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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두울 세엣 네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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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수진 작성일04-06-02 15:30 조회3,3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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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만히 귀기울이면 남편의 힘찬 구령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벌써 여러날이 지났는데도 그 구령소리는 현실처럼 귓바퀴에 쟁쟁하다.
그러나 믿어지지 않는다. 거실 가족사진 액자 옆에 완주의 영광을 뚜렷하게 확인시켜 주는 금빛 메달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데도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10km라는 결코 짧지 않은 거리를 내 두 다리로, 두 팔을 휘저으며 뛰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 혼자서 다리를 만저보고 팔도 휘저어 보다가 웃는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남들에겐 아무 것도 아닌 10km 마라톤이 내겐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남의 일이었다.
지난해 새해 계획으로 남편이 뜬금없이 마라톤을 하겠다며 일요일 새벽마다 안양천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세번째로 하프코스를 완주하며 골인지점에 들어와 메달을 목에 걸고 두 아들과 사진을 찍었을 때도 나는 그저 즐겁기만 했다.
완주 때문이 아니라 목표를 세우고 세운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도 듬직했기 때문이었다.
계획이란 것이 운동이고 더구나 뒤늦게 얻은 아이들에게 노력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각인시켜 주겠다는 심산으로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10개의 메달을 따겠다는 목표를 세운 남편이 어린아이같기도 했지만 나는 열심히 응원을 갔다. 같이 마라톤을 하게 될 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날, 남편은 나에게 농반진반으로 한가지 제안을 했다. 말이 제안이었지 사실은 통보에 가까왔다.
2005년 결혼 10주년 자축 기념으로 제주도에 여행을 가자고 한 남편은 대뜸 그 때까지 몸무게를 아이들 낳기 전인 52kg(현재 56kg)으로 줄이라며 내 손을 붙잡고 헬쓰장으로 끌고 갔다.
내심 허리에 잡히는 살들이 조금씩 부담스러워지던 터라 못이기는 척하고 등록을 했다. 처음에는 다른 아줌마들처럼 정말로 헬쓰를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날이 가면서 남편은 조금씩 속내를 드러냈다. 지나가는 말처럼 마라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기 때문에 나는 재미삼아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맞장구를 쳐 주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그것은 내게 마라톤에 대한 부담감을 희석시켜주기 위한 고도의 책략이었다.
헬쓰를 등록한 지 두 달 정도가 지나면서 남편이 포섭해 놓은 헬쓰관리사가 런닝머신에서 걷고 뛰는 시간을 조금씩 늘리도록 지도를 했다. 체중 감량에 걷기 만한 것이 없어서 나름대로 열심히 따라했다. 그러나 태어나서 제일 길게 뛰어 본 거리가 고등학교 때 800m가 다라 마라톤을 하겠다는 생각을 꿈에서도 해 본 적도 없었기에 아무런 부담도 가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런닝머신에서 20여분 걷는 것도 땀이 비오듯 했고 숨이 가빠 마라톤은 엄두도 내지 않았다.
결국 남편은 일을 냈다. 운동을 갔다온 나의 몸상태를 빼놓지 않고 파악해 온 남편은 무슨 파단이 섰는지 덜렁 서울마라톤 10km 코스에 접수해 버렸다. 남편은 그냥 분위기만 느끼고 걷다가 오라고 했다. 뛰기 힘들면 걷고 뛸 수 있으면 뛰고 그래도 괜찮다고 다독여주었다.
'과연 뛸 수 있을까?'
걱정이 됐지만 한편으론, 남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까, 하는 오기도 생겼다. 그러나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런닝머신에서 제일 길게 오래 뛴 것이 불과 4km 남짓인데...그보다 두 배 반을 더 가야 한다니...
'그래, 내가 헬쓰를 시작했을 때 동생들이 한달을 못 채울 것이라고 비아냥거린 것도 자존심 상하는데, 해 보지 뭐! 뛰다가 못뛰면 걸으면 되지!'
그러나 남편은 그 불안감마저 염두하고 있었다.
서울마라톤이 있기 일주일 전 저녁, 남편은 칫솔로 깨끗하게 빨아말린 마라톤화와 청색 머리띠를 내 앞에 내놓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꿈속에 빠져있는 두 아들을 아랫집에 사는 동생에게 맡기고 나를 차에 태우더니 올림픽대로를 거쳐 잠실로 향했다. 어딜 가느냐고 물어도 입을 다물고 도착할 때까지 웃기만 한 남편이 간 곳은 잠실운동장. 그때서야 나는 눈치를 챘다. 며칠전부터 같이 가 주겠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았다.
(대회 주최측에는 미안한 일이지만) 남편은 번외로 그 마라톤에서 연습삼아 나를 에스코트할 계획을 진작부터 세워둔 것이었다. 나는 겁도 났지만 남편 말대로 뛰지 못하면 걸을 요량으로 청색물결의 참가자 숲에 합류했다.
남편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그림자가 되어 주었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내가 힘들어 할 때면 길게, 조금 힘이 나는 것 같으면 짧게 남편은 군대에서 구보할 때
해 보고 처음하는 것이라며 10km 내내 구령을 붙여 주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막아 섰고, 길이 좁아 사람이 부딪힐 것 같으면 길을 내주며 10km를 같이 뛰고 같이 걷었다. 구령 때문인지 뛰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5km를 넘어서자 갈빗대 밑이 약간 결리기는 했지만 다리는 아프지 않았다. 걷다 뛰다 뛰다 걷다 남편은 순간순간 내 몸상태를 물어가며 보조를 맞추어 주었다.
비공식 기록으로 한 시간 10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지만 나는 해낸 것이다. 비록 연습이었지만 뛴 거리는 분명히 10km였다.
'봐 할 수 있잖아! 다음 주엔 혼자하는 거다. 오늘 내가 한 구령 잘 기억해!' 하고 남편은 예의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3월 7일. 드디어 내 생애 처음으로 참가하는 공식 마라톤경기인 서울마라톤.
남편과 함께 전날 일찍 친정에 가서 아이들을 재우고, 잠을 청했다.
분명히 연습에서 10km를 뛰었는데,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남편이 옆에서 구령을 붙여주어서 뛰었는지도 몰라. 또 날씨도 좋았고...내일은 영하
7도라는데 춥지 않을까! 추우면 귀가 시려워 머리가 아플텐데......못 뛰면 어떡하지?'
이유있는 걱정에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예보대로 날씨는 차가왔다. 영하 7도까지는 안 될지 모르겠지만 영하는 틀림없는 것 같았다.
대회장은 눈천지였다. 얼마전 내린 폭설이 행사장을 완전히 뒤덮고 있었다. 아무리 11시가 넘어 출발한다지만 바람마저 불어 체감온도는 분명히 영하권이었다. 그러나 엎지러진 물이었다. 위안은 나이 지긋한 아줌마와 할아버지 심지어 예닐곱 살 정도의 여자아이들도 가슴에 푸른색의 참가번호표를 자랑스럽게 달고 있다는 것이었다.
몸풀이 체조를 따라하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드디어 풀코스가 출발하고 하프코스가 출발했다.
'남편도 저기에 있을 것이다. 오늘은 구령을 붙여줄 남편은 없다. 그 구령을 기억해 내고 스스로의 구령에 맞춰 혼자 가야 한다.'
나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E그룹에 속한 행렬이 드디어 출발선을 통과했다. 가벼운 흥분이 전신을 휘감았다.
'이제 뛰는구나. 나는 드디어 뛰는구나.'
옆에 같이 달리기로 한 초등학교 5학년 조카는 기운차게 팔을 저으며 달려나갔다. 나는 남편이 붙여주던 구령의 박자를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칼날같은 바람, 바람막이 비닐 부딪는 소리, 헐떡이는 숨소리가 기억을 가로막았다. 뒷바람이지만 영하의 날씨라 옷깃을 스치는 것만으로도 살이 아린 것 같았다. 4km 지점 자꾸 앞서 뛰려는 조카를 먼저 보냈다. 따라 뛰다가는 나중에 걸어들어올 것 같아서였다.
달려나가는 참가자들의 등을 보며 발을 놀리면서 나는 경험만한 스승이 없다는 말을 절실히 실감했다. 이미 내 다리는 남편의 구령을 암기하고 있었다. 5km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5km 반환점을 돌자, 예견했던 어려움이 닥쳤다. 아까의 뒷바람은 이제는 맞바람으로 바뀌어 앞으로 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내 몸을 밀쳐내고 있었다. 다행스럽게 귀는 아프지 않았는데(아프지 않은 것인지 감각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거센 바람은 비닐속을 마음대로 헤집고 들어와 온몸의 솜털들은 일시에 봉기시켰다. 털이란 털이 오소소 소름으로 돋아나 대놓고 들까불렸다.
'걸을까? 아니야, 반이나 지났는데, 속도를 줄이자!'
나는 속의 나와 싸웠다. 기왕 뛰기로 했으면 늦게라도 뛰어야지 걸을 수는 없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그러나 몸은 내 의지와는 반대였다. 남편이 준 검정색 타이즈로 하체는 시리지 않았는데, 얇은 윗 마라톤복을 제멋대로 헤집는 바람은 발걸음을 자꾸 무디게 만들었다. 무늬만 뛸 뿐, 나는 거의 걷다시피했다. 걷다 뛰다 뛰다 걷다....비닐 부딪는 소리가 조금씩 작아지는 것을 느낄 때 저 멀리 행사장 아치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이제 다 왔나보다! 그런데 얼마나 남은 거지? 아치가 저 정도 크기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나는 완주를 하나보다. 아이들에게 엄마도 메달을 땄다고 보여줘야지, 아직 아무것도 모르지만 조금 더 크면 찬이와 진이도 엄마를 자랑스러워 하겠지!'
아무 것도 아니데, 정말 아무 것도 아닌데, 괜히 눈물이 핑돌았다. 골인지점에 놓여있는 붉은 카팻같은 발판을 밟는 순간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
'아, 나는 해냈다!'
순간, 오른쪽 모퉁이에 환하게 머리에 청색 띠를 두르고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보내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남편은 박수를 힘차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 박수소리는 너무 컸다.
'훌륭해! 그것 봐 할 수 있잖아! 멋지게 해냈잖아! 여수진 여사 만세!'
늘 남편은 아이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한다.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무엇이든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거라고...아직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내 두 아들은 정말로 남편 거실에 메달 10개가 줄지어 걸리고 날 때 쯤이면 어렴풋하게 그 의미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제 그 메달은 10개가 아니라 20개가 될 것이다. 뛰는 것이 단순히 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 나도 어렴풋하게 깨달았다. 한 걸음 한걸음 내 팔과 다리를 움직어여 앞으로 저어 나가는 과정과정이 살아있음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빨리 뛰는 것이 중요하는 것이 아니라 뛰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순간순간과 그 순간순간에 배어나는 땀이 나와 남편, 그리고 나의 두 보물들의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탱해 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영원한 나의 그림자가 되어줄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들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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