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처럼, 내 떠나온 곳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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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명재신 작성일06-11-30 11:47 조회2,79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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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울트라마라톤 후기
<연어처럼, 내 떠나온 곳을 향하여>
석양.
하나~,하나~,하나~
구령소리가 내 왼발에 맞춰 뒤 쪽으로 흘러온다. 앞서 둘, 그 뒤로 둘이다. ‘이제부터 속도를 냅니다.’ 구령소리가 잠시 끊기고 앞서 둘은 속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다시 흩어진 정신을 수습한다.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등 뒤로 한강을 물들이며 해가 지고 있다. 이제 곧 하루가 질 것이다. 끝이 보일 것이다. 길고도 긴 시간을 강을 따라 내렸던 시간이 까마득하다. 나는 막바지 진력을 다한다. 내가 어둠이었을 때 떠나온 곳이 저곳에 있다.
80km를 꿈을 꾸듯 지나고 있다.
갈등(출발 하루 전)
출발을 하기까지 하루에도 서너 번은 마음이 바뀌고 있었다. 아무도 내가 울트라마라톤대회에 나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 자신도 모르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어찌 알릴 수 있었으랴.
하루 전날인 토요일까지 회사일로 출근을 해야 했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핑계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참가신청을 해놓고도 나가지 않은 것에 대한 좋은 구실을 찾은 거였다.
올해 들어 내가 이룬 것은 없었다. 작년의 흥과 열정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책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상반기 서너 번의 풀코스 도전에서도 막판에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시작과 끝이 같지를 않았다. 훈련부족으로 비롯된 것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동하지 않고 있음이었다. 하반기 대회에서도 변변한 결과를 내지 못한 채로 춘마 때는 회사 행사 때문에 참가하지 못한 것도 핑계였다.
아내(출발 10시간 전).
발가락 양말을 사야겠어.
회사에서 돌아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저녁을 마치기가 무섭게 양말을 사러 가자고 징징거렸다. 그리고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었다. 지난 한해에 대한 회한의 산물이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아내는 꿀물에 미숫가루를 타서 냉장실에 넣고 있었다.
이건 서바이벌이 아니고 스피드울트라야. 먹을 것이 주로에 지천일 거래.
그런 것은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아내는 이미 그렇게 될 거라고 예상이나 했던 것처럼 냉장실에 배낭용 팩을 넣고 반환점에서 보충할 것까지 패트 병에 담아 넣으면서 그랬다. 하루를 견디려면 근기가 있어야 해요. 하긴 그랬다. 늘 나는 풀코스 막바지나 정오에 가까운 시간대에 허기로 맥이 풀리곤 했었다.
이왕 할 거면 허기는 면하면서 뛰어요.
기도(출발 그리고 10km. 33.9분/km 6.7분/km)
출발이다.
어둠 속에서 긴 항해를 위해 사각의 문을 나선다. 모두가 결의로 가득하다. 툭탁툭탁 발걸음들조차 경건하다. 머언 항해를 나서는 어린 연어를 닮아 있다.
부상으로 뛰지 못할 거라던 조효선 선생님과 한참을 같이 한다. 몸에 보호대를 대고서도 출전을 결의하신 것만으로도 나의 그동안의 잡념들은 정말 호사였다. 먼저 가라고 손사래를 친다. 나는 동반주하기로 했던 김영기 선생님과 다시 발을 마춘다. 5km를 지난다.
긴 여정을 위한 기도로 그 소리들은 어둠을 가르고도 투명하다. 땅의 어둠을 바라는가 싶지만 그들 마음에는 하늘의 별빛을 올라보고 있다. 돌아올 때 안게 될 석양 혹은 별빛을 갈구하며 제발 내 스스로 나선 길을 내 발로 다시 밟아 되돌아 올 수 있게 하여 주소서.
미명(25km 32.3분/5km 6.4분/km)
하루가 깨어나고 있다.
강을 잠시 떠난다. 양재천이다. 어스름 속에 피어 오르는 것은 이제 깨어가고 있는 나의 의식이다. 어둠을 나선지 얼마만인가. 여명은 늘 한꺼번에 오지 않는다. 먼저 의식이 열리고 세상이 열린다.
700여 건각들이 마치 하늘에서 내린 듯 아침안개에 묻혀 있다. 지상으로 내린 신선들은 양재천 상류를 오르거나 혹은 벌써 내리고 있다. 잠시 힘이 부친다. 김 선생님이 잠시 보조를 맞추려고 속도를 늦춘다. 세상이 열리는데 생각이 아둔해지고 있다. 그 말미에 터언을 한다.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이 이것저것 먹거리를 챙겨준다. 잠시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출발이다.
양재천변으로 무수의 생각처럼 안개는 자욱하다. 그 무수의 미립 속에 나의 생각도 부유한다. 나는 저 생각들을 모아 오로지 되돌아 올 수 있는 에너지로 내적하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조심한다. 이제 어둠을 너머 세상은 또 다른 계(界)로 들고 있다. 하나 둘씩 어둠을 열고 미명 속으로 사람들이 나서고 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쏠로.(30km, 34.8분/5km, 6.9분/km)
동반주 하던 김영기 선생님을 먼저 떠나 보냈다. 한 치도 흔들림 없이 내닫는 선생님 옆에서 나는 자주 마른기침을 해대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 뒤로 빠져야 할 시기임을 알았다.
잠시 화장실을 구실로 턱 밑에까지 치달아 오른 호흡을 다스리고 쏠로로 주로에 다시 나선다. 아직도 힘찬 근육과 팔 동작으로 앞서 나가는 분들에게서 나는 역동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반달 출발점을 지나면서 소위 데드포인트라고 하는 용어도 처음으로 떠올린다. 풀코스 막바지에 허기로 시달리던 경험은 늘 이맘 때였다.
나는 그제야 내가 등에 배낭을 매고 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
출발 직전 짐을 맡기면서 나는 잠시 갈등을 했었다. 배낭을 채비하는 건각들은 어디에도 눈에 띄질 않았다. 역시 초보인 나만 촌스럽게 울트라 배낭도 아닌 등산용 배낭을 들쳐매고 온 것이었다. 해서 배낭을 맡기려다가 그래도 아내가 챙겨준 꿀미숫가루인데 그냥 매고 뛰는 촌놈이 되기로 했다.
호스를 찾아 지금껏 내게 짐이 되고 있던 아내의 정성을 감사하게 음용한다. 꿀을 넣은 미숫가루가 맛이 좋다. 절로 힘이 난다. 어른 말을 잘 들으면 떡이 생기고 아내 말을 잘 들으면 평생이 편하다고 했던가.
동지(35km 37.3분/5km, 7.4분/km)
벌써 63km 주자들이 터언하여 지나쳐 간다.
저만치 아는 얼굴이 보인다. 두 분이다. 먼저 박 순례님이시다. 나는 반갑게 손을 들어 반긴다. 서울마라톤 스피드엎 훈련할 무렵에서부터 반달에서 그리고 남산에서 뵙는 얼굴인데 울트라마라톤 주로에서 뵙는 모습은 또 다른 모습이시다.
그리고 저기쯤에 이 선기님의 얼굴이 보인다. 나는 두 손을 들어 올려 반긴다. 하지만 안색이 평상시의 모습이 아니다. 쥐가 내렸다 한다. 나는 얼른 챙겨온 부황침을 꺼내려고 배낭을 뒤진다. 하지만 마음이 급해선지 어디에 박혔는지 찾아지질 않는다. 아무리 찾아도 침이 없다. 낭패다. 이럴 때 쓸려고 일부러 챙겼건만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무런 조치도 못해드리고 나는 님과 헤어진다.
자꾸 뒤가 돌아뵌다. 어쩔꼬.
고전(40km, 34.3분/5km, 6.8분/km)
고전을 하다.
멀리 여의도를 눈앞에 두고 힘이 부친다. 풀코스를 염두에 두고 신체는 이제 다왔으니 그만 숨을 죽이라고 속도를 죽이라고 주문을 하는 모양이다. 늘 그래왔듯이 40키로에 다가 갈수록 이제 그만 뛰자는 유혹은 강력하다. 숨이 차 오르고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다시 미숫가루를 들이킨다. 갈증이 금새 해갈된다. 다시 한번 배낭을 매고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더 가야 할 길이 저기 남아 있다. 지금껏 뛰어왔던 거리보다 더 많은 거리를 두고 나는 소리없는 영혼이 졸라대는 유혹에 나를 남겨둘 수 없다.
그냥 치고 나간다.
심장(50km 35.32분/5km, 7분/km)
여의도를 지난다.
나는 잠시 심장의 소리를 듣는다. 이 나라의 중심을 지나며 나는 잠시 심장론에 빠진다. 5살 막내딸의 심장소리를 떠올린다. 콩닥이는 심장의 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잠시 숙연해지곤 했다. 아, 이 작은 아이의 생명은 어디서 왔던가. 생명이 있게 한 심장의 기원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심장이 건강해야 사람이든 나라이든 건강하는 법이리라.
주로에서 나의 움직임을 있게 하는 심장과 모든 기관들에게 나는 감사한다.
잠시 일본 분 한분을 만나 인사를 나눈다. 내가 놓치고 온 장갑을 들고 뒤따라와서 건네다 준 인연으로 함께 동반주 한 분이셨다.
자신은 한국에는 처음이란다. 환상의 코스를 달리게 되어 영광이라고. 반달에 자주 나오는 일본 분을 잘 아신단다. 새벽에도 함께 식사를 했다고 한다. 짧은 실력임에도 나보고 일본어가 유창하다는 말에 절로 힘이 난다.
오리들이 여유롭다.
안양천(55km, 41.29분/5km, 8.2분/km)
몸에 익은 주로에서 고전을 한다.
목동교를 오르는 길이 멀다. 여기는 내가 자주 오르내리는 코스다. 안양천이 지친 나를 안아 들인다. 멀리 내가 사는 아파트가 보인다. 안양천은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구일역 주변에서 출발하여 안양천을 따라 내리면 주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데다 거리 표시까지 되어 있어 최적의 조건이었다.
봄날 부화를 위해 물을 거스르며 오르던 흔적들을 더듬는다. 제방이 무너져 물난리를 치루던 흔적들이 여전한 양평동 녁을 지난다. 정말 힘이 든다. 얼추 다리와 다리 사이가 1km이라 남은 거리가 3km라 다리 세 개를 건너가야 한다는데 부담을 느낀다.
제2관문에 도달한다.
시간을 많이 지체하였다. 화장실을 들렀는데 거기서 먼저 들어간 분이 지체한 까닭에 기다리느라 10여분 이상을 까먹고 말았다. 이왕 들렀는데 해결하고 가자고 마냥 기다린 게 무모했다.
합수(60km 42분/5km, 8.4분/km)
내리는 길에는 까먹은 시간을 벌충하자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약간의 내리막이었던 이유로 좀 가속을 했다. 화장실에 들러 좀 식어버린 몸을 뎁히느라 힘이 들어 당장 걷자고 아웅거리는 꾀를 뒤로 물리고 숨이 차 올랐지만 참고 내리기를 계속했다. 고개를 들고 멀리 안양천 하류를 건네다본다. 강 건너 상암벌이 눈에 들어온다.
딸아이 셋과 아내는 강 건너 상암벌에서 지금 5km 뛰고 있을 것이다.
신청만 해 놓고 울트라에 대한 미련을 두지 않았었다. 해서 회사가 스폰서를 해서 회사 동호회 가족까지 신청만 하면 뛸 수 있다기에 아내의 첫 하프를 동반주 하고자 신청을 했었다. 하지만 가장의 갑작스런 변심으로 그들은 지금 가장도 없이 그네들끼리 주로에 나서 있을 거였다. 다섯 살박이 막내를 유모차에 태워 아내는 지금 5km를 뛰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야속할 것인가.
합수하는 곳에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르는데 아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완주했어요. 미안했다. 아니 고마웠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아내는 지금 마라톤에 입문해 내년 서울마라톤 풀을 겨냥하고 있다.
처음으로 벤치에 누웠다. 서서 쉬라고 하는 충고에도 남은 방화대교의 만만치 않을 거라는 이야기에 지레 휴식을 취한다. 피가 온몸으로 고루 퍼지는 느낌이 좋았다.
시간을 많이 까묵었다.
돌고.(65km, 37분/5km, 7.4분/km)
안양천과 한강 합수점을 지나 방화대교까지 이르는 거리는 무척이나 팍팍하였다. 줄어들지 않은 거리. 앞서거니 뒷서거니 해보았자 부처님 손바닥이었다. 직선주로를 원형경기장 도는 것처럼 거기가 거기였다.
힘내세요~
임동룡선생님이시다. 사모님하고 동반주를 하고 계시는 모습이 너무나 부럽다.
앞서 가시는 모습을 보내 따라 붙는다. 자세를 곧추 세운다. 너무 멀리 있어 징그러워 쳐다보기도 싫은 방화대교였다. 징그러워도 얼굴을 드리대면 정이 붙던가. 고개를 세우고 정면으로 주시하면서 뛰기 시작한지 얼마 안돼 방화대교가 나를 기다리는 듯이 가까워지며 그랬다. 어서오라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루, 주로에 나선 후로 처음으로 눈물을 머금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돌아가기 위해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건각들을 위해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그들의 회복을 위해 그들의 격려를 위해 그들의 충전을 위해 봉사하는 분들을 만나고서 너무나 반가워서였고 너무나 고마워서였다.
이번처럼 ‘돈다’는 말이 의미심장한 것인줄 몰랐다. 시작이 반이라고 막상 저질러 놓고 맨 처음 맞는 감동은 항상 그 ‘도는’ 지점에서였다.
정말 그곳은 진정으로 마라톤, 서울마라톤을 사랑하는 이들이 '돌러 온‘ 사람들을 맞는 곳이었다.
가는 도중에 틈틈이 스트레칭을 하세요.
얽힌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쓰시던 여자분께서 시간보다 더 중한 것은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매듭(70km, 32분/5km, 6.4분/km)
방화대교를 떠났다. 안양천 합수지점까지 오도록 편안했다. 한번 돌아본 경험이 있던가. 돌아간다는 건 정말 행복 그 자체였다.
낚시하는 강태공들을 만난다. 부부가 함께 낚시대를 드리우고 그늘막에서 다정하다. 한없이 부럽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이 났다. 섬에서 나고 자라 다시 우리를 낳아 키우기까지 섬을 떠나지 않으셨던 아버님은 배낚시가 생업이셨다.
그런 아버님은 늘 매듭을 경계하셨다.
낚시줄은 그 인장력에는 매우 강하지만 매듭에는 정말 약하다는 것이었다. 맺히면 그 부분에서 줄이 끊어진다는 것이었다. 모처럼 큰 물고기가 낚시에 걸려 요동이라도 치면 놈들을 잡기 위한 서로의 힘겨루기가 이루어지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과정 어느 순간 도망가려는 놈과 놈을 잡아올리려는 힘 사이에 팽팽한 순간이 도래하면 여늬없이 낚시줄은 그 매듭이 진 부위에서 끊어진다고 했었다.
매듭을 지우지 마라.
언제든 항상 내 줄에 매듭이 맺힌 부분이 있는지를 살펴서 더 이상 매듭을 풀기 어려워지기 전에 풀어라. 그렇지 않으면 내 스스로 그 줄을 자르고 다시 새 줄을 꺼내야 한다.
나는 내삶 주변에 매듭이 없었는지를 반추한다. 내가 찾아낸 매듭이 어디 한 두 군데랴.
돌아가면 하나 둘 그 매듭들을 찾아 풀어가리라.
만남(75km, 39분/5km, 7.8분/km)
반달 출발지를 지나친다. 허리를 세우고 팔을 겨드랑이를 스치며 친다. 오른쪽 고관절 쪽에서 이상 징후가 나기 시작한 시점 이후로 발의 착지도 11자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기울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견지한다. 어렵던 호흡이 제자리를 찾는다. 언덕을 만나 잠시 걷는다. 서바이벌의 경우 언덕은 빠른 속보로 오른다고 하질 않던가.
함께 가요.
지나가는 바람이었던가? 스치듯이 얇은 소리가 그랬다. 언덕을 다 올라 다시 자세를 세우려는 시간. 한 패가 나를 지나면서 그랬다.
하나~,하나~,하나~.
구령소리를 따라 두 분이 앞서 나가고 있다. 이름 석자가 눈에 들어온다. 이명희 님이시다. 아까 반환점에서 출발하려면서 들어오는 이명희님을 뵈지 않았던가.
구령을 재고 있는 분은 한승범 선생님이시다. 아까 지나오면서 자원봉사를 하고 계시는 한선생님을 뵈지 않았던가. 언제 이렇게 따라왔단 말인가.
힘 내서 함께 가요.
언덕을 넘어서며 합류한다. 한 선생님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다. 스피드가 6분 30분 페이스다. 나는 하나,하나 하는 구령에 왼발을 잘 맞추지 못해 자꾸 스텝이 엉키곤 했다. 그래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이제 막바지 페이스는 이분들과의 인연의 끈을 잡기로 한다.
석양(80km 47분/5km, 9.4분/km)
석양이 진다. 너무나 아름답다. 등 뒤로 지는 석양은 커다란 강을 덮고 서울을 덮고 그리고 모든 수심을 덮고 그리고 나의 마음을 적시고 있다.
하많은 시간들을 저 강으로 흘러 보냈다. 시간이라는 강을 따라 보냈다. 뒤돌아 보지 않으리라 했던 시간의 강을 뒤돌아 본다. 그 어디서 발원하여 얼마나 많은 개울이 되어 소리가 되고 여울이되어 파동이 되었던가. 그 얼마나 기나긴 시간을 스스로를 다스려 내렸던가. 그리고 이제는 큰 강은 멈추어 있는 듯 흐르고 있다. 바다를 눈앞에 두고 저 큰 강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반환점의 주문대로 스트레칭 하는 시간을 많이 들였다. 막바지 추력을 위하여 고관절과 무릎의 근육을 푸는데 시간을 들였다.
동지(90km 45분/5km 9분/km)
그는 잠실교 앞에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 동호회 선배이면서 지난 해 서울마라톤에서 처음 스피드업 시작할 때부터 함께 했던 이신옥님이셨다. 올해 강화햄 울트라를 먼저 경험하신 울트라 선배이기도 했다. 한선생님과 이명희님의 보조에 맞춰 호흡이 고르게 온몸에 자리하고 있을 즈음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나를 감싸안으며 그랬다.
이것도 마시고 가요.
하지만 한선생님 일행을 놓칠 수가 없었다. 페이스가 살아나 적어도 5분30초 페이스도 가능할 것 같았던 오늘의 절정에서 맥을 죽일 수가 없었다. 뭐 하나만 감사하게 마시고 뒤따라가려는 나를 다시 붙들었다. 마음이 급했다.
함께 가요. 이거 마저 마시고.
이 선배님의 지극정성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호흡을 잠시 죽이고 주는 포도즙을 양껏 들이켰다. 신선하고도 짙은 농도의 포도즙이 목젖을 거쳐 심장을 울리며 마음 깊숙이 내리고 있었다. 따뜻한 감동으로 몸이 뎁혀지고 있었다. 구두를 신은 채로 뒤쳐진 페이스를 올려주기 위해 이선배님이 호흡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하나~,하나~,하나~.
어둠(95km 41분/5km 8.2분/km)
어둠 속으로 넷이 뛰고 있다. 앞서간 두 분을 다시 만난다. 굴다리 앞 자원 봉사분들이 환대 속에 마지막 전열을 가다듬는다. 이선배님이 마지막까지 꼬불쳐 둔 매실즙까지 함께 들이키고 이젠 넷이 되어 호흡을 같이 한다.
어둠이 밝다.
마음이 훠언하다. 호흡이 따라 두 다리가 굳건하다. 울트라 완주를 목전에 두고 있는 무리답지 않게 5분 페이스가 되어 나머지 2km를 줄달음친다.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근원을 알지 못하는 따듯한 울음이 터져나오려고 한다.
주로가 끝이 나고 빠알간 카펫이 펼쳐진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다. 목쉰 목소리다. 윤현수 부회장님이시다. 스폿트가 터져 오른다. 잠시 앞이 깜깜해지더니 누군가 뛰쳐나와 수건을 덮어준다.
세상이 화안해진다. 꿈만 같다.
아내가 다가와 손을 잡는다. 수고했어요.
고맙다(100km, 38분/5km, 7.6분/km, 총 13시간 18분)
결승점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가 고마웠고 함께 동반주 해준 한선생님과 이명희님 그리고 이선배님도 너무나 고마웠다.
모두가 고마웠다.
동호회원 여러분들과 전화를 주신 분 메시지를 주신 분 그리고 끝까지 출전의욕을 불태워 주신 동호회원분들이 감사하다.
내 몸이 고맙다.
지금껏 마흔 네 해를 바쳐주었던 두 다리와 오장육부와 꾀만 부릴 줄 알았던 내 머리가 고맙다. 하루를 견뎌준 것만이 아니다. 살아가야 할 날을 맑게, 그리고 밝게 해주어 정말 고맙다.
정말 고맙다. 하루가.
<연어처럼, 내 떠나온 곳을 향하여>
석양.
하나~,하나~,하나~
구령소리가 내 왼발에 맞춰 뒤 쪽으로 흘러온다. 앞서 둘, 그 뒤로 둘이다. ‘이제부터 속도를 냅니다.’ 구령소리가 잠시 끊기고 앞서 둘은 속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다시 흩어진 정신을 수습한다.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등 뒤로 한강을 물들이며 해가 지고 있다. 이제 곧 하루가 질 것이다. 끝이 보일 것이다. 길고도 긴 시간을 강을 따라 내렸던 시간이 까마득하다. 나는 막바지 진력을 다한다. 내가 어둠이었을 때 떠나온 곳이 저곳에 있다.
80km를 꿈을 꾸듯 지나고 있다.
갈등(출발 하루 전)
출발을 하기까지 하루에도 서너 번은 마음이 바뀌고 있었다. 아무도 내가 울트라마라톤대회에 나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 자신도 모르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어찌 알릴 수 있었으랴.
하루 전날인 토요일까지 회사일로 출근을 해야 했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핑계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참가신청을 해놓고도 나가지 않은 것에 대한 좋은 구실을 찾은 거였다.
올해 들어 내가 이룬 것은 없었다. 작년의 흥과 열정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책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상반기 서너 번의 풀코스 도전에서도 막판에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시작과 끝이 같지를 않았다. 훈련부족으로 비롯된 것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동하지 않고 있음이었다. 하반기 대회에서도 변변한 결과를 내지 못한 채로 춘마 때는 회사 행사 때문에 참가하지 못한 것도 핑계였다.
아내(출발 10시간 전).
발가락 양말을 사야겠어.
회사에서 돌아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저녁을 마치기가 무섭게 양말을 사러 가자고 징징거렸다. 그리고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었다. 지난 한해에 대한 회한의 산물이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아내는 꿀물에 미숫가루를 타서 냉장실에 넣고 있었다.
이건 서바이벌이 아니고 스피드울트라야. 먹을 것이 주로에 지천일 거래.
그런 것은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아내는 이미 그렇게 될 거라고 예상이나 했던 것처럼 냉장실에 배낭용 팩을 넣고 반환점에서 보충할 것까지 패트 병에 담아 넣으면서 그랬다. 하루를 견디려면 근기가 있어야 해요. 하긴 그랬다. 늘 나는 풀코스 막바지나 정오에 가까운 시간대에 허기로 맥이 풀리곤 했었다.
이왕 할 거면 허기는 면하면서 뛰어요.
기도(출발 그리고 10km. 33.9분/km 6.7분/km)
출발이다.
어둠 속에서 긴 항해를 위해 사각의 문을 나선다. 모두가 결의로 가득하다. 툭탁툭탁 발걸음들조차 경건하다. 머언 항해를 나서는 어린 연어를 닮아 있다.
부상으로 뛰지 못할 거라던 조효선 선생님과 한참을 같이 한다. 몸에 보호대를 대고서도 출전을 결의하신 것만으로도 나의 그동안의 잡념들은 정말 호사였다. 먼저 가라고 손사래를 친다. 나는 동반주하기로 했던 김영기 선생님과 다시 발을 마춘다. 5km를 지난다.
긴 여정을 위한 기도로 그 소리들은 어둠을 가르고도 투명하다. 땅의 어둠을 바라는가 싶지만 그들 마음에는 하늘의 별빛을 올라보고 있다. 돌아올 때 안게 될 석양 혹은 별빛을 갈구하며 제발 내 스스로 나선 길을 내 발로 다시 밟아 되돌아 올 수 있게 하여 주소서.
미명(25km 32.3분/5km 6.4분/km)
하루가 깨어나고 있다.
강을 잠시 떠난다. 양재천이다. 어스름 속에 피어 오르는 것은 이제 깨어가고 있는 나의 의식이다. 어둠을 나선지 얼마만인가. 여명은 늘 한꺼번에 오지 않는다. 먼저 의식이 열리고 세상이 열린다.
700여 건각들이 마치 하늘에서 내린 듯 아침안개에 묻혀 있다. 지상으로 내린 신선들은 양재천 상류를 오르거나 혹은 벌써 내리고 있다. 잠시 힘이 부친다. 김 선생님이 잠시 보조를 맞추려고 속도를 늦춘다. 세상이 열리는데 생각이 아둔해지고 있다. 그 말미에 터언을 한다.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이 이것저것 먹거리를 챙겨준다. 잠시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출발이다.
양재천변으로 무수의 생각처럼 안개는 자욱하다. 그 무수의 미립 속에 나의 생각도 부유한다. 나는 저 생각들을 모아 오로지 되돌아 올 수 있는 에너지로 내적하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조심한다. 이제 어둠을 너머 세상은 또 다른 계(界)로 들고 있다. 하나 둘씩 어둠을 열고 미명 속으로 사람들이 나서고 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쏠로.(30km, 34.8분/5km, 6.9분/km)
동반주 하던 김영기 선생님을 먼저 떠나 보냈다. 한 치도 흔들림 없이 내닫는 선생님 옆에서 나는 자주 마른기침을 해대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 뒤로 빠져야 할 시기임을 알았다.
잠시 화장실을 구실로 턱 밑에까지 치달아 오른 호흡을 다스리고 쏠로로 주로에 다시 나선다. 아직도 힘찬 근육과 팔 동작으로 앞서 나가는 분들에게서 나는 역동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반달 출발점을 지나면서 소위 데드포인트라고 하는 용어도 처음으로 떠올린다. 풀코스 막바지에 허기로 시달리던 경험은 늘 이맘 때였다.
나는 그제야 내가 등에 배낭을 매고 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
출발 직전 짐을 맡기면서 나는 잠시 갈등을 했었다. 배낭을 채비하는 건각들은 어디에도 눈에 띄질 않았다. 역시 초보인 나만 촌스럽게 울트라 배낭도 아닌 등산용 배낭을 들쳐매고 온 것이었다. 해서 배낭을 맡기려다가 그래도 아내가 챙겨준 꿀미숫가루인데 그냥 매고 뛰는 촌놈이 되기로 했다.
호스를 찾아 지금껏 내게 짐이 되고 있던 아내의 정성을 감사하게 음용한다. 꿀을 넣은 미숫가루가 맛이 좋다. 절로 힘이 난다. 어른 말을 잘 들으면 떡이 생기고 아내 말을 잘 들으면 평생이 편하다고 했던가.
동지(35km 37.3분/5km, 7.4분/km)
벌써 63km 주자들이 터언하여 지나쳐 간다.
저만치 아는 얼굴이 보인다. 두 분이다. 먼저 박 순례님이시다. 나는 반갑게 손을 들어 반긴다. 서울마라톤 스피드엎 훈련할 무렵에서부터 반달에서 그리고 남산에서 뵙는 얼굴인데 울트라마라톤 주로에서 뵙는 모습은 또 다른 모습이시다.
그리고 저기쯤에 이 선기님의 얼굴이 보인다. 나는 두 손을 들어 올려 반긴다. 하지만 안색이 평상시의 모습이 아니다. 쥐가 내렸다 한다. 나는 얼른 챙겨온 부황침을 꺼내려고 배낭을 뒤진다. 하지만 마음이 급해선지 어디에 박혔는지 찾아지질 않는다. 아무리 찾아도 침이 없다. 낭패다. 이럴 때 쓸려고 일부러 챙겼건만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무런 조치도 못해드리고 나는 님과 헤어진다.
자꾸 뒤가 돌아뵌다. 어쩔꼬.
고전(40km, 34.3분/5km, 6.8분/km)
고전을 하다.
멀리 여의도를 눈앞에 두고 힘이 부친다. 풀코스를 염두에 두고 신체는 이제 다왔으니 그만 숨을 죽이라고 속도를 죽이라고 주문을 하는 모양이다. 늘 그래왔듯이 40키로에 다가 갈수록 이제 그만 뛰자는 유혹은 강력하다. 숨이 차 오르고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다시 미숫가루를 들이킨다. 갈증이 금새 해갈된다. 다시 한번 배낭을 매고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더 가야 할 길이 저기 남아 있다. 지금껏 뛰어왔던 거리보다 더 많은 거리를 두고 나는 소리없는 영혼이 졸라대는 유혹에 나를 남겨둘 수 없다.
그냥 치고 나간다.
심장(50km 35.32분/5km, 7분/km)
여의도를 지난다.
나는 잠시 심장의 소리를 듣는다. 이 나라의 중심을 지나며 나는 잠시 심장론에 빠진다. 5살 막내딸의 심장소리를 떠올린다. 콩닥이는 심장의 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잠시 숙연해지곤 했다. 아, 이 작은 아이의 생명은 어디서 왔던가. 생명이 있게 한 심장의 기원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심장이 건강해야 사람이든 나라이든 건강하는 법이리라.
주로에서 나의 움직임을 있게 하는 심장과 모든 기관들에게 나는 감사한다.
잠시 일본 분 한분을 만나 인사를 나눈다. 내가 놓치고 온 장갑을 들고 뒤따라와서 건네다 준 인연으로 함께 동반주 한 분이셨다.
자신은 한국에는 처음이란다. 환상의 코스를 달리게 되어 영광이라고. 반달에 자주 나오는 일본 분을 잘 아신단다. 새벽에도 함께 식사를 했다고 한다. 짧은 실력임에도 나보고 일본어가 유창하다는 말에 절로 힘이 난다.
오리들이 여유롭다.
안양천(55km, 41.29분/5km, 8.2분/km)
몸에 익은 주로에서 고전을 한다.
목동교를 오르는 길이 멀다. 여기는 내가 자주 오르내리는 코스다. 안양천이 지친 나를 안아 들인다. 멀리 내가 사는 아파트가 보인다. 안양천은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구일역 주변에서 출발하여 안양천을 따라 내리면 주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데다 거리 표시까지 되어 있어 최적의 조건이었다.
봄날 부화를 위해 물을 거스르며 오르던 흔적들을 더듬는다. 제방이 무너져 물난리를 치루던 흔적들이 여전한 양평동 녁을 지난다. 정말 힘이 든다. 얼추 다리와 다리 사이가 1km이라 남은 거리가 3km라 다리 세 개를 건너가야 한다는데 부담을 느낀다.
제2관문에 도달한다.
시간을 많이 지체하였다. 화장실을 들렀는데 거기서 먼저 들어간 분이 지체한 까닭에 기다리느라 10여분 이상을 까먹고 말았다. 이왕 들렀는데 해결하고 가자고 마냥 기다린 게 무모했다.
합수(60km 42분/5km, 8.4분/km)
내리는 길에는 까먹은 시간을 벌충하자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약간의 내리막이었던 이유로 좀 가속을 했다. 화장실에 들러 좀 식어버린 몸을 뎁히느라 힘이 들어 당장 걷자고 아웅거리는 꾀를 뒤로 물리고 숨이 차 올랐지만 참고 내리기를 계속했다. 고개를 들고 멀리 안양천 하류를 건네다본다. 강 건너 상암벌이 눈에 들어온다.
딸아이 셋과 아내는 강 건너 상암벌에서 지금 5km 뛰고 있을 것이다.
신청만 해 놓고 울트라에 대한 미련을 두지 않았었다. 해서 회사가 스폰서를 해서 회사 동호회 가족까지 신청만 하면 뛸 수 있다기에 아내의 첫 하프를 동반주 하고자 신청을 했었다. 하지만 가장의 갑작스런 변심으로 그들은 지금 가장도 없이 그네들끼리 주로에 나서 있을 거였다. 다섯 살박이 막내를 유모차에 태워 아내는 지금 5km를 뛰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야속할 것인가.
합수하는 곳에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르는데 아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완주했어요. 미안했다. 아니 고마웠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아내는 지금 마라톤에 입문해 내년 서울마라톤 풀을 겨냥하고 있다.
처음으로 벤치에 누웠다. 서서 쉬라고 하는 충고에도 남은 방화대교의 만만치 않을 거라는 이야기에 지레 휴식을 취한다. 피가 온몸으로 고루 퍼지는 느낌이 좋았다.
시간을 많이 까묵었다.
돌고.(65km, 37분/5km, 7.4분/km)
안양천과 한강 합수점을 지나 방화대교까지 이르는 거리는 무척이나 팍팍하였다. 줄어들지 않은 거리. 앞서거니 뒷서거니 해보았자 부처님 손바닥이었다. 직선주로를 원형경기장 도는 것처럼 거기가 거기였다.
힘내세요~
임동룡선생님이시다. 사모님하고 동반주를 하고 계시는 모습이 너무나 부럽다.
앞서 가시는 모습을 보내 따라 붙는다. 자세를 곧추 세운다. 너무 멀리 있어 징그러워 쳐다보기도 싫은 방화대교였다. 징그러워도 얼굴을 드리대면 정이 붙던가. 고개를 세우고 정면으로 주시하면서 뛰기 시작한지 얼마 안돼 방화대교가 나를 기다리는 듯이 가까워지며 그랬다. 어서오라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루, 주로에 나선 후로 처음으로 눈물을 머금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돌아가기 위해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건각들을 위해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그들의 회복을 위해 그들의 격려를 위해 그들의 충전을 위해 봉사하는 분들을 만나고서 너무나 반가워서였고 너무나 고마워서였다.
이번처럼 ‘돈다’는 말이 의미심장한 것인줄 몰랐다. 시작이 반이라고 막상 저질러 놓고 맨 처음 맞는 감동은 항상 그 ‘도는’ 지점에서였다.
정말 그곳은 진정으로 마라톤, 서울마라톤을 사랑하는 이들이 '돌러 온‘ 사람들을 맞는 곳이었다.
가는 도중에 틈틈이 스트레칭을 하세요.
얽힌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쓰시던 여자분께서 시간보다 더 중한 것은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매듭(70km, 32분/5km, 6.4분/km)
방화대교를 떠났다. 안양천 합수지점까지 오도록 편안했다. 한번 돌아본 경험이 있던가. 돌아간다는 건 정말 행복 그 자체였다.
낚시하는 강태공들을 만난다. 부부가 함께 낚시대를 드리우고 그늘막에서 다정하다. 한없이 부럽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이 났다. 섬에서 나고 자라 다시 우리를 낳아 키우기까지 섬을 떠나지 않으셨던 아버님은 배낚시가 생업이셨다.
그런 아버님은 늘 매듭을 경계하셨다.
낚시줄은 그 인장력에는 매우 강하지만 매듭에는 정말 약하다는 것이었다. 맺히면 그 부분에서 줄이 끊어진다는 것이었다. 모처럼 큰 물고기가 낚시에 걸려 요동이라도 치면 놈들을 잡기 위한 서로의 힘겨루기가 이루어지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과정 어느 순간 도망가려는 놈과 놈을 잡아올리려는 힘 사이에 팽팽한 순간이 도래하면 여늬없이 낚시줄은 그 매듭이 진 부위에서 끊어진다고 했었다.
매듭을 지우지 마라.
언제든 항상 내 줄에 매듭이 맺힌 부분이 있는지를 살펴서 더 이상 매듭을 풀기 어려워지기 전에 풀어라. 그렇지 않으면 내 스스로 그 줄을 자르고 다시 새 줄을 꺼내야 한다.
나는 내삶 주변에 매듭이 없었는지를 반추한다. 내가 찾아낸 매듭이 어디 한 두 군데랴.
돌아가면 하나 둘 그 매듭들을 찾아 풀어가리라.
만남(75km, 39분/5km, 7.8분/km)
반달 출발지를 지나친다. 허리를 세우고 팔을 겨드랑이를 스치며 친다. 오른쪽 고관절 쪽에서 이상 징후가 나기 시작한 시점 이후로 발의 착지도 11자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기울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견지한다. 어렵던 호흡이 제자리를 찾는다. 언덕을 만나 잠시 걷는다. 서바이벌의 경우 언덕은 빠른 속보로 오른다고 하질 않던가.
함께 가요.
지나가는 바람이었던가? 스치듯이 얇은 소리가 그랬다. 언덕을 다 올라 다시 자세를 세우려는 시간. 한 패가 나를 지나면서 그랬다.
하나~,하나~,하나~.
구령소리를 따라 두 분이 앞서 나가고 있다. 이름 석자가 눈에 들어온다. 이명희 님이시다. 아까 반환점에서 출발하려면서 들어오는 이명희님을 뵈지 않았던가.
구령을 재고 있는 분은 한승범 선생님이시다. 아까 지나오면서 자원봉사를 하고 계시는 한선생님을 뵈지 않았던가. 언제 이렇게 따라왔단 말인가.
힘 내서 함께 가요.
언덕을 넘어서며 합류한다. 한 선생님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다. 스피드가 6분 30분 페이스다. 나는 하나,하나 하는 구령에 왼발을 잘 맞추지 못해 자꾸 스텝이 엉키곤 했다. 그래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이제 막바지 페이스는 이분들과의 인연의 끈을 잡기로 한다.
석양(80km 47분/5km, 9.4분/km)
석양이 진다. 너무나 아름답다. 등 뒤로 지는 석양은 커다란 강을 덮고 서울을 덮고 그리고 모든 수심을 덮고 그리고 나의 마음을 적시고 있다.
하많은 시간들을 저 강으로 흘러 보냈다. 시간이라는 강을 따라 보냈다. 뒤돌아 보지 않으리라 했던 시간의 강을 뒤돌아 본다. 그 어디서 발원하여 얼마나 많은 개울이 되어 소리가 되고 여울이되어 파동이 되었던가. 그 얼마나 기나긴 시간을 스스로를 다스려 내렸던가. 그리고 이제는 큰 강은 멈추어 있는 듯 흐르고 있다. 바다를 눈앞에 두고 저 큰 강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반환점의 주문대로 스트레칭 하는 시간을 많이 들였다. 막바지 추력을 위하여 고관절과 무릎의 근육을 푸는데 시간을 들였다.
동지(90km 45분/5km 9분/km)
그는 잠실교 앞에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 동호회 선배이면서 지난 해 서울마라톤에서 처음 스피드업 시작할 때부터 함께 했던 이신옥님이셨다. 올해 강화햄 울트라를 먼저 경험하신 울트라 선배이기도 했다. 한선생님과 이명희님의 보조에 맞춰 호흡이 고르게 온몸에 자리하고 있을 즈음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나를 감싸안으며 그랬다.
이것도 마시고 가요.
하지만 한선생님 일행을 놓칠 수가 없었다. 페이스가 살아나 적어도 5분30초 페이스도 가능할 것 같았던 오늘의 절정에서 맥을 죽일 수가 없었다. 뭐 하나만 감사하게 마시고 뒤따라가려는 나를 다시 붙들었다. 마음이 급했다.
함께 가요. 이거 마저 마시고.
이 선배님의 지극정성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호흡을 잠시 죽이고 주는 포도즙을 양껏 들이켰다. 신선하고도 짙은 농도의 포도즙이 목젖을 거쳐 심장을 울리며 마음 깊숙이 내리고 있었다. 따뜻한 감동으로 몸이 뎁혀지고 있었다. 구두를 신은 채로 뒤쳐진 페이스를 올려주기 위해 이선배님이 호흡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하나~,하나~,하나~.
어둠(95km 41분/5km 8.2분/km)
어둠 속으로 넷이 뛰고 있다. 앞서간 두 분을 다시 만난다. 굴다리 앞 자원 봉사분들이 환대 속에 마지막 전열을 가다듬는다. 이선배님이 마지막까지 꼬불쳐 둔 매실즙까지 함께 들이키고 이젠 넷이 되어 호흡을 같이 한다.
어둠이 밝다.
마음이 훠언하다. 호흡이 따라 두 다리가 굳건하다. 울트라 완주를 목전에 두고 있는 무리답지 않게 5분 페이스가 되어 나머지 2km를 줄달음친다.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근원을 알지 못하는 따듯한 울음이 터져나오려고 한다.
주로가 끝이 나고 빠알간 카펫이 펼쳐진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다. 목쉰 목소리다. 윤현수 부회장님이시다. 스폿트가 터져 오른다. 잠시 앞이 깜깜해지더니 누군가 뛰쳐나와 수건을 덮어준다.
세상이 화안해진다. 꿈만 같다.
아내가 다가와 손을 잡는다. 수고했어요.
고맙다(100km, 38분/5km, 7.6분/km, 총 13시간 18분)
결승점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가 고마웠고 함께 동반주 해준 한선생님과 이명희님 그리고 이선배님도 너무나 고마웠다.
모두가 고마웠다.
동호회원 여러분들과 전화를 주신 분 메시지를 주신 분 그리고 끝까지 출전의욕을 불태워 주신 동호회원분들이 감사하다.
내 몸이 고맙다.
지금껏 마흔 네 해를 바쳐주었던 두 다리와 오장육부와 꾀만 부릴 줄 알았던 내 머리가 고맙다. 하루를 견뎌준 것만이 아니다. 살아가야 할 날을 맑게, 그리고 밝게 해주어 정말 고맙다.
정말 고맙다. 하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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