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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어제 일요일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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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2-05-20 13:26 조회5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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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서울
고덕 달림이
박복진 입니다

내가 사는 고덕에서, 그 곳 까지는 많이 떨어져 있지요.
즉 서울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 일산 옆 화정 이란 곳 말입니다.

저는 화정 이라는 곳을 처음 가 보았습니다
화전인지, 화정인지도 잘 몰랐었습니다

토요일, 친구들과의 저녁 모임이 끝난 후,
자정이 거의 다 되어서 한강 강변도로를 달려
그 근처까지는 어림짐작으로 그런 데로 갔으나,

전화로 알려준 숙소는 찾기 가 어려웠습니다
몇 사람의 운전자에게 길을 묻고,
갔다가 되돌아오고, 다시 묻고 그리고 또 가고....

붙잡고 길 물어보면, 지나가는 택시 운전자는
그 동네를 훤하게 꿰고 있는 듯 했으나,
그 지식을 나에게 전달해 주는 재주는 없는 듯
피곤한 나를 많이 지치게 했습니다.

골목을 돌고 돌다가 우연하게 고개 들어보니
나에게 가르켜준 간판이 보였습니다

" O O 안마 시술소 "

시각 장애 마라토너, 그리고 그의 곁 달림이로 나와 인연이 맺어진
나의 자랑스런 시각 장애우 차승우님의 직장입니다.

내일 아침 새벽에 대전의 MBC 마라톤에 나와 같이 가기로 되어있는데
고덕에서 새벽에 이곳으로 와서 다시 대전으로 출발하기에는
새벽 시간이 너무 촉박할 듯 하여,

아예, 토요일 저녁 이곳 근처 여관에서 자고, 아침 일찍 나랑 같이
이곳에서 출발하기로 하고,
내가 짐을 미리 싸서 이곳에 온 것이지요.

안마 시술소 라는 곳을 들어가 보았습니다
생전 처음 와 보는 곳에 서먹 서먹함이 나를 에워 쌉니다.
아, 안마 시술소는 이렇게 생기었구나.
시각 장애 마라토너 도우미 덕에 이곳도 와서 보게 되고...

나의 친구 차승우님과 반가운 악수를 교환하고
내일 아침 출발 시각을 정하고 헤어져
나는 늦은 잠자리에 듭니다

..............

다음 날 , 새벽 다섯시,
잠자리가 바뀌어 자는 둥 마는 둥 한밤을 보내고
일요일 새벽이 왔습니다.

급히 일어나, 두 눈을 부비고
서둘러 행장을 차리고, 차승우님과 근처의 해장국 집을 들러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차의 시동을 걸어, 자유로에 올라 타, 대전 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마라톤을 위한 지방 나들이는 언제고 즐겁습니다
하루 전, 늦은 오후 출발도 좋고,
이렇듯 당일 새벽, 해뜨기 전 출발도 좋습니다

가벼운 코 흥얼거림이 절로 나오고,
있지도 않은 , 싸- 한 파스 냄새,
출발선상의 파스 냄새가 벌써부터 코를 간지리는것 같기도 하고요.

너무 이른 새벽이라 차 막힘도 없고
차는 미끄러지듯 가배얍게 금방 경부 고속 도로에 들어섭니다

나의 시각 장애우 마라토너 차승우님과 몇 번의 차량 여행이 있었습니다
늘상 하던 데로 , 차가 달리면서 바꿔지는 차창 밖 우리의 산하를 보며
나는 동승한 아내에게 소리를 질렀었지요 .

" 영희야 ! 야, 저기 봐 ! 산 벚꽃 좀 봐 ! "
" 야, 저기 저 산의 신록 좀 봐 ! 이제 봄 보다는 여름이다 "
" 그치 ? 응 ? 우리 나라에 사계절이 있다는 게 월메나 좋은 거야, 그치 ?? "

그러나 이런 종류의 일상적인 대화가 시각장애우에게 어떤 종류의 감정이 생길지
우리는 곧바로 깨닫기 시작 했지요
그리고 더 이상 그런 대화는 하지 않기로 둘이서 조심하지만,
워낙 감성적인지라, 아직도 저는 그런 실수를 하곤 해서 아내의 발끝이 나의 발끝을
누르곤 합니다.

오늘은 아내가 없어 나의 조심성이 더 합니다.
시각적인 화제는 절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보는 것, 보이는 것 말고 듣는 것 쪽으로
화제를 이어 갑니다.

" 차승우 씨 ! 내가 좋아하는 안데스 음악 들어 볼래요 ? "
" 네, 좋지요 ! "

그리고 차안에 장착된 CD 를 작동시키어 달리는 차안을
담박에 안데스 고원의 낙원으로 변화시켜 버림니다.

우리의 단소같은 대나무 피리, 께나에서 안데스의 전설적 큰 새, 콘돌의 영혼이
흘러 나옵니다.
대나무를 여러 개 묶어 대. 소 길이로 기막힌 음을 만들어 내는 싼뽀니아에서
마추비츄의 애환이 길게 길게 흘러내립니다.

기타 보다 더 작고 앙증맞은 차랑고에서 인디오의 슬픈 눈망울 화음이 흘러 내림니다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전방의 허공을 응시하던 차승우님의 얼굴이
금새 환해집니다.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좌.우 옆으로 흔들어 봅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고도 한참을 그 자세로 움직임을 자제 합니다

처음 들어보는 곡이라 합니다
노래에 담긴 정서가 우리 나라의 정선 아리랑과 많이 닮았다 합니다.
지나간 그 곡을 다시 한번 더 틀어 달라 합니다.
속된 표현으로 " 죽이는데요 ! " 도 서슴치 않습니다.

보지 못해 눈감고 머리 속으로 상상하는 안데스 산맥, 그 어느 산골,
님은 이미 나의 상상보다 더 멋있는 세계를 보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두 눈이 있어 마음껏 다 보고 다닌 나의 가난한 현실적 눈 보다
더 고운 마음속 두 눈으로 지금 이 순간을 보고 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시각 장애 마라토너.
시각 장애우 곁 달림이.

우리는 지금 환상의 한 짝이 되어
안데스 산맥, 7,000 미터 고지 위를 나르는 전설적 새, 콘돌의 날개에 올라타고
삶의 환희를 공유합니다.

그리고 조금 후, 우리는,
대전의 갑천변 ,마라톤 출발선상에서
지금의 이 환희를 다시 한번 보듬고 어우르기 위해
운동화 끈을 다시 한번 조일 것입니다

우리 둘은 끈으로 묶고, 딸랑딸랑 고양이 방울을 흔들며,
우리를 위해 길을 열어주는 뭇 달림이들의 애정 어린 격려 속에서
어둠이 반드시 불행일 수 만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내려합니다.
어둠이 때로는 밝음보다도 더 화려함일 수 도 있다고 증명해 내려 합니다

시각 장애 마라토너, 차 승우님,

님은 지금 장님의 눈으로 보신 안데스의 고운 선율을
고스란히 마라톤 주로상 으로 가져 갈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님께서는 고스란히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감정의 지속이 어려운 현실적 나보다
님은 어쩜 더 행복 하실지도 모른다고 나는 조용히 생각 해 봅니다.

몇곡의 연주가 끝나고 , 또 반복 되고,
님은 이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손바닥을 토닥 거리며
안데스의 선율에 흠뻑 빠져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스쳐 지나가는 도로 표시판 따라
생각의 집중이 흐트러지는, 흐트러 질 수 밖에 없는
저의 입장과 많이 다릅니다.

님은 지금 안데스 음의 선율에 흠뻑 빠져 있습니다
자기만의 상상의 세계에서 멋진 유영을 즐깁니다.
누가 이 순간을 방해할까봐 조바심도 납니다
그리고 이 방해꾼은 안타깝게도 어김없이 나타납니다

.......

저기, 간판이 보입니다. " 출구, 북대전 "

혹여 들리지 않아, 님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나는 조용히 오른쪽 방향 지시등을 깜박거리며
오늘의 대전마라톤 출발선상으로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마라톤 지방 나들이,
그리고 시각 장애우에게 드리는 부끄럽지만 작은 나의 봉사,
참으로 즐거운 일요일, 마라톤 출발전 어제하루의 시작이었습니다.

서울
고덕 달림이
박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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