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13시간동안의 긴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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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연 작성일04-11-16 10:56 조회3,23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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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형!
40대 중반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세대의 속마음도 모르고 가을을 속절없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길가의 은행나무는 낙엽을 모두 떨궈버리고 긴 겨울 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며 20대의 상념에 젖어드는 것은 세월의 빠름에 대한 반항일까요?
차로 1시간 조금 더 가면 족할것을 13시간의 혹독한 시련에 스스로를 구속한것은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인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인지 아니면 그저 길이 있으니까? 250리길을 달리면서 생각해 보았지만 나는 답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Y형!
나에게 있어서 마라톤은 신체구조상 전혀, 결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다리짧고, 허벅지 굵고, 배나오고, 히프나오고...어느것 하나 달리기에 적합한 것이 없었지요. 70년대 군생활을 경험한 우리와 비슷한 연배의 남자들은 다 경험했겠지만 그시절엔 완전군장 구보와 사격만 잘하면 군생활 편했지요. 각종 측정때는 구보와 사격이 우수부대를 좌우했으니까요. 그래서 측정 몇개월 전부터는 하루걸러 구보를 했지만 저는 매번 낙오를 했습니다. 낙오후 복귀하면 고참들의 매타작이 기다리고 있었고, 구보 잘하는 쫄병들에게는 눈치가 보여 큰소리 한 번 치지 못했습니다. 다행이 상병달고 몇달 지나니 그제서야 낙오를 면하게 되더군요. 짭밥의 무서움을 알았습니다. 제대하는 날 부대 정문을 나와 뒤돌아보며 내뱉은 저의 一聲은 " 내생애 구보와 등산은 없다"였습니다.
Y형!
그러던 내가 마라톤을 시작하게된 계기는 참으로 우연이었습니다. 2002년 겨울 어느날 직장에 같이 근무하는 웬 사람이 저에게 오더니 "몸마라톤대회에 참가해 보지않겠느냐"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저의 직장 마라톤동호회인 황소걸음 초창기 멤버이자 총무이셨지요. 순간 "마라톤? 그거 군댓말로 구보아닌가?" 라는 생각에 25년전 군 생활때의 악몽이 떠올라 한마디로 거절하였습니다.
며칠후 목욕탕엘 갔는데 거울에 비친 저의 모습이 영 볼품이 없더군요. 일어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배가 얼마나 나왔는지 발끝이 보일락 말락하였습니다. 좀 심각한 생각이 들더군요. 아내도 배나왔다고 연신 잔소리를 해대지, 때마침 체력검정제도도 생겨 곧바로 헬스클럽에 가입하여 매일 런닝머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약3개월 가량 꾸준히 다녔는데도 뱃살은 줄어들 조짐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마라톤을 하면 빠질려나? 라는 생각이 들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2003년 봄 여주 세종대왕 마라톤대회에 처음으로 하프코스 신청을 하였으나 결국 참가하지 못하고 있다가 평창 피닉스 하프마라톤대회에 2시간 30분으로 완주했습니다. 2003년 조선일보 춘천마라톤대회에는 아내의 기습신청으로 4시간 18분에 완주하였습니다. 고통스럽게 완주후 운동장에 누워 하늘을 보니 온통 파란색에 구름 점이 그렇게 편할수 없더군요. "! 이게 평화로구나. 이맛에 마라톤을 하는구나."
Y!형
완주후 느끼는 짜릿함..뱃살빼는것보다 그 맛에 나는 마라톤에 푹 빠졌습니다. 퇴근후 집에가면 아들녀석과 컴퓨터를 서로 차지할려고 한바탕 싸우고 나서 마라톤싸이트만 염탕하며 돌아다녔습니다. 온라인 마라톤, 러114, 월광소나타등등 참 많더군요.
그러기를 1년 남짓 황소걸음 총무를 맡아 매원 동호회 회원들과 하프 또는 풀코스 대회에 참가하던중 2003년 추석 무렵 텔레비젼 프로그램에 한반도 횡단 울트라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완주하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온몸에 전율이 흐르면서 눈시울이 드거워 졌습니다. 아! 저런것도 있구나. 처음 울트라대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은근히 도전하고 싶어졌습니다. 당초 3년내지 4년간 풀코스 참하후 4시간 안에 완주하고 도전할려고 했으나 "기왕 마음먹은것 일찍 도전하자"라고 생각하고 인터넷을 여행하고 있는데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가 있더군요. 그런데 대회일이 춘천대회 풀코스 참가후 바로 다음주라 망설여 졌습니다.몸이 회복될 지도 모르고 대회 참가비도 만만치 않아 인터넷으로 신청만 하고 입금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신청 마감일 주최측에서 빨리 참가비를 입금하라는 연란이 왔습니다. 준비도 안된상태이고 겁도나고 해서 포기하였습니다. 조금은 미련을 간직한 채.... 그러던 어느날 서울마라톤 홈페이지에 추가로 접수한다는 내용이 올라와 있더군요. 순간 "아!나를 위하여 접수를 연기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주머니 지갑을 열어보니 달랑 2만원뿐. 아내에게 얘기하면 말릴것이 분명하고. 밤새 곰곰히 생각해도 적당한 대안이 없던 찰라 저의 비자금통장을 정리해 보니 고등학교 딸아이의 학비가 입금되었더군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든가
얼른 출금하여 입금하였습니다. 막상 참가비까지 입금하고나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더군요. 이제 남은것은 죽어라고 연습하는 것이다.
그리고 10월30일 토요일
Y형!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처럼 긴장과 엄숙한 마음으로 가지고 갈 짐을 챙겼습니다.
64키로지점에서 갈아입을 속옷, 신발, 황소걸음 티셔츠, 시계, 바늘, 수건, 쵸코파이등등 얼마나 많은지 정신이 하나도 없더군요.아내는 며칠전 부터 참가비 15만원 잃어버린셈 치고 나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막상 더나보내려니 걱정이 되는지 점심에 삼계탕을 사주더군요. 긴장이 되어 먹는둥 마는둥 오후 2시 30분 잘갔다오겠다는 화이팅을 외치며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오후 5시30분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 도착하니 평서 안면이 있는 이대연님, 손무학님께서 벌써 와계시더군요. 반가왔습니다. 추최측에서 마련한 전야제를 관람하고 뷔폐로 저녁식사를 한 후 숙소에 들어가니 일행들은 벌써 배벊호 달고, 테이핑하고 발맛사지를 하는등 내일 참가할 준비를 하고있더군요. 저도 그들틈에 끼어 이것저것을 챙겼습니다. 일행중 울트라에 세번 도전하면서 지난번 한반도 횡단에 성공한 분이 "80키로라 관건이다. 이곳에서는 아프지 않은곳이 없다. 이곳만 통과하면 완주할 수 있다"며 장거리 달릴때의 주위할 점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밤 9시 일찍 잠자리에 들어 새벽 3시반에 잠을 깼습니다. 간밤에 주위의 소란과 옆사람의 코고는 소리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몸이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비몽사몽간에 대회장으로 갔더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어둠속에서 참가자들은 벌써 몸을 풀고있었습니다. 60세가 넘은 사람, 아줌마, 부부, 연인들....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왜 달릴까? 무엇을 얻을려고 모였을까? 마라톤에 중독된 사람들일거야..저마다 완주에 대한 자신감에 차 있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잇는데
5시 정각! 어둠속에서 사회자의 출발소리와 가족들의 응원속에 100키로의 대 장정에 들어갔습니다. "잘 다녀 오세요"라는 얘길 들으니 마치 옛날 군대갈 때의 생각이 났습니다. 그 군중들과 함께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을 내딛으면서 출발하였습니다. "완주만 하자. 이것은 기록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10키로 지점
상태가 아주 좋았습니다. 서울을 깨우는 새벽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더군요. 몸상태도 아주 좋았습니다. 지난주 풀코스 완주한 사람 답지 않게..
20키로-30키로 지점
아침햇살이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서울은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 살아 움직이고 있고 몸에서는 땀이 서서히 나기 시작했습니다.강아지를 데리고 나온사람. 조깅하는 사람. 인라인스케이트 타는 사람. 강남마라톤동회 회원들...그들에게 회이팅을 해주며 상캐한 기분으로 주로 중간중간에 있는 음료수와 먹을거리를 먹어가며 룰룰라라 달렸습니다. 오히려 오버페이스 할려는 충동을 억지로 참았습니다.
42.195키로
여기까지 지난 일요일도 달인 거리다. 더 이상 달려보지 않았는데... 이제 다시 시작이다. 몸상태를 확인하니 아직 달릴 힘이 남아있었습니다.
62키로지점 (반환점)
여기까지 몸은 힘들었지만 참 잘뛰었습니다. 아침에 맞긴 백에서 운동화와 양말을 갈아신고, 황소걸음 티셔츠도 갈아입었습니다. 주최측에서 죄공한 전복죽을 먹었습니다. 난생처음 먹어본 전복죽. 참 맛있더군요. 먹었다기 보다 마셨습니다. 고등학교때 4시간 끝나면 노는 시간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물아 말아 마셧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연거푸 세그릇을 마시고나니 담배생각이 간절하더군요. 담배 한 대 피우면 힘이 솟을 것 같은데.. 참가자들에게는 없을테고. 옆을 보니 공원에 놀러온 사람이 있길래 염치불구하고 한대 얻어 피우고 또 달리기 시작했습니다."이제 반환점을 돌았다. 집에가자. 어서 빨리 돌아가자"
70-80키로
피로가 왔습니다. 지난주 풀코스 뛴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다리가 아프고 5키로마다 설치한 팻말이 가도가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연도에 나와있는 수많은 사람들-놀러 나온 사람. 운동하는 사람. 응원하러 온 사람 그리고 눈물나게 고마운 자원봉사자- 지만연님 회이팅, 힘내세요...어! 저사람봐. 황소걸음이래! 황소는 걸어가야 되는것 아니야? 그런데 잘 뛰네...그들의 응원을 받으며 고통스런 다리를 이끌고 앞으로 나갔습니다.
80키로-90키로
눈물이 났습니다. 해는 서서히 지고 저녁 노을진 한강변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서울의 경치는 커녕 눈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누구하나 도와 줄 사람 없고 가도가도 끝이 없는 지루한 길 지루하고 고독한 레이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은 결국 태어남도 혼자요 마감도 혼자라 그럴 수 밖에 없구나. 지난날 부모님께, 아내에게, 친구들에게 한 나쁜 짓, 나쁜 행동들이 머릿속에 지나갔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부모님, 여보, 친구들아" 다시는 잘못 안할테니 아프지만 말게해 줘"........그리고 졸음이 왔습니다. 군대시절 여간행군 하면서 앞 사람의 발자국만 따라갔던것 처럼 앞사람의 발자국만 따라 뜀반 걸음반 무의식적으로 마치 기계처럼 발을 옮겼습니다. 발목의 뼈가 갈라지고살이 찢기는 아픔, 걸을 힘조차 없어 포기하고 싶은 간절함. 내가 왜 이 미친 짓을 하는가? 왜 울트라에 스스로를 구속시켰는지애 대한 회의...온갖 생각이 떠올라 눈물이 났습니다. 뒤쪽 저멀리에서는 앰블란스가 저승사자처럼, 어둠처럼 스멀스멀 나를 따라오는데 저거 타느냐 아니면 계속 달릴 것인가? 갈등이 심했습니다. 만일 저걸 탄다면 난 평생 후회할지 몰라. 언제 또 울트라를 해볼 것인가. 여기에서 포기하면 그동안 달린것이 아깝지 않은가? 아내가, 아들이 응원하고 있다. 그래 계속 가자. 92키로 지점인가 급수대에서 종아리에 멘수래담을 바르고 큰대자로 누워 발을 위로 올렸습니다. 아! 달콤한 잠이 쏟아졌습니다. 천국이 따로 없더군요. 자면 안된다. 자면 죽는다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다시 뛰었습니다. " 외로워도 아파도 나는 안걸어..참고 참고 또 참고 달리지 왜걸어"
90키로-골인
날은 저물어 어두워졌습니다. 새벽 5시 출발하여 지금까지 12시간, 하루의 반을 달렸습니다. 추위가 엄습했습니다. 짧은 황소걸음티셔츠를 입은탓에 땀으 식으니 아래윗니가 덜덜떨리며 오한이 오고있었습니다. 그때 저를 추월해가는 한 70세가 넘어보이는 노인 한분이 있었습니다. 동회회 회원들이 영차영차!00형님 회이팅 응원을 하며 저를 추월해 가는데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올까? 나도 저 나이에 저렇게 달릴 수 있을까? 제 자신이 창피했습니다. 이제 표지판은 4키로를 알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내가 평소 연습하던 홍천강 한바퀴야. 이 고통도 잠시면 끝나. 그럼녀 넌 완주한거야" 스스로에 체면을 걸며 골인지점에 도착하니 "478번 지만연 황소걸음 지만연님이 완주했습니다."라는 사회자의 환호를 받으며 골인테이프를 갈랐습니다.그리고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시계는 13:00:15초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이제 됐다. 나를 구속하던 울트라에서 해방됐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여보! 나 완주했어" 라는 말을 하는 순간 닭똥같은 눈물이 흘렀습니다. 골인후 주최측에서 준비한 사진을 찍고 간단히 샤워를 한 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에오니 아내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더군요. 나는 소주1병을 단숨에 비우고 깊은 잠속에로 빠져들었습니다.
Y형!
13시간의 지독하고 긴 고독
누가 물어봅니다.
왜 달리느냐고..
그러면 나는 대답합니다.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하였다고.
누군가 그럽니다.
그거 미련함과 오기 아니냐고
그러면 나는 대답할 겁니다.
도전과 성취라고
누군가 또 물어봅니니다.
다시 도전할 거냐고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당..............근!
40대 중반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세대의 속마음도 모르고 가을을 속절없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길가의 은행나무는 낙엽을 모두 떨궈버리고 긴 겨울 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며 20대의 상념에 젖어드는 것은 세월의 빠름에 대한 반항일까요?
차로 1시간 조금 더 가면 족할것을 13시간의 혹독한 시련에 스스로를 구속한것은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인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인지 아니면 그저 길이 있으니까? 250리길을 달리면서 생각해 보았지만 나는 답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Y형!
나에게 있어서 마라톤은 신체구조상 전혀, 결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다리짧고, 허벅지 굵고, 배나오고, 히프나오고...어느것 하나 달리기에 적합한 것이 없었지요. 70년대 군생활을 경험한 우리와 비슷한 연배의 남자들은 다 경험했겠지만 그시절엔 완전군장 구보와 사격만 잘하면 군생활 편했지요. 각종 측정때는 구보와 사격이 우수부대를 좌우했으니까요. 그래서 측정 몇개월 전부터는 하루걸러 구보를 했지만 저는 매번 낙오를 했습니다. 낙오후 복귀하면 고참들의 매타작이 기다리고 있었고, 구보 잘하는 쫄병들에게는 눈치가 보여 큰소리 한 번 치지 못했습니다. 다행이 상병달고 몇달 지나니 그제서야 낙오를 면하게 되더군요. 짭밥의 무서움을 알았습니다. 제대하는 날 부대 정문을 나와 뒤돌아보며 내뱉은 저의 一聲은 " 내생애 구보와 등산은 없다"였습니다.
Y형!
그러던 내가 마라톤을 시작하게된 계기는 참으로 우연이었습니다. 2002년 겨울 어느날 직장에 같이 근무하는 웬 사람이 저에게 오더니 "몸마라톤대회에 참가해 보지않겠느냐"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저의 직장 마라톤동호회인 황소걸음 초창기 멤버이자 총무이셨지요. 순간 "마라톤? 그거 군댓말로 구보아닌가?" 라는 생각에 25년전 군 생활때의 악몽이 떠올라 한마디로 거절하였습니다.
며칠후 목욕탕엘 갔는데 거울에 비친 저의 모습이 영 볼품이 없더군요. 일어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배가 얼마나 나왔는지 발끝이 보일락 말락하였습니다. 좀 심각한 생각이 들더군요. 아내도 배나왔다고 연신 잔소리를 해대지, 때마침 체력검정제도도 생겨 곧바로 헬스클럽에 가입하여 매일 런닝머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약3개월 가량 꾸준히 다녔는데도 뱃살은 줄어들 조짐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마라톤을 하면 빠질려나? 라는 생각이 들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2003년 봄 여주 세종대왕 마라톤대회에 처음으로 하프코스 신청을 하였으나 결국 참가하지 못하고 있다가 평창 피닉스 하프마라톤대회에 2시간 30분으로 완주했습니다. 2003년 조선일보 춘천마라톤대회에는 아내의 기습신청으로 4시간 18분에 완주하였습니다. 고통스럽게 완주후 운동장에 누워 하늘을 보니 온통 파란색에 구름 점이 그렇게 편할수 없더군요. "! 이게 평화로구나. 이맛에 마라톤을 하는구나."
Y!형
완주후 느끼는 짜릿함..뱃살빼는것보다 그 맛에 나는 마라톤에 푹 빠졌습니다. 퇴근후 집에가면 아들녀석과 컴퓨터를 서로 차지할려고 한바탕 싸우고 나서 마라톤싸이트만 염탕하며 돌아다녔습니다. 온라인 마라톤, 러114, 월광소나타등등 참 많더군요.
그러기를 1년 남짓 황소걸음 총무를 맡아 매원 동호회 회원들과 하프 또는 풀코스 대회에 참가하던중 2003년 추석 무렵 텔레비젼 프로그램에 한반도 횡단 울트라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완주하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온몸에 전율이 흐르면서 눈시울이 드거워 졌습니다. 아! 저런것도 있구나. 처음 울트라대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은근히 도전하고 싶어졌습니다. 당초 3년내지 4년간 풀코스 참하후 4시간 안에 완주하고 도전할려고 했으나 "기왕 마음먹은것 일찍 도전하자"라고 생각하고 인터넷을 여행하고 있는데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가 있더군요. 그런데 대회일이 춘천대회 풀코스 참가후 바로 다음주라 망설여 졌습니다.몸이 회복될 지도 모르고 대회 참가비도 만만치 않아 인터넷으로 신청만 하고 입금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신청 마감일 주최측에서 빨리 참가비를 입금하라는 연란이 왔습니다. 준비도 안된상태이고 겁도나고 해서 포기하였습니다. 조금은 미련을 간직한 채.... 그러던 어느날 서울마라톤 홈페이지에 추가로 접수한다는 내용이 올라와 있더군요. 순간 "아!나를 위하여 접수를 연기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주머니 지갑을 열어보니 달랑 2만원뿐. 아내에게 얘기하면 말릴것이 분명하고. 밤새 곰곰히 생각해도 적당한 대안이 없던 찰라 저의 비자금통장을 정리해 보니 고등학교 딸아이의 학비가 입금되었더군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든가
얼른 출금하여 입금하였습니다. 막상 참가비까지 입금하고나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더군요. 이제 남은것은 죽어라고 연습하는 것이다.
그리고 10월30일 토요일
Y형!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처럼 긴장과 엄숙한 마음으로 가지고 갈 짐을 챙겼습니다.
64키로지점에서 갈아입을 속옷, 신발, 황소걸음 티셔츠, 시계, 바늘, 수건, 쵸코파이등등 얼마나 많은지 정신이 하나도 없더군요.아내는 며칠전 부터 참가비 15만원 잃어버린셈 치고 나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막상 더나보내려니 걱정이 되는지 점심에 삼계탕을 사주더군요. 긴장이 되어 먹는둥 마는둥 오후 2시 30분 잘갔다오겠다는 화이팅을 외치며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오후 5시30분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 도착하니 평서 안면이 있는 이대연님, 손무학님께서 벌써 와계시더군요. 반가왔습니다. 추최측에서 마련한 전야제를 관람하고 뷔폐로 저녁식사를 한 후 숙소에 들어가니 일행들은 벌써 배벊호 달고, 테이핑하고 발맛사지를 하는등 내일 참가할 준비를 하고있더군요. 저도 그들틈에 끼어 이것저것을 챙겼습니다. 일행중 울트라에 세번 도전하면서 지난번 한반도 횡단에 성공한 분이 "80키로라 관건이다. 이곳에서는 아프지 않은곳이 없다. 이곳만 통과하면 완주할 수 있다"며 장거리 달릴때의 주위할 점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밤 9시 일찍 잠자리에 들어 새벽 3시반에 잠을 깼습니다. 간밤에 주위의 소란과 옆사람의 코고는 소리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몸이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비몽사몽간에 대회장으로 갔더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어둠속에서 참가자들은 벌써 몸을 풀고있었습니다. 60세가 넘은 사람, 아줌마, 부부, 연인들....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왜 달릴까? 무엇을 얻을려고 모였을까? 마라톤에 중독된 사람들일거야..저마다 완주에 대한 자신감에 차 있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잇는데
5시 정각! 어둠속에서 사회자의 출발소리와 가족들의 응원속에 100키로의 대 장정에 들어갔습니다. "잘 다녀 오세요"라는 얘길 들으니 마치 옛날 군대갈 때의 생각이 났습니다. 그 군중들과 함께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을 내딛으면서 출발하였습니다. "완주만 하자. 이것은 기록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10키로 지점
상태가 아주 좋았습니다. 서울을 깨우는 새벽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더군요. 몸상태도 아주 좋았습니다. 지난주 풀코스 완주한 사람 답지 않게..
20키로-30키로 지점
아침햇살이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서울은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 살아 움직이고 있고 몸에서는 땀이 서서히 나기 시작했습니다.강아지를 데리고 나온사람. 조깅하는 사람. 인라인스케이트 타는 사람. 강남마라톤동회 회원들...그들에게 회이팅을 해주며 상캐한 기분으로 주로 중간중간에 있는 음료수와 먹을거리를 먹어가며 룰룰라라 달렸습니다. 오히려 오버페이스 할려는 충동을 억지로 참았습니다.
42.195키로
여기까지 지난 일요일도 달인 거리다. 더 이상 달려보지 않았는데... 이제 다시 시작이다. 몸상태를 확인하니 아직 달릴 힘이 남아있었습니다.
62키로지점 (반환점)
여기까지 몸은 힘들었지만 참 잘뛰었습니다. 아침에 맞긴 백에서 운동화와 양말을 갈아신고, 황소걸음 티셔츠도 갈아입었습니다. 주최측에서 죄공한 전복죽을 먹었습니다. 난생처음 먹어본 전복죽. 참 맛있더군요. 먹었다기 보다 마셨습니다. 고등학교때 4시간 끝나면 노는 시간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물아 말아 마셧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연거푸 세그릇을 마시고나니 담배생각이 간절하더군요. 담배 한 대 피우면 힘이 솟을 것 같은데.. 참가자들에게는 없을테고. 옆을 보니 공원에 놀러온 사람이 있길래 염치불구하고 한대 얻어 피우고 또 달리기 시작했습니다."이제 반환점을 돌았다. 집에가자. 어서 빨리 돌아가자"
70-80키로
피로가 왔습니다. 지난주 풀코스 뛴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다리가 아프고 5키로마다 설치한 팻말이 가도가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연도에 나와있는 수많은 사람들-놀러 나온 사람. 운동하는 사람. 응원하러 온 사람 그리고 눈물나게 고마운 자원봉사자- 지만연님 회이팅, 힘내세요...어! 저사람봐. 황소걸음이래! 황소는 걸어가야 되는것 아니야? 그런데 잘 뛰네...그들의 응원을 받으며 고통스런 다리를 이끌고 앞으로 나갔습니다.
80키로-90키로
눈물이 났습니다. 해는 서서히 지고 저녁 노을진 한강변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서울의 경치는 커녕 눈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누구하나 도와 줄 사람 없고 가도가도 끝이 없는 지루한 길 지루하고 고독한 레이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은 결국 태어남도 혼자요 마감도 혼자라 그럴 수 밖에 없구나. 지난날 부모님께, 아내에게, 친구들에게 한 나쁜 짓, 나쁜 행동들이 머릿속에 지나갔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부모님, 여보, 친구들아" 다시는 잘못 안할테니 아프지만 말게해 줘"........그리고 졸음이 왔습니다. 군대시절 여간행군 하면서 앞 사람의 발자국만 따라갔던것 처럼 앞사람의 발자국만 따라 뜀반 걸음반 무의식적으로 마치 기계처럼 발을 옮겼습니다. 발목의 뼈가 갈라지고살이 찢기는 아픔, 걸을 힘조차 없어 포기하고 싶은 간절함. 내가 왜 이 미친 짓을 하는가? 왜 울트라에 스스로를 구속시켰는지애 대한 회의...온갖 생각이 떠올라 눈물이 났습니다. 뒤쪽 저멀리에서는 앰블란스가 저승사자처럼, 어둠처럼 스멀스멀 나를 따라오는데 저거 타느냐 아니면 계속 달릴 것인가? 갈등이 심했습니다. 만일 저걸 탄다면 난 평생 후회할지 몰라. 언제 또 울트라를 해볼 것인가. 여기에서 포기하면 그동안 달린것이 아깝지 않은가? 아내가, 아들이 응원하고 있다. 그래 계속 가자. 92키로 지점인가 급수대에서 종아리에 멘수래담을 바르고 큰대자로 누워 발을 위로 올렸습니다. 아! 달콤한 잠이 쏟아졌습니다. 천국이 따로 없더군요. 자면 안된다. 자면 죽는다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다시 뛰었습니다. " 외로워도 아파도 나는 안걸어..참고 참고 또 참고 달리지 왜걸어"
90키로-골인
날은 저물어 어두워졌습니다. 새벽 5시 출발하여 지금까지 12시간, 하루의 반을 달렸습니다. 추위가 엄습했습니다. 짧은 황소걸음티셔츠를 입은탓에 땀으 식으니 아래윗니가 덜덜떨리며 오한이 오고있었습니다. 그때 저를 추월해가는 한 70세가 넘어보이는 노인 한분이 있었습니다. 동회회 회원들이 영차영차!00형님 회이팅 응원을 하며 저를 추월해 가는데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올까? 나도 저 나이에 저렇게 달릴 수 있을까? 제 자신이 창피했습니다. 이제 표지판은 4키로를 알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내가 평소 연습하던 홍천강 한바퀴야. 이 고통도 잠시면 끝나. 그럼녀 넌 완주한거야" 스스로에 체면을 걸며 골인지점에 도착하니 "478번 지만연 황소걸음 지만연님이 완주했습니다."라는 사회자의 환호를 받으며 골인테이프를 갈랐습니다.그리고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시계는 13:00:15초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이제 됐다. 나를 구속하던 울트라에서 해방됐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여보! 나 완주했어" 라는 말을 하는 순간 닭똥같은 눈물이 흘렀습니다. 골인후 주최측에서 준비한 사진을 찍고 간단히 샤워를 한 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에오니 아내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더군요. 나는 소주1병을 단숨에 비우고 깊은 잠속에로 빠져들었습니다.
Y형!
13시간의 지독하고 긴 고독
누가 물어봅니다.
왜 달리느냐고..
그러면 나는 대답합니다.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하였다고.
누군가 그럽니다.
그거 미련함과 오기 아니냐고
그러면 나는 대답할 겁니다.
도전과 성취라고
누군가 또 물어봅니니다.
다시 도전할 거냐고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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