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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그건 말야..." (신순화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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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중식 작성일02-05-18 15:40 조회5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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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달리냐구?

그것참.. 달리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런 질문은 마치 '왜 숨을 쉬느냐'
라든가, '왜 밥을 먹느냐'라는 것과 같은데, 말하자면 '달리지 않고는
안 되는..' 그런게 있거든.

그냥 들어봐.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야.

나는 소위 말하는 '달리기 꾼'은 아니야.
귀찮거나, 더 재밌는 일이 있으면 고민하지 않고, 달리기를 재껴버리니
까.. 그 반면 달리고 싶어지면 즐겁게 달리지. 대회라든가, 기록이라
든가 사실 별 관심도 없고, 그냥 발이 땅을 차고 오르는 그 느낌이랄까,
세상속을 달려가는 내 몸뚱아리가 바람을 가르는 그 물리적 저항감이랄
까, 혹은 지나치는 사람들과 풍경을 즐기는 거지. 게다가 마라톤은 긴
시간을 두고 이루어지는 운동이기 때문에 그 과정마다 언제나 고유한
드라마가 있거든. 익명의 사람들에게서, 혹은 풍경과 자연 속에서,
아니면 나 자신에게서 매번 달라지는 감정과, 상황과, 상태와, 느낌이
똑 같은 달리기를 늘 새롭게 하니까..

처음에는... 힘이 들어. 꾸준히 연습하지 않는 몸이기 때문에 달린다는
상태에 적응하기까지 꽤 몸 전체가 부자연스럽지. 숨도 차고, 다리도
뻑뻑하고, 가슴도 답답하고.. 몸도 더워져. 갑자기 거세진 심장이
부지런히 피를 온 몸에 보내느라 난리를 치는 동안은 항상 도중에
서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기 마련인데, 그 단계를 넘어서면, 뭐랄까..

마치 온 몸에 새롭게 기름칠을 한 것 처럼 한순간에 몸이 탁 풀어지는
순간이 있어.
온 몸으로 숨을 쉬는 것 같다고 할까. 확실히 그래. 숨이란게 코와
입으로만 쉬는게 아니구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내 온 몸이 숨을
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갑자기 몸도 가벼워지고, 즐겁고 명랑한
리듬이 나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분이란...정말 좋아.

일단 그렇게 되면 아주 편해지지. 심장도 편해지고, 호흡도 안정되고,
비로소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머릿속에 다른 생각들을 떠올리면서도
달릴 수 있거든?
먼거리를 달릴때가 훨씬 상황이 극적이기 마련인데 말야,
특히 풀코스가 그래.

나는 날이 더울 때 먼 거리를 달리는걸 좋아하는데, 뭐랄까.. 사람들
사이에서 달려 나가면 서서히 몸이 뜨거워져. 내 피에 내가 델 것 같고,
내 쉬는 숨에도 질려버릴 것처럼 온 몸이 뜨거워 지는데, 절정에 오르면
갑자기 몸 깊숙이 오소소 서늘해지기까지 하는 순간이 있어. 뜨거움이
나를 완전히 채워서 더 이상 그 열기를 감각하지 못하는 상태랄까..
어떻게 보면 램프에 올려놓은 비이커 안에서 천천히 끓어오르는
물과 같다고 할까?

몸이 서서히 뜨거워지는 거야. 그래서 마침내 나를 둘러싼 기온과 똑
같아지는 지점에 이르고, 그 상태를 넘어서면 마침내는 내 몸 속이
세상의 기온보다 더 뜨거워지는 순간이 오지. 그러면 내 몸과 대기와의
경계를 구분하는게 모호해져. 몸에 대한 의식애서 놓여나서
하나의 뜨거움이 되어 달리는 거지.

나는 정점에 올라 끓기 시작하는 물처럼 내 온 몸이 하나로 움직이며
타오르는 상태가 되거든. 내 경우 보통 풀코스 에선 15K 정도 지나는
지점인데, 그때부터는 정점에 오른 나의 에너지를
천천히 소진시키며 달리는 거야.
마치 끓는 물이 수증기가 되어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몸 속의 힘이
최대치로 끓어올라 서서히 타오르는 거지. 물이 증기가 되어 대기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내가 조금씩 사라지는 느낌이랄까.
그 상태로 한참을 더 달리면 몸이 진공상태처럼 텅 비는 것 같애.
35키로가 넘어가면 이젠 희미하게 남은 나를 내 의지가 버티어 가며
이끌어 가는데, 내가 달리지만, 나 아닌 무엇이 나를 이끌어 가는
느낌이랄까..
그건 마라톤이 아니면 참 느끼기 어려운 기분이야.
서서히 아주 서서히 내가 비어 가는 느낌이랄까.. 마라톤이야말로
결승점 에 이르기까지 아주 완전히 내 몸 속의 모든 힘을 완벽하게
소진할 수 있는 운동이거든? 정말 더 이상은, 더 이상은 어쩌지 못할 것
처럼 완벽 하게 내 자신이 비어버리는 상태가 되어, 골인 할 때는
나를 싸고 있던 얇은 허물 같은 힘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가 되는데,
정말 대단한 것은 바로 그렇게 완전히 소진되어버린 내 안으로 완주를
하는 순간, 급속도로 격렬한 힘과 에너지가 나를 채우는 거야.
말하자면..
꽉 쥐고 있던 스폰지를 물 속에 넣었을 때 순식간에 그 전체로 물을
빨아들이는 것과 같다고 할까? 그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마라톤에 빠지게 되는 거지. 자기 자신을 완전히 비웠다가, 완벽하게
채우는 기분이란 뭐라 설명할 수가 없거든?
그때는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것 같애. 온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도는 것 같지.
스스로 느끼는 지극히 충만한 느낌이랄까..
나는 기록이 형편없는 아마추어 주자야. 기록을 경쟁하고 피나는 훈련을
하는 메니아들과는 댈 수 도 없지. 그렇지만 정말 좋은 달리기라는 것
은, 달리는 과정이 주는 모든 경험을 기꺼이 즐길 줄 아는 ,
그런 달리기가 아닐까.. 생각해.
별것도 아닌 것을 너무 거창하게 얘기하는 게 아니냐고?

달려봐.

그냥 달려봐. 몇 분 이건, 두 다리를 움직여서 어디서건 달려봐.
편안하게, 그냥...
욕심 없이, 목적 없이, 네 몸이 내는 속도에 그냥 팔과 다리를 맡겨봐.
네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네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태초에 우리의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극히 단순하고,
지극히 자연스럽게 네 몸을 움직여 세상 속을 지나는 거야.

그렇게 달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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