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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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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진(목마) 작성일02-05-16 23:23 조회3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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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누구나
떠나온 고향을 말할 때면
죽은 여우의 얼굴을 하고

누구나
못 가는 고향을 그리워할라치면
적어도 반쪽 시인은 되는 법

누구나
고향소식에는
두 귀를 쫑긋거리고

어쩌다
신문에 짧은 기사라도 실리면
두번 세번 거듭 거듭 읽어보고-

아!
눈을 감고
세월을 되돌려 감아서
타임머신 타고
시간과 공간을 순간 이동하네

동심으로 돌아가
동무들과 온종일 뛰어놀고

동심으로 돌아가
모든 어른들께 사랑받고

지금은 흙으로 돌아가신
그리운 어머님 품에
다시 한 번 안겨보고파라

조상들의 뼈가 묻혀있고
700의사(義士)들의 기개가
언제나 살아 숨쉬는 곳

흙내음 인삼냄새 향그러운
내 고향
금산(錦山)


-감사합니다. 촌놈 김영진 排上

註1:700의사 - 국민학교 6년간 매년 빠짐없이 지겹게 소풍갔던 칠백의총(七百義塚)이라는 일반 무덤에비해 조금 크기는 했으나 아주 초라한 흙더미에 묻혀있다는 매우 용감한 분들. -_-;;;

칠백의총: 사적 제105호, 금산군 금성면 의총리에 위치하며 임진왜란(1592)때 중봉 조헌(趙憲)선생과 승장 영규대사(靈圭大師)가 이끄는 칠백의사가 1592년 8.18 금산을 점거하고 있던 왜적을 무찌르다 전원이 순절한 시신을 한 무덤에 모시고 있는 성스러운 곳으로서 우리민족의 빛나는 호국사상의 요람지이다.
조헌선생과 영규대사가 이끄는 의병은 1592년 8월 1일 청주성을 수복하고 동 18일 금산 연곤평에서 고바야가와다가가게(小早川降景)가 지휘하는 1만 5천여명의 막강한 왜적과 싸우게 되었으며 이때 의병군은 충청, 전라도의 관군과 같이 금산의 왜적을 협공하기로 되어있었으나 관군의 도움을 받지 못한채 외로운 군사로서, 오직 충절과 신의로 뭉쳐 필사무퇴(必死無退)의 정신으로 적과 혈전끝에 무수한 왜적을 무찔렀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전원이 옥쇄하였다.
이 싸움이 끝난 나흘후 조헌선생의 제자 박정량, 전승업 등이 칠백의사의 시신을 수습하여 한 무덤에 모시고 칠백의사총(塚)이라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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