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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시인의 서울 나들이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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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3-11-19 13:49 조회4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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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시인의 서울 나들이 '03


안녕하십니까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입니다

아침부터 기다리던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늘 새벽 전주를 출발해서 서울에 온 남녘의 K 시인입니다

" 어, 나여 ! 시방 어디여 ?
나 시방 여기 왔는디, 어떻게 지금 나올 판여 ?
여기 거시기 롯데 호텔 현관인디... "

언제 들어도 정감이 넘치는 소중한 친구의 음성이 들리자 나는
보고있던 컴퓨터의 모니터를 끄려고 커서를 왼쪽 아래로 이동해서
시작을 눌러 종료라는 글자 위에 얹혔습니다

그리고 전화 송화기에 대꾸합니다

" 어, 벌써 왔네 ! 지금 서 있는 데가 롯데 호텔 현관 입구지 ?
시커먼 고급 큰 차가 오면 문지기가 달려와서 문 열어 주는데...
거기 그대로 있으면 내가 20 분 정도 후에 가서 픽업 할께 !
그러면 거기 그대로 있어, 내가 금방 갈께 ! "

득달같이 차를 몰고 가서 K 시인과 반가운 재회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서울에 올라온 목적 달성을 위해
지체없이 차를 발진시킵니다

" 그 왜, 뭐냐.. 거시기, 에스퍼란자스 뜀 길을 한번 뛰어 볼라고....
언제 한번 서울에 올라갈까 ?

자네가 괜찮으면 아예 양평 농막 쏘나티네에 가서 거기서 하루 밤 자고
해장에 거기서도 한번 뛰어도 되고...

나도 바쁘니까 , 점심 때 전, 늦어도 11 시 반 차는 타고 내려와야 되는데.
어떻게 괜찮겠어 ? "

그렇게 해서 2003 년 K 시인의 늦가을 서울, 양평 나들이가
성사되었습니다

우리는 화창한 만추의 하늘을 머리에 이고 나의 사랑스런 매일 아침 뜀 길,
에스퍼란자스 길을 달립니다. 곧 있을 하남 환경 마라톤의 일부 구간이기도
한 이 길을 하남시 관계자 분들이 제초기로 이리저리 쓸어진 풀 섶을
길 양쪽 따라 가지런히 정리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제 덩치보다 더 큰 개의 개 줄을 잡고 개에 질질 끌려가는
어린아이의 개처럼 나는 자꾸만 앞장서서 달리며 뒤를 돌아보고, 돌아보고
그리고 묻고, 또 묻고 K 시인의 대답을 채근합니다

" 저기 저게 앙알쇠 섬,
저게 사나이 가슴 털 섬,
이 앞의 큰 게 그 짓거리 섬... 좋지 ? 정말 좋지 ??

서울에 이만한 뜀 길이 또 있을 것 같지 않아.
차도 없고, 툭 터진 강변 길에다가 흙 길.

여기 봐, 꼭 영화의 오우 케이 목장처럼 목책이 끝 간 데 없이 뻗어있고..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인 에스퍼란자스 길인 셈인데,

왜 있잖아, 남미 인디오들이 침입자들을 피해 산 속으로, 산 속으로
피신했던 앤디스 산 속 마추피추 계곡으로 들어가는 강줄기 입구 같은 이 곳,

내가 도심의 번잡함을 피해 내 영혼의 정화를 위해 피신하는 길이라고 할까,
나는 물안개 피워 오르는 이 강변 길,

시야가 콱 막힌 이 뜀 길이 너무 너무 좋은데,
어때 ? 느낌이 ? 좋지 ? 정말 좋지 ?
내가 뒤를 따라 갈 테니, 먼저 앞장서서 한 번 음미 해 봐 ! "

아까부터 내 뒤를 따라오며 내 설명과는 무관하게 앞뒤좌우로 고개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주변 풍광을 부지런히 핥던 K 시인은 조용한 목소리로 대꾸합니다

마치 혼잣말처럼 말합니다.

" 좋구먼 ! 참말로 좋구먼 ! "

그러면 나는 더 신이 나서 자꾸만 말합니다

" 여기를 어떤 때는 아침에 못 뛰어서 저녁나절에 뛸 때가 있는데 억새풀이
석양을 보듬고 흐느적거리는 장면은 정말 일품이지.
지는 해는 억새의 나신을 보고 넘어 가려고 치마말미를 부여잡고 희롱하고,
억새는 부끄러움에 솜 털 얼굴을 도리질하며 치마끈 꽉 쥔 손가락에
그 끈을 한번 더 휘감는 장면은 정말 환상적이라네 .

여름에는 히얀하게도 이 일대에 보라 빛 꽃이 무척 번성하는대,
그게 무슨 꽃인 줄 모르겠어.
어 ! 저기 하나 아직도 있네. 이 꽃, 바로 이 꽃. 이게 뭐지 ? "

그러자 K 시인은 달리던 뜀 질에서 속도를 늦춰 그 꽃에 다가가더니
명쾌하게 단안을 내려 줍니다

" 어 , 이거 ?
이거 구절초야 ! 뭐 몰르는 사람은 국화라고 하는데 구절초야.
왜 , 있잖아 ! 약초로도 쓰는거 ..... "

우리는 이렇게 두시렁 거리며 왕복 20 여 Km 를 단숨에 내달리고서는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서둘러 양평 농막으로 다시 차를 몰았습니다

농막에 도착, 차를 마당 뒤 구석에 주차시키고 차의 시동이 꺼지기가 무섭게
K 시인은 지난여름 내가 그토록 힘들여 가꿔온 농막 주위를 뒷짐 지고
한바퀴 순회하며 구절구절 뜨끔한 촌평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시골에서 태어나 촌살림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고
믿고 살아온 터인데 어림이 반푼도 없고 만만에 콩떡 같은 헛소리임이
만 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의 연속입니다.

" 어 ? 이건 왜 이렇게 여기에 놓았어 ?
이거 처음 보기에만 그렇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것인디...

울타리 둘레에 나무를 심을 때는, 낙엽수, 상록수, 낙엽수, 다시 상록수
이렇게 사이, 사이 섞어서 심어야 되는 법이여.
그래야 봄, 여름에는 무성하고 겨울이 되어 잎이 다 떨어져도
중간 , 중간 너무 해성, 해성 하지 않지.

이게 그거, 며칠 전에 거시기 샀다는 그 도끼인갑네.
그렇지 ! 이게 그 물푸레나무 도끼 자루지. 거봐 끝이 꺼실, 꺼실한 것.
왜 물푸레나무가 단단하냐 면, 이 놈은 아무리 가물어도 잘 죽지 않고
질긴 놈이지. 그러면서도 나무가 낭창, 낭창한 게, 도끼로 뭐, 딱딱한 것에 맞춰도
그 충격이 손끝에 다 오지 않으니 그게 좋은 것이여 !

뭐, 단단한 곳에 잘못 찍혀서 탱 ! 하고 튕겨 나간다고 생각 혀 봐 ,
손이 얼마나 아푸것어, 잉 ? 잘못하면 발목도 찍히는 것이네.
뭐니, 뭐니 해도 그래서 옛 날부터 도끼 자루는 물푸레나무가 좋은 것이여 !

뭐 할라고 ? 여기에다가 ??
그러지 말고, 섬 돌 있지 ? 그걸 갖다가 대문 앞에서 저기 저 위 대크로
들어가는 길에 듬성듬성 놓아 봐, 잉 ?

이렇게 직선으로 빤듯이 말고 , 이렇게 약간 휘이게 거시기 뺑돌아서 가게
놓아 봐, 그럼 훨씬 더 멋있을 것이고 만 ... 이렇게, 약간 휘이게...
빤듯이 말고.... "

나는 이미 더 이상 K 시인의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맑은 영혼으로 항상 헹궈져 있는,
법랍 50을 훨씬 넘긴 큰스님과
법당 마당 귀퉁이에서 싸리 빗자루 엉거주춤 들고 있는 보통 평범한 한 제자
관계이었습니다

K 시인의 한 말, 한 말은 도심의 생활에 찌든 보통의 내 머리에서는
미처 생각치 못 했던 것들의 연속이었습니다 .

항상 맑음과 정갈함만을 생각하며 우리 가슴속에 묻힌 언어를 꺼내
요리조리 새로 갈고 닦아 마지막으로 손끝의 지문자국까지 당신의 뒷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닦아 유리 잔 위에 올려놓는,

창조자만이 가능한,
탐나서 모두 빼앗고 싶은 자연 친화적 아이디어의 보고이었습니다

은행 대출 이자의 소수점 이하 몇 단위까지 따져야하는 우리네 서울 살림,
쉴 사이 없이 정보를 기웃거려야 골목길 오랫만에 가도 가서 막히지 않고
좌회전, 우회전 약속시간 맞출 수 있는 도시 생활,

환율의 등락도 따라가야지, 주가의 동향도 눈여겨보아야지,
이런 도심 속 속인이 도끼자루는 물푸레나무가 좋은 줄 알기는
쉽지가 않은 법이지요

서울에서 준비해 온 찬거리로 저녁을 준비합니다
농막에 와서 해보는 요리는 또 다른 즐거움의 하나이지요

내가 직접 끓여서 저녁 밥상 위에 올려놓은 찌게도 그냥 넘어가질 못합니다

" 막걸리 먹을 안주로 하는 찌개에는 묵은 김치, 비계가 많은 돼지고기, 콩나물
그리고 두부가 최곤 것이여 ! 이 셋 중의 하나만 있어도 되지만,
이 세 가지가 다 들어가면 더 말할 것도 없지. 특히나 김치는 이렇게 토종,
이파리가 시커멓게 푹, 묵은 신 김치가 최고지.

이렇게 이파리가 그럴 듯한 백 김치는 안 좋은거여 ! 이 백 김치나 물 김치는
국물을 빨아 드리지 못해 맛이 깊지가 않은 법이지 ! 여기 이 시커먼 배추 이파리를
한 번 먹어 봐 ! 국물이 진한 게 맛이 깊지 ?? "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이지만 막걸리를 곁들인 , 한 바탕 뛰고 난 후 우리들 농막에서의
저녁 식사는 정말 꿀보다도 더 맛있는 성찬이었습니다.

권커니 잔커니 커다란 통 창문에 서리는 김서림이 줄줄 흘러내리는 농막 안에서
우리들의 마라톤 화제, 농막 쏘나티네 이야기들은 끝을 간데 없이 이어졌습니다

성찬을 끝내고서 원색의 아프리카 문양이 그려진 커피 잔에 커피를 담아
두툼한 겨울 외투를 걸치고 방 문 밖 데크에 걸어 나와
우리는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리고 한동안 말은 없지만 우리는 압니다
서로 똑같이 공통된 생각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친구.
마라톤.
그리고 그것들이 엮어내는 무궁무진한 아름다운 추억들.
마라톤은 정말 좋은가 봐요.

빈 찻잔을 손가락에 걸고 빙빙 돌리며 별빛 영롱한 밤하늘을 올려다 보던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동시에 말문을 열었습니다

" 내일 새벽 이곳에서 또 한바탕 뛸려면 이제 우리 그만 들어가 잘까 ?
지금 보니 내일은 아침 안개가 꽤 자욱 할텐데....
안개가 조금이라도 열어줘야 우리가 뛰어 가는 곳 황금정원을 제대로 볼텐데, 그치 ? "

그러자 K 시인은 말합니다

" 그러게... 그러나 상관없지, 뭐 ! 보지 않고 안개 속을 뛰며 그 정경을 상상하는 게
더 멋있을 수도 있쟎아. 그리고 상상이 안되면 다음에 다시 한번 더 오면 되고,
앙그려 ? 우리가 살면서 꼭 봐야만 다 되는 것은 아니쟎아. 보지않고 가슴속에
담아가서 상상하는 게 더 멋있을 수도 있지. 앙 그려 , 잉 ? "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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