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천하유아독존'고귀한 말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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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병욱 작성일16-08-22 17:50 조회64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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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균형님의 글을 접하며 스쳐가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카이사르.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이순신. 또다른 이순신
카이사르에 관한 논문은 이언기번부터 수없이 많다고 합니다. 이언기번의 '로마사'를 30일
이상에 걸쳐 읽었던 젊은 날이-대학시절- 있었는데.......거기엔 안토니우스에 관한 이야기도 꽤
양념으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글쓰기. 연설.전투지휘.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심모원려.여자꼬시기의 달인 카이사르에
대한 부연설명은 필요없겠지요?
그런데, 사실 안토니우스도 카이사르 못지 않게 탁월한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학력으로 말할 거 같으면
한 수 위였지요.카이사르는 당시 학부 출신이라면 안토니우스는 대학원 출신이었거든요. 또 안토니우스는 수사학(언변술에 관한 학문)심리학을 오래 공부한 수재이기도 했었지요.
글이면 글 전쟁이면 전쟁 탁월한 리더 카이사르는 술도 거의 마지지 않고 병사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대하는 '귀족형 리더' 였습니다만......안토니우스는 병사들과 검투사시합도 즐기고 함께 만취한 채 씨름도 하며 어울려 놀기 잘 하는 '서민형 리더'이기도 했었습니다.
화통한 장점만을 살리자면 훨씬 더 긍정의 결과를 창출한 인물이었는데......
그런데 지식과 지성은 또 다르지요?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게 패한 결정적인 이유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의 고귀함을 몰랐던 게 아니었을까요?
아그리파에 비해 한 수 위의 전쟁전술을 지니고 있는 사령관이었음에도 자만하기 일쑤였고 시종일관 허영심에 가득한 클레오파트라에게 끌려갔었으니깐요.
로마가 낳은 창조적인물 '카이사르'와는 정 반대의 인물이었지요.카이사르는 실패를 거울로 삼아 오뚜기처럼 일어나는 불굴의 의지를 지녔으며 클레오파트라의 한계를 명확히 파악하고 유희의 대상으로만 삼았을 뿐 정치적인 파트너로 대하지는 않았었지요.
우리 역사에서도 이런 인물이 있었지요.
이순신장군도 북방을 지키며 여진족한테 수없이 패하고 깨지면서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천상천하유아독존'
의 깊은 의미를 실천했다고 봅니다.
오래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보면 전투장면에서 늘 빠짐없이 등장하는 말이
"한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라는 장군들의 외침입니다. 전의를 불태우고 승전에 갈망하는 시청자들을 위한 배려겠지요?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전쟁시에도 실제 이 말을 많이 했을까요?
배 위에서 전투를 지휘하는 실제 장군들은 이 말을 자주 하지는 않았으리라 봅니다.꼭 필요한
말만 하기도 바빴을 터.
아침밥을 먹는데 둘째 녀석이 뜬금없이 '무의공 이순신'에 대해서 줄줄줄 재밌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활을 잘 쏘았다던지. 왕족의 후손이라 금수저였다는 등.충무공 이순신보다 훨씬 더 좋은
점수로 무과에 합격했다던지^^나름 공부를 많이 했었나 봅니다.
'무의공 이순신'은 노량해전을 끝까지 지휘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투 중 사령관이었던 충무공
이순신이 적의 총탄에 맞아 사망했기 때문이었죠.
충무공 이순신의 기본전술은 학익진처럼 -무차별 포격으로 적선을 박살내거나 상처낸 다음-적군을 수장시키는
무척 효율적인(?) 방법으로 일관하였는데 노량해전은 섬멸전의 개념이었습니다. 기본 전술을 벗어난 파격적인
전투였다고 봅니다.
"한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노량전투에선 분명히 이 외침을 썼을 것입니다.
이 말 수없이 썼을 최고의 치열한 전투였다고 봅니다. 일본으로서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살아
돌아가야 한다는 명분때문에 양쪽 모두 사활을 건 싸움에서 대장선이 가장 먼저 돌격을 하였었죠.
결국 후반에 갈수록 전술을 무시한 난타전이었던 겁니다.
원래 선봉 돌격전은 '무의공 이순신'의 주특기였죠.그런데 노량해전에선 사령관인 충무공 이순신이 직접
무의공 이순신을 매복조로 편성하고 자신이 직접 뛰어들었던 거고요.
사료에 보면 '무의공 이순신'은 교만하기까지 할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지휘자였다 합니다.그가 지휘하는
군선은 군기가 세기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병사들 모두 일당백으로 용감하였기에 연전연승이었다 하죠.
그러다보니 노량해전에서 사령관이었던 충무공 이순신 전사 후 최종 지휘를 맡아 전쟁을 승리로 장식하였다
합니다. 당시 총사령관은 명나라의 진린. 우리의 충무공은 두번째 서열인 사령관.'무의공 이순신'은 충무공과
이름이 같고 위기에 처해 냉철하다는 이유에서 총 지휘봉을 넘겨 받았다고 합니다.
'무의공 이순신'
전투에서 탁월한 인물임은 맞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형벌을 적용하기 일쑤였고 재물을
탐하며 승진을 위해 윗 사람들에게 아부하길 좋아했다는 사료도 있더군요.
총사령관의 그릇이었던 '충무공 이순신'에 비하면......군단장 정도의 그릇이 아니었을까요?
힘찬 한주 엮으세요.
지리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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