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曠野閑談] 광야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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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우열 작성일02-12-18 05:57 조회96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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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달리기 열풍이 불고 있다.
예년에 한 명씩 이던 한국의 사하라 사막 달리기 지원자가 내년도에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소식이다. 자신의 두 발로 성지 순례의 소원을 표방한 분도 있다. 한 발자국 옮길 때마다 하늘의 은총이 칠십 가지씩 임하길 빈다. 나는 이 글로 광야에 서 보기 원하는 저들의 정서적 윤택함과 철학적 사색에 함께 참여하여 보고 싶다.
사막은 모래沙자 덕분에 해운대 모래처럼 부드러운 모래로 덮여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지역은 30% 밖에 안 된다. 대개 자갈과 바위 산으로 된 거친 땅이다. 그래서 나는 사막이라 부르기 보다는 넓을 광자를 써서 廣野, 거칠 황자를 써서 荒野라 부른다.
광야에는 두 가지가 있다. 알렉산더 대제가 말을 아무리 몰아도 도착하지 못한 인도 중부 평원 같은 廣野, 그리고 고비와 사하라 사막, 아라비아 반도와 같은 曠野다. 이곳 曠野는 빈 들이다. 광야는 유목 지역이 된다. 유목 지역은 시베리아 남단의 툰드라 지대로 부터 고비사막, 중앙 아시아, 아라비아 반도, 북부 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차지 한다.
광야는 아름다운 곳이다
광야의 특징은 없음 이요, 황폐함 이요, 외로움 이요, 눈물이며 탄식이다. 그리고 침묵이다. 그 곳은 아무것도 없다. 혹자는 저주 받은 땅이라고 말한다. 드문드문 풀과 돌멩이 뿐이다. 까마귀와 몇 들 짐승만 가끔 나타날 뿐이다.
그러나 그 곳에도 우리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다. 그 곳은 세상에서 첫 째 가는 미항(美港) 내 고향 여자만(汝自灣)이 누워 있다. 열 여섯 소녀의 고개 숙인 상큼한 미소가 있다. 전화기를 타고 떠 내려 오는 그녀의 싱싱한 목소리가 있다. 그 곳은 아름답다.
여름철 광야에 지면을 달구던 태양이 서쪽 지평선에서 머뭇 거릴 때 저녁 놀이 찾아 온다. 지평선 끝에 세상에서 제일 큰 용광로가 끓어 넘치며 온 하늘에 주황 물감을 뿌린다. 그것은 나그네의 발걸음을 붙잡아 매는 장관이다. 그 어떤 귀한 보석보다 빛나는 황홀한 색감이다. 어떤 허물도 용서할 것 같은 천상의 칼라이다. 설빔을 입고 발을 살짝 들어보는 기분이다. 군대에서 졸병 시절에 모포 둘러 쓰고 읽어 보는 그녀의 편지이다. 나의 시각을 파고 드는 금빛 함성이다.
사막에 나가 야영을 할 때 물 두 병을 받았으면 한 병은 식수이고, 한 병은 양치질과 내일 아침 세면용 이다. 한 쪽에서는 천막을 치고, 한 쪽에서는 서투른 음식을 만든다. 우리는 그 천막을 "별이 수천 개인 호텔" 이라고 부른다. 그 누구도 별 다섯 개를 넘는 호텔의 경험은 없으리라.
사위가 조용해지고 주변에 어스럼이 찾아 온다. 낮 동안 지면을 달군 대지의 뜨거움은 급히 귀가하고, 살랑 바람이 일어 난다. 그 청량함이란, 시원함의 느낌이란 혼자 간 사람은 바람나기 딱 알맞을 정도의 느낌 이다. 이제 로맨틱하고 환타스틱한 분위기가 연출 된다.
천막을 나서서 밖으로 나간다. 혹은 천막이 없는 자들은 석회암 암반 모래 위에 깔린 매트리스에 누워 모포를 덮고 눈만 뜨면 하늘에는 잔치가 벌어 진다. 아~! 그 요요(耀耀)함이란, 거기에는 소금을 뿌린듯한 봉평의 메밀 밭이 있다. 고개 마루 올라서니 문득 나타난 어느 도회지의 야경이 이렇든가. 모두가 일등성 이등성이요, 은하수는 코 위에 걸쳐져 있다. 그 은하수에는 강이 흐른다. 그 누가 은하수 속의 강을 본적이 있다던가. 그 감동을 잊기엔 오랜 세월이 필요 하리라.
광야는 순례자의 고향이다
광야는 앞 뒤 어디에도 인간의 어떠한 도움이나 위로가 없는 전적인 결핍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광야는 인간을 무력화 시켜 지존자 앞에 지극히 단순한 자로 대면하여 서게 한다.
광야의 양면성은 외롭고 황량하고 고독한 곳이요, 반면에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발견하고 지존자를 만나는 곳이다. 사람들은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자기를 만난다. 평소에는 너무 바뻐 자신을 잊고 살지만, 외로운 들판에 서면 홀로 자신을 직면할 수 있다. 평소에 다른 사물을 바라보던 그 예리한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며, 평소에 다른 사람을 비판하던 그 날카로운 눈으로 자기를 판단한다.
인생 나그네 길을 가는 많은 이들이 광야의 이곳 저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대부분의 수도사들은 하루에 한 두 끼씩 먹으며 그나마 가장 단순하게 먹고 산다. 소금 바른 빵 두어 조각과 하늘이 내린 물 한 모금 이다. 고기나 생선은 대부분 병자에게 돌아가고 야채와 과일 혹은 풀 뿌리를 캐 먹는다.
이들은 일생 한 두 벌의 옷만 지녔고, 대분분 맨땅에서 잤으며, 이들이 죽은 후에 남긴 것은 대개 검은 망또 달린 옷 한 두 벌, 성경, 작은 올리브 등잔, 그리고 산에 오르 내릴 때 필요한 지팡이가 전부였다. 이들은 하루를 삼등분 해서 살았는데 8시간 기도, 8 시간 노동, 8시간 휴식을 원칙으로 했다. 기도할 때 이들은 굴에 들어가 기도하는데 그 곳은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는 침묵의 섬이다.
광야는 단순성으로의 회귀이다. 그것은 온갖 형식에 얽매인 사람들을 발가벗게 하여 지존자 앞에 전적인 무기력자로 세운다. 그래서 광야는 성인들을 배출하는 요람이 되고, 순례자들의 고향이 되는 것은 이 탓이다.
광야가 광야로 끝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광야는 오아시스로 연결된다. 오아시스는 수원지이다. 수원지는 인간의 근원이요, 지존자 이시다. 그 물로 인간과 온갖 짐승들과 대추 야자가 찾아 든다. 그래서 광야는 영원을 사모하는 순례자들의 고향이 된다.
인생에도 광야가 있다
누구에게나 인생 광야가 있다. 세상살이의 모든 풍랑이 없는 사람은 없다.
인생 광야는 갑자기 찾아 온다. 어느날 비 오듯 찾아 든다. 종교인 여부를 떠나 찾아 온다.
인생 광야는 혼자서 만난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인생 광야를 대신하여 줄 수 없다. 자신이 원해서 들어 가는 광야가 아니다. 마치 출애굽한 히브리 백성들이 자기도 모르게 광야로 들어 간 것과 같다.
인생 광야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분노의 감정이다. 나를 이렇게 만든 세상을 향한 이글거리는 감정이다. 그리고 나 혼자라는 외로움 속에 두려움과 불안이 함께 있다. 대책이 없다. 앞으로는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막연해 진다. 진정한 광야는 깊은 곳에서 탄식하고 있는 자신의 인생 광야이다.
인생 광야는 깊은 곳이다. 그 깊음은 인간이 당하는 고난이요, 비통이요, 슬픔이다. 혹독한 시련이며 죽음 앞에 노출된 인간의 한계적인 절망이다. 그 고통은 아무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고통은 하나님의 기적이다.
더 큰 문제는 고통 후에 어둡고 깊은 밤이 온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과 외로움이 찾아 든다.
밤이 밤인 것은 아침이 있기 때문일 터. 영원한 밤은 없다. 세상의 풍랑은 우리를 깊은 곳으로 인도한다. 깊은 곳은 지존자를 만나는 성소이다. 깊은 곳은 지존자에게 나아 가는 인간 됨의 필수 조건이다. 깊은 곳은 지존자와 인간이 만나는 영적 교제의 광장이다. 우리 깊은 곳에 있는 무기력과 절망, 자포 자기와 한숨, 우울증과 탄식은 지존자가 받으시는 선물이다.
그렇다. 광야는 지존자가 우리의 손을 잡고 가는 천국 길이요, 인생 도처에 엘리야의 로뎀 나무가 있다. 광야는 진실로 낙심하고 탄식하는 자에게 지존자가 내미는 손이다.
광야로 가라
광야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곳에 유월 장미의 화사함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옥석(玉石) 잠겨 얼 비치는 청 대숲 같은 이미지라든가 그림자 낮은 담장 너머 박꽃처럼 피어날 것 같은 산채 향을 음미할 수 있는 심미안을 느끼고 싶은가. 솔 바람 솔 향이 그리워 지는가. 빈 들로 가라. 그 곳에는 바람과 구름이 먼저 마중 나와 그대를 환대하리라.
마음의 평화와 사랑과 행복과 지혜, 그리고 두려움으로 부터 자유를 원하시는 이들이여 빈 들로 가라. 광야에는 그러한 열매는 없으나 그 씨앗은 얻을 수 있다.
고향은 있으나 금년에도 가지 못하는 이들이여. 청 죽이 운치롭고 뒷산 녹음이 어울어 질 때는 가을 단풍보다 더 고운 그런 고향을 지닌 이들이여. 밤 새 내린 눈으로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에 잠이 깨던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들이여 빈 들로 가라. 그 곳은 살구꽃 피는 내 고향 같다.
오늘 여기 이 자리에 오르기 까지, 이만한 평수의 집을 장만하기 까지, 좌우 돌아보지 못하고 죽어라고 일 하고 싸우며 달려오신 이들이여. 이렇게 이루기 까지 잃어버린 것은 없는가.나는 어떻게 살아 왔는가. 뭔가 버려도 될 것들,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것들을 한 번쯤 짚어보고 싶은 분들이여 빈 들로 가라. 그 광야는 내가 이제껏 잊고 살아온 내 영혼의 소리를 들려줄 것이다.
나의 인생 형편과 심령이 잘못 간수한 장마철 미역 단 꼴로 숲을 나선 몰골인가. 빈 들로 가라. 자연에 가장 가까운 리듬이라는 인도 라가의 여유가 그대를 기다릴 것이니 저 자연의 무량함에 자신을 맡겨 충만한 생명력을 내게로 전이 시켜 보자. 오감이 하나씩 눈뜨면서 푸르게 생동하리라. 콧노래가 흘러 나오리니, 봉황은 아니 기다려도 달빛 부르고자 벽오동도 심어야지.
인생을 나그네 길이라고 부른다. 자신이 스스로 요단 강 건너 저 천성 갈 때 까지 나그네로 산다고 하면서, 나그네가 가진 것이 너무 많지 않은가 생각하는 이들은 누구나 한번 떠나 보자. 매인데 없이 홀로 길 떠나 보자. 자신으로부터도 훌쩍 떠나 보아야 한다. 죽장 짚고 보자기 하나 메고 그렇게 빈 마음으로 나서 보자. 운수(雲水)를 친구 삼아 떠나 보자. 객잔도 없는 광야로 나가 보자. 그때 나는 들을 수 있으리라. 광야에서 들려오는 내 영혼의 속삭임을.
빈 들에서 문 우 열
후기: 이번 주는 꼭 휴가 같습니다.
서울에서 손님이 오셔서 예정에 없던 바하리야 오아시스(카이로에서 360km)와 파라프라 오아시스(카이로에서 560km)에 2박 3일로 어제 다녀 왔고, 내일은 10년 넘게 이곳에서 부대끼며 사귄 식당을 하시는 형과 오래 전에 약속한 시와 오아시스(카이로에서 9시간 소요)에 모시고 갑니다.
여행은 늘 고단한 길이지만 한편 부러워 하실 분들을 위해서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손 끝이 무뎌서 제가 느낀 광야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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