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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에세이

42.195키로 그 멀고도 길었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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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명덕 작성일08-03-03 19:08 조회4,181회 댓글0건

본문

옛날 서울대학교나 예비고사 수석합격자의 인터뷰기사를 보면 하나같이 같은 소리를 한다.

과외공부는 하지않고 학교수업만 충실히 했다.
참고서보다는 교과서위주로 공부했다.
잠은 하루 8시간씩 충분히 잤다.
이러한 기사가 일반 학생들에게 용기를 복돋워 주고 나도 할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 주었다는데는 긍정적일수는 있으나
귀신이 아닌 이상 남과 똑같이 하고서 남보다 뛰어 날수는 없다.

심지어는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책이 나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기까지 했는데 물론 출판업자의 상업주의가 절묘하게 학부모나 학생들의 관심을 들쑤신 결과이리라.

2008년 3월 2일 제11회 서울마라톤대회에서
난 마라톤 풀코스 100회를 완주하였다.
난 마라톤에 관한 한 학교공부도 과외공부도 받아본적이 없고 세상에서 마라톤이 제일 쉽다고 생각한적은 꿈에도 없다.
반대로 난 82키로 과부하에 팔자걸음, 배뿔뚝이, 운동치에다가 먹는것 즐기고 술도 마다않는다.
지금도 스타트 라인에 서면 내가 다시 이곳에 올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변함이 없다.

남들은 不可思議라고 할지 모르나 난 8년 동안 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온 몸을 바치고 휴일을 반납한 도전의 결과이다.
마라톤 폴코스 100회 완주를 맞이하여 그동안의 내용을 정리하려고 함은 결코 龍飛御天歌的 부풀리기는 아니며 나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의 새로운 지표를 위한 시금석으로 삼으려고 한다.

1. 시작 /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
학교 보직이 끝났다.
몸에 맞지않은 옷을 입듯이 체질에 맞지않고 능력도 없었으니 가시방석같은 시간이었다.
오랫만에 연구실로 돌아왔다.
속박당해본 사람만이 자유의 진가를 느낀다.
몸과 마음이 새털같아진다.
새로운 도전을 꿈꾼다.
이 날아갈듯한 기분으로 무엇을 할까?

내가 가장 못하는것에 대한 과감한 도전
운동
운동에는 맹통인데다 느리고 운동신경까지 굼텡이 같으니
중, 고등학교 체력장시험에선 항상 20점 만점에 기본점수인 12점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사실 그동안 운동과 나는 전연 관계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사실 몸도 따라주지 못했고
군대있을때는 축구못하고 족구못한다고 구박도 많이 받았지만 난 결국 운동장 나가지 않았다.

그럼 운동중에서 무엇을??
마라톤
나 혼자할 수 있으니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적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결과의 책임은 100% 자기가 감당해야한다.
그날부터 집근처 국민학교 운동장을 뛰기 시작했다.
12바퀴를 뛰었으니 한 4키로쯤으로 생각된다.

한 달에 23-4번 정도를 뛰었고 책상위 달력에 달린 날짜를 기록했다.
술먹고 들어온 다음날, 춥고 더운날 귀찮은 날도 있었으나 그래도 뛰었다.

마음 먹으면 한다.
죽어도 한다.
차가운 바위덩어리도 3년을 앉으면 온기가 스민다고 했다.

어차피 인생은 도전이다.
스스로의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그 목표를 달성할때의 쾌감은 또다른 자신감으로 다가온다.

빨리가던 늦게가던 가는것은 매일반이다.
선두가 밟고 지나간 그곳을 나 역시 시간차를 두고 간다.
이렇게 마라톤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2. 도전 / 계획은 착실하게, 실천은 용감하게
마라톤 대회란것이 있다는것을 알았다.
이봉주나 황영조만 시합에 나가는줄 알았는데
나같은 사람도 신청을 할 수 있고 뛸수있는 것일까
신청을 했다.
그사이 허리가 고장나 연습을 게을리 하기는 했지만 절대 낙오는 하지 않는다는 일념만 가지고 참가하는것이다.

10km
옛날 시골길로 25리 길이다.
한 새참 길이다.

하남 백제 하프마라톤 대회
미사리 조정경기장
코스는 5km, 10km, 그리고 하프코스
식전 행사
인사말, 주의사항, 에어로빅등
드디어 출발

처음 5km는 미사리 조정경기장 왕복하고 나머지 5km는 밖으로
나가 하남시청에서 반환점 돌아오는 코스였다.
조정경기장을 한 2km 뛰는데 벌써 반환점을 돌아오는 사람이 있었다.
하기사 난 등위는 언감생심이고 완주가 목표니까 남 상관말고 내 페이스를 유지하였다.
조정경기장 2,5km 반환점을 돌아 나오는데 대개 보니까 내가 거의 후미그룹에 끼인것 같았다.
5km를 넘는데 벌써 골인하는 그룹이 보였다.
조정경기장을 나오니 올림픽 도로인데 진행요원과 순경들이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러니 온천지에 경적이 울리고 싸우고 야단이었다.
하기사 모처럼 일요일 가족들 데리고 나들이 하는데 2,30분 가량을 통제하니 화날만도 하지

6,7키로가 지나니 서서히 걷는 그룹이 생겨나기 시작하는것이 보였다.
연도변에 길가던 사람도 박수를 쳐주었다.
나도 8키로 언덕에서는 걷고 평지에서는 뛰고 해서 겨우 골인을 하였다.

1시간 6분 37초
완주 메달을 받았다.
노란빛깔 나는 메달
이렇게 해서 2000년 9월 17일 난 비로서 공식대회에 처음으로 데뷔를 하였다.

3. 용기 / 느림의 미학
10키로 대회를 세 번 참가하고 다음해 하프를 처음 뛰었다.
2001년 3월 1일
잠실에서 열린 SAKA대회
1시간 54분 20초

이후 2001년 나는 총 24번의 하프경기에 출전하였다.
기록은 대개 2시간 언저리
우리 학교에서도 뛰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운동치인 내가 뛰는것이 소문이 나자 너도나도 모였다.
물반 고기반
그러나 그들은 의욕만 앞섰지 체계적인 훈련이 부족했고 욕심만 앞섰다.
지금 그들 대부분은 중도포기했고 지금까지 뛰는 사람은 열 명 정도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2001년 10월 21일
나는 드디어 대망의 폴코스에 도전하게 된다.
주위에서는 무식하다고 했다.
무모하다고 했다.

춘천에서 열린 조선일보 마라톤대회
마라톤 매니어들이 1년을 마감하는 대회
난 대회에 나가기전 선배들이 올려준 자료를 외우다시피 지형을 숙지하고 도상연습을 하였다.
그리고 두려움과 설레임을 가지고 출발
4시간 47분 14초로 완주.

백오리길을 달려 들아온 마지막 골인지점에서의 고통과 희열은 무어라 형언할수 없었다.
내가 그 길을 뛰다니
그 멀고도 길었던 길을
심장이 터질것같은 고통과 다리 근육의 통증, 속은 메시꺼워 토할것같았고 온 몸과 얼굴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어도
난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그로부터 난
2002년 6번
2003년 10회
2004년 12회 풀코스를 뛰었다.

그리고 2005년 1월 9일
일본 이브스키 마라톤에 참가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와는 약간 다른 일본 마라톤의 세계를 접하게 된다.
그들은 마라톤을 도전의 대상이 아니라 일종의 유희로 생각하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이벤트를 곁들인 축제마당에 사람들은 전부 나와 그들을 격려하고 맞아 주었다.
그때 난 어느 노인이 칠백몇번째 완주라는 쪽지를 등에 달고 뛰는것을 보았다.
속도는 느릿하지만 정말 마라톤 그 자체를 즐기고 생활의 일부로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난 거기서 100회 풀코스 완주를 꿈꾸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맞은 계획을 세운다.
완주가 우선이다.
기록에 신경쓰지 않는다.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자
마라톤에 관한한 굵고 짧게 사는것보다 가늘고 길게 살자

의지가 있으면 길은 열어주지만 가지 않으면 길은 멈춰버린다.
한걸음 한걸음 떼어서 걸어가야 할 자리를 채우지 않는 한 그 어떤 기적도 일어날 수 없다.
자기와의 싸움이고 자기 호흡에 맞춰 자기 페이스를 찾아야 갈 수 있는 길이다.
뒤 돌아서 갈 수도 없고 앞으로만 나갈 수밖에 없다.

이기려 하지말고 한걸음 한 걸음 가는 것을 즐겨야 하며 늦게 가도 최선을 다해 걸어가야 가는 것이 순리이다.
그것은 순전하게 내 자신과 의지에 달려있다.

일단은 풀코스를 5시간 언저리에서 뛰는 것으로 하였다.
나에게는 별로 큰 힘들이지않고 즐겁게 완주할수있는 스피드이다.

지금까지 100회를 완주한 기록을 보면
4시간대 46번
5시간대 38회
6시간대 6회
기록면에서 본다면 참 한심한 기록이고 연구대상감이다.
마라톤에 대해선 天才가 아닌 淺才임이 확실하다.

4. 좌절 / 포기도 용기다.
지금까지 100회를 뛰면서 딱 한번 포기를 했다.
2005년 8월 7일 포커스마라톤 삼양대관령목장 트레일런 & 러닝아카데미
런닝 아카데미야
평소
나홀로 주법과 남의 눈치안보기 러닝에 익숙한 터라
신청을 안했고
폴코스만 신청을 해두고
방학을 이용해서 그리스와 터키가서 한달동안 답사여행에서 돌아온참이었다.

Trail run?
귀에 익지않은 단어였지만 그냥 흘렸다.
단지 대관령에서 대회가 열린다는게 조금은 이상했고
홈페이지에 나온 고저도의 한 칸이 다른 대회는 5-10미터인데 비해
여기서는 100미터란게 마음에 걸렸다.
하여튼 무조건 부딪쳐보자는 마음에서 참가를 했다.

횡계에서 6.5km떨어진 대관령 목장도착
주위를 살펴보니 분위기가 이상하였다.
첩첩산중
사회자가 말하는 주의사항을 들으니
어느 대회와 달랐다.
뱀을 주의하라
길을 잃지마라
절벽을 조심하고 비가 와서 물이 많이 불었으니 급류를 조심하라
힘들면 탈출구를 이용하라
목장에 그려진 조감도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데
홈페이지에 실려진 낭만적인 흙길과는 무언가 다른 싸한 분위기가 읽혀졌다.
지금 서있는 이곳의 해발이 960m
코스중 제일높은 소황병산 해발이 1,416m
그러니까 해발 500m을 뛰어넘는것이었다.

10시 30분 출발.
자그마한 운동장을 벗어나자마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사람의 냄새를 맡은지 까마득할것같은 흙길에 자갈밭
그리고 어제 비로 깊이 패인 흔적들
중간중간 넘쳐흐른는 도랑물

그리고 그 주위의 원시림
두사람이 교행하기 어려울것같은 산 길
십년전에 가봤던 멕시코 밀림이 생각났다.
제주도의 원시림도 기억났다.

10시 반에 시작한 대회의 서울행 막차가 오후 7시에 출발하는 까닭이 뭔지 알았다.
가끔씩 시야가 트여 위를 쳐다보면 S자 형국으로 줄지어 오르는 선수들
아하 이건 마라톤이 아니었다.
극기훈련이고 서바이벌 이었다.

3키로정도가 넘으니 산판도로가 나왔다.
꼴찌가 되었음은 당연하고
아까까지는 그래도 후미그룹의 뒷꼭지가 보였으나 이제는 완전히 외톨이였다.

5km인 선자령에 이르니 1시간 02분이 지나고 있었다.
간간히 비도 뿌리고 오른쪽으로는 동해안의 힘찬 파도를 볼수있으리라는 기대는 자욱한
안개가 시야를 잔뜩 방해하였다.

포기는 의외로 쉬웠다.
집착과 욕심에서 벗어나면 되는법

포기하니
비로서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뛸때는 거추장스럽던 안개가 풍광으로서는 그만이었다.

시계 3-4m속의 원시림속의 오솔길
나홀로 안개자욱한 산길을 호젖히 걷고 있었다.
영화속의 한 장면같았다.
앞으로 보이는 능선과 길이 용등어리처럼 꿈틀거린다
땅에 매여 있던 나를 하늘로 이어주고 내 마음의 고향 같은 산이다.
조그만 바위와 흙이 깔린 내림으로 길은 이어지는데 무수한 들풀들은 산의 이곳저곳을 온통 푸른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계곡을 타고 올라오는 바람은 땀을 가시게 하고 거침없이 이어지는 능선과 계곡을 조망하는데 간간히 비를 뿌려주니 이 또한 멋진 광경에 일조를 한다.

출발점이 이르니 하프코스 주자들이 골인하고 있었다.
스피드칩을 반납했다.
반납받던 사람이 놀라는 눈으로 바라봤다.
풀코스 1위?
포기라고 했다.

나의 지금까지 마라톤에서 유일하게 포기한 대회인데 아쉬움이 남지만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

5. 꼴찌 / 아무나 할수 있지만 누구나 할수 있는것은 아니다.
그동안 출전한 풀코스 마라톤에서 4번의 꼴찌를 하였다.

2004년 5월 2일 제천마라톤 대회
2004년 9월 5일 원주마라톤 대회
2007년 12월 22일 상주마라톤 대회
2007년 12월 23일 상주마라톤 대회

그 외에도 지금도 꼴찌에서 10등 정도의 수준이다.
많은 사람은 의아해한다.
100회를 뛰어도 기록은 여전하고 몸무게도 똑같으냐고
내가 생각해봐도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원주마라톤 대회
원주운동장에서 시작해 시외로 나갔다가 38키로지점에서 다시 시내로 들어와 운동장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38키로지점에 이르니 나혼자 뿐
내 뒤로는 엠블란스 한대
그리고 나하나를 위해 도로 한 차선을 통제하고 나를 뒤따라오며 가운데 도로 통제용 빨간 원뿔 경계용 플라스틱을 회수하는 트럭 하나

엠블란스 운전석 옆에는 보건소 당직 근무자의 얼굴에는 일요일을 반납하고 꼴찌주자를 뒤따르는 지겨움과 짜증이 완연했다.
빨리 엠블란스 타라고 했다.
남은 4키로 정도 차를 타면 5분이면 갈텐데 마지막 나의 뛰는 속도로 봐서는 50분을 가야할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 두번의 권유는 나를 생각하는 고마운 배려라는 생각이 들어 정중하게 사양하였으나 그의 짜증스러운 퉁명함에 나도 화를 내고 말았다.

38키로를 뛰어왔는데 4키로를 차를 타고 가겠느냐고
나 혼자 갈수 있으니 그냥 들어가라고 했다.
그럴수는 없다고 했다.
결국 그날 애꿎은 원주시민이 누려야할 일요일의 도로를 나 혼자 독점하고 꼴찌를 기록하였다.
끝나고 그 근무자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사과하였음은 물론이다.

100회를 뛴 지금도 출발은 두려움이다.
꼴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내가 과연 이 길을 다시 돌아올수 있을것인가 하는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출발을 하고 처음 10키로는 두려움을 가지고 뛰어 나가고
20키로 까지는 서서히 몸이 풀리면서 그 날의 컨디션이 결정된다.
30키로 까지 뛰면 그 날 기록을 대충 예측 할수있다.
그리고 마지막 골인까지는 역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들이다.

이때에는 두 번 다시 뛰고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골인을 하는 순간 그 고통의 순간들은 잊고 난 또 다음 대회를 기다린다.
산모가 예쁜 아기 재롱에 고통스러운 출산의 순간을 잊고 또 다시 아이를 가지듯이

6. 해외마라톤대회 참가 / 국제망신은 당하지 말아야
외국대회는 다섯 번을 참가하였는데 전부 일본이다.
단지 가깝고 말이 통한다는 이유로

2005년 1월 9일 이브스키 마라톤
2005년 4월 17일 일본 쓰치우라 마라톤
2006년 2월 26일 오키나와 마라톤
2006년 10월 16일 오쿠무사시그린라인 챌런지 런앤 워크대회
2006년 12월 10일 일본 미야자키 태평양 마라톤 대회

그중에서 동경에서 한 50키로쯤 떨어진 日高市에서 열린 제3회 오쿠무사시green line challenge run and walk 대회가 기억에 남는다.

코마가와(高麗川)의 고마신사(高麗神社)에서 열리는 대회
팜프렛을 보니
신청자 215명
출발지가 해발 100미터
최고높이가 900미터
그러면 북한산을 넘는 마라톤?
주위산을 둘러보니 울창한 산림으로 둘러싸인 광경이 공포로 다가왔다.
다른곳에서는 연도에 시민들이 나와 박수치고 자기집의 자랑거리인 먹거리도 줬지만
여기는 집이 없으니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혹시 여기서 길 잃으면
로빈슨 크루소
국제미아?

높은곳으로 올라가니 경치는 좋았다.
10월의 날씨는 청명하지
굽이치는 길은 계속 이어지고
반환코스가 아니고 골인지점이 다른곳이기 때문에 가야만 했다.
패트롤차도 구급차도 없었다.
운영자도 없었다.

이 대회명칭이
challenge
Green-line
run
walk
의미가 다가왔다.

30키로를 지나고부터는 거의 평지
불어오는 바람에 땀이 마르고 으스스하다.
우리나라의 육송은 휘어져있지만 이 나라의 소나무는 쓰기목(杉木)으로 아주 단단한 강재이며 쭉쭉 뻗은 직재이다.
그러니까 일본은 일찍부터 목조건축이 발달할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35키로지점에는 여섯 번째인 마지막 급수대가 있고 올라간길을 다시 내려온다.
급경사이다.
골인지점은 어느 조그만 시골 소학교였다.
열댓명이 박수로 맞이한다.
운영자가 다가와 물한잔을 권하며 코스가 어떠했느냐고 묻는다.
경치는 너무 좋았어요
내년에 또 참가하라고 권한다.
6시간 17분 40초
꼴찌는 아니었다.
일본에서의 대회에서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표시를 절대 하지않는다.
꼴찌 비슷한 실력으로 국제망신 당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走路에서는 말을 아끼고 말을 해도 短文으로 끝낸다.

7. 조그마한 결실 / 또 다른 시작
100회를 완주하고 앞으로도 마라톤을 계속 하겠지만 목표 기록을 두고 뛴다던지
몇 번의 완주기록을 정하고 그 숫자에 맞추기 위해 매진하는 미련함은 시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했듯이
느림의 美學
시간에 몸을 맞추지말고 몸에 시간을 맞추기로 했다
100번의 풀코스완주에서 아직 5시간, 6시간을 헤메는 경계인으로 살아가고 있으

조급하지 말고 게으르지도 말고 만용을 부리지 말자.
그저 이 한 몸 뛸수 있음에 감사하자.
나의 건강한 두 다리로 우리나라 섬섬옥수 금수강산을 내 발로 다녀보리라.
우리 강산은 항상 그 자리에 그렇게 있을것이며 또한 우리가슴에도 깊이 남아 있을것이다.
이제 마라톤은 나에게 도전과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즐거움을 누릴수있는 보람있는 스포츠가 되었다.

풀코스 100회를 완주 하므로서 한을 풀었고 원을 이루었다.
햇수로 8년이 걸린 대장정이었다.

2008년 3월 2일
나의 인생노트에 하나의 마침표가 추가된다.

(반달모임에서 서울마라톤과 혹서기마라톤대회에서 느림보 마라토너를
기다려주신 스탭진에게 가슴깊이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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