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달림이의 변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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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3-11-25 15:48 조회83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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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달림이의 변괴
안녕하십니까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입니다
별로 특기할 만한 일이 없는 한 주일, 월요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주 부터는 금년의 마지막 달 12 월이 시작되니
년 말 모임이다 뭐다 해서 괜스레 몸과 마음이 바빠지겠지만
요번 주는 일상적인 것 말고는 별 다른 일이 없어 마치 년 말의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약속들의 홍수 전, 숨고르기 한 주 같은 느낌도 듭니다
월요일 오늘, 새벽 뜀 질에 나가려고 복장을 챙기었습니다
복장이 애매해 지는군요.
왈칵 추워서 벙거지 모자나 털 방한복을 챙겨 입기에는
아직 추위가 그렇게 본격적인 것 같지는 않고요,
그렇다고 한 여름처럼 가볍게 입고 나가자니
그것 또한 거시기 하고요
큰 방, 작은 방 까치발을 하고서 왔다 갔다 마땅한 뜀 질 옷가지를
챙기려 제법 많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그것 참 요상하지요.
뭐가 잘 안 되는 날은 아침에 뜀 질 옷가지를 챙길 때부터 다르다니까요
금방, 금방 챙겨지지 않고, 또 무얼 입어야 쓰겠다 하고 그 옷을 찾으면
아직도 세탁기 속에 푸욱 담가져 있어 하이타이를 기다리고 있고...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겨우 그런대로 복장이 갖춰졌지만
영 마음이 들지 않아 그저 뛰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지나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밤 새 불 밝히고 아직도 보초 서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 가로등 밑을 지나니
모가지가 없는 내 그림자가 회색 아파트 벽에 커다란 거인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무지하게 크게 보이는 두 겹, 삼 겹 거인의 모습입니다
아, 안경을 깜박 잊고 끼고 나오지 않았군요
밖은 아직도 캄캄해서 집 밖 한참을 나와서야 깨달았습니다
지독한 근시인 저는 걱정이 앞섰지만,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 안경을 가지고
나오기에는 상당히 성가시고, 또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에
그냥 뛰기로 했습니다
맨 날 뛰는 그 길, 두 눈감고서도 찾아서 뛸 수 있으니
큰 걱정은 안 됩니다만, 문제는 나를 아는 주민이 인사를 해 올 경우
나는 그 분을 알아차릴 수 없으니 그게 문제겠지요.
그런 상황을 피하려고 일부러 모자 차양을 푹 눌러 썼습니다
바깥은 아직도 해가 뜨려면 한 시간 이상 있어야 되니
오늘은 그 정도만 뛰고 사람들이 나오기 전에 집에 들어가면 될 듯싶습니다
게 내 개울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반 바퀴 돌아 본격적으로 한강변으로 나아가려다가
방향을 바꿨습니다. 나오기 전에 마신 아침 우유가 너무 차가웠던지
속 느낌이 별로 안 좋았습니다. 아니 그 정도보다는 훨씬 더 심각해서
불길한 생각이 스멀스멀 나를 에워싸는 것 같았습니다
그 느낌은 불행하게도 적중되어
이제 다시 방향을 바꾸어 집 쪽 지름길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아랫도리를 조여도, 조여도 짧은 주기를 가지고 나를 엄습해오는 끈질긴 악마의
해일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까지 다 가기 전에 상황이 벌어질 것 같은, 정말로 , 정말로 불길한 예감,
급기야 난 대안을 찾아야했습니다
아파트 단지 입구의 큰 건물을 찾아 뛰어갔습니다
무슨, 무슨 보습학원 건물.
왼쪽 유리문은 " 미시오 ", 라고 되어있고 오른쪽 유리문은, " 당기시오 " 라고
크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너무 급해서 유리문의 고리를 왼 손으로는 밀고, 오른 손으로는 당겼습니다
그러나 두 문 중 그 어느 것 하나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시건 장치는 육중한 유리문 아래만 되어있는 듯, 유리문 윗 부분이 판소리 할 때
명창의 접는 부채 다 접었을 때 폭 만큼만 열리며 덜렁, 덜렁 커다란 소리를 내었지만
내 육신의 급한 불을 끄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다시 나와 바로 옆 이 층 무슨, 무슨 교회가 있는 건물의 현관으로 들어가서
계단을 따라 이 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교회의 충만한 자비심으로 화장실 문 개방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자비심은 나에게 손길 뻗치기를 거부했습니다
남녀 공용, 단 하나 있는 화장실 문은 너무나 굳게 닫혀있어
아마도 그 건물 지어 준공검사 받을 때 빼놓고는 한 번도 열려보지 않은 듯 했습니다
이렇게 허둥, 허둥 사태발발 초기의 그 소중한 시간을 허비해놓고 보니
이제 정말 막다른 골목, 고통으로 뛸 수조차 없어졌습니다
세 걸음 걷다가 그 자리에 서서 밀려 내려오는 해일을 막아보고,
그리고 또 다시 세 걸음을 앞으로 나아가고...
그리고 또, 그리고 또...
얼굴은 온통 식은땀으로 노래지다 못해 잘 씻어낸 김장 무우처럼 하얗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집 앞에 당도해서 문을 열고 화장실로 돌진......
다 벗지 못한 운동화는 거실에 처참한 발자국을 남기고,
들어오며 벗으려고 힘쓴 면 장갑 다섯 손가락은 두 개만 빠진 채
그림자 놀이하는 요상한 손가락처럼 꼬여있고,
웃도리는 모든 지퍼가 제대로 잘 올려져 있지만 처참하니 뭉개져
무릎 밑으로 내 팽개쳐진 내 아랫도리여 !
.........
참혹하니 뭉개진 자존심을 좁은 욕탕 안에 구겨 넣고서
평소에는 전혀 안 하던 예비 빨래를 한 후 젖은 그 옷을 세탁기에 넣으며
나는 생각했습니다.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일어날라고 그런다냐 ???
내 뜀 질 6 년만에 이 무슨 변괴란 말이냐 ???
오늘 아침 이 참극을 어디 가서, 어떻게 풀어야 한단 말이냐 ??
불행은 홀로 오지 아니하고 꼭 쌍으로 온다던가, 그러더니 오늘 하루는
잘 안 풀리는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오후 4 시 경, 안국동 가로수 밑에서 팔리고 있는 리어커 꿀 호떡이 먹음직스러워
호떡 하나를 시켜서 기다리다가 가로수 위에 있던 새의 배설물이 내 검정색 양복
옷소매에 떨어졌습니다. 얼른 뒷 주머니 손수건을 꺼내 대충 수습했습니다.
왼 손으로는 손수건을 잡은 채, 건네 받은 호떡을 오른 손으로 받아 한 입 가득히
베어먹다가 호떡 속 설탕 꿀물이 주르르 흘러나와 검정 양복 앞섶에 길게 일 자를
만들어 , 나는 들고 있던 손수건을 조심스레 다시 반 접어 급히 그 꿀물을 다시
수습했습니다.
나는 다시 썩은 콩을 씹은 얼굴을 하고 그 길로 최단거리에 자리한, 근처 종로 3 가 ,
5 호선 전철역 화장실에 들어가 손수건을 빨고, 양복에 묻은 새 배설물과 꿀 호떡 의
흔적을 다시 더 수습했습니다.
아주 불유쾌했던 달림이의 오늘 하루,
그래도 내일 또 새벽 달리기는 나가야되겠지요, 그렇죠 ?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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