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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해 없이 달린 250리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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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후 작성일03-11-21 12:43 조회1,7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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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해 없이 달린 250리 길

나는 한없이 후회 없이 달려보고 싶은 충동감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이트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는 서울의 한강변을 끼고 낮에 달리는 대회였다.
또한, 긴 한강의 푸른 물결을 보면서 서울의 남과 북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리고 한강의 많은 다리를 하루에 다 구경할 수 있다는 것들이 여러모로 나에게 매력을 주는 울트라마라톤대회인 것 같아서 과감하게 신청을 하였다.
막상 신청을 하고 나니 걱정과 어떻게 훈련을 해야 할지 고민이 생겼다.
일단은 몸으로 부딪쳐보자 하는 생각으로 나날을 보냈다.
이렇게 하다보면 시간만 흘러가고 강도 높은 훈련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9월은 몸으로 때우는 훈련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9월 5일 대전마라톤클럽에서 실시하는 50 km 야울마에 동참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야울마는 문의중학교에서 오후 5시에 출발하는 것이며, 훈련하던 날 나는 50 ㎞의 거리를 아무 부담 없이 소화시켰다.
그리고 그 후 9월 8일 공주백제마라톤대회에 풀코스 4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에 참가하여 나의 지구력과 인내, 끈기를 테스트 한 결과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훈련으로 인하여 울트라 마라톤 완주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에게 체력적으로 약한 부분(배고픔, 다리경련, 그리고 불안감 등)을 보완하기로 하였다.
대회 때마다 겪는 약한 하체를 단련시키고, 배고픔을 참기 위하여 연구소 체육행사날인 10월 14일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기로 하였으며, 빠른 시간에 지리산을 다녀온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짧은 거리를 장시간 걷기로 생각했다.

나는 능산리를 출발하여 천왕봉, 장터목 대피소, 참생, 박무동 등을 장장 9시간에 걸쳐 등산을 하였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계룡산을 가끔 등산하고, 때로는 집 근처에 있는 도룡동에 위치한 우성산을 달려서 올라갔다 내려오기도 몇 차례 반복 훈련을 하였으며, 또한 15층 아파트의 계단을 오르내리기는 훈련도 하였다.

이 정도면 나름대로 다리의 경련은 막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하였다.
또 한가지 걱정은 속도가 숙제로 남아 가끔 퇴근 후 충남대 운동장으로 달려가 스피드 연습을 하였다.
이렇게 해서 나 나름대로 준비 상태는 좋은 평가를 내릴 수가 있었다.
이제는 일주일 후면 결전의 대회 날이 닥아 왔다.

서울울트라마라톤은 새벽 5시에 출발하기 때문에 대회 마지막 주엔 새벽공기에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월요일 아침부터 이른 새벽에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월요일 첫날 비장에 준비를 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집 근처인 연구단지 7 ㎞를 두 바퀴 돌았다.
날씨도 차고 새벽공기에 적응이 안 되어서 인지 많이 힘들었다.

왠지 저녁이 되니 몸과 코에서 이상한 느낌이 왔다.
아차, 감기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약국에 들려 약을 사서 먹고 일찍 잤다.
다음 날 감기는 났지 않고 오히려 목까지 아프기 시작, 감기 편두통이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었다.
대회 3일전 유성온천 사우나를 다녀오면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 퇴근 후 유성 온천에를 다녀온 다음 날, 감기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고통이 더욱 심해졌다.

대회출전 하루 전 토요일 아침, 충남대 운동장에 나가 몸 컨디션과 이상 유무를 확인하였다.
마스크를 쓰고 운동장 10 바퀴를 돌고 나니 콧물이 나면서 머리에서 열이 많이 나면서, 대회 참가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1 ㎞를 전력질주하고 1 ㎞를 서서히 뛰면서 몸을 풀었다.
이렇게 몸 컨디션과 이상 유무를 확인한 후, 계단에 앉아 나 스스로 대회에 참가 할 것인지 선택의 시간이 돌아왔다.

대회 참가할까 말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대회에 가지 않으면 참가회비와 숙박비가 생각났고, 가자니 몸이 망가질 것 같고, 이러한 생각 끝에 최후의 통첩으로 가서 뛰면서 약을 먹기로 하자, 라고 결론을 내고 말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성 온천에서 간단한 온천욕을 하고, 약국에 들려 편두통 약과 진통제를 샀다.

점심을 먹고 유성에 가서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마음이 한결 시원스럽고 편안해 졌다.
서울에 도착 양재동 문화예술공원야외무대 전야제에 참석, 간소한 개회식과 뷔페 식사를 하고, 숙소인 교육문화회관으로 왔다.
우리 방의 숙소 인원은 4명이며, 부산, 경주, 광주 등에서 온 사람들이였다.

우리들은 간단한 인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내일을 위해 9시쯤 잠을 청했다.
드디어 2003년 10월 26일 울트라마라톤대회 날은 왔다.
3시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빵과 찰떡 등으로 간단한 식사를 한 후, 대회장인 문화예술공원녹지 광장으로 갔다.
전국에서 모인 약 600여명의 많은 매니아들이 각자 스트레칭으로 간단히 몸을 풀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5시가 가까워지면서 마라톤 매니아들은 출발선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각자 심호흡을 한번씩 내쉬고 드디어 출발, 일제히 양재천으로 달려갔다.
나는 목도 아프고 기침도 나고 해서 마스크를 쓰고 출발하였다.
어둠사이로 양재천 양쪽 길옆으로는 사람키 만한 억새풀들이 즐비하게 꽉 차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둠이 짚은 이른 새벽에 출발하여 언제 들어올까, 골인 지점에 들어 올 때에도 어둠은 다시 나에게로 찿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자극시킨다.
오늘 하루는 인생에서 없다고 포기하자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리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나는 숙소에서 같이 숙박했던 부산에서 올라온 매니아와 호흡을 같이 하면서 계속 달렸다.

15 ㎞ 쯤 지나서 기침도 나고 목도 아프고, 그리고 마스크를 쓴 상태인지 숨도 차고해서 마스크를 벗어 버렸다.
또한, 배도 아프기 시작하여 주로 근처에 있는 이동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부산에서 온 매니아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준비한 감기약과 진통제를 먹고 다시 사람들과 합류했다.

양재천을 지나 탄천을 거쳐 한강으로 빠져 갈 때쯤 약 20 ㎞ 지점에 오니 붉은 아침 해가 뜨 오르기 시작했다.
기분이 상쾌하고 발걸음이 가벼워졌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저 해가 언제 질까, 해가 저물어야 골인지점에 도착할 텐데 하면서, 아침에 뜨는 해와 한강의 잔잔한 물결을 보니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어느덧 잠실대교를 지나 광진교 부근 암사동 29.5 ㎞ 지점에 도착하니 주먹 김밥이 나를 반겨 주었다.
주먹 김밥을 먹으려고 하는 순간, 어디선가 정 선생님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 주위를 보니 대전마라톤클럽 회원님께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건네준 김밥과 따뜻한 물을 먹고 대전마라톤클럽 회원님(감사합니다)을 멀리하면서 500 m 쯤 앞으로 가서 유턴을 한 후 다시 목표지점을 향해갔다.

영동대교를 지나 40 ㎞ 지점에 도착하여 시계를 보니 출발한지 벌써 4시간 35분이 지났으며, 풀코스 같으면 이제 얼마 안 남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철교를 지나 63 빌딩을 옆으로 돌면서 어느덧 제 1관문인 53 ㎞ 지점에 도착, 시계를 보니 출발한지 6시간이 지났다.
이곳에서 보관한 물품을 찿아 신발과 양말을 갈아 신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 후 허기진 배를 채웠다.

이때 목과 머리가 아프고 기침도 나기 시작하여 준비해간 감기약과 진통제를 먹고 10여 분간의 휴식을 취하는 순간 이곳에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이곳까지 주저앉고 말면 나의 자존심이 짓밟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나는 일어나서 달리기 시작하였다.
약 1 ㎞ 갔을 때 발가락과 발목이 아프기 시작하였다.

새로 갈아 신은 양말과 신발이 발에 맞지 않아 몹시 아프기 시작했다.
괜히 갈아 신었다는 후회스러운 생각이 들었으며, 이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꾹 참아야 했다.
어느덧 성산대교도 지나고 가양대교를 등 뒤로 한데 65 ㎞ 지점에 이르렀다.
이곳에 와보니 전복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또한 KBS 방송국에서 나와 매니아들을 취재하고 있었다.

나는 단숨에 전복죽 한 그릇을 먹고, 또 한 그릇은 손에 든 채로 걸어가면서 먹었다. 조금이나마 시간을 절약하고, 거리를 단축시키기 위해서였다.
이제 배가 좀 부르고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 어느덧 여의도 부근에 도달했을 무렵 서울 한강 마라톤클럽회원 8명이 노래를 부르며 뛰고 있었다.

나도 고통과 힘든 것을 잊으려고 그 뒤를 따라 같이 동참했다.
멀리 80 ㎞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
얼마 안가면 제 2관문이 나오겠다 라는 생각과 함께 제한시간이 걱정 되었다.
드디어 제 2관문인 83 ㎞ 도착, 시계를 보니 다행히 시간은 많이 여유가 있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나는 이제부터 몸도 무겁고 발목과 발가락도 몹시 아프고 하여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이곳에서 마지막 남은 약을 먹었다.
남은 거리 17 ㎞ 어떻게 해서라도 골인 지점까지는 가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가 되니 한강 주위에는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으며, 이들을 보니 참 부러운 생각과 자전거 뒤에 혹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빨리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위를 보니 걸어가는 사람들이 재범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한강을 멀리 한 채, 양재천과 탄천이 만나는 93 ㎞ 지점인 삼거리에 접어들었다.
이제부터는 힘도 없고, 다리와 발목 그리고 발가락 등이 몹시 아파왔다.
주저앉고 싶은 생각만 들었으며, 뛸 수도 없어 걷다 뛰다를 계속 반복하였다.

어느덧 태양은 도심 속으로 사라지고, 서산으로 사라지는 어둠이 오는 것 같았다.
뛰다 걷다도 잠시 나는 땅에 주저앉아서 쉬었다.
잠시 후 정재후 파이팅, 힘 하면서 외쳤다.
뒤를 보니 인천에서 온 매니아가 소리를 외치면서, 같이 가자고 하여 나는 힘이 없어 조금 있다가 간다면서 먼저 보냈다.

잠시 후 일어나서 다시 뛰다 걷다를 반복, 어느덧 1 ㎞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으며, 나는 다시 이곳에 주저앉고 말았다.
순간 가족들이 생각났으며, 아빠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격려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발목과 발가락을 만지면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일어나 뛰었다.

이젠 골인 지점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힘이 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문화예술공원대회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침내 골인 지점이 가까이 오면서 나는 속도를 내는 순간 골인 테이프가 눈앞에 보였다.
나는 힘 빠진 두 손을 번쩍 쳐들면서 골인지점의 테이프와 함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순간 환희와 감격의 눈물이 나왔다.


시계를 보니 12시간 2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별보고 나가서 별보고 들어온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나는 진행 요원에 준 월계관을 머리에 쓰고, 목에는 둥근 완주메달, 손에는 완주 패를 들고 추억의 기념사진 촬영을 끝으로 제4회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의 역사를 남겼다.

나는 옆에 위치한 교육문화회관 사우나장으로 가서 지친 몸을 따듯한 물과 찬물을 번갈아 하면서 간단한 샤워를 한 후, 고속버스터미널에 가서 유성발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집에 무사히 도착하니 가족들이 나를 반가이 맞이하였다.
오늘 무사히 완주 할 수 있는 것도 대전마라톤클럽 회원님 들이 있기에, 회원님 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 관계자 여러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나에게는 끝이 없는 도전에 날들이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아래, 오늘도 건강히 하루를 보내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2003. 11. 20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 참가자
정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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