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초보의 마라톤대회 처녀 출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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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원철 작성일08-03-07 15:53 조회4,21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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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2008년 새해를 맞으면서 나는 "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전까지는 달려 본 적이 없다. 가장 멀리, 가장 오래 달려 본 것이 2.5km / 30분 이었다.
40대 중반이 되어가니 이제는 골프를 쳐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새로 목돈을 들여 장비를 장만하는 것도 그렇고, 그냥 "마음 편히 달리기"로 했다.
2. 그래서 그전까지 목욕이나 하러 다니던 체육관에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점점 시간과 속도를 붙여 나가기 시작하다 보니 무리해서 6km, 7km까지 뛰게 되었고,
속으로 혼자 생각했다. "야, 이것 조금만 더 하면, 10km까지도 뛸 수 있겠는데....."
그래서 달리기 시작한지 3주만에 덜컥 서울마라톤10km경기를 신청해 버리고 말았다.
일단 목표가 있어야 운동을 하던 말던 할 것 아닌가?
3. 신청은 해 놓았지만, 속으로는 콩당 콩당했다.
대회전에 10km는 달려 보았지만 그것은 순전히 홈그라운드격인 체육관의 런닝 머신위에서만
있었던 일이었다. 대회 당일 날씨가 영하일지 모른다는데, 과연 뛸 수 있을까?
사람들이 많으면 어떻하지? 게다가 생각해보니 나는 입고 뛸 '옷'도 없잖아!!!
옆에서 그만 두라고 이야기하는 마나님께는 대회날 아침에 결정하겠다고 하면서
하루 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연습은 꽤 열심히 했다.)
4. 전날 저녁에 보니 문제가 많았다.
영하까지는 아니더라도 따뜻할 줄 알았던 내 기대와 달리 날씨가 추웠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준비물 리스트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상당히 다르게, 의외로 많은 것들을 필요로 했다.
가만히 따져 보니, 그 많은 준비물중 내게 있는 것은 그동안 신고 달렸던 운동화 한 켤레와
서울마라톤에서 보내준 긴팔 웃도리뿐. 반바지 하나를 사고 싶었지만 "이 추운 날씨에
왠 반바지?"하면서 마나님께서 핀잖을 준다. 그리고 나니 남는 것은 손목 시계뿐.
5. 당일 아침.
집에서 혼자 나오면서 갸우뚱했다. 아무리 찾아 보아도 마음에 드는 바지가 없었다.
결국 마지막 선택은 매일 집에서 입던 츄리닝 바지였다. 그나마 긴 바지가 덜 추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출발지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래도 날씨는 몹시 추웠고, 강바람을 맨몸으로 맞아 가면서
그때야 비로소 왜 '세탁소 비닐봉지'가 꼭 필요한 준비물이었는지 깨달았다. 커피 한잔의
온기가 사람을 얼마나 따뜻하게 해주는지 배운 시간이기도 했다.
6. 출발
10km 참가자였지만, 풀코스 줄의 맨 뒤에 섰다. 그렇다. 나는 여기서도 새치기를 한 것이다.
뒤로 울려 퍼지는 '불의 전차' 주제곡을 멀리하면서 뛰어 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출발선에서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나가리라고 예상했었는데, 의외로 천천히
뛰는 둥 마는 둥 출발을 하는 것을 보면서 배워야 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구나
하는 느낌이 팍 왔다. 그리고 어영부영 사람들의 틈에 떠밀려 뛰어가기 시작했다.
3km 뛰어가니 힘이 들기 시작했다. 속으로 '이래서 지난 주쯤 지형 정찰을 나왔어야
됐었는데....." 하면서 계속 밀려갔다. 5km 직전의 급수대가 나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많이 달려본 사람은 그 느낌을 모른다.
7. 반환
새치기 덕분에 5km 반환점에서는 내가 가장 먼저 돈 사람중 하나였다. 한 손에는 바나나
반 토막을 들고 - 언제 먹어야 될 지, 껍질은 어떻게 버려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
결국은 집에 도착한 후에 먹어 버린, 5km 뛴 바나나 - 나는 계속 뛰고 있었다.
8. 뛰는 동안
눈이 왔다. 몸은 몹시 힘들어지고 있는데, 눈까지 왔다. 몹시 짜증날 만한 상황이었는데
실은 정반대였다. 너무나 낭만적으로 느껴졌고, 오히려 위로해주고 보살펴 주는 느낌까지
들었다. 달리면서 길바닥과 나의 발바닥이 부딛히는 느낌이 점점 좋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7km 넘어가면서 속도가 확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래도 계속 달렸다.
생각지도 않았던 사진사들이 앞에 보였다. 아무리 숨이 차도, 조금 걷고 싶어도 사진기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할수없이 빨리 뛰었다. 아니 좀더 정확히는 빨리 뛰는
시늉을 했다. (남들이 사진기 앞에서 V자를 한다는 사실은 훨씬 나중에 다른 사람 사진을
보면서 배웠다. 다음번에는 나도 쌍V자를 해 봐야겠다.)
멀리서 골 라인 보였다.
9. 골인
처음으로 골라인을 밟는 느낌을 그대는 아는가? 그 감격과 기쁨을 기억하고 있는가?
오묘했다. 성취감이기도 하고, 기쁨이기도 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감사이기도 했다.
그날 나는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많은 것을 배웠다. 나 자신에 대해서, 같이 뛰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뛰게 해준 사람들에 대해서 .....
고맙다는 인사도 건네지 못했지만, 이제 이 자리를 빌어 그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라는....
-- 박원철
p.s. 비록 비공식이기는 하지만, 제 첫 10km 기록은 1:08:01 이었습니다.
p.p.s. 굳이 길게 후기를 쓴 이유는 순전히 "참가기 잘 쓰면 NB 신발 준다"는 주최측의 발표 때문입니다.
3/5일 발표한 뽑기에 혹시 걸릴까 해서 기다렸는데, 떨어지는 바람에 직접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오른쪽 아래 추천 버튼 눌러주시면 아마도 주최측에서 신발 줄 것 같습니다.
저 신발 하나 필요합니다. (바지는 마나님께서 완주 기념으로 사 주실 듯 합니다.)
그전까지는 달려 본 적이 없다. 가장 멀리, 가장 오래 달려 본 것이 2.5km / 30분 이었다.
40대 중반이 되어가니 이제는 골프를 쳐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새로 목돈을 들여 장비를 장만하는 것도 그렇고, 그냥 "마음 편히 달리기"로 했다.
2. 그래서 그전까지 목욕이나 하러 다니던 체육관에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점점 시간과 속도를 붙여 나가기 시작하다 보니 무리해서 6km, 7km까지 뛰게 되었고,
속으로 혼자 생각했다. "야, 이것 조금만 더 하면, 10km까지도 뛸 수 있겠는데....."
그래서 달리기 시작한지 3주만에 덜컥 서울마라톤10km경기를 신청해 버리고 말았다.
일단 목표가 있어야 운동을 하던 말던 할 것 아닌가?
3. 신청은 해 놓았지만, 속으로는 콩당 콩당했다.
대회전에 10km는 달려 보았지만 그것은 순전히 홈그라운드격인 체육관의 런닝 머신위에서만
있었던 일이었다. 대회 당일 날씨가 영하일지 모른다는데, 과연 뛸 수 있을까?
사람들이 많으면 어떻하지? 게다가 생각해보니 나는 입고 뛸 '옷'도 없잖아!!!
옆에서 그만 두라고 이야기하는 마나님께는 대회날 아침에 결정하겠다고 하면서
하루 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연습은 꽤 열심히 했다.)
4. 전날 저녁에 보니 문제가 많았다.
영하까지는 아니더라도 따뜻할 줄 알았던 내 기대와 달리 날씨가 추웠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준비물 리스트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상당히 다르게, 의외로 많은 것들을 필요로 했다.
가만히 따져 보니, 그 많은 준비물중 내게 있는 것은 그동안 신고 달렸던 운동화 한 켤레와
서울마라톤에서 보내준 긴팔 웃도리뿐. 반바지 하나를 사고 싶었지만 "이 추운 날씨에
왠 반바지?"하면서 마나님께서 핀잖을 준다. 그리고 나니 남는 것은 손목 시계뿐.
5. 당일 아침.
집에서 혼자 나오면서 갸우뚱했다. 아무리 찾아 보아도 마음에 드는 바지가 없었다.
결국 마지막 선택은 매일 집에서 입던 츄리닝 바지였다. 그나마 긴 바지가 덜 추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출발지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래도 날씨는 몹시 추웠고, 강바람을 맨몸으로 맞아 가면서
그때야 비로소 왜 '세탁소 비닐봉지'가 꼭 필요한 준비물이었는지 깨달았다. 커피 한잔의
온기가 사람을 얼마나 따뜻하게 해주는지 배운 시간이기도 했다.
6. 출발
10km 참가자였지만, 풀코스 줄의 맨 뒤에 섰다. 그렇다. 나는 여기서도 새치기를 한 것이다.
뒤로 울려 퍼지는 '불의 전차' 주제곡을 멀리하면서 뛰어 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출발선에서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나가리라고 예상했었는데, 의외로 천천히
뛰는 둥 마는 둥 출발을 하는 것을 보면서 배워야 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구나
하는 느낌이 팍 왔다. 그리고 어영부영 사람들의 틈에 떠밀려 뛰어가기 시작했다.
3km 뛰어가니 힘이 들기 시작했다. 속으로 '이래서 지난 주쯤 지형 정찰을 나왔어야
됐었는데....." 하면서 계속 밀려갔다. 5km 직전의 급수대가 나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많이 달려본 사람은 그 느낌을 모른다.
7. 반환
새치기 덕분에 5km 반환점에서는 내가 가장 먼저 돈 사람중 하나였다. 한 손에는 바나나
반 토막을 들고 - 언제 먹어야 될 지, 껍질은 어떻게 버려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
결국은 집에 도착한 후에 먹어 버린, 5km 뛴 바나나 - 나는 계속 뛰고 있었다.
8. 뛰는 동안
눈이 왔다. 몸은 몹시 힘들어지고 있는데, 눈까지 왔다. 몹시 짜증날 만한 상황이었는데
실은 정반대였다. 너무나 낭만적으로 느껴졌고, 오히려 위로해주고 보살펴 주는 느낌까지
들었다. 달리면서 길바닥과 나의 발바닥이 부딛히는 느낌이 점점 좋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7km 넘어가면서 속도가 확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래도 계속 달렸다.
생각지도 않았던 사진사들이 앞에 보였다. 아무리 숨이 차도, 조금 걷고 싶어도 사진기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할수없이 빨리 뛰었다. 아니 좀더 정확히는 빨리 뛰는
시늉을 했다. (남들이 사진기 앞에서 V자를 한다는 사실은 훨씬 나중에 다른 사람 사진을
보면서 배웠다. 다음번에는 나도 쌍V자를 해 봐야겠다.)
멀리서 골 라인 보였다.
9. 골인
처음으로 골라인을 밟는 느낌을 그대는 아는가? 그 감격과 기쁨을 기억하고 있는가?
오묘했다. 성취감이기도 하고, 기쁨이기도 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감사이기도 했다.
그날 나는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많은 것을 배웠다. 나 자신에 대해서, 같이 뛰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뛰게 해준 사람들에 대해서 .....
고맙다는 인사도 건네지 못했지만, 이제 이 자리를 빌어 그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라는....
-- 박원철
p.s. 비록 비공식이기는 하지만, 제 첫 10km 기록은 1:08:01 이었습니다.
p.p.s. 굳이 길게 후기를 쓴 이유는 순전히 "참가기 잘 쓰면 NB 신발 준다"는 주최측의 발표 때문입니다.
3/5일 발표한 뽑기에 혹시 걸릴까 해서 기다렸는데, 떨어지는 바람에 직접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오른쪽 아래 추천 버튼 눌러주시면 아마도 주최측에서 신발 줄 것 같습니다.
저 신발 하나 필요합니다. (바지는 마나님께서 완주 기념으로 사 주실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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