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자마라톤에 대한 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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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혜경 작성일00-11-17 09:29 조회1,07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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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서울여자마라톤대회>
서울마라톤 사이트에서 이 '여자마라톤'때는 많은 남자 러너들이 자원봉사를 한다는 얘기를 듣던 터라 약간의 부담도 느끼면서 설레는 마음 가득했습니다.
11월 둘째 일요일 아침 9시경,
여의나루 역에서 내려 고수부지로 내려가는 계단 앞.
내려다보니 벌써 많은 남성분들이 '여자마라톤'을 위해 분주하게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계단을 하나 둘 내려가는데 약간 떨립니다.
마치 여고생이 남학교 앞을 지날 때 같은...
참 내, 마흔이 내일모레인데...
여하튼 그런 쑥스러움이 섞인 채 내려가며 용기를 내 남성들 쪽을 찬찬히 살피는데
아무도 저에 대해 주의깊게 보지 않더라고요.
모두들 오늘의 확실한 준비를 위해 열중인 거 있죠!
치~ 괜히 떨었네.
유유히 걸어 '배번호 받는 곳' '탈의실' 등,
눈에 확실히 띄게 잘 배치되어 누구라도 쉽게 찾을 수 있게 마련된 곳들을
하나하나 거치며 준비를 합니다.
탈의실 바닥은 추운 날씨를 감안해 부드럽고 두꺼운 스폰지 같은 것으로 깔아두어
폭신폭신해 참 좋았습니다.
게다가 거울까지!
여자들의 멋내기 좋아함을 한껏 배려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5km 초보자들에게는 경험자들이 옷 입는 법도 가르쳐 주기고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습니다.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몇 번씩 만났던 사람들처럼 다정하게 바라보며
떨림과 두려움섞인 얘기들을 듣습니다.
신나는 에어로빅으로 몸을 푸니 파스코 비닐옷(?)이 절로 벗겨집니다.
코스별로 모여라~
몇 안 되는 풀코스 주자들.
몇 명 안 되기에 페이스메이커는 없겠지 하며 물으니
서울마라톤 '만남의광장'에 글 올린 대로 정점미 언니(나중에 이렇게 부르게 됨)가
4시간대 맞춰서 달리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풀 참가자도 별로 없고 이번대회 우승 후보자로 거명된 분(3시간 12분대)이시기에 그렇게 늦게 달려서야 되겠나 싶어 별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출발 주로 양쪽 가에 사랑가득한 응원의 눈길을 온 몸에 담은 채
......5,4,3,2,1,0
출발!!!
누군가가 엄청 빠르게 앞서 달려 나갑니다.
괜스레 겁이 덜컹 나다가 내 분수에 맞춰 달려야지, 다독이며 제 페이스로 달려갑니다.
더군다나 난 앞으로 4시간 쯤은 계속 달려야할텐데 하며 느긋하게 마음을 먹습니다.
'반달' 하프 반환점 정도 지점에서 음료를 마시며 뒤를 보니 바로 뒤에 정점미 언니가 오고 있었습니다. 지난 춘천에서 3시간 58분이어서 10분 정도만 단축되었으면 좋겠다는 제 말에 계속 발을 맞춰 주었습니다. 달리며 얘기를 들어보니 언니는 바로 지난 춘천마라톤에서 3시간 12분으로 풀 여자부문에서 3위를 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이런 기록선수와 나란히 옆에 달리게 되다니... 이런 영광이...
더군다나 언니는 이 여자마라톤을 위해서 '동아대회'도 마다하고 창원에서부터 첫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것입니다.
언니는 여자마라톤의 활성화를 위해서 많이 참여해야 한다는 의식이 아주 강했습니다.
언니의 말이 고마웠습니다. 더군다나 새벽부터 비행기를 타고 서울까지 오는 이 지극한 정성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저는 이 대회의 지극히 미미한 한 참가자에 불과한데도 왜 제가 그리 고마웠는지요.
같은 여자로서 여성마라톤계의 발전을 위해 열심이라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언니는 달리면서, 이것저것 신경 안 쓰고 무식하게 달리기만 하는 제게
철분영양제의 중요성과 마라톤연습의 정도(程度)에 대해 자상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참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반환점 돌아서까지도 아무 무리 없이 처음 속도를 잘 유지하며 달려냈습니다.
반환점을 돌아 어느 정도 오면서부터는 옆에 한 친구가 더 같이 달리게 되었습니다.
200번대의 번호로 봐서 20대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늘씬해서는 아주 잘 달리더라고요.
서로 통성명을 합니다. 20대 최은숙, 40대 정점미, 30대 장혜경.
얘기 들어보니 은숙은 작년 이 대회에서 마라톤을 처음 시작했는데 하프를 달렸으며
기록은 1시간 46분이라는 것입니다. 놀라워라~
그리곤 한 번도 안 하다가 이번에 풀코스를 처음 달린다는데 전혀 힘들어 하는 기색이 안 보이더라고요. 알고봤더니 철인경기도 한 대요.
모든 운동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지금은 대학 재학중이라 운동할 새가 별로 없다는군요.
마라톤을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달려보기도 처음입니다.
어쨌거나 우린 이렇게 셋이서 나란히 정성껏 달렸습니다.
이때 저는 '정점미님'을 '정점미언니'라 부르게 됩니다.
처음 만났는데도 오래 만난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해주어 그게 쉬웠습니다.
언니는 갈 때나 돌아올 때나 마주치는 주자들에게마다
'힘!' '000번 힘내세요'로 빠짐없이 힘을 실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압니다, 달리는 사람들은.
그런 한 마디가 지쳐있을 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30km쯤 지났을까? 언니가 저보고 시간 단축되겠다며 풀이 네 번째니까 속도를 조금 더 내보라고, 40분대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럴 수 있을까 저어하면서도 그때까지만 해도 몸에 아무 무리 없었고 컨디션도 좋고 해서 두 분보다 몇 발짝 더 앞서 달렸습니다.
저는 급수대마다 사랑 가득한 생수와 이온음료를 한 컵 가득씩 꼭꼭 마시며 달리는데
두 분은 별로 물도 마시지 않고 달리네요.
잘 달리는 사람은 물도 별로 안 마시나?
어쨌거나 그렇게 열심히 달리다가 5km 정도 남은 지점에서 물 한 컵을 다 마시고 배가 고파 바나나도 하나 다 먹고 달리기 시작하는데...
이런 이런, 왼쪽발에 이상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달리면서 늘 저 자신 오르막에 강하다는 걸 느껴왔습니다.
점미 언니 말에 의하면 동아에서는 2km나 되는 언덕이 있어 무척 힘들다고 하던데,
그런 곳은 안 가봤지만 저로서는 낮고 짧은 오르막에서는 더 힘이 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왼쪽 다리가 그 오른다싶은 곳에서 힘을 전혀 못 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0km반환점에서 약간 오르막 있잖아요. 한강 다리 밑으로 가기 바로 전 말입니다. 이 부분을 오르는데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왼쪽 허벅지 위 가래톳 서는 부위가 아파오는데...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냥 걷지나 말고 천천히 달려야겠다 합니다.
그래도 평평한 곳은 달릴만 했습니다.
내가 쳐지기 시작하니 은숙이가 저만치 앞서 가고
점미 언니는 안스러운 듯 자꾸 나를 돌아보며 저만치 멀어져 갑니다.
3km, 2km 이정표가 오늘처럼 멀게 느껴지기는 처음입니다.
그래도 무사히 저기 저 골인지점이 보이는 곳까지 달려왔습니다.
우리 자원봉사 여고생이 마이크로 본부에 제 배번호를 불러주며 함께 달려줍니다.
마지막에 함께 달려줌이 어찌나 큰 힘이 되어주었는지...
고맙습니다.
언제나처럼 골인지점을 앞에 두면 힘이 솟는군요.
더 세게, 더 세게...
스피드칩 센서 밟히는 소리와 함께 완주메달을 목에 걸어줍니다.
3시간 55분 04초.
붉고 귀여운 장미를 한 송이 안겨 줍니다.
저기 저 바로 앞엔 뚱뚱한 낯 익은 이가 사랑스럽게 다가옵니다.
힘에 겨워 의자에 앉으니 누군가 제 키만한 타월로 몸을 감싸 줍니다.
학생 봉사자가 물병을 따서 줍니다.
또 누군가가 스피트칩을 풀어줍니다.
......
이 글을 다 쓰고 나니 새삼 감격의 이슬이 고입니다.
열심히 달려온 사람에 대한 <서울여자마라톤>의 세심한 베려가,
하나에서 열까지 그 따뜻한 배려가 눈물겹게 합니다.
저는 마라톤 1년도 안 된 초보입니다.
마라톤에 대한 경험도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풀을 네 번째나 완주했네요.
그런데 지금까지 이렇게 완벽하게 준비해준 대회는 못 보았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몇 차례 달려본 사람으로서
매번 완주매달은 힘든 다리를 끌고 가서 바나나와 함께 받아들고
칲 역시도 혼자 힘들게 힘들게 끈을 풀어 반납하곤 했는데
골인지점에서 매달을 목에 걸어줄 때는 마치 엄마가 우리 딸 장하다면서 매달을 안겨주는 듯한 따뜻한 느낌이었으며, 칲 풀어주는 것도 그때는 아무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는데 새록새록 고맙고 세심한 배려에 서울여자마라톤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 어디에서 마라톤 후에 장미꽃을 받아볼 수 있을 것이며
또 어디에서 아무리 춥다고 주최측에서 타월로 추위를 감싸주겠습니까?
그것도 처음엔 다시 반납하는 것인 줄 알았더니 각자 개인에게 하나씩 배부된 것이더군요.
고맙습니다.
다른 대회에서는 완주후에 생수와 빵 혹은 바나나 정도인데
우리(?) 서울여자마라톤에서는 생수에다 빵에다 또 초코파이, 거기다 맛있는 떡까지!
출발할 때는 마냥 즐거웠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우리 여자들만을 위해 많은 남자들이 자원봉사를 해 준다는 사실에.
달리면서, 그리고 끝나고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오늘 자원봉사하신 분들 너무나 고생 많으셨다는 것입니다.
주자들도 많지 않아 기다리기도 지루하고 추운날 차라리 달리는 것이 낫지
언제 올지도 모를 드문드문한 여자러너들을 위해 음료대 지키기. 차선 정리하기
깃발 흔들며 응원해주기...
얼마나 지루하셨습니까? 얼마나 추우셨습니까?
고맙습니다...
봉사자 여러분들 가정에 사랑과 평화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렇게 지리하도록 길게,
세세하게 느낌을 밝힌 것은 그마만큼 '서울여자마라톤'이 고맙기 때문입니다.
열 번에 열 번을 말해도 또 하고 싶은 말,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저는 '서울여자마라톤'이 걱정스러웠습니다.
이렇게 거의 완벽에 가까우리만치 잘 준비된 대회, 너무나 잘 되었기에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기우를 하는 것입니다.
대회에 조금 허점도 보이며 대충대충 힘 안들이고 해야 부담없이 오래 갈 것 같기에...
남자러너들은 올해 자원봉사가 너무 힘들어 내년엔 안 하겠다고 고개 설레설레 저으며 도망가는 건 아닐는지...
올 한해 마라톤의 대미를 장식하는 듯한 뿌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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