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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절반의 성공(제 4회 서울 울트라 마라톤 완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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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경술 작성일03-10-31 17:07 조회4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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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7월 말,
우연히 알게 된,고혈압.
위험한 40대라더니,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던가?

그 날 부터 담배와 라이터를 휴지통에 던져 버리고,
약을 복용하면서,집 주변의 공원을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아내에게는 비밀로 부친 채(나중에는 들통이 났지만).

첫 날은 1.5키로를 달린 후 주저 앉았다.
거리는 차츰 늘어 갔다.
달리기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서 얻었다.
9월 충주 마라톤(10키로)를 시작으로 하프,풀로 거리를 늘렸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나로서는 남과의 경쟁보다는 꾸준히 하느냐가 중요했다.

2년 3개월여 동안,10여개의 대회에 참가하여 무료한 '나 홀로 훈련'의
권태로움을 달랬다.
2002년의 63.3키로 부문에 참가한 것도 그 중에 섞여 있다.
더구나 2002년 8월부터 가족과 떨어져 객지에서 직장생활 중인 관계로 주말이면 상경하여
일요일 새벽에 가끔 반달에서 도둑훈련을 하기에도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할 정도다.
아내는 늘상 투덜거린다.
"지나치면 건강을 오히려 해친다.""일요일에는 가족에게 아빠 노릇을 해야지
어떻게 자기 자신만 아느냐?"
나는 대꾸한다." 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의 안위를 위해 이런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아내의 잔소리는 계속되었다.
10월 25일 전야제에 아내와 두 아이를 대동하고 참석했다.
아내가 보기에는 의외인 모양이다.
남편과 같은 작자들이 한 곳에 모여 왁자지껄하니 달리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돌아 오면서 물어 보니 매우 긍적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오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음날 새벽 3시에 깨어 약간의 찰밥과 꿀물로 요기를 한 후에 집을 나섰다.
"올려면 오후5시 넘어서 와 봐!,미리 와서 떨지 말고.
나는 오후 7시안으로만 들어오면 목표 달성이니까."

맨 후미에서 쫓아 나갔다.
10키로,20키로,...
53키로 지점의 관문에 도착하니 앞으로가 까마득했다.
중도에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결승점에서 기다리는 두 아이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가 민망했다.
드디어 65키로를 앞 두고,좌측 주로에서 전복 죽이 끓는다.
800미터만 가면 반환점.
"왠 800미터가 이다지도..."

전복죽 몇 그릇 먹고,푹 쉬고 싶으나, 그래도 마라톤 대회 아닌가?
나름대로 주로에서는 울트라의 프라이드로 걷는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은데,
다리가 마음과 같지는 않다.(이래서 절반의 성공이라 칭한다.)

80키로,90키로...
양재천으로 들어 서면서 다리가 새롭게 태어난다.
어둑해 지면서 산책 나온 주민들의 응원도 곁들이니 그 기분 참...

서울 떠난지 5년 되면서 다리 이름도 순서대로 외울 수 없고,
동호회 소속도 아니니 남들처럼 줄줄 이름을 꿰며 아는 채 하면서 뛸수도 없었다.
외로움도 있었지만,주로의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나의 서포터즈 아니었던가?

결승점을 통과하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의외로 담담했다.

250리의 험로를 비단으로 깔아 주신 서울 마라톤 클럽의 모든 관계자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A504번, 이 경술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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