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울트라 100km마라톤대회 참가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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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현석 작성일05-10-20 20:37 조회3,04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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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린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숨가쁜 기억이다[서울울트라 100km마라톤대회 수기]
[프롤로그]
상쾌한 가을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쳐 전해오는 맨소래담 냄새와 아직도 무릎, 허벅지,
어깨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파스의 상혼들이 지난 서울 100km 울트라마라톤에서 내가 얼
마나 힘들게 완주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역시 100km 마라톤은 정말 힘들고 내가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은 첫 장거리 인생여정이었
다. 2002년 마라톤에 입문하면서 오늘에 이르기 까지 이렇게 서글프게, 이렇게 힘들게
이렇게 흥분된 마음으로 완주의 결승점을 통과해 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풀코스를 비롯한 수많은 대회에서 완주를 경험 해 보고 때론 경련(쥐)의 공포 속에서,
때론 숨통을 조여오는 횡경막 염증으로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완주의 일념 하나로 터벅터
벅 결승점을 통과할 때도 난 오늘의 서울울트라 100km를 그 때와 비교하기를 거부했다.
그 만큼 오늘 내가 달린 11시간 23분 18초의 기난긴 세월의 시간들이 잠시 다가왔다 사
라지는 고통에 비하면 엄청난 고통의 대가를 치루고서 얻어진 내 삶의 값진 선물이라 여
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내 젊음을 불사르며 기어이 한 번만은 이루어 보고자 무모하게 시작했던 조그마한 내 삶
의 일부분들이 하나씩 하나씩 겁없는 용기 앞에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지난 8월 28
일 제주국제 아이언맨대회를 완주하면서 100km울트라 마라톤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기 시
작했고 내친김에 이제는 "울트라 완주다!" 라는 가슴속 웅혼의 숨소리를 난 느낄 수 있
었다.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이 소중한 시간을 나는 자신감 하나로 버티어 왔다. 그리고 결국
난 완주의 그늘에 당당히 설 수 있었다. 한점 부끄럼 없는 완주의 결승선을 환한 미소
로 보답하며 달렸다. 내 가 뛰어 온 시간만큼 나는 나의 잘못된 과거를 용서할 것이다.
내가 뛰어 온 거리만큼 나는 나의 불확실한 미래에 마라톤이란 세 글자를 가슴속에 새
겨 둘 것이다.
나의 100km 울트라마라톤 완주는 끝이 아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나는 앞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자유가 허락하는 대자연을 호흡하며 달려나갈 것이다. 달린다는 것 그것은
그 무엇도 아닌 달리면서 모든 망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고 있을 때
난 심장이 멈추어지지 않는 한 쉼 없이 사색할 것이다. 그리고 달린다는 것은 세상을 살
아가는 숨가쁜 기억이다.
詩 달린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숨가쁜 기억이다 / 장현석
애처로운 꽃잎하나
낙옆처럼 떨어진 시월
가슴속 뜨거운 피 꽃잎 따라 흩날리네
무딘 칼끝에 도려 낸 아픈 상처만이
내 가슴 짖 이기고
만신창이 된 몸과 마음
이내 세월 따라 흘러가도다
한숨 자고나면 더욱 애잔히 그리운건
사랑이 아니라 달림의 철학(哲學)이다
그래도 달린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숨가쁜 기억이며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삶의 향수(鄕愁)이다
무릇 무릇
아주 짧은 만남에서 가나긴 여운
내 달릴 땐
그 만남조차 알지 못하고
숨소리 거친 심장의 고동소리 듣지 못했다
내 달릴 땐
야산에 피어난 야생화 하나 보지 못하고
내 달릴 땐
도로옆 논두렁 올챙이 하나 보지 못했다
나의 질주(疾走)는 나를 멈추려 하지 않았고
나의 질주는 나를 구속하려 하지 않았다
나의 본능
나의 잠재
나의 커다란 욕망
그것은 꽃향기보다 더 진한 가슴속 메아리
이젠 꽃잎을 밟았다
달림도 멈추었다
세월도 덩달아 멈추었다
나는 휘어진 꽃잎을 감싸 안았다
꽃잎의 비명소리에 잠이 깨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바람에 휘날린 꽃잎을 밟고 가만히 눈을 뜬다
[울트라 도전에 대한 열정]
마라톤에 입문하면서 첫 10km를 완주하고 나에게는 10km가 가장 알맞은 마라톤 거리라
고 한동안 생각했었다. 그러나 반복된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나의 몸은 점점 빨리 달리
기를 원했고 보다 더 먼 거리를 달려 보고픈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모든 달림이가 그렇듯이 기록의 욕심 앞에 한때 좌절의 세월을 보내기도 하고 무능한
내 자신을 한탄하며 내가 이것 밖에 되지 않느냐며 자책과 부상으로 얼룩진 철없는 시간
들을 헛되이 보내기도 하였다.
내가 마라톤을 하지 않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조금은 빠르고 조금은 먼 거리를 달렸다는
자만심에 내 몸은 주식의 수직상승처럼 내심 엘리트는 안되더라도 상위 몇% 안에는 들
었으면 좋겠다라는 기대감에 혹독한 훈련의 과정을 따라 해 보기도 했다.
인터벌 훈련, 스피드 훈련, 파틀렉을 통해 보다 더 빠른 스피드를 얻기 위해 난 뱁새가
황새가 되기 위해 어설픈 훈련도 따라 해 보았다. 언제나 마음가짐은 노력하면 무엇이
든 이룰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물을 얻을 수 없다라는 것을 알았다. 내 능력
의 한계를 느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신체구조와 폐활량,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에 의
해 인간은 조금씩 발전 한다라는 것도 이제 알았다.
처음 10km, 하프코스, 풀코스 등 점점 거리가 늘어남에 따라 이제는 기록단축이 무의미
해짐을 느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나의 달리기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먼 거
리를 달릴 때마다 기록의 욕심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어느덧 내가 마라톤기록의 정점에서 벗어날 때 쯤 나는 또 다른 도전과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내 심장이 살아 숨쉬고 있을 때까지, 내 두 다
리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달려보는 것이었다.
이제는 오래 달리는 동안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사색을 즐기며 서른 다섯 살 인생의 전
환점에 서서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과 온 누리를 붉게 물들이는 석양의 아름다움을 만끽
하며 나만의 승리에 도취되어 내 자신과 인생의 내면 속에 묻혀 있는 새로운 존재를 발
견하는 즐거움으로 달림을 즐기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꿈꾸어 온 마라톤이며 내
가 앞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돌보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부상과 도전사이의 갈등]
서울울트라마라톤 신청 후 나는 한 달 사이에 연습량을 평소보다 두 배나 늘려 갔다. 보
통 1달에 150km 남짓 뛰어오던 것을 9월부터 주말마다 40km장거리와 평일에는 매일 10km
를 달렸다. 그러나 대회를 3주일 남겨 두고 재작년 5월부터 시작된 족저근막염이 재발하
였다.
그 간 재활을 위해 수영을 배우고 사이클을 타며 휴식기간을 거쳐 거의 완치가 되었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무리한 연습으로 또다시 나는 아픔의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포기
와 도전의 기로에 서서 나는 갈등하여야 했다. 이미 신청과 참가비가 완료된 상태에서
다음을 위해 과감히 포기를 하느냐 아니면 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상의 투혼
을 발휘해야 하느냐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다.
가족과 주위의 지인들은 극구 만류하였다. 울트라는 부상 완치 후 언제든지 뛸 수 있고
울트라대회도 연 10회 이상 되기 때문에 이번에는 정말 포기할 것을 종용했다. 부상없
이 평생토록 달린다는 것, 그것이 진정한 달림이의 가치관일 것이다. 그러나 족저근막염
의 부상 정도가 뛸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아픈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통증이 없는 것도 아
니어서 나는 고심하고 또 고심할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40km를 뛰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번번이 10km이후에는 발 바닥에서 이상징
후가 발견되었으나 그 이후 얼마만큼 더 달릴 수 있는지를 나는 알 수 없었다. 40km를
달리는 동안 발바닥은 10km 지점이나 40km 지점이나 통증의 정도는 비슷했다.
어차피 50km를 넘어서면 발바닥 통증의 아픔 보다는 체력 저하로 인한 고통이 더 심할
거라 생각했고 나는 참을 수 있는데 까지 참고 달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남은 2주일
은 휴식을 취하며 발바닥 족저근막염이 호전되기를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부상으로 인해 마지막 테이퍼링이 완주에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시작과 끝은 내안에 있다]
드디어 울트라의 시작이다. 내 생애 최고의 날로 기억될 그 날이 지금 나를 흥분시키고
있다. 통영에서 서울까지 대회전날 밤차로 올라와서 한 잠도 못자고 새벽에 출발이다.
당초 전날 올라와서 대회장소 근처에서 숙박을 하며 편안 휴식을 취하고 대회 참가할 계
획이었으나 이번만큼은 반드시 아내와 가족을 함께 데리고 가기로 생각했다.
열 몇 시간을 달리면서 결승점에 누구 하나 반겨 주는 이 없다면 그 얼마나 처량하고 불
쌍할까. 더 큰 행복을 찾기위해 취미로 마라톤을 시작한 것이지 혼자만의 욕심을 앞세
워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결승점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가족을 생각하며 마지
막 투혼을 불사르리라는 일종의 응원군을 나는 동원한 것이다.
그러한 아내가 토요일 근무로 인하여 전날 밤 10시에 출발하여 올라가는 동안 잠을 자
며 새벽 4시에 대회장소에 도착하여 시합에 출전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올라가는
차 안에서 잠을 잔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고 거의 뜬 눈으로 새벽에 도착하여 인근 식당
에서 감자탕 한 그릇에 배를 채우고는 머나먼 여정에 이 한몸 기꺼이 바치기로 했다.
아직 어둠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5시에 300여명의 울트라 전사들이 다시 이 자
리에 살아서 돌아올 기나긴 시간을 꿈꾸며 달려나갔다. 양재천에서 탄천으로, 다시 서울
의 젖줄인 한강을 굽이굽이 돌아오는 그야말로 서울의 끝에서 끝을 달려가는 100km 울트
라 마라톤이다.
어쩌면 다시는 두 발로 되돌아올 수 없는 이 출발 선상에서 나는 거듭 되 뇌이었다.
10km까지는 마지막 꼴등으로 달린다는 기분으로 달려나갈 것이다. 그 누가 뭐라해도,
그 어떤 주자들이 나를 비웃을 지라도 100km를 완주하기 위해선 초반에 힘을 아껴 나갈
것이다.
나는 기록도 필요없다. 제한시간 안에 오직 완주를 꿈꾼다. 14시간이라는 족쇄와도 같
은 제한시간을 통과하여 내 자신을 극복하고 불가능을 현실로, 잠재된 내면의 투혼이 얼
마만큼 값진 선물로 보답할 수 있는지를 나는 시험해야 한다.
10km를 지나고 15km지점의 탄천으로 가는 길은 지금 내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달리
고 있는 것인지 지방의 아름다운 호숫가를 거닐고 있는 것인지 착각을 일으킬 만큼 신비
롭고 아름다웠다. 새벽녘 강줄기를 따라 피어나는 물안개가 서울 온 천지를 뒤 덮었고
불어오는 바람결에 흔들리는 갈대는 피곤에 지친 내 마음 마져 빼앗아가 버렸다.
자동차 하나 없는 서울의 도로를 달리면서 내 눈에 비춰진 모든 사물들은 아름답게만 느
껴졌다. 저 멀리 보이는 고층빌딩 마져도 향락에 젖은 서울의 밤거리를 연상케하는 것
이 아니라 자연과 빌딩숲의 조화로움 만남에서 나는 그 속에 동화되어갔다. 그 만큼 서
울은 변화되고 있었다.
어느덧 25km를 지나고 서서히 서울의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다. 감회가 새롭다. 따뜻한
태양의 기운이 온몸에 퍼져간다. 어제 잠을 못잔 탓일까. 졸음이 밀려오고 반쯤 눈을 감
은 채 앞 주자만 바라보며 달린다. 교차지점을 지날 때 마다 일본인인 듯한 주자가 화이
팅이라고 손을 흔들며 반긴다.
처음에는 경상도 특유의 뚝심 때문인지 지나치는 주자에게 간단하게 손짓으로 답례만 하
다 이내 내가 먼저 지나오는 주자들에게 화이팅이라고 힘을 불어넣어 준다. 일본인들의
관심과 친절에 또 한 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라톤으로 함께한 인연]
38km지점을 통과할때 어떤 부부달림이로 인하여 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저 멀리서 마
라톤복장을 하고 고글을 끼고 긴머리를 흩날리며 달려오는 여성달림이와 배낭을 메고 달
려오는 부부 달림이를 보았다. 달리는 도중 그냥 아무 생각없이 그들 부부를 지나쳤는
데 갑자기 달림을 멈추더니 내이름 석자를 부르며 아는척을 하는 것이었다.
온라인 마라톤클럽을 통하여 한 번도 만난적이 없고 단지 이름정도만 알고 있는 두 분이
었는데 통영에서 서울까지 울트라마라톤을 뛰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여의도에서
강동까지 울트라코스 역순으로 만나질 때까지 달려왔다고 한다. 두분의 만남자체 만으로
도 난 큰 힘이 되었고 서울 도심에 어느누구 하나 알지 못하는 촌놈이 두 분의 스포트
를 받으며 달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분도 울트라대회 출발전 새벽 4시경에 나를 마중나와 응원을 하겠다
고 택시를 타고 이 곳까지 와 주었다. 참으로 대단한 정성이다. 나 같으면 아무리 온라
인으로 맺어진 인연이라고 하지만은 마음만 격려할 수 있을 뿐 실제 행동으로 실천하진
못했을 것이다.
참으로 인연이라는게 잊혀진 세월속에 오늘같이 나를 당황하게 만들고 그 중에서 오늘처
럼 잠시 잊고 사는 삶 속에 나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고 내 자신과 내 주위에서 일어나
는 일들에 대해 적잖이 가슴 뭉클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 것 같아 괜히 눈시울이 붉어
진다.
그리움! 그리고 다시 열정을 쏟게 만드는 응원의 메세지가 서로 모르는 사이에서 마라톤
을 통해 가까워진 것처럼 내가 지금 소중한 인연을 버리지 않고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있음을 오랜만에 떨리는 감정으로 몸속 깊이 느껴 본다.
[고통의 시작은 지금부터다]
53km지점 여의도에서 아내가 아이들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 화이팅!" 이라고 외치는
딸애의 목소리가 벌써 100km 완주한거나 다름없이 들렸다. 이세상 처음으로 50km를 달
렸는데도 별로 힘들지 않았다. 오른쪽 족저근막염에 의한 발바닥도 그렇게 심한 통증은
아직 없었다. 이대로라면 100km가 아니라 1000km라도 더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속에 나 역시 나약한 인간으로 금새 되돌아왔다. 60km부터
발바닥 통증이 심해졌다. 발뒤꿈치를 디딜 수 없어 오른쪽 발은 까치발로 뛰어야 했다.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었지만 아직도 40km가 더 남아 있음에 난 나의 운명에 몸을 맡기기
로 했다.
내 인내로 감당할 수 없을 고통이라면 차라리 포기할 것을 다짐했다. 한발 한발 뛰어나
갈 때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전해오는 징한 통증을 어떻게 견디며 완주할 수 있을
까. 고통은 지금부터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달림을 멈출 수 없다. 오늘 이 울트라마
라톤대회가 내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운명을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앞을 바라보며 전진한다. 고통은
발바닥 뿐만 아니라 양쪽 무릎과 허벅지에서도 나타난다. 경련이 일어날것만 같은 두
다리의 예민한 긴장감과 움직임은 이제 발바닥 족저근막염 통증이 문제가 아니라 경련으
로 한 번 쓰러지면 완주조차 할 수 없다는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이때까지의 경쾌한 발걸음도 절뚝절뚝 오직 한 지점을 향해 뛰어가는 처량한 내 모습으
로 바뀌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나뿐만 아니라 여기 참가한 모든 마라토너들이 다 똑
같은 심정일 것이다. 지금 포기한다면 나는 이세상을 너무 쉽게 살아왔다는 증거인 셈인
다. 고통은 참으면 된다. 설사 지금 이 순간 걷지 않고 달린다는 것이 오히려 남은 생
을 살아가는데 크나큰 과오를 저지른다 하여도 난 지금 나와 약속한 양심을 믿고 달릴
것이다.
완주를 하여도 뿌듯한 자신감과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낙오자나 다름
없다. 지금 한 순간의 고통이 나의 양심을 지켜 주고 오랜 동안 부상에서 헤어나지 못할
지라도 부상보다 더 값진 인생의 그 무엇이 존재한다면 나는 그것을 따를 것이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마라톤이 인생의 기로에서 나를 혼돈속에 빠져들게 하고 있지만 나
는 내 자신을 믿는다. 달려라! 달려라! 그리하여 내 몸 속 가득 응어리찬 온갖 슬픔과
좌절의 세월을 저 푸른 한강물에 뛰워 보내라. 잠시 쉼 호흡을 하며 하늘을 바라본다.
한강 주변으로 인라인스케이트와 MTB자전거를 타고 한가로이 노니는 사람들, 소풍을 온
듯한 가족나들이객, 연인끼리 사랑을 주고 받는 서울의 휴일 풍경, 그들은 모를 것이
다.
내가 이렇게 고통스럽게 뛰어가는 이유를...차라리 걸으며 편안한 완주를 선택하지 않
은 이유를...사람은 저마다의 삶을 살아간다. 나는 나대로 나만의 삶의 방식을...고통
이 깊어 가는 만큼 완주에 대한 나의 희열을 점점 커질 것이다.
[허탈한 완주의 그림자]
90km지점에 와서야 비로소 지난날 내가 뛰어온 세월을 잠시 생각해 본다. 지루하고 무
지 고통스러웠던 한강변을 뒤로하고 이제 마지막 양재천 개울을 따라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이제 남은 거리는 약 10km, 평소 10km를 천천히 조깅한다 생각하며 내게 남은 마
지막 에너지를 불태워본다
그러나 마지막 10km는 정말 멀고도 멀었다. 마치 멈춰진 시간 속을 달리는 것과도 같았
다. 금방 나올 것만 같은 결승점은 아무리 달려도 가까워지지 않는다. 95km지점의 중간
보급소에서 잠시 물 한 모금을 하기위해 멈추었다. 멈추어진 내 발은 이제 갈길 바쁜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있다.
차라리 더 천천히 뛰더라도 기계처럼 굴러가는 것이 더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제 마지막 97.5km 보급소에서는 걷지 않고 뛰었다. 저벅 저벅 한발 한발 내 딛는 순간만
큼 나는 새로운 역사의 발자취를 남기는 것이다. 그리고 미리 완주의 결승점에서 기다리
고 있을 가족을 생각하니 가슴 뭉클한 그 기분은 정말 날아갈 것만 같았다.
결승점 약 300m에 이르자 사회자의 안내 맨트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사회자는 73
번 장현석씨가 지금 100km를 무사히 통과하여 지금 여러분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고 가족들이 완주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행사장내에 안내를 하고있었다. 내심 완주의
순간에 어떤 표정을, 어떤 모습으로 멋지게 골인을 할까 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골인을 할 즈음 나를 맞이할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없었다. 정말 초라한
완주의 역사를 나는 가슴한구석에 쓸어 담고 있어야 했다. 단지 완주 메달을 걸어주는
자원봉사자 이외에는 그 어떤이도 100km의 초장거리를 뛰어온 나를 따뜻이 맞이해 줄 사
람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 몇 시간을 기다리며 언제나 완주의 감동을 내게 선사했던 아내와 가족들, 저 먼 통
영에서 서울까지 나의 완주 하나만을 바라보며 여기까지 따라왔던 내 가족들...아무리
주위를 두리번 거려도 내 가족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11시간을 뛰어온 내 몸뚱아리는 점점 식어 가고 한발 내디딜 힘 조차 없는 나는 그 자리
에서 두 시간 동안이나 외로움과 추위에 떨어야만 했다. 아쉬움의 시간도 잠시, 혹시나
서울에서 교통사고나 나지 않았는지, 태어나서 처음 서울에 와 보는 시골의 아낙네가
길을 잃고 이 자리를 찾아오지 못했는지 이제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픈 두 다리를 이끌고 그래도 혹시나 어디에 있을 가족을 찾기 위해 두리번 거리다 드
디어 아내와 아이들을 찾았다. 나는 나대로 가족을 기다렸고 가족은 가족대로 내가 완주
하기만을 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완주의 기쁨보다 낯선 서울에서 가족과 상봉했
다는 기쁨이 더 커졌다. 비록 결승점에서의 허탈한 완주였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영
원토록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에피소드로 남아있을 것이다.
[에필로그]
대회가 끝난지 십여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는 달리기를 시작하지 않았다. 대회의 휴유
증으로 족저근막염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될 줄 뻔히 알면서
도 나는 도전했고 그 도전의 상처는 너무나 큰 아픔으로 내게 돌아왔다.
아마도 지금 이 상태로는 몇 달간 달리기를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적어도 고통의 순간만큼 나는 인내와 인생의 환희를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재
활훈련으로 수영과 싸이클을 타면서 근력을 강화시키고 다시 뛸 수 있는 그 날을 꿈꾸어
야 할 것이다.
무모한 도전, 그것은 아무런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도전을 성취하기 위한 내 자신
의 노력과 하고자 하는 열망이 만들어 낸 최종 결과물인 것이다.
우리는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하면서 대개 많은 고통을 느낀다. 그 거리가 짧던 길던, 초
보달림이든 고수달림이든 완주의 그 순간에는 스스로 고통을 이겨낸 자신을 대견해 하
며 완주에 대한 성취감에 도취되어 앞으로 인생도 마라톤처럼 끈기있게 더 잘 살 것이
라 확신하기도 한다.
설령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했다 하더라도 실제론 우리 인생에 커다란 변화가 오는 것도
아니며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생각한 만큼 참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아닌데도
그렇게 믿길 원하며 다들 멋진 인생을 살 고 있을 거라고 착각 속에 빠지기도 한다.
나 또한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하기 전엔 그렇게 생각했으며 남들에게 영웅담을 들려줄
땐 과대 포장하여 이야기 하고있지만 실상 내게 변한 것은 그 먼 거리를 뛰어왔다는 것
뿐 아무 것도 달라진게 없는 것 같다.
도전이란 기록에 의한 도전뿐만 아니라 뛸 수 있는 거리를 늘려 감에 따라 무한한 가능
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기록에 한계가 느껴질 때, 더 이상 기록 달성이 되지 않아 스트
레스를 받을 때 과감히 한 발짝 옆으로 되돌아 서서 또 다른 도전의 문을 두드린다면 우
리의 삶은 한층 더 행복해질 것이다.
어차피 우리가 운동장 몇 바퀴에서 거리를 늘려 시작한 달리기가 이젠 5km, 10km, 하프
마라톤, 풀코스, 울트라 등 여지 껏 밟아 보지 못한 색다른 경험들을 할 대상이 너무나
많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감히 나는 말하고 싶다.
도전하라!
피 끓는 젊음이 아직 내 가슴속에 살아 숨쉬니
달려라!
희망은 고통 속에 작은 들꽃처럼 아름답게 피어오를 것이다.
2005년 10월 9일 100km 서울 울트라마라톤을 다녀와서
따뜻한 남쪽나라 통영에서 장현석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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