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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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동욱 작성일02-02-26 16:01 조회66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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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어느날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모임 사이트에 들렀더니, 한 친구의 부음이 올라있었다.
가슴 철렁함을 느끼며, 친구의 이름을 확인했다.
읍 소재지에 있었던 우리 초등학교에는 주변에서 2,3km 떨어진 곳에서 산길을 따라 등교를 하는 친구들이 꽤 많았고, 이 친구도 그 중의 하나였으며, 이 친구가 살던 동네는 같은 성씨가 모여서 사는 동족촌이었던 관계로 같은 성에다 돌림자 까지 같은 친구가 많아, 그 동네 친구들의 이름은 유독 헷갈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의 ‘이지메’와는 조금 다르지만, 그 시절에도 메이저와 마이너가 구분이 되어, 점심시간의 공차기나 방과 후의 놀이에는 분명한 그룹이 있어 참여권의 유무가 확실했었는데, 이 친구는 그런 놀이에는 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소위 ‘어디어디촌놈’인 마이너 부류에 속하였었다.
게다가 이 친구의 코밑은 푸른 콧물로 거의 마를 날이 없었고, 아마 3,4학년 때 까지는 껌정고무신을 신고 다녔고, 나머지공부를 도맡아 했던 걸로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 친구가 그나마 내 기억에 이렇게까지 남아있는 것은, 나의 쓰잘때기 없이 세심한 기억력에도 기인하지만, 이 친구가 공교롭게도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3학년, 그 두 번의 졸업반을 나와 같은 반이 되어, 졸업반이라는 아련한 감성과 함께 동창이라는 기억의 한자리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언젠가 중학교 어느 소풍에서 반 대항 닭싸움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우리 반에선 이 친구가 최후까지 남아서 선전을 하였던 기억이 나기도 한다.
아무튼, 중학교 졸업과 함께 그 친구와의 소식은 두절이 되었다. 아니, 애초부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렇게 관심밖에 있던 이 친구를 작년 여름 초등학교 동창회 체육대회에서 20년 만에 만나, 서로의 근황을 얘기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친구는 중학교 졸업 후 타 지역의 공업고에 진학을 하였고.. 그렇게 저렇게 지금은 꽤 알려진 건설회사의 현장과장의 일을 하고 있으며.. 초등학교 1,2학년 두 딸을 두고 지방 어디에서 살고 있다는 작은 성공스토리를 들려주었었다.
친구는 20여년 만에 자신의 성공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거다. 어릴 적 코흘리개에, 친구들에게 무시만 당하던 촌놈이 성공하여 당당하게 사는 모습을.. 그날 이 친구의 모습은 20여년 전의 그 소심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당당한 모습이었다.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으나, 나는 그래도 마이너는 마이너라는 쓸 대 없는 자존심에 친구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건성으로 듣고는 친구의 자랑을 믿지 않으려 마음속으로는 애써 외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무심한 시간이 수 개월 흘러 지난 주에 그 친구의 부음을 동창회 사이트를 통해 들었다.
저녁 공사현장을 순찰하다가 실족을 하여,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처참한 모습으로 현장에서 즉사했다는..
아직은 젊은 미망인과 어린 딸 둘을 남기고..
나는 이런저런 이유에서 이 친구의 문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이너 동창이었기 때문에 문상을 하지 않은 것은 분명 아니었다.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어진 이 나이에.. 마이너가 무엇이고 메이저가 다 무엇인가? 그저 기억해 주고, 기억되어지는 친구가 소중할 뿐인 것을..
그리고..
며칠이 지난 오늘..
동창회 사이트에는 이 친구와 같은 동네에서 죽마고우로 자랐던 다른 친구의 글이 이렇게 올라 있다.
좀 바쁘시더라도 사랑하며 살아 봅시다.
그리운 이가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따스한 가슴으로 지금쯤 한번 전화라도 해 줍시다.
죽어 백 잔 술이.. 또 억만 송이 꽃이..
살아 한 잔. 한 송이 만 하겠습니까?
내가 먼저 용기를 내어 봅시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있는 힘이면 충분 합니다.
누구 사하면 땅에 묻고
누구 사하면 하늘에 묻고
누구 사하면 가슴에 묻는다 했더이다.
나는 그냥 술잔에 묻었나이다.
답답한 가슴으로 한잔 술이 그리울 때
망설이지 말고.........
가슴 철렁함을 느끼며, 친구의 이름을 확인했다.
읍 소재지에 있었던 우리 초등학교에는 주변에서 2,3km 떨어진 곳에서 산길을 따라 등교를 하는 친구들이 꽤 많았고, 이 친구도 그 중의 하나였으며, 이 친구가 살던 동네는 같은 성씨가 모여서 사는 동족촌이었던 관계로 같은 성에다 돌림자 까지 같은 친구가 많아, 그 동네 친구들의 이름은 유독 헷갈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의 ‘이지메’와는 조금 다르지만, 그 시절에도 메이저와 마이너가 구분이 되어, 점심시간의 공차기나 방과 후의 놀이에는 분명한 그룹이 있어 참여권의 유무가 확실했었는데, 이 친구는 그런 놀이에는 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소위 ‘어디어디촌놈’인 마이너 부류에 속하였었다.
게다가 이 친구의 코밑은 푸른 콧물로 거의 마를 날이 없었고, 아마 3,4학년 때 까지는 껌정고무신을 신고 다녔고, 나머지공부를 도맡아 했던 걸로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 친구가 그나마 내 기억에 이렇게까지 남아있는 것은, 나의 쓰잘때기 없이 세심한 기억력에도 기인하지만, 이 친구가 공교롭게도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3학년, 그 두 번의 졸업반을 나와 같은 반이 되어, 졸업반이라는 아련한 감성과 함께 동창이라는 기억의 한자리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언젠가 중학교 어느 소풍에서 반 대항 닭싸움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우리 반에선 이 친구가 최후까지 남아서 선전을 하였던 기억이 나기도 한다.
아무튼, 중학교 졸업과 함께 그 친구와의 소식은 두절이 되었다. 아니, 애초부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렇게 관심밖에 있던 이 친구를 작년 여름 초등학교 동창회 체육대회에서 20년 만에 만나, 서로의 근황을 얘기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친구는 중학교 졸업 후 타 지역의 공업고에 진학을 하였고.. 그렇게 저렇게 지금은 꽤 알려진 건설회사의 현장과장의 일을 하고 있으며.. 초등학교 1,2학년 두 딸을 두고 지방 어디에서 살고 있다는 작은 성공스토리를 들려주었었다.
친구는 20여년 만에 자신의 성공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거다. 어릴 적 코흘리개에, 친구들에게 무시만 당하던 촌놈이 성공하여 당당하게 사는 모습을.. 그날 이 친구의 모습은 20여년 전의 그 소심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당당한 모습이었다.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으나, 나는 그래도 마이너는 마이너라는 쓸 대 없는 자존심에 친구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건성으로 듣고는 친구의 자랑을 믿지 않으려 마음속으로는 애써 외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무심한 시간이 수 개월 흘러 지난 주에 그 친구의 부음을 동창회 사이트를 통해 들었다.
저녁 공사현장을 순찰하다가 실족을 하여,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처참한 모습으로 현장에서 즉사했다는..
아직은 젊은 미망인과 어린 딸 둘을 남기고..
나는 이런저런 이유에서 이 친구의 문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이너 동창이었기 때문에 문상을 하지 않은 것은 분명 아니었다.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어진 이 나이에.. 마이너가 무엇이고 메이저가 다 무엇인가? 그저 기억해 주고, 기억되어지는 친구가 소중할 뿐인 것을..
그리고..
며칠이 지난 오늘..
동창회 사이트에는 이 친구와 같은 동네에서 죽마고우로 자랐던 다른 친구의 글이 이렇게 올라 있다.
좀 바쁘시더라도 사랑하며 살아 봅시다.
그리운 이가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따스한 가슴으로 지금쯤 한번 전화라도 해 줍시다.
죽어 백 잔 술이.. 또 억만 송이 꽃이..
살아 한 잔. 한 송이 만 하겠습니까?
내가 먼저 용기를 내어 봅시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있는 힘이면 충분 합니다.
누구 사하면 땅에 묻고
누구 사하면 하늘에 묻고
누구 사하면 가슴에 묻는다 했더이다.
나는 그냥 술잔에 묻었나이다.
답답한 가슴으로 한잔 술이 그리울 때
망설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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