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자리 문화 바뀌어야 한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허창수 작성일02-05-22 11:58 조회681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우리 술자리 문화 바뀌어야 한다.
계절의 여왕 5월 달이다.
이제 막 지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도 아까시아 향기는 대단하다.
춥지도 덥지도 그리고 모기도 없는 그야말로 황금의 계절이다.
어찌 이 계절을 그냥 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한 잔 해야 한다.
어디서?
그야 당연히...
...
...
지하에서...
...
참 한심타.
춥거나 덥거나, 춥지도 덥지 않아도 우리는 항상 실내에서 술을 마신다.
그냥 그렇게 마신다.
술집부터 그렇고, 술자리도 그렇다.
술자리에는 항상 상이 있다.
상에는 술말고 안주가 더 많다.
계속 나오는 안주, 더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미어 넘친다.
안주 통폐합이 이루어지며 인기 없는 퇴출 안주가 속출한다.
그래도 상은 항상 비좁다.
언제부터인가 술병은 빈병과 함께 바닥에 놓여져 있다.
이쯤 되면 이것이 술자리인지 먹거리자리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이다.
술좌석은 더 가관이다.
옆 사람과 어깨를 맞대며 꼼짝달싹 못할 정도로 붙어있다.
한 잔 하고 싶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몰라도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도 흔한데, 꼼짝달싹 못하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술잔을 돌리는 것 뿐이다.
게다가 중간 어느 한 사람 화장실에 가려면 술자리 전체가 울렁거린다.
게중에는 이것이 너무도 답답해서인지 무우채도 던지고 튀김도 던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모인 사람들 중에는 급하게 다음 볼 일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랜만에 마냥 어우리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가.
'자 일어서', '그만 하지'하며 동시에 끝난다.
이게 1차다.
일차를 끝내고 거리에 나오면 뭔가 부족하고 허전하다는 것을 금방 느낀다.
이것이 그렇게 기다렸던 모임이고 그리고 끝이란 말인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허무한 현실이 엄습해 온다.
늘 그렇다.
술자리 내내 함께 했지만, 꼼짝달싹 못하는 상태에서 한 것이라고는 안주 먹고 술잔 돌린 것 밖에 없다.
배는 부르다.
얼큰하게 취기도 있다.
그러나 만나보고 싶은 사람과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전혀 못했다.
그러니 뭔가 부족하고 허전하기만 하다.
술판이 끝나서 배부르고, 취기도 있지만, 이게 아닌 듯 싶어 서로 어리둥둥 멀쑥한 얼굴만 말없이 바라본다.
이때 쯤이면 누군가가 분명히 말한다.
늘 주장하던 사람이 없으면, 또 다른 누군가가 대신한다.
‘맥주 한 잔 더하자!’
이렇게 해서 2차가 시작된다.
2차의 술자리는 일차와 확연히 다르다.
상은 있으나 안주는 생각이 없다.
주인을 생각해서 마지 못해 시키는 것이 과일 사라다나 마른안주처럼 배 안 부른 종류다.
‘맥주 빨리 주세요’.
‘언니~, 우리 일찍 가야 돼요, 도와 주세요’.
이제야 술 다운 술을 마신다.
비로서 하고 싶어 이야기가 한꺼번에 오간다.
그러니 목소리가 커지고 시끄럽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저~, 문 닫을 시간인데요’.
‘딱!, 한 병 씩만 더 주세요’.
그리고는 결국 쫓겨난다.
이게 2차다.
당연히 복장은 많이 흐트러져 있고, 흥분한 목소리는 아직까지 엄청 크다.
모두 비슷비슷하다.
취흥의 절정 클라이막스다.
어깨동무도 한다.
누군가 투쟁 구호처럼 외친다.
‘노래방 가자’
요즘 노래방은 24시간 영업을 한다.
게다가 술도 판다.
그 시간에 먹던 맥주 집에서 쫓겨난 지경인데 어디 가서 한 잔 더 하겠는가.
대안이 없다.
노래방 뿐이다.
그리고 그곳이 3차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술문화이다.
어느 만남이나 할 것 없이, 거의 비슷비슷하고 그렇고 그런 포멧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는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일제의 잔재’아니 ‘일제의 잔해’이다.
여기에 ‘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이 더해져 만들어 놓은 해괴망측한 술문화이다.
우리는 미국의 선술집의 문화를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익히 봐 왔다.
미국의 술집에는 먼저 bar가 있다.
혼자 마시든 둘이 마시든 경우 따라 바텐더와 함께 마시기도 한다.
여럿이 모여 마시거나 식사할 때에서 테이블을 이용한다.
함께 술 마시며 이야기도 하고, 카드 놀이도 테이블에서 한다.
한 쪽 켠에서는 가수들이 연주하고 노래를 불러준다.
그 앞에서는 플로어가 준비되어 있어 춤도 춘다.
한 마디로 여흥을 담당하는 코너가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코너에는 오락 코너가 준비 되어있다.
이곳에서 당구도 치고 포켓볼도 한다.
그리고 전자 오락기나 핀볼같은 게임도 한다.
쮸크박스에서 원하는 음악도 듣는다.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술집 한 군데에서 할 수 있다.
이것이 i.t. 후진국 미국의 술집의 전형이다.
이런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당구 치려면 당구장에 가야 한다.
오락 하려면 허가 받은 오락실에 가야 한다.
춤을 추려면 무도장 허가가 난 나이트나 성인 디스코로 가야 한다.
요즘은 이런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간 성인 콜라텍도 성업중이라 한다.
노래 부르려면 따로 노래방에 가야하고, 맥주 먹으려면 맥주집에 가야 한다.
미국처럼 한 장소에서 만끽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일차, 이차, 삼차로 나누어 장소를 찾아 헤매면서 어렵게 즐겨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만남이란 맛있는 음식 함께 먹기도 하고, 기분 좋게 취하면서 부담없는 대화를 나누며 흥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춤도 추면서 한 데 어우러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에게 이런 만족을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술 장소가 없다.
제도적으로 없다.
그러니 찾아 다닐 수 밖에.
그러면서도 일차, 이차, 삼차를 이어지는 음주문화를 나무라고 있다.
저 또한 그러하면서 말이다.
인터넷 온라인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생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같은 취미와 동호인이라는 공감으로 이제까지 모르고 지냈던 사람들과 새롭게 만나고 있다.
마라톤 모임도 그러하지 않은가.
분명히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매일 사업장에서 함께 생활하는 직장 동료들 끼리 갖는 회식은 제각기 생활하며 어쩌다 만나는 모임과는 차이가 있다.
이런 모임에서는 서로 만나고 싶은 사람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먼저이다.
이 사람과도 그렇고, 저 사람과도 그렇다.
그런데 우리가 자주 갖는 모임의 장소는 어떠한가.
내가 보기에는 직장 동료 회식에 알맞은 법한 장소들 일색이다.
다시 말해서 어쩌다 만나는 모임의 장소로서는 썩 맞지가 않다.
좀 다른 형태의 모임이 필요하다 느껴진다.
후진국 미국의 ‘파티’ 형태가 더 나을 듯 싶다.
자유롭게 돌아 다니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 다니면서, 아무때고 소리없이 화장실 갈 수 있는 만남의 장소.
5인 이상이 한 자리에서 대화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자리에 전부 모여 앉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이다.
술판은 여러 개로 쪼개져야 한다.
함께 음식 먹는 판, 함께 대화하며 술 먹는 판 하나 둘 그리고 셋, 흥에 겨워 여흥을 즐기는 판 등등으로 나누어져야 한다.
그런데 언제나 술판은 한 판이고 모든 사람이 한 사람에게 만 처음부터 혹은 차례대로 귀 기울여야 한다.
딴전 피우고 구석에서 쑥덕거리면 실례라고 한다.
이건 일본식이다. 그리고 이것이 일제의 잔해다.
4사람이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한 사람 이 25% 이상 계속 이야기하는 것은 런센스이다.
모임 첫 부분에서 전체 인사 한 번이면 족하다.
즉 그날의 주인공과 총무에게 축하인사나 참석인사를 나누면 된다.
그 다음 총무를 통해서 누구누구 왔는가 참석여부를 물어보고 함께 어울리면 된다.
음식을 먹든, 술을 먹든, 대화를 하든, 노래를 부르든, 디스코를 추든지 말이다.
그리고 하나 둘 슬슬 빠져 나가면 끝이다.
이차, 삼차 갈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일차에서 다 끝났다.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
이제 우리의 술자리 문화도 달라져야 한다.
또 그럴 때다.
멍 멍 멍.
김현우님 책출판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hur. 참석못해서배아픈개 허창수였습니다.
계절의 여왕 5월 달이다.
이제 막 지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도 아까시아 향기는 대단하다.
춥지도 덥지도 그리고 모기도 없는 그야말로 황금의 계절이다.
어찌 이 계절을 그냥 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한 잔 해야 한다.
어디서?
그야 당연히...
...
...
지하에서...
...
참 한심타.
춥거나 덥거나, 춥지도 덥지 않아도 우리는 항상 실내에서 술을 마신다.
그냥 그렇게 마신다.
술집부터 그렇고, 술자리도 그렇다.
술자리에는 항상 상이 있다.
상에는 술말고 안주가 더 많다.
계속 나오는 안주, 더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미어 넘친다.
안주 통폐합이 이루어지며 인기 없는 퇴출 안주가 속출한다.
그래도 상은 항상 비좁다.
언제부터인가 술병은 빈병과 함께 바닥에 놓여져 있다.
이쯤 되면 이것이 술자리인지 먹거리자리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이다.
술좌석은 더 가관이다.
옆 사람과 어깨를 맞대며 꼼짝달싹 못할 정도로 붙어있다.
한 잔 하고 싶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몰라도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도 흔한데, 꼼짝달싹 못하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술잔을 돌리는 것 뿐이다.
게다가 중간 어느 한 사람 화장실에 가려면 술자리 전체가 울렁거린다.
게중에는 이것이 너무도 답답해서인지 무우채도 던지고 튀김도 던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모인 사람들 중에는 급하게 다음 볼 일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랜만에 마냥 어우리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가.
'자 일어서', '그만 하지'하며 동시에 끝난다.
이게 1차다.
일차를 끝내고 거리에 나오면 뭔가 부족하고 허전하다는 것을 금방 느낀다.
이것이 그렇게 기다렸던 모임이고 그리고 끝이란 말인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허무한 현실이 엄습해 온다.
늘 그렇다.
술자리 내내 함께 했지만, 꼼짝달싹 못하는 상태에서 한 것이라고는 안주 먹고 술잔 돌린 것 밖에 없다.
배는 부르다.
얼큰하게 취기도 있다.
그러나 만나보고 싶은 사람과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전혀 못했다.
그러니 뭔가 부족하고 허전하기만 하다.
술판이 끝나서 배부르고, 취기도 있지만, 이게 아닌 듯 싶어 서로 어리둥둥 멀쑥한 얼굴만 말없이 바라본다.
이때 쯤이면 누군가가 분명히 말한다.
늘 주장하던 사람이 없으면, 또 다른 누군가가 대신한다.
‘맥주 한 잔 더하자!’
이렇게 해서 2차가 시작된다.
2차의 술자리는 일차와 확연히 다르다.
상은 있으나 안주는 생각이 없다.
주인을 생각해서 마지 못해 시키는 것이 과일 사라다나 마른안주처럼 배 안 부른 종류다.
‘맥주 빨리 주세요’.
‘언니~, 우리 일찍 가야 돼요, 도와 주세요’.
이제야 술 다운 술을 마신다.
비로서 하고 싶어 이야기가 한꺼번에 오간다.
그러니 목소리가 커지고 시끄럽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저~, 문 닫을 시간인데요’.
‘딱!, 한 병 씩만 더 주세요’.
그리고는 결국 쫓겨난다.
이게 2차다.
당연히 복장은 많이 흐트러져 있고, 흥분한 목소리는 아직까지 엄청 크다.
모두 비슷비슷하다.
취흥의 절정 클라이막스다.
어깨동무도 한다.
누군가 투쟁 구호처럼 외친다.
‘노래방 가자’
요즘 노래방은 24시간 영업을 한다.
게다가 술도 판다.
그 시간에 먹던 맥주 집에서 쫓겨난 지경인데 어디 가서 한 잔 더 하겠는가.
대안이 없다.
노래방 뿐이다.
그리고 그곳이 3차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술문화이다.
어느 만남이나 할 것 없이, 거의 비슷비슷하고 그렇고 그런 포멧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는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일제의 잔재’아니 ‘일제의 잔해’이다.
여기에 ‘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이 더해져 만들어 놓은 해괴망측한 술문화이다.
우리는 미국의 선술집의 문화를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익히 봐 왔다.
미국의 술집에는 먼저 bar가 있다.
혼자 마시든 둘이 마시든 경우 따라 바텐더와 함께 마시기도 한다.
여럿이 모여 마시거나 식사할 때에서 테이블을 이용한다.
함께 술 마시며 이야기도 하고, 카드 놀이도 테이블에서 한다.
한 쪽 켠에서는 가수들이 연주하고 노래를 불러준다.
그 앞에서는 플로어가 준비되어 있어 춤도 춘다.
한 마디로 여흥을 담당하는 코너가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코너에는 오락 코너가 준비 되어있다.
이곳에서 당구도 치고 포켓볼도 한다.
그리고 전자 오락기나 핀볼같은 게임도 한다.
쮸크박스에서 원하는 음악도 듣는다.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술집 한 군데에서 할 수 있다.
이것이 i.t. 후진국 미국의 술집의 전형이다.
이런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당구 치려면 당구장에 가야 한다.
오락 하려면 허가 받은 오락실에 가야 한다.
춤을 추려면 무도장 허가가 난 나이트나 성인 디스코로 가야 한다.
요즘은 이런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간 성인 콜라텍도 성업중이라 한다.
노래 부르려면 따로 노래방에 가야하고, 맥주 먹으려면 맥주집에 가야 한다.
미국처럼 한 장소에서 만끽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일차, 이차, 삼차로 나누어 장소를 찾아 헤매면서 어렵게 즐겨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만남이란 맛있는 음식 함께 먹기도 하고, 기분 좋게 취하면서 부담없는 대화를 나누며 흥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춤도 추면서 한 데 어우러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에게 이런 만족을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술 장소가 없다.
제도적으로 없다.
그러니 찾아 다닐 수 밖에.
그러면서도 일차, 이차, 삼차를 이어지는 음주문화를 나무라고 있다.
저 또한 그러하면서 말이다.
인터넷 온라인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생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같은 취미와 동호인이라는 공감으로 이제까지 모르고 지냈던 사람들과 새롭게 만나고 있다.
마라톤 모임도 그러하지 않은가.
분명히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매일 사업장에서 함께 생활하는 직장 동료들 끼리 갖는 회식은 제각기 생활하며 어쩌다 만나는 모임과는 차이가 있다.
이런 모임에서는 서로 만나고 싶은 사람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먼저이다.
이 사람과도 그렇고, 저 사람과도 그렇다.
그런데 우리가 자주 갖는 모임의 장소는 어떠한가.
내가 보기에는 직장 동료 회식에 알맞은 법한 장소들 일색이다.
다시 말해서 어쩌다 만나는 모임의 장소로서는 썩 맞지가 않다.
좀 다른 형태의 모임이 필요하다 느껴진다.
후진국 미국의 ‘파티’ 형태가 더 나을 듯 싶다.
자유롭게 돌아 다니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 다니면서, 아무때고 소리없이 화장실 갈 수 있는 만남의 장소.
5인 이상이 한 자리에서 대화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자리에 전부 모여 앉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이다.
술판은 여러 개로 쪼개져야 한다.
함께 음식 먹는 판, 함께 대화하며 술 먹는 판 하나 둘 그리고 셋, 흥에 겨워 여흥을 즐기는 판 등등으로 나누어져야 한다.
그런데 언제나 술판은 한 판이고 모든 사람이 한 사람에게 만 처음부터 혹은 차례대로 귀 기울여야 한다.
딴전 피우고 구석에서 쑥덕거리면 실례라고 한다.
이건 일본식이다. 그리고 이것이 일제의 잔해다.
4사람이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한 사람 이 25% 이상 계속 이야기하는 것은 런센스이다.
모임 첫 부분에서 전체 인사 한 번이면 족하다.
즉 그날의 주인공과 총무에게 축하인사나 참석인사를 나누면 된다.
그 다음 총무를 통해서 누구누구 왔는가 참석여부를 물어보고 함께 어울리면 된다.
음식을 먹든, 술을 먹든, 대화를 하든, 노래를 부르든, 디스코를 추든지 말이다.
그리고 하나 둘 슬슬 빠져 나가면 끝이다.
이차, 삼차 갈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일차에서 다 끝났다.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
이제 우리의 술자리 문화도 달라져야 한다.
또 그럴 때다.
멍 멍 멍.
김현우님 책출판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hur. 참석못해서배아픈개 허창수였습니다.
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