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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안경을 벗고 바라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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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해균 작성일16-04-04 11:45 조회95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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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화창해 지면서 선 글라스를 낀 상춘객들을 자주 보게 된다.  봄철에 선글라스를 끼면 미세먼지와 바람 그리고 자외선을 차단 할 수 있고 멋도 부릴 수 있어 선 글라스는 요즘 사람들 에게 사랑 받는 액세서리가 된 것 같다.

 

선글라스를 우리 말로 번역하면 색안경이 되지 않을 까 싶다. 그런대 우리말  색안경을 쓰고 보다의 뜻은 좋지 않은 주관적인 선입관을 가지다의 은유적인 의미로 쓰인다. 이때 색안경은 색갈이 있는 렌즈를 낀 안경이 아니고 주관이나 선입견에 얽매여 좋지 않게 보는 태도로 변한다.  따가운 햇살을 피하고 멋을 부리기 위한 선글라스라면 바람직하나 사람이나 사물을 판단하는 중요한 일에는 선입견이 작용 할 수 있기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금물 이다.

 

필자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었거나 직접 경험한 선입견의 부작용을 몇 가지 소개 하려고 한다.

 

1972년도에 영국의 조선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필자가 근무 했던 모기업에서 일단의 기술자들을 Glasgow 부근에 있는 Scott Lithgow 조선소에 파견했던 일이 있었다. 그때 우리 기술자들은 김포공항에서 출발하여 코펜하겐에서 비행기를 갈아 타고 글라스고로 가게 되여 있었다. 

 

코펜하겐에서 연결 비행기의 출발 시간이 늦어 항공사에서 우리기술자들을 호텔에서 쉬도록 배려 해주었다.  그런데 우리 기술자들이 호텔 프론트에서 방을 배정받고 쉬기 위해 객실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호텔 엘리베타에 갇혀 오랜 시간을 고생하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다. 엘리베타 시스템이 아파트 문같이 수동으로 밀고 나가도록 설계 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좌우로 슬라이딩하는 자동문을 기대 하며 문이 저절로 열리기를 기다렸던 우리기술자들이 같은 층을 몇 번을 오르락 내리락 해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마침 현지인이 다른 층에서 동승하여 내리는 것을 보고 손으로 문을 밀치고 나가면서 탈출에 성공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필자의 회사동료가 후일담으로 들려 주었다.

 

그로부터 3년후 필자가 오슬로 주재원으로 나가 첫 번째 겨울을 나면서 서울에서 볼 수 없었던 진 풍경을 목격하고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워낙 눈이 많이 오는 북구 지역이라 통행도중에 승용차들이 눈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현지인들이 피해 차량을 돕는 방식을 보면 대개의 경우 피해 차량의 앞 밤퍼(Bumper)위에 무표정하게 올라 앉아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우리 같으면 차 뒤에서 이영차 이영차 소리를 지르고 사력을 다해 밀면서 화끈한 도움을 줄 터인데.

 

생각해보면 첫번째 경우는 엘리베터 문은 좌우로 슬라이딩하며 자동으로 열린다는 선입관념에 사로잡혀 엘리베타 문을 아파트 문과 같이 밀고 나갈 생각을 스스로 할 수 없었고 두 번째의 경우는 모든 승용차는 후륜 구동이라는 필자의 예단으로 인하여 피해 차량을 돕는 선의의 현지인을 오히려 문제해결에 무성의한 방관자 정도로 오해 하는 상태까지 비약한 것이다.

 

한비자 설난 편에는 인간관계의 친소(親疏)에 따라 똑 같은 언동(言動)에도 불구하고 선입견이 긍정 혹은 부정의 이미지를 낳는다고 아래와 같이 전하고 있다:

송나라에 한 부자가 살았다.

한번은 비가 내려서 담이 무너졌다.

그 아들이 말했다  담을 쌓지 않으면 반드시 도둑이 들어 올 것입니다

이웃의 늙은이도 역시 그렇게 말했다.  그 날밤에 과연 도둑이 들어 크게 재물을 잃었다.  이 두 사람이 말 한 것은 다 이치에 맞는대도 그 집안에서는 아들을 매우 지모(智謀) 있다 여기고 반면에 이웃 늙은이는 재물을 훔쳐간 도둑으로 의심하였다 한다.

 

편견(偏見)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는 prejudice이고 그 어원을 살펴보면 라틴어에서 왔다. 라틴어 “Pra”미리(before)”란 뜻이고 “Judicium”이란 말은 판단(judgement)의 뜻이다. 따라서 편견이란 어떤 일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나 근거를 알지 못하고 이미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편견(偏見)에 의한 판단은 사실을 살피지 않으니 결정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판단의 근거가 편벽(偏僻)되고 불확실하여 오류를 범할 개연성이 높다.  편견은 창의성을 저해하고 구성원들간에 공감대를 끌어 내는데 저해 요인이 된다.  편견은 궁극에 가서 편견을 가진 사람의 인격을 상실케 하는 부메랑으로 작용 할 수도 있다.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명분으로 파당이익의 편견을 감춘 지도급 인사들은 이번 정치 일정이 끝나면 자기자신을 위한 공부(爲己之學)”를 더 열심히 하여 자신의 인격을 완성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한 가정에서 부모가 잘생기고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는 자식만 편애하는 것도 일종의 편견이다. 아무리 모자라는 자식이라도 사람다운 사람이 되도록 격려하고 북돋아 주는 것이 모든 부모의 최소한의 포부 이요 희망이 아닌가 싶다.  아무나 유명한 운동선수가 되고 예술가가 될 수 없다. 세상만사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러나 사람이 되는 일그 자체를 능력부족을 핑계로 외면하면 우리의 삶은 활력과 의미를 잃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시키는 대로 살아 가는 꼭두각시인생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편견은 무식보다 더 나쁘다.  왜냐하면 무식은 공부를 input하면 조금씩 향상되고 공부가 어느 정도 축적되면 무식에서 탈 피 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하지만 편견은 이성적인 사고를 마비 시키는 악성 바이러스와 같은 부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당사자가 편견에 사로잡혀 아집을 부리는 한 아무리 정학한 데이터를 input해도 신뢰 할 수 있는 solution을 기대 하기 어렵다.

 

大方無隅(대방무우)

***大器免成(대기면성)

큰 사각형에는 오히려 모서리가 없으며 큰 그릇은 특정한 모양을 취하지 않는다.

-노자 백서(帛書)본 중에서-

우리가 사는 공동체를 이롭게 할 폭넓은 인격과 포용성 있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노자 도덕경 41장에 나오는 문구를 읽으면서 머리 속에 그려 본다.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며 기준을 고민하게 된다. “더 선한 것을 기준으로 하건 덜 악한 것을 기준으로 하건 어느 경우에도 편견은 개입 시키지 말았으면 좋겠다. 올바른 판단의 반대는 잘못된 판단이다.  성경에서는 단지 겉 모습만보고 판단 하는 것을 잘못된 판단으로 해석 하고 있다. 보아야 할 것을 제대로 관찰하고 들어야 할 것을 집중해서 들으면 사물이나 사람의 겉모습에 미혹 되여 잘못 판단하는 오류는 어느 정도 걸러 낼 수 있을 것 같다.  속전속결의 경쟁의식이 강박수준에 도달한 현대 사회에서도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들은 후 건전한 이성에 입각하여 판단하는 사람은 편견과 졸속의 위험을 무난히 피해 갈 것으로 확신 합니다.  지루한 글을 편견 없이 끝까지 읽어 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지 말고 올바른 판단을 하여라-요한복음 724

Judge not according to appearance, but judge righteous judgment.-John 7:24   American Standard Version.

 

***왕필(王弼)본에는 사자성어로 이미 널리 알려진 대기만성(大器晩成)으로 되여 있으나 전후의 문구를 고려해보면 대기면성(大器免成)이 타당 한 것으로 생각하여 이 글에서는 백서(帛書)본의 주석을 인용했음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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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혜준님의 댓글

이혜준 작성일

잘 앍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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