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발굽 아래의 카필라 바스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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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강하 작성일02-02-01 19:28 조회47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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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발굽 아래의 카필라 바스투>
>그러나 마침 바라내국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난
>마이트레야(彌勒)란 비구(比丘)가 입고 거리에 나서니
>나처럼 32相이 번쩍이며 제자로써 수행하다 바라나시에서 입멸(入滅)하여
>도솔천에 올라가 훗날을 기약하며 보살로서 수행하다가 부처님으로 대각하여
>이 세상을 구제하고자, 나를 이어 구제코자 기다리고 있지.
>그 도솔천에서 정정하게 수행하며 이승에
>내려오기만 기다리고 있지.
- 아직 3겹의 꿈속에 있음 -
그러던 어느 날
공화제 도시국가 바이샤알리에 흉년과 전염병이 들어
마하아리의 인도(引導)로 릿차비인들에게 "寶經(라트나 수우트라)"을 설하기도 하였지.
부처님께 귀의하오니 복받을지어다
법에 귀의하오니 복받을 지어다.
승단에 귀의하오니 복받을 지어다.
그러자 모오든 災害가 소멸되기도 하였지.
깨끗이 없어졌지. 비가 내렸지. 장대비가 내렸지.
그리고 在家信者 비말라길티(維摩居士)는 나의 내노라하는
제자들을 쩔쩔매게 하였으니 反骨정신으로 가득한 "維摩經" 아니런가?
그리하여 성도(聖道)후
바라나시 므리가다바(鹿野苑)에서 제1성을 올리고
마가다왕국 라자그리하(王舍城)의 벨루바나(竹林精舍)에서 교단의 기초를 닦고
코오살라 슈라바스티(舍衛城)에서 기원정사(祈園精舍)를 세워 제2의 거점을 마련하고
고향 방문으로 수많은 석가 족을 출가시켜 바이샤알리에도 뿌리를 내려
불과 4-5년 만에 교단으로서의 기반을 닦아 바라문교(힌두교)와도
대등한 위치에서 번뇌에 몸부림치는 뭇중생을 제도하였지.
커지는 교단에 대하여 미녀 친치아와 순다리를 이용한
음해공작도 있었지만
카우샴비와 찬파아등 교단내 계율분쟁도 있었지만...
동족에게서 메시아 예수가 출현했음을 부인하고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교처럼
석가족에게서 부처가 출현했음을 부인하고 연등불을 신봉하며
부처의 출현을 고대하며 은둔과 극도의 검약과 엄격한 고행수련을 지향하는,
유제품과 소금과 생선을 절대 먹지 않는
보수적인 사촌 데바닷다 일파의 군침을 삼키는 음해가 집요하였지만...
불력(佛力)으로서 모오든 것 물리치고
살인귀 앙굴리마알라(指??) 아힝사를 굴복시켜
구름에서 모습을 나타낸 달처럼 이 세상을 비출 수 있게 하였지.
순탄하기만 한 길은 아니었지만 모오든 것을 믿음으로, 선정으로 인도하여갔지.
카필라와 코올리야 중간에 흐르는 로히니강의 물싸움이 나자
마하아바나(大林精舍)에 머물던 나는 다독거리기도 하였지.
농업국가인 그들 소국(小國)에게 물은 대단한 것이었지.
특히 갈수기에 물은 황금과도 같았지.
원한을 지닌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 원한을 버리고 즐겁게 살자
원한을 지닌 사람들 속에서라도 우리들은 원한에서 벗어나 살자
고뇌하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 고뇌에서 벗어나 즐겁게 살자
고뇌하는 사람들 속에서라도 우리들은 고뇌에서 벗어나 살자
탐욕이 있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 탐욕에서 벗어나 즐겁게 살자
탐욕이 있는 사람들 속에서라도 우리들은 탐욕에서 벗어나 살자
이렇게 세상을 제도하고
소국 카필라바스투에 사는 동족들을 불문(佛門)에 입문시켜
조국의 동량들은 세상을 구제하는 승려로 나아가니
호시탐탐 침략을 도모하는 주변국가들에 취약한
지킬 인재 하나 없는 카필라성은 마침내
코오살라국 비두다바(昆琉璃)의 단칼에 무너지니
외조부의 나라를 멸(滅)한 비두다바는 이레만에 벼락으로 죽고
그의 나라 코오살라도 마침내 아리아족의 마가다왕국에 병탄되고야 말았지.
몇 번이나 그들의 칼을 몸으로써, 불력으로써 막아섰지만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막을 수 없었지.
나의 만년(晩年)은 불력(佛力)으로 세상을 얻었으되
추억 어린 카필라 바스투가 코오살라의 잡초에 묻혀 버리고
그 코오살라도 마가다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나의 교화 45년이
더불어 사는 세상이 아닌 말발굽 아래 짓밟히는 아수라의 국면이었으니
코오살라국의 프라세나짓 왕과 제에타 태자의 교화가 무엇이더냐?
마가다의 빔비사라왕과 아바야바 태자의 교화가 무엇이더냐?
태자들은 계승치 못하고 코오살라의 비두바두와
마가다의 아자타샤트루의 말발굽으로
갠지스 강가가 핏빛으로 물들었으니...
아뇩다라 삼먁삼보리
(無上正等覺)가 무엇이더냐?
나보다 500년전 나타난 바라문교와
나보다 500년후 나타난 기독교와
나보다 1000년후 나타난 이슬람교와 더불어
세상의 빛이 되고 무상보리(無上菩提)가 됨으로써
그래도 카필라 바스투가 영원히 죽지 않음 아닌가? 생각해본다.
- 3겹의 꿈에 갇혀서 천천히 달리다가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2002/2/1 이름 없는 풀뿌리 나강하 배상>
>그러나 마침 바라내국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난
>마이트레야(彌勒)란 비구(比丘)가 입고 거리에 나서니
>나처럼 32相이 번쩍이며 제자로써 수행하다 바라나시에서 입멸(入滅)하여
>도솔천에 올라가 훗날을 기약하며 보살로서 수행하다가 부처님으로 대각하여
>이 세상을 구제하고자, 나를 이어 구제코자 기다리고 있지.
>그 도솔천에서 정정하게 수행하며 이승에
>내려오기만 기다리고 있지.
- 아직 3겹의 꿈속에 있음 -
그러던 어느 날
공화제 도시국가 바이샤알리에 흉년과 전염병이 들어
마하아리의 인도(引導)로 릿차비인들에게 "寶經(라트나 수우트라)"을 설하기도 하였지.
부처님께 귀의하오니 복받을지어다
법에 귀의하오니 복받을 지어다.
승단에 귀의하오니 복받을 지어다.
그러자 모오든 災害가 소멸되기도 하였지.
깨끗이 없어졌지. 비가 내렸지. 장대비가 내렸지.
그리고 在家信者 비말라길티(維摩居士)는 나의 내노라하는
제자들을 쩔쩔매게 하였으니 反骨정신으로 가득한 "維摩經" 아니런가?
그리하여 성도(聖道)후
바라나시 므리가다바(鹿野苑)에서 제1성을 올리고
마가다왕국 라자그리하(王舍城)의 벨루바나(竹林精舍)에서 교단의 기초를 닦고
코오살라 슈라바스티(舍衛城)에서 기원정사(祈園精舍)를 세워 제2의 거점을 마련하고
고향 방문으로 수많은 석가 족을 출가시켜 바이샤알리에도 뿌리를 내려
불과 4-5년 만에 교단으로서의 기반을 닦아 바라문교(힌두교)와도
대등한 위치에서 번뇌에 몸부림치는 뭇중생을 제도하였지.
커지는 교단에 대하여 미녀 친치아와 순다리를 이용한
음해공작도 있었지만
카우샴비와 찬파아등 교단내 계율분쟁도 있었지만...
동족에게서 메시아 예수가 출현했음을 부인하고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교처럼
석가족에게서 부처가 출현했음을 부인하고 연등불을 신봉하며
부처의 출현을 고대하며 은둔과 극도의 검약과 엄격한 고행수련을 지향하는,
유제품과 소금과 생선을 절대 먹지 않는
보수적인 사촌 데바닷다 일파의 군침을 삼키는 음해가 집요하였지만...
불력(佛力)으로서 모오든 것 물리치고
살인귀 앙굴리마알라(指??) 아힝사를 굴복시켜
구름에서 모습을 나타낸 달처럼 이 세상을 비출 수 있게 하였지.
순탄하기만 한 길은 아니었지만 모오든 것을 믿음으로, 선정으로 인도하여갔지.
카필라와 코올리야 중간에 흐르는 로히니강의 물싸움이 나자
마하아바나(大林精舍)에 머물던 나는 다독거리기도 하였지.
농업국가인 그들 소국(小國)에게 물은 대단한 것이었지.
특히 갈수기에 물은 황금과도 같았지.
원한을 지닌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 원한을 버리고 즐겁게 살자
원한을 지닌 사람들 속에서라도 우리들은 원한에서 벗어나 살자
고뇌하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 고뇌에서 벗어나 즐겁게 살자
고뇌하는 사람들 속에서라도 우리들은 고뇌에서 벗어나 살자
탐욕이 있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 탐욕에서 벗어나 즐겁게 살자
탐욕이 있는 사람들 속에서라도 우리들은 탐욕에서 벗어나 살자
이렇게 세상을 제도하고
소국 카필라바스투에 사는 동족들을 불문(佛門)에 입문시켜
조국의 동량들은 세상을 구제하는 승려로 나아가니
호시탐탐 침략을 도모하는 주변국가들에 취약한
지킬 인재 하나 없는 카필라성은 마침내
코오살라국 비두다바(昆琉璃)의 단칼에 무너지니
외조부의 나라를 멸(滅)한 비두다바는 이레만에 벼락으로 죽고
그의 나라 코오살라도 마침내 아리아족의 마가다왕국에 병탄되고야 말았지.
몇 번이나 그들의 칼을 몸으로써, 불력으로써 막아섰지만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막을 수 없었지.
나의 만년(晩年)은 불력(佛力)으로 세상을 얻었으되
추억 어린 카필라 바스투가 코오살라의 잡초에 묻혀 버리고
그 코오살라도 마가다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나의 교화 45년이
더불어 사는 세상이 아닌 말발굽 아래 짓밟히는 아수라의 국면이었으니
코오살라국의 프라세나짓 왕과 제에타 태자의 교화가 무엇이더냐?
마가다의 빔비사라왕과 아바야바 태자의 교화가 무엇이더냐?
태자들은 계승치 못하고 코오살라의 비두바두와
마가다의 아자타샤트루의 말발굽으로
갠지스 강가가 핏빛으로 물들었으니...
아뇩다라 삼먁삼보리
(無上正等覺)가 무엇이더냐?
나보다 500년전 나타난 바라문교와
나보다 500년후 나타난 기독교와
나보다 1000년후 나타난 이슬람교와 더불어
세상의 빛이 되고 무상보리(無上菩提)가 됨으로써
그래도 카필라 바스투가 영원히 죽지 않음 아닌가? 생각해본다.
- 3겹의 꿈에 갇혀서 천천히 달리다가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2002/2/1 이름 없는 풀뿌리 나강하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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