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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과의 인연 길게 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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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환철 작성일09-08-27 23:36 조회3,1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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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원하든 원치 안든 지난 세월을 수많은 경쟁 속에서 살아왔다. 끝도 없는 경쟁에 지치고 짜증도 났다. 그 과정에서 자랑스럽지 못한 순위로 밀리면서부터는 교묘하게 경쟁을 피하거나 멈춰버렸다. 그런데 이런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습성들이, 나이 들어서도 자주 발목을 잡는 이유가 되곤 하였다. 그런데도 나이가 들수록 더욱 약해지고 게을러지는 자신을 바라보며, 내 인생의 좌우명 같기도 한 ‘세상 최고의 적은 나 자신’이라는 말의 뜻을 지키기 위해, 다시금 심신을 가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러던 차에 점심 저녁을 이용하던 단골 식당에서 모 마라톤 동호회가 자주 뒤풀이 하는 걸 보았다. 이 모임의 코치인 임춘애 씨도 두세 번 보았었다. 그 때가 7~8년 전의 일인데, 마라톤 하는 사람들을 옆에서 바라보며, 모두 의지가 대단한 사람들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대단히 부럽기는 했지만, 내가 직접 하는 건 감히 엄두도 못 냈다. 초등학교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모든 과목이 ‘수’인데 체육만 ‘미’이고, 운동회 때면 볼이 떨어져 나가도록 달렸지만, 결과는 항상 8명 중에 7~8등이니, 운동회가 너무 싫고 창피했었다. 중·고등학교 체육시간도 별반 다르지 않고, 항상 고통스러웠다. 거기다가 30대 말에 폐결핵까지 걸려서 1년 가까이 고생을 했다. 따라서 세상사람 모두가 마라톤을 해도, 나는 안 되고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또 하나 용기 없고 게으른 자들의 핑계이기 쉬운,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었다.

 
그러다가 5년 전쯤에 마라톤을 하는 분이 같은 건물로 이사를 왔는데, 그 분에게 자주 마라톤 얘기를 듣게 되면서 긍정적인 꿈을 꾸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작년 9월 17일에 마라톤을 시작하여, 11개월 전에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의 성과를 거두었다. 6개월 만에 풀코스에 도전해 3시간 52분, 그 한 달 후에 다시 풀코스에서 3시간 39분, 입문 9개월 만에 67km의 ‘불수사도삼 오산종주 산악울트라마라톤’을 완주했다. 그리고 만 11개월 만에 ‘2009 혹서기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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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대회를 참가하게 된 계기는 클럽 선배들의 강력한 추천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자기와의 싸움이 필요하고 단련이 필요하다해도, 걷기도 힘든 한여름 대낮에 달린다는 게 썩 내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대회는 그야말로 마라톤을 즐기는, 색다른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해서 참가를 하게 되었다.
  사실 이 대회에 참가하기 전만해도 ‘펀런’이라는 말은 그저 듣기 좋은 미사여구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오늘의 대회는 그야말로 ‘펀런’이요, ‘마라톤 놀이’였다. 그동안 달리기를 해오면서 맘 편하게 즐길 만큼 만만하게 느끼질 못했었다. 항상 걷거나 포기하고 싶은 유혹, 고통과의 끝없는 싸움이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독일의 요슈카 피셔처럼 살을 빼고 건강을 위해 달리겠지만, 이들마저도(좀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수도승 같은 구도자적인 삶의 자세가 강하기 때문에 마라톤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게, 나의 평소 생각이었다. 단지 살을 빼고 건강만을 생각한다면 ‘핼스 클럽’이 고통이 덜하면서도 효과적일지 모르니 말이다. 또한 대립되는 적이 없는 게임이기에 어쩌면 별 스릴도 없고 짜릿한 재미도 없는, 힘들고 무덤덤한 경기를 즐긴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탐구의 성향이 강한 유형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 자기 연마와 극기, 탐구를 넘어 ‘마라톤을 위한 마라톤’이 아닌 그야말로 ‘즐기는 마라톤’을 만끽했다.

  대회 1주일 전에 발등이 3x2cm 가량 살갗이 벗겨지는 부상을 당해, 1주일동안 전혀 연습을 못했었다. 그런데다 이 대회의 코스는 남산 보다 훨씬 힘들다고 해서, 기록을 느슨하게 5시간으로 잡았었다. 코끼리 열차 길과 동물원 주변을 돌 때만 해도 그런대로 달릴만했다. 그런데 뒤쪽 우회도로를 왕복할 땐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길고도 심한 경사로를 오르고 또 오르기란 그야말로 지옥훈련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2~3회 왕복 때 까지는 음식물 섭취할 때와 머리에 물을 끼얹을 때 빼곤, 걷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속도일망정 계속 뛰었다. 그런데 내리막을 심하게 뛴 탓인지, 2바퀴를 남겨둔 상황에서 왼쪽 무릎 뒤쪽이 쥐가 와서 뛸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조금 걷다가 다시 뛰어 봐도 마찬가지로 통증이 와서 뛸 수가 없었다. 완주를 못하고 그만 포기해야 되나 싶었다. 예전 개념대로라면 뛰지 못하고 걷기보다는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 깔끔한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혹서기에 워낙 난코스인지라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나도 오늘은 걸어서라도 완주하고 싶어졌다. 내가 느끼는 오늘의 분위기 또한 기록보다는 완주에 큰 의의가 있는 것 같았다. 시간제한 9시간, 10시간도 아닌, 시간제한 없음이다. 주최 측의 깊고 넓은 배려가 느껴져 마음이 편했다. 어디 그뿐이랴. 

  역시 이 대회는 적극 추천할 만큼의 특별함이 많이 있었다. 갖가지 푸짐한 먹거리는 익히 들어 어느 정도 상상했었다. 그런데 샤워기와 바가지로 적셔주고 뿌려주는 물세례는 그야말로 어릴 적 어머니의 등목처럼 한 가족 같은 정감을 느끼게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적극적이고 친절한 경우를 본 것은 바닷가 횟집 앞에서 호객하는 경우뿐이었다 싶을 정도이다. 사익을 위해서 하는 일도 아닌데, 모두 한결같이 내 가게에 온 손님 대하는 것보다 더 친절하고 적극적으로 즐겁게 봉사하시는 걸 보고, 감동 또 감동했다. 내로라하는 항공사 스튜어디스 예절교육 담당자가 와서 교육을 시켜도 이보다 친절하고 상냥하고 밝아 보일 수는 없겠다 싶었다. 그야말로
오늘 축제의 ‘꽃 중의 꽃’은 “진행요원들과 자원봉사 하셨던 분들”이었다고 칭찬해 드리고 싶다. 

  중간쯤의 구급차 옆에서 북치며 응원하던 미녀응원단 분들이 계셨는데, 다리가 아프다니까 아주 미모의 여성분이 남자보다도 더 강한 힘으로 스트레칭과 맛사지를 해주는데, 노련한 경험과 적극적이고 자연스런 친절함이 배어 있어, 부럽기도 하고 배우고 싶었다. 도로 가운데로 왔다 갔다 하시며 박수치고 고함치시던 여성분은 진정한 가무악의 후예다웠다. 꽹과리와 북으로 응원하던 붉은군단 중에도 아주 튀는 분이 있었으니, 옆집 다섯 살짜리 꼬마한테 뺏어왔을 듯한 장난감으로 무차별적으로 쏘아대던 물총여전사.

  나는 걷다 뛰다 하면서 생각했다. 내년에서는 이 대회에 마라토너가 아닌, 꽃(자원봉사)으로 참여를 해보자고. 여기저기서 악기를 들고, 또는 맨손으로 응원을 하는 분들처럼, 꽹과리를 챙겨오든가, 대포수 복장을 하고 오는 거다. 영 자신이 없으면 음료대 앞에서 제일 밝은 미소로 달림이들을 응원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남에게 도움과 기쁨을 주는 일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에게도 마라톤과의 인연을 깊고 길게 이어가는 좋은 방법일 수 있겠다 싶다. 한번 정복(?)했다고 끝내버리면 안될 테니까 말이다. 그러기에 이번 대회는 기록으로만 보면 대 실패지만, 반면에 많은 걸 느끼고 얻었다. 기록만의 마라톤이 아닌, 마라톤의 이유와 가치를 다시금 점검해보고 사유해볼 수 있었다. 아울러 이 대회의 긍정적 측면(친절도, 적극성, 푸짐함, 인정적인 호감도 등)을 아주 높이 샀기에 주최 측에 제안(아이디어) 하나 하고 싶다.
 
1. 자원봉사요원들의 적극성이 더욱 빛나고, 서로 재미와 의미가 더할 수 있도록 특이한 복장(남장, 여장, 각설이, 삐에로, 등등등)을 권하시면 어떠실는지?
  2. 샤워기로 물을 뿌려줄 때나 계곡물을 끼얹을 때, 신발이 젖지 않도록 비닐로 치마나 깔때기처럼 두를 수 있도록 하는 건, 저라도 만들어 준비해보고 싶습니다.

혹서기마라톤 파이팅!!
서울마라톤클럽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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