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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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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해균 작성일15-10-14 08:26 조회1,348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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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역 창구에서 기차표를 사면서 경로우대할인을 요구 했더니 기차표를 파는 역무원이 신분증을 제시해달라고 해서 주민등록증을 보여주고 할인된 기차표를 구입한 일이 있다.  사실 내 얼굴은 주름투성이고 잡티가 많아 연륜을 의심 할 여지가 없는 노안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모습을 젊게 봐서 신분증을 요구한 그에게 불평은 고사하고 고마운 마음마저 들어 기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으로 향하던 내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던 기억이 새롭게 떠 오른다.
 
내 얼굴에 주름과 잡티가 많은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평소 다른 사람보다 등산, 달리기 등 야외 활동으로 피부가 태양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았던 반면 개인적 취향 때문에 선 크림, 보습제 등 피부보호 재를 거의 사용 하지 않고 평소에도 피부 관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종종 그 사람의 참 모습을 판단 하려고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년 사계절 중 여름을 제외하고는 신체의 다른 부분은 옷으로 감싸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얼굴은 감각을 표현하는 기관이 모여 있는데다 외부에 완전히 노출되어 타인에게 주목과 평가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선선한 바람이 불면 사람들은 여름 동안 노출되었던 신체 부위를 다시 옷으로 감싸 얼굴을 주목하게 하는 계절로 돌아 오게 된다.  자외선을 차단 하기 위해서던 멋을 부리기 위해서던 늘 쓰고 다니던 선 글라스를 벗어 던지는 계절이 또한 가을이다.  가면과 같은 선글라스를 벗어 던지면 한 사람의 얼굴은 있는 그대로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파리 목마르뜨르 언덕에 가면 자화상을 그려 주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많이 있다. 오래 전에 여행길에 올라 거기서 어떤 가난한 예술가에게 나의 자화상을 의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숙소로 돌아와 곧바로 휴지통에 넣고 말았다. 이와 같이 얼굴을 중심으로 주로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이 자화상이다. 
 
흔히들 사람들은 가을을 나를 향해 여행을 떠나는 사색의 계절이라고 말 한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시간의 퇴적이 가져다 준 나의 노력과 역할 그리고 보람을 되돌아 보게 된다.  가을이야 말로 다른 사람에게 의뢰 하지 않고도 나의 참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 보기에 가장 적합한 때 가 아닌가 싶다.  이때 서툴지만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기적같이 살아온 나의 참 모습을 진솔하게 재 조명 해보며 경우에 따라 나를 칭찬 해보기도 하고, 못 마땅하게 여겨 탄식하기도 한다.
 
 시즌이 다 끝나가고 있는 지금 빛나는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고 나를 계약직 야구 감독처럼 매몰차게 비난하거나 일방적으로 해임 할 수 없는 것이 인생살이의 딜레마요 묘미이다.  나의 모든 인간적인 약점과 부진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보듬어 안고 다시 시작해 보자고 격려 할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 나라는 존재는 누구도 대체 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플레이어 겸 코치이다. 따라서 싫건 좋건 내가 나서서 능동적으로 나의 진로를 개척하고 마음을 다독여서 현실의 문제를 타개 하지 않으면 아무도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 해줄 사람이 없다. 세상이 공평하지 못하여 때로는 비육지탄(髀肉之嘆)으로 좌절 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즌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지금 차질 없이 준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쾌한 가을 아침 일찍 일어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서 나의 자화상(自畵像)을 그려본다. 비록 나의 얼굴은 주름투성이이지만 피부아래 나의 자아상(自我像)은 아직 동안(童顔)이라고 구시렁대며 참 나 와 자화상 사이에 생긴 스트레스를 무마해 본다.
 
사색의 계절 가을에 윤동주시인의 자화상을 음미해본다.  때로는 한없이 밉기도 하고 때로는 가엾기도 한 자신과의 관계를 성찰하고 종신토록 평화를 유지하라는 것이 이 가을이 나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이 아닌가 싶다.
 
자화상
윤동주
 
산 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이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 집니다.
도로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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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임인범님의 댓글

임인범 작성일

마음으로 감동하면 잔잔히 읽어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든 생각이 "이런 글은 더없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오늘자 아니면 내일자 신문
1면(^^)한 가운데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매년마다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기를
기원해봅니다 ㅎ

박임순님의 댓글

박임순 작성일

정해균선생님,
구절구절마다 공감과 감동의 맞장구를 치면서 읽었습니다.
언제나 멋진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저도 임인범님처럼, 선생님께서 늘 신분증제시요구받으시길 바랍니다...

하유성님의 댓글

하유성 작성일

선생님 글 늘 공감하며 읽습니다.
김형영 시인의 짧은 시가 떠올라 적어 봅니다.


                              김형영
나 같은 것
나 같은 것
밤새 원망을 해도
나를 아는 사람 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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