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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는 이봉주(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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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0-11-16 18:42 조회9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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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새벽 5시. 몸이 오뚝이처럼 자동으로 일어난다. 체육복을 챙겨입고 운동화 끈을 다져 맨 다음 문을 나선다. 싸늘해서 오히려 상쾌한 공기. 탁탁탁탁탁…. 오직 땅과 맞부딪는 이봉주(30·사진·삼성전자)의 발자국 소리만이 사위를 가득 채운다. 뛰는 것은 고통이자 희열이다.

뛰다보면 어느 순간 온몸에 어떤 카타르시스가 퍼지면서 소름이 끼쳐온다. 몸이 붕 뜨는 듯한 묘한 느낌. 이 맛을 알기에 고통 속에서도 뛰고 또 뛴다.

날씨가 따뜻해 해마다 겨울훈련지로 찾는 경남 고성. 이곳의 공설운동장, 일주도로, 산과 들길. 어디 하나 안 달려본 데가 없다.

2시간 반을 달리고 들어온 아침 8시. 밥을 먹고 오후 운동을 위해 쉬어야 한다. 자리에 누우면 아직도 시드니의 영상이 선연하다.

19km쯤을 달렸나. 길이 구부러지더니 좁아졌다. 선두권을 함께 달리던 선수들이 속도를 낸다. 숨소리가 거칠다. 여기서 앞서야 산다. 뛰쳐나가려는 순간, 앞 선수가 넘어졌다. 아아, 피할 수가 없다.

넘어진 자신을 딛고 저만치 선수들이 가버렸다. 온힘을 다해 일어나서 죽을힘으로 뛰었다. 그러나 24위.

`미완의 마라톤 영웅' 이봉주가 다시 일어선다. 이봉주는 다음달 3일 후쿠오카 마라톤에 출전해 “이봉주 시대는 가”지 않았으며, “좌절하지 않고, 아직도 할 수 있다”는 걸 팬들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모든 걸 시드니에 바쳤는데, 왜 그렇게 됐는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몸 상태도 좋았고, 훈련량도 많았고. 6개월 동안 꽉 차게 훈련하면서 그렇게 잘 된 적이 없었는데…. 너무 아까워 오기가 생긴다”는 이봉주는“너무 이른 것 아니냐, 돈(출전료)에 눈 멀어 출전한다”는 일각의 비아냥도 귀 너머로 넘기며, 시드니 이후 열흘 정도 쉰 것 말고는 하루 4~5시간, 40~50km의 강훈련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요일도 없이 소화해내고 있다.

후쿠오카 마라톤은 역대로 신인이 우승한 적이 없고 세계선수권 안에 있는 선수들이 우승한 대회. 98년 이 대회에서 우승한 바 있는 이봉주는 올 시드니올림픽 우승자 게자그네 아베라(22·에티오피아) 등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뛴다.

코오롱 이탈 아픔을 안고 지난 2월 도쿄마라톤에서 2시간7분20초의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건재를 과시했던 이봉주가 이제 시드니 시련을 딛고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이달 30일 일본으로 출국한다.

시합을 앞두고 징크스인 턱수염을 곱게 기른 이봉주는 동갑내기 애인 김미순씨와의 결혼도 미뤘다. 꺼벙한 눈매와 넓은 얼굴에 비해 하관이 빤 얼굴. 기자의 물음에 띄엄띄엄 한마디 하고 나서는 온 얼굴에 주름을 만들며 수줍게 웃는 이봉주에게선 오직 한 길을 달리는 자의 짙은 `고독'과 함께 풋풋한 '순수'의 향내가 풍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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