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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아들이 걸어 준 완주메달 (63.3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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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호 작성일03-11-03 15:57 조회6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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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이 박힌 하늘의 별들은 아직 총총이 빛나고 있고 선잠에 취해있는 양재천의 입김을 가르며 700여 울트라 마라토너들의 자신과의 승부에 대한 도전은 그렇게 어둠속에 시작 되었다. 모두가 나름대로의 목표와 목적의식을 가지고 오늘 대 장정의 사투에 조그마한 육신을 던져 놓은 것이다.

그 무리속에 내가 달리고 있으며 달리고 있는 그 순간! 아니, 비록 63.3km 에 불과하지만 42.195km를 달리는 것과는 또 다른 긴장과 설레임을 안고 어스름 새벽을 밝히는 나트륨 조명아래 좁다란 둔치를 빼곡하게 메우고 있는 달리기 행렬속의 나 자신이 사뭇 자랑스럽게 여겨진다.

그러나 얼마나 가서 중도 포기를 하여야 할 것 인지가 벌써부터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으로 자리매김한다. Accessory bone 근막염(?)으로 인하여 대회 전 마지막 2 주간 훈련을 하지 못했기에 부상 재발에 대한 염려를 하며 무사 완주를 기원해 보면서.

탄천과의 합류지점에 이르니 응원나팔소리가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하는 한편으론, 탄천과 양재천은 물론 아직은 어둠을 먹으며 잠에 취해있을 덤불 속의 자연 생태계에, 때이른 기상나팔소리와 군상들의 발자국 소리로 그들만의 맛있는 새벽을 깨우는 것에 미안함을 느낀다.

앞선 주자는 3명인데 2명은 어둠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고 정**님께서 100여 미터 앞을 달리고 있다. 페이스가 당초 목표보다 다소 빠르지만 더 이상 거리를 두게 되면 나중에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에 더 늦출 수가 없다.

벌써 자전거를 타고 탄천의 아침을 깨우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가끔씩 반대편으로 지난다.
평소의 나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를 되 뇌이며 이불을 꼭 붙들고 있을 모습을 그리며 피식 웃음이 솟는다.

광평교 다리의 10km 지점을 통과하면서 주로를 그려본다.
일주일 전 자전거를 타고서 주로 답사를 했었기에 코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몇 군데 짧은 오르내리막이 있긴 하지만 거의 평탄한 코스에 강변에 피어있는 메밀꽃과 갈대 들로, 둔치가 가질 수 있는 지루함을 잊을 수 있어 달리기에는 그만인 적절한 코스 설계인 것 같았다. 다만 ‘강바람이 어떻게 부느냐?’ 하는 것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 정도의 완벽한 코스였다.

갑자기 아랫배에서 배설신호를 급하게 타전해 온다.
아! 출발선에서 해결했어야 하는 건데……
작은 화장실에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고 출발 시간은 다가오고…할 수 없이 ‘별 이상 없겠지!’ 하며 간과했었는데 드디어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일을 어찌하나? 아직 주변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으니 덤불속으로 들어가?’ 하는 생각을 수 없이 하며 ‘참다 보면 나아지겠지!’ 라고 생각하는 동안 타전신호는 긴급성을 띠면서 더욱 격하게 전달된다. 잠실 선착장을 지나 1위로 나서면서 선두 인도 자전거에게 휴지소지 여부를 물으니 ‘휴지는 갖고 있지 않으니 그냥 들어가 보라’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기껏 큰 맘 먹고 들렀는데 처리해야 할 도구가 없다면 괜한 시간 낭비 아닌가?
고맙게도 그 선두 인도 자전거는 다음 급수대에서 휴지를 마련해 주었다. 암사동 반환점을 돌아 휴지를 받아들고 주로에서 가장 가까운 화장실에서 총알탄배설(?)을 하고 시간을 보니 2분을 소비했다. 그래도 뒤 따라오는 주자는 보이지 않는다.

한결 가뿐해진 몸과 마음으로 강 건너의 풍경을 만끽하며 마주오는 주자들의 응원을 받으며 힘찬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이 때 좀 오버한 듯 하다. 화장실 다녀온 시간을 만회하기 위함이었는지 5km lap time이 21분대이다. 볼 일 본 시간을 제한다면 19분대로 달린 셈이다.)

아! 정말 걱정스러운 사람들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에 정신이 나가 있다니……쯧쯧……대한민국은 분명 울트라 강국이 될 것이다.
문득 99년 가을이 생각난다. 처음 5km 대회에 참가 했던 그 시절에 어떻게 100km는 고사하고 63.3km라도 감히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런데 오늘 난 그 무리의 선두에 서 있는 것이다.
건강한 신체를 내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아버지의 얼굴이 주로에 어른거린다.

[‘마라톤이란 용어가 아주 생소했던 국민학교 시절, 아버지께서는 매일 아침 홀로이 조깅을 즐기시며 건강관리를 하셨습니다. 눈 덮인 고샅에 당신의 그 건강했던 발자국을 남기시기도 하셨고, 이슬맺힌 풀잎을 헤치며 신발이 젖어 들어 오시기도 하셨습니다.
거창하게 마라톤이랄 것 까지는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분명 선구자 이셨습니다.’]

[‘그 건강하시던 아버지! 그러나 지금은 거동이 불편하신 지체장애인으로 살아가고 계십니다.
언제 한 번, 꼭 한 번만이라도 아버지와 동반주를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이렇게 말씀 드렸을 때 아버지는 ‘그래!’ 라는 말을 힘 없이 흘리시며 눈가에 이슬이 맺혔습니다. 그 후로 가끔씩 아버지는 불편하신 몸을 아랑곳 않으시고 운동을 시도하다 넘어지시기도 하시고 좌절도 하시면서 끝없는 도전을 시도하였지만, 세월의 무게와 지체장애라는 굴레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계십니다.’]

[‘아! 아버지!
어쩌면 저는 지금 아버지의 뒤를 이어 달리고 있는 지 모를 일입니다. 어릴적부터 눈에 익은 달리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제 마음에 안착 하였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인지 아들이, 아버지의 둘째 아들이 지금 아버지를 대신해서 한강변을 달리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군대 시절에 수영으로 건넜다던 그 한강을 저는 지금 강변을 따라 달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보무도 당당한 1위로 달리면서 말 입니다.
이 영광을 골인점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제게 힘을 보태 주십시오. ]

저기 급수대가 보인다.
맨발의 여전사님께서 너무 오버페이스 하는 거 아니냐고 격려를 주신다.
‘뛰다가 죽아뿌죠, 뭐!’ 하면서 다시 페이스를 올려 반포 반환점을 향한다. 주로에는 참 먹을 것도 많다. 생각같으면 하나씩 모두 맛을 보고 싶은데 시간이 허락치 않는다.
아니, 시간은 충분한데 그 못된 승부근성의 조급한 마음이 쉬고자 하는 육체를 주로에 몰아 세운다.

급수대에서는 “무엇을 드릴까요?” 라며 만반의 먹거리 준비가 되었음을 알려 오지만, 그 넘치는 친절을 다 받지 못하고 이내 자리를 떠야 하는 아쉬움과, 그 시간 그곳에서 봉사를 하시느라 고생하시는 분들께 대한 죄송스러움을 느끼며 또 다른 급수대로 발길을 옮긴다.
그런데 기대했던 전복죽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100km 참가자들에게만 제공되나 보다.
요것만 먹으면 힘 좀 나겠는데……(다음엔 이 부문에도 신경 좀 써 주세요. ^!^)

반포 반환점엔 다른 곳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 같다. 아는 분들의 얼굴도 보이고, 그 분들의 응원에 힘을 얻어 더욱 분발의 계기로 삼는다. 모 클럽에서는 미리 나와 텐트를 쳐 놓고 참가하지 않은 주자들이 동반주도 해 준다. 부러운 모습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마라톤이란 혼자서 달려가야 하는 것임을……

이제 100km 를 기준으로 되어있는 주로의 거리 표지를 63.3으로 모드변환하고 lap을 조정한다. 35km 지점부터 은근히 압박해 오던, 처음 겪는 허벅지 근육통이 50여km 지점이 지난 지금은 쥐에 대한 두려움으로 발전하며 남은 거리에 대해 걱정이 앞선다. 지난 9월의 어느 대회에서 골인점 직전에 엠뷸런스를 타야만 했던 어느 지인의 쓰라린 경험에 살갗에 소름이 돗는다.

‘결국 이 시점에서 그간의 연습부족이 나타나는구나!’ 페이스가 현저히 느려졌다.
수 많은 사람들을 거슬러 올라가며 그들의 표정을 보고 나의 표정을 비교해본다.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것 같고 나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모습인 것 같다.
‘왜? 무엇을 위해 달리는데 저들은 저토록 평온하고 즐거우며 기쁨에 찬 표정인데, 나는 심각해하며 굳은 표정에 일그러져 있어야 하는가???
달릴 때마다 나에게 던지는 의문이지만 아직 후련한 대답을 얻지 못하고 그렇게 일그러진 모습으로 한 해, 한 해를 달리고 있다. 오늘도 그 답을 찾지 못한 채……

탄천을 지나 양재천에 들어서니 5km 지점이 보인다. 어! 당연히 있어야 할 급수대가 안 보인다.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운데 급수대가 없으니 힘이 더 빠지는 느낌이다.
96km 지점에 급수대가 보인다. 다가서서 뭔지 모를 선홍색 주스(?)를 마시고 뒤를 돌아보니 아직 따라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 이젠 남은 거리를 1위라는 영광의 기쁨을 만끽하며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 기쁨을 누리기 위해 지난 여름 얼마나 많은 땀을 쏟아 내었던가?

그러나 마지막 중요한 시점에서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이렇게 커다랗게 막판 레이스를 힘들게 할 줄은 몰랐다. 아니 여기까지 온 것도 어찌보면 사실 대단한 것이었다. 불과 2주전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지 않았던가?

문득 사하라에서 지팡이를 짚고 지열과 모래바람을 헤치며 달리던 생각으로 육신을 몰아 부쳐보지만 더 이상 나의 육체는 두뇌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는 조직이 아니었다.
사력을 다한다는 말은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그래도 대망의 “1위”라는 커다란 기쁨에 젖어 육체적 고통을 상쇄시키면서 처진 페이스를 조금이라도 올리려고 안간힘을 써본다.

그렇게 99km 지점이 가까웠을 즈음 누군가 ‘다다다’ 소리를 내며 휙 앞서간다. 조깅을 즐기러 나온 사람으로의 착각도 잠시 이내 배번호를 확인하고 뒤따라 힘을 내어 보지만……
천근만근 무거운 다리는 양재천 투수콘의 끈적거림에 떨어지질 않는다.

아! 이렇게 허무하게 1위를 놓치다니……이건 아니야, 이럴 순 없다구……
아! 그넘의 화장실만 가지 않았더라면……아니, 중간에 오버 페이스만 하지 않았으면……
그러나 모든 것은 다 허망한 메아리가 되어 양재천 흐르는 물 속으로 흩어져 내리고 그 빈자리에는 가을의 높다란 파란 하늘만이 새로운 그림을 그리라는 듯 파랗게 채워지고 있다.

‘아내와 아이들이 골인점에서 기다리고 있을텐데……’
응원을 나오겠다던 아내에게 아이들 고생시킬 필요 없으니 나오지 말라고 말로는 그러면서도 ‘4시간 30~40분 정도에 골인할 테니 오려거든 그 시간에 맞추어서 나오라’며 골인점을 일러주었었다. 교육문화회관 숲으로 들어서는 순간 1위의 골인을 알리는 마이크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아! 내가 지금 1위의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그래야 1년 동안 계획했던 일이 순서대로 맞춰지면서 톱니바퀴가 돌아가는데……
이러면 모든 계획이 다 수포로 되어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온갖 상념과 아쉬움을 교육문화회관 전나무숲에 던져버리고 2위로 들어서며 목에 둘렀던 버프를 하늘높이 펄럭이면서 골인점을 향해 마지막 피치를 올린다. 골인점에는 아내와 이이들이 나와서 박수를 치며 기다리고 있다. 그들에게 실망의 모습을 보일 수는 없잖은가! 한껏 기쁜 모습으로 골인을 해야지!!!

1위는 못 했지만 가족과의 약속은 지켜냈다. 대회기록을 바꾸어 놓겠다던 나와의 약속도 지켰다. 지금 밟고 있는 결승선은 오늘 울트라의 끝 지점이지만, 또 다른 도전을 위한 새로운 출발선임을 각인하며 두 팔을 높이 들며 테이프를 몸에 감는다. 지금 찰나의 아쉬움은 또 다른 도전에서 얻을 열매를 위한 붉은 핏빛 꽃 봉오리 이리라. 그 꽃봉오리가 활짝 피는 날 그 곳엔 탐스런 열매가 당당히 맺혀 있을 것이다.

골인을 하는 나의 목엔 아들녀석이 걸어 준 2위 인식표와 완주메달이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아! 나도 아버지에게 완주메달을 걸어 드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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