감각적인 것에
> 주안점을 둔 정말 훌룡한 설명임을 우리 두 내외는 알아차립니다
>
> 나와 나의 아내.
> 서로 잡은 손목에 힘이 점점 더 들어갑니다
>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두 개의 고양이 방울의 감촉이 나의 체온과 같아집니다.
> 적고, 크지 않은 감동이지만 우리 두 내외에게는 그 무게가 느껴집니다
>
> 찻집의 음악이 점점 더 감미로워 집니다.
>
> 아름다운 우리 나라 대한민국,
> 서울 인사동의 어느 작은 찻집,
> 우리 두 내외는 살아있는 명화를 옆에서 감상하고 있습니다.
>
> 인간만이 인간을 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 그리고 그것의 위대함을, 비교할 수 없는 숭고함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
> 서울
> 고덕 달림이
> 박복진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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