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파에 찌든 삶을 가볍게 하는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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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창섭 작성일03-10-31 12:55 조회52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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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파에 찌든 삶을 가볍게 하는 달리기
- 제4회 서울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2003 10 26 해의날)
10월 25일 흙의날(토요일) 밤 11시 30분 버스를 타고 어둠을 가르며 서울로 떠났다. 불편한 자리에서 그저 눈만 감고 있었을 뿐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27일 해의날(일요일) 새벽 3시 30분 경에 강남 고속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가까운 식당을 찾아 갈비탕으로 새벽 식사를 해결하고는 택시를 타고 문화 예술 광장 야외 무대로 향했다. 4시가 조금 넘었다. 대회장은 커피를 마시거나 라면을 먹으며 추위와 허기를 다스리는 이들, 옷을 갈아입으며 준비를 하는 이들,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최종 마무리를 하고 있는 이들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봉투를 받아 번호표를 부착하고는 옷을 갈아입고 물품을 맡긴 다음, 우리 삼천포마라톤클럽의 사무국장직을 맡고 있는 살림꾼 장성복 회원과 만나 가볍게 몸을 풀었다. 날씨가 약간 쌀쌀했지만 작년에 비해서는 추위가 덜했다.
5시 정각,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셋, 둘, 하나, 와아 하는 함성을 내지르며 250리 길의 장도에 올랐다. 나는 무리들 틈에 휩쓸려 어둠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5km, 10km 지점을 통과할 때까지는 비교적 천천히 달렸다. 내가 예상했던 시간보다는 5-6분 정도 느렸을 것이다. 그 이후 다리를 조금씩 힘차게 내저으며 서서히 속도를 높여 나갔다. 숱한 형상의 여러 참가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가운데에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새벽 동녘 하늘의 얼굴은 볼 때마다 신비로운 영험으로 다가온다. 빨리 내달리니 그만큼 호흡도 거칠어진다. 그러면서도 낯익은 얼굴들과 만나면 반갑게 손잡고 인사하고 얘기를 나누었다. 재회의 기쁨과 아울러 격려하는 모습을 통해 진한 동료애를 다시 한번 맛보았다. 만약 이런 즐거움이 없다면 달리기는 매우 무미건조하고 딱딱할 것이다.
더욱이 길 안내를 하고 급수 등 각종 음식물들을 제공하며 목이 쉬어라 외쳐 대는 자원 봉사자들의 뜨거운 열정 앞에서는, 진한 감동이 가슴을 때리며 새로운 힘과 용기가 온 몸에 솟구쳤다. 그분들의 성의를 봐서라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어야겠다는 일념이 뇌리를 가득 메웠다. 주로 변에서, 어두운 새벽부터 가을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 그리고 땅거미가 내려앉으며 강바람 불어와 체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또 다른 어둔 밤이 되기까지 봉사하시는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참으로 고맙고 미안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달리는 삶이 한층 빛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순전히 이 분들의 음덕과 희생 때문이리라.
양재천과 탄천을 지나고 암사동을 돌아서 이제 여의도로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길바닥에 42. 195km라고 적은 종이가 보인다. 시계는 4시간 34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서 한강 변에는 휴일을 맞아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인라인 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 가볍게 뛰는 사람, 축구나 농구를 즐기는 사람, 손 잡고 바람을 쐬는 다정한 연인들. 붐비는 인파로 말미암아 주로를 달리는 선수들과 이따금씩 가벼운 충돌이나 접촉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은 손뼉을 치며 힘내라고 끊임없이 성원을 보냈다.
60km가 넘으면서 피로가 엄습해 왔다. 이마를 타고 내리는 땀방울에 눈이 쓰리기도 하고 졸음으로 눈이 감기기도 하였다. 다리 밑을 지나면서 그늘진 곳을 볼 때면 어김없이 아, 저기에서 한 숨 자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한 걸음씩 옮겨 가양대교를 지나고 방화대교 조금 못 미쳐 세 번째 반환점을 돌았다. 그리고는 얼마 뒤 주최측이 제공하는 전복죽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였다. 작년에는 제1관문이었던 55km 지점에서 물품을 교환하고 음식물을 먹었는데 올해는 조금 달랐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지난 해 나는 전복죽을 얼마 먹지를 못했다. 분명 배가 고픈데도 조금밖에 먹지를 못했다. 그런데 올해는 전복도 큼직하게 썰어 넣어서 그런지 맛이 최고였다. 그야말로‘짱’이었다. 꿀맛 같은 음식을 계속해서 마련하고 있는 봉사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아울러‘칠구륙 히-ㅁ! 삼천포 히-ㅁ! 화이팅! 송창섭 히-ㅁ!’하며 연거푸 성원해 준 덕분에 나는 잃었던 기력을 조금씩 회복하며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가 있었다.
75km 지점 이후 대략 90km 지점까지는 체력이 많이 떨어져 그야말로 쉬면서 즐기는 달리기(펀 런)를 했다. 곁으로 흐르는 한강의 도도한 물결은 사뭇 여유가 있어보였다. 2.5km마다 설치해 놓은 급수대에서 나는 빠짐없이 물을 들이켰다. 그에 비해서 다른 음식물들은 거의 먹지 않았다. 참가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많은 먹거리를 준비하고 또 안내하는 봉사자의 노고와 대회 주최측의 심도 있는 배려에 경탄과 찬사를 금할 길이 없었다. 10여 km를 남겨 놓고 지난 7월 대한민국 종단 643km 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 500km 지점과 결승점에서 만났던 코리언울트라런너스(KU) 관계자와 만나 재회의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는 근황을 서로 얘기하며 안부를 물었다. 사람 만나는 즐거움이야 이보다 더하겠는가. 부산 을숙도마라톤클럽 (정)호철 아우 그리고 (이)학준 후배와도 주로에서 몇 차례 마주치며 서로 격려하고 기(氣)를 보내 돈독한 우의를 다졌다.
다시 조금씩 속도를 내었다. 내가 애초 예상했던 기록과는 차이가 많이 났다. 어쩌겠는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진정 아름다우리라 여겼다. 영동대교를 지나 양재천과 탄천이 만나는 삼거리에 이른다. 94km 조금 못 미치는 지점이다. 막바지 젖먹던 힘까지 끌어 모아 열심히 앞을 보며 내달린다. 오가는 자전거와 인라인 스케이트 그리고 사람들을 의식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목재 다리를 지나는데 96km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인다. 막바지였다. 산책 나온 사람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며 힘을 내라고 소리를 지른다. 무딘 걸음이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이제 양재대교 아래 99km 지점을 스친다. 참가한 선수를 기다리는 가족들과 대회 관계자, 봉사자들이 마지막 치열한 응원을 보내준다.
드디어 다리를 넘고 나무숲을 지나 문화 예술 광장 야외 무대로 향했다. 결승점이 보이고 그 앞으로 길게 놓인 빨간 양탄자 같은 것이 깔려있었다. 양 팔을 하늘 높이 치켜 들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늦은 3시가 조금 못 되었다. 봉사자가 완주 기념 메달을 목에 걸어 주고는 대형 수건을 어깨에 걸쳐 준다. 속도기(칩)도 풀어 주고 물도 갖다 준다. 작은 봉사라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는 일이지만 주최측의 세심한 배려에 거듭 고마움을 느꼈다. 대회 개최에 따른 서울마라톤클럽의 정성스런 준비와 매끄러운 운영은 역시 극찬을 받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우리 나라에 이같이 훌륭한 대회가 있음은 나에게도 대단한 자긍심을 갖게 했다. 잠시 뒤에 낯익은 얼굴들이 속속 도착을 하였다. 그들과도 만나 서로 손을 잡고 또 얼싸 안고 무사히 완주한 쾌거에 성원을 보냈다.
달리기는 내 삶의 기쁨이면서 피폐한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라 믿는다. 고통을 인내하여 극복하고 마침내 목표점에 이른다는 성취감도 있지만, 함께 뛰는 여러 달림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희로애락을 나눈다는 사실이 세파에 찌든 삶을 잠시나마 가볍게 해 준다. 그런 매력이 있기에 나는 열병을 앓듯 또 다시 달리려 신발끈을 동여매는 것이다.
- 2003 10 31 쇠의날 삼천포마라톤클럽 갈매빛 송창섭
- 제4회 서울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2003 10 26 해의날)
10월 25일 흙의날(토요일) 밤 11시 30분 버스를 타고 어둠을 가르며 서울로 떠났다. 불편한 자리에서 그저 눈만 감고 있었을 뿐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27일 해의날(일요일) 새벽 3시 30분 경에 강남 고속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가까운 식당을 찾아 갈비탕으로 새벽 식사를 해결하고는 택시를 타고 문화 예술 광장 야외 무대로 향했다. 4시가 조금 넘었다. 대회장은 커피를 마시거나 라면을 먹으며 추위와 허기를 다스리는 이들, 옷을 갈아입으며 준비를 하는 이들,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최종 마무리를 하고 있는 이들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봉투를 받아 번호표를 부착하고는 옷을 갈아입고 물품을 맡긴 다음, 우리 삼천포마라톤클럽의 사무국장직을 맡고 있는 살림꾼 장성복 회원과 만나 가볍게 몸을 풀었다. 날씨가 약간 쌀쌀했지만 작년에 비해서는 추위가 덜했다.
5시 정각,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셋, 둘, 하나, 와아 하는 함성을 내지르며 250리 길의 장도에 올랐다. 나는 무리들 틈에 휩쓸려 어둠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5km, 10km 지점을 통과할 때까지는 비교적 천천히 달렸다. 내가 예상했던 시간보다는 5-6분 정도 느렸을 것이다. 그 이후 다리를 조금씩 힘차게 내저으며 서서히 속도를 높여 나갔다. 숱한 형상의 여러 참가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가운데에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새벽 동녘 하늘의 얼굴은 볼 때마다 신비로운 영험으로 다가온다. 빨리 내달리니 그만큼 호흡도 거칠어진다. 그러면서도 낯익은 얼굴들과 만나면 반갑게 손잡고 인사하고 얘기를 나누었다. 재회의 기쁨과 아울러 격려하는 모습을 통해 진한 동료애를 다시 한번 맛보았다. 만약 이런 즐거움이 없다면 달리기는 매우 무미건조하고 딱딱할 것이다.
더욱이 길 안내를 하고 급수 등 각종 음식물들을 제공하며 목이 쉬어라 외쳐 대는 자원 봉사자들의 뜨거운 열정 앞에서는, 진한 감동이 가슴을 때리며 새로운 힘과 용기가 온 몸에 솟구쳤다. 그분들의 성의를 봐서라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어야겠다는 일념이 뇌리를 가득 메웠다. 주로 변에서, 어두운 새벽부터 가을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 그리고 땅거미가 내려앉으며 강바람 불어와 체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또 다른 어둔 밤이 되기까지 봉사하시는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참으로 고맙고 미안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달리는 삶이 한층 빛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순전히 이 분들의 음덕과 희생 때문이리라.
양재천과 탄천을 지나고 암사동을 돌아서 이제 여의도로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길바닥에 42. 195km라고 적은 종이가 보인다. 시계는 4시간 34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서 한강 변에는 휴일을 맞아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인라인 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 가볍게 뛰는 사람, 축구나 농구를 즐기는 사람, 손 잡고 바람을 쐬는 다정한 연인들. 붐비는 인파로 말미암아 주로를 달리는 선수들과 이따금씩 가벼운 충돌이나 접촉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은 손뼉을 치며 힘내라고 끊임없이 성원을 보냈다.
60km가 넘으면서 피로가 엄습해 왔다. 이마를 타고 내리는 땀방울에 눈이 쓰리기도 하고 졸음으로 눈이 감기기도 하였다. 다리 밑을 지나면서 그늘진 곳을 볼 때면 어김없이 아, 저기에서 한 숨 자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한 걸음씩 옮겨 가양대교를 지나고 방화대교 조금 못 미쳐 세 번째 반환점을 돌았다. 그리고는 얼마 뒤 주최측이 제공하는 전복죽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였다. 작년에는 제1관문이었던 55km 지점에서 물품을 교환하고 음식물을 먹었는데 올해는 조금 달랐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지난 해 나는 전복죽을 얼마 먹지를 못했다. 분명 배가 고픈데도 조금밖에 먹지를 못했다. 그런데 올해는 전복도 큼직하게 썰어 넣어서 그런지 맛이 최고였다. 그야말로‘짱’이었다. 꿀맛 같은 음식을 계속해서 마련하고 있는 봉사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아울러‘칠구륙 히-ㅁ! 삼천포 히-ㅁ! 화이팅! 송창섭 히-ㅁ!’하며 연거푸 성원해 준 덕분에 나는 잃었던 기력을 조금씩 회복하며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가 있었다.
75km 지점 이후 대략 90km 지점까지는 체력이 많이 떨어져 그야말로 쉬면서 즐기는 달리기(펀 런)를 했다. 곁으로 흐르는 한강의 도도한 물결은 사뭇 여유가 있어보였다. 2.5km마다 설치해 놓은 급수대에서 나는 빠짐없이 물을 들이켰다. 그에 비해서 다른 음식물들은 거의 먹지 않았다. 참가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많은 먹거리를 준비하고 또 안내하는 봉사자의 노고와 대회 주최측의 심도 있는 배려에 경탄과 찬사를 금할 길이 없었다. 10여 km를 남겨 놓고 지난 7월 대한민국 종단 643km 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 500km 지점과 결승점에서 만났던 코리언울트라런너스(KU) 관계자와 만나 재회의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는 근황을 서로 얘기하며 안부를 물었다. 사람 만나는 즐거움이야 이보다 더하겠는가. 부산 을숙도마라톤클럽 (정)호철 아우 그리고 (이)학준 후배와도 주로에서 몇 차례 마주치며 서로 격려하고 기(氣)를 보내 돈독한 우의를 다졌다.
다시 조금씩 속도를 내었다. 내가 애초 예상했던 기록과는 차이가 많이 났다. 어쩌겠는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진정 아름다우리라 여겼다. 영동대교를 지나 양재천과 탄천이 만나는 삼거리에 이른다. 94km 조금 못 미치는 지점이다. 막바지 젖먹던 힘까지 끌어 모아 열심히 앞을 보며 내달린다. 오가는 자전거와 인라인 스케이트 그리고 사람들을 의식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목재 다리를 지나는데 96km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인다. 막바지였다. 산책 나온 사람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며 힘을 내라고 소리를 지른다. 무딘 걸음이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이제 양재대교 아래 99km 지점을 스친다. 참가한 선수를 기다리는 가족들과 대회 관계자, 봉사자들이 마지막 치열한 응원을 보내준다.
드디어 다리를 넘고 나무숲을 지나 문화 예술 광장 야외 무대로 향했다. 결승점이 보이고 그 앞으로 길게 놓인 빨간 양탄자 같은 것이 깔려있었다. 양 팔을 하늘 높이 치켜 들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늦은 3시가 조금 못 되었다. 봉사자가 완주 기념 메달을 목에 걸어 주고는 대형 수건을 어깨에 걸쳐 준다. 속도기(칩)도 풀어 주고 물도 갖다 준다. 작은 봉사라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는 일이지만 주최측의 세심한 배려에 거듭 고마움을 느꼈다. 대회 개최에 따른 서울마라톤클럽의 정성스런 준비와 매끄러운 운영은 역시 극찬을 받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우리 나라에 이같이 훌륭한 대회가 있음은 나에게도 대단한 자긍심을 갖게 했다. 잠시 뒤에 낯익은 얼굴들이 속속 도착을 하였다. 그들과도 만나 서로 손을 잡고 또 얼싸 안고 무사히 완주한 쾌거에 성원을 보냈다.
달리기는 내 삶의 기쁨이면서 피폐한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라 믿는다. 고통을 인내하여 극복하고 마침내 목표점에 이른다는 성취감도 있지만, 함께 뛰는 여러 달림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희로애락을 나눈다는 사실이 세파에 찌든 삶을 잠시나마 가볍게 해 준다. 그런 매력이 있기에 나는 열병을 앓듯 또 다시 달리려 신발끈을 동여매는 것이다.
- 2003 10 31 쇠의날 삼천포마라톤클럽 갈매빛 송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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