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처신과 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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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해균 작성일16-10-31 09:35 조회67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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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 동안 신문과 방송 그리고 TV를 통하여 집중 부각된 “최순실과 불량한 패거리들이 권좌에 있는 비선 실세들의 비호를 받으며 국가 기강을 무너트린 전대미문의 스캔들”에 대하여 느낀 점을 두서 없이 적어 보았다.
모든 의혹의 장본인인 최순실이 어제 자진 귀국했다고 하니 검찰당국에서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하여 스캔들의 뿌리를
파헤칠 때까지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 사건을 계기로 흐트러진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고 탈선된 부분의 정부 시스템이 조속히 정상상태로 복원 되어 일시적인 좌절과 혼란을 딛고 전진하는 국가적인 교훈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
중학교 3학년 학급담임선생님 한 분이 퇴근 후 바삐 움직이신다. 저녁에 갑자기 손님이 오기 때문에 수퍼에서 몇 가지 식품과 요리할 식 자재를 사야만 했다.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담긴 품목이 12가지에 달했다.
비록 품목은 초과 했지만 선생님은 시간이 급해서 10개 미만 소량계산대에 줄을
섰다.
계산대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선생님이 담임하고 있는 학급의 한 학생이 자기에게로 다가 오는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평소 학교에서
정직과 윤리에 대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던 선생님의 비행(?)을 우연히 목격한 학생이 빙그레
웃으며 “선생님 오늘 여러 가지 많이 사셨군요. 하지만 줄을
잘 못 서신 것 같습니다“ 하고 넌지시 말하고 가버렸다. 선생님은
겉으로 태연한 척 했으나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수퍼에서 일어난 사건의 연상작용으로 인하여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날 사소한 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선생님은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고지식할 정도로 사회의 제 규정을
준수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
후 선생님은 자신의 양심이 자기행동의 감시자가 되어 명실상부한 스승의 길을 걷는데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고 한다.
지도자의 참된 권위는 언행 일치에서 나온다. 논어 위령공(衛靈公)편 제 5장에서 공자의 제자인 자장이 사람들 사이에서 통 할 수 있게
되는 방법을 여쭈어보자 공자께서 말 씀 하셨다.
“말이 충실하여 신용이 있고, 행동이 진지하여 공경스러움을 느끼게 하면, 비록 먼 외국에 가서 살더라도 통 할 것이다. 말에 충실함에 부족하여 신용이 없고, 행동에는
돈독 함과 공경스러움이 없으면 고향에 산다 하더라도 통 할 수 있겠는가?”
전해 내려오는 말에 “대들보가 휘면 기둥도 휜다”는 말이 있다.
부모는 한 집안의 대들보이고, 선생은 학교의 대들보이며 사장은 회사의 대들보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나라의 대들보이다. 대들보가 튼튼하면 두말 할 것 없이 기둥도
튼튼하다. 그러나 대들보가 휘
일 경우 십중팔구 기둥도 휘기 마련이다. 가정이든, 학교이든, 회사이든, 나라이든 한 공동체의 분위기는 지도자의 처신과 자질에
따라 좌우 되기 마련이다.
지도자의 처신과 자질에 대해서 공자께서 하신 말씀은 논어 자로(子路)편 제4장에 나와 있다. 그 내용을 부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감히 불경하게 굴지 못하고, 윗사람이 정의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감히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게 된다. 윗사람이 신용을 좋아하면 백성들이 감히 신용을 어기지 못할 것이다.”
공동체의 안영과 질서를 위하여 공인과 사인의 인간관계는 냉혹할 정도로 엄격한 규율을 필요로 한다. 공인은 혈연, 지연, 학연
그리고 개인적인 친소관계를 초월하여 공무집행에서 불편부당하고 그리고 공평무사 해야 한다. 공인과 사인의 관계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사이 두기가 꼭 필요 할 것 같다. 영어로 표현하면 Arm’s Length
Arrangement(팔뚝 기리 만큼의 일정 거리 두기)로 공인과 사인의 거리 두기가 유지되어야
부질없는 오해와 시비곡직에서 자유로운 건전한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칼릴지브란은 자신의 시 “예언자”에서
결혼한 부부도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바투 서 있지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 있는 것을. 참나무,
사이프러스 나무도 서로의 드리워진 그늘 속에선 자라지 못하니라.”라고 말하면서 부부간의
인간관계에서도 일정한 거리를 두라고 말 하지 않았나!!!
오늘날 공인이나 사인은 예외 없이 경쟁과 성공의 논리에 치우쳐 하루하루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스스로를 돌아 보는 여유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주변에서
보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의 개인적 정서를 통제하지 못하여 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신독(愼獨)이란 말 이
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남들이 알지 못하지만 자신만이 아는 내면세계를 대 할 때 신중 해야 한다.”라는
의미를 내포 하고 있다. 신독이라는
말은 “중용” “대학” 그리고
“순자”에 나오는 말이다.
중용에 나오는 신독(愼獨)의
관점을 인용 하면: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경계하고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두려워해야 한다.
숨겨진 것처럼 잘 드러나는 것은 없으며
미세한 것처럼 잘 나타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 있는 것을 삼간다(故君子愼其獨也).
-지면 관계로 원문 생략-
채근 담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밝은 곳에서 죄를 얻지 않으려면,
먼저 어두운 곳에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先無得罪於冥冥).
사람들의 일반적인 속성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기 위해 남이 보는 곳에서는 성인군자(聖人君子)인체 행동 하지만 혼자 있을 때 또는 남이 보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는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 하고 싶은 위선적(僞善的)면이
잠재적인 충동으로 작용하고 있다.
홀로 있을 때 또는 어두운 곳에서 무명인의 자유를 누릴 때도 언행의 일탈을 방지하기 위해 자신이 처한 곳에 누군가가
설치한 감시 카메라와 원격 녹음기의 불랙 박스가 작동 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적어도 순간적인 그릇된 판단은 미연에 방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도자와 그 측근은 운명공동체이다.
지도자가 순간적인 착각으로 올바른 식견(識見)을
발휘하지 못할 때 참모들은 직위를 걸고 버림을 받을 각오로 직언을 했어야 마땅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누구나 어떤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면 사후에 현명 해 지기는 싶다. 그러나 이는 사후 약방문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노자가 도덕경 에서 말한 동선시(動善時) 즉 행동 할 때를 잘 선택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취해야
할 현명한 처세 방법이 아닌가 싶다.
이번 스캔들의 책임의 경중을 가리자면 어전회의(御前會議)분위기로
참모들의 직언을 봉쇄한 통치자의 통치 스타일이 당연히 더 큰 비중을 차지 할 것이다. 그렇다고 보신과 눈치보기로 전대미문의 스캔들을 사전에 방지 하지 못한
측근 참모들에게 동정적이거나 면죄부를 줄 정도로 국민들이 괸대 하지만 않은 것도 사실이다.
노 나라의 재상이며 실권을 지닌 독재자인 계강자(季康子)가 공자에게 정치하는 도를 물으니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政者正也) 당신이 솔선해서 바른 것으로 본보기를 보이신다면 누가 감히 바르게 아니 할 수 있겠습니까?”
한국의 모든 정치인들이 논어 안연(顔淵) 17장 “정자정야(政者正也)”의 네 글자를 예외 없이 실천 한다면 우리나라도 머지 않아 정치선진국으로 발돋움 하지 않을까 라고 희망적인
기대를 피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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