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에서 울트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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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울마라톤 작성일04-07-30 16:12 조회2,97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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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3년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 참가자 후기응모에 선정된 글로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에 참가하여 도전과 완주를 하기까지 과정을 잘 표현 한 글입니다. 울트라마라톤을 꿈꾸시고 계시는 분들께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고 몇회로 나누어 선정된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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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에서 울트라까지" [03울트라후기/가작]
적지 않은 나이에 늦둥이 출산과 더불어 세 아이의 엄마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았자만
근원적인 치료는 되지 못했다.
그때 마침 남편의 권유로 반포 달리기 모임에 큰 용기를 내어 나가 보았다.
서울마라톤클럽 박영석 회장님의 자세한 달리기 이론 설명과 더불어 직접 뛰어
보이시며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점차 달리기에 흥미를 가질 수 있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먼저 일어나 서둘러 준비하고 남편을 깨워 반달모임 장소로 향했다.
반달에 참가할 때마다
항상 건강미가 넘쳐 보이시는 박 회장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고희를 훌쩍 넘기신 박 회장 님을 뵐 때마다
우리 부부도 70세가 넘을 때까지 저렇게 달리기 생활을 계속하려면
먼저 부상이 없이 즐기면서 절대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0km, 하프, 풀을 뛰기까지 즐겁게 달릴 수 있도록
각 마라톤 사이트에서 선배님들의 소중한 경험담과 조언을 참고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100km울트라마라톤을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여 5km 대회를 2회 뛰고 난 후,
10km 대회를 달리려다 남편과 실랑이를 벌렸던 게 바로 2년 전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해 보고 싶은 충동은
잃어버린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찾고 싶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휴직을 하고나서 언제 다시 복직할 수 있을지 모르게 불투명한 주변 환경과
완벽하지 못한 전업주부로서 무늬만 엄마가 아닌지…….
자꾸만 멀어져만 가는 것 같은 자신에 대한 어떤 확신감을
울트라를 통해서 새롭게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00km을 어떻게 달릴 것인가?
단순한 완주로만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목표시간을 정해 그것을 향해 달려 갈 것인가?
많은 생각 끝에, 완주 시간을 10시간 이내로 잡기로 했다.
그것은 지난 춘천마라톤에서 3시간 38분에 골인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남편도 풀코스 기록이 그 정도이면
100km를 10시간 이내에 충분히 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게 용기를 주었다.
10월 25일 전야제 때 만난 서울마라톤 박희숙 님께 이번에 참가하느냐고 물으니
"자원봉사 해야죠."하셨다.
바보 같은 질문에 어찌나 민망하고 송구스러웠지만 한편으로 허망했다.
박희숙 님이 지난해 9시간대에 골인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기에
이번 대회에서 한번 따라 뛰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100km 울트라를 뛸 거면 확실하게 즐기자는 생각으로
완주의 목표시간을 다시 한번 9시간대로 달리겠다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왠지 그렇게 해야만 자신에 대한 어떤 믿음이 더욱 확실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2003년 10월 26일 새벽,
이번에도 이웃에 사는 수영친구 조성진 님의 도움으로 편하게 대회장에 도착했다.
매일 새벽, 수영으로 이시간이면 나는 항상 깨어 있어 신체적으로 별 무리는 없었다.
정확히 5시에 서울마라톤 윤현수 님의 힘찬 출발소리가 들려왔다.
중간 위치에서 화이팅을 외치며 서서히 울트라 여행길로 접어들었다.
어둠에 깔린 탄천은 고요히 우리를 반겨주었다.
5km를 31분대로 통과하고 10km 지점에서 시간을 보니 1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초반에 오버하지 않고 예상대로 잘 맞춰가고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앞에는 언제보아도 다정한 이장호 김선화 부부께서 나란히 발맞춰 달리고 있었다.
김선화 님께 어떻게 이렇게 남편과 함께 달릴 수 있는지 그 비법을 물으니
이장호 선생님께서 혼자 냅다 달리는 남편을 3일만 굶겨보란다.
두 분을 뒤로하고 달려가자,
5km 지점부터 함께 달려왔던 한 중년러너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분은 어렵게 재혼하신 사모님께 100km완주로 청혼하려 했는데,
시간상 먼저 결혼하게 되었다며 고뇌에 찬 한 말씀을 하셨다.
완주의 기쁨을 사모님과 함께하여 두 아드님과 더불어 행복한 가정 이루셨으면 한다.
얼마가지 않아 포항그린넷마 전해광, 김진미 부부를 만났다.
12월에 있을 호미곶마라톤대회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뽀얗게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새하얗게 머리를 수놓은 갈대꽃과 어울리면서
탄천의 아침은 가벼운 햇살에 그 속살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한강으로 접어들기 전 함께 달리던 러너들과 모두 헤어지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가볍게 느껴져 속도를 조금 더 내서 달려 보았다.
그런데 그때 탄천 세월교 급수대에서 자원 봉사를 하고 계시던
천달사 김대현 선생님께서
"송파세상이 지나간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송파를 잡으세요."
언제 뵈도 넉넉한 인상에 여유가 있어 보여 편안한 느낌이 드신 분이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남편을 따라 잡을 수 있겠는가?
날이 밝자, 암사동의 반환점을 돌아오는 주자들의 모습을
이제 표정까지 확연히 알아 볼 수 있었다.
반달에서 항상 1위를 하시는 채성만 선생님께서 밝은 미소와 함께
내 이름을 불러주며 힘을 외쳐 주시니 가슴에 기쁨이 가득 넘친 것 같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모습이 보이기에
“서방님 화이팅!”을 외쳐주니 빙긋이 웃으며 손만 들어 보이고 지나쳐 갔다.
내게 어떤 격려의 말이라도 한번 소리쳐 주면 어디 덧나나 보다.
암사동 30킬로 지점인 반환점에 2시간 47분에 도착했다.
아주 만족스런 페이스였다.
달리는데 조금 익숙하지 않는 콘크리트 주로를 지나자
반달에서 30km를 뛸 때 수없이 달려 보았던 길이 저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갑자기 편안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머님의 품처럼 포근하게 감싸주는 한강을 벗 삼아
달리는 이순간의 행복감에 마냥 취하고 싶어졌다.
청담대교 밑을 지나자 부드러운 미소가 일품인 런하이 조대연 선생님께서
서울마라톤 깃발을 흔들며 힘차게 응원을 해 주신다.
손을 흔들어 고마움을 전하고 동호대교 밑에 이르자
그곳에서 자원봉사 중이신 문성재 화백님의 사모님께서 꿀맛 같은 김밥을 주시기에
급하게 받아먹고 신이 난 아이처럼 그냥 뛰쳐나갔다.
그런데 한남대교 밑을 통과하면서 왼쪽 다리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속도를 줄여 천천히 달려보니 조금 괜찮아 진 것 같았다.
하지만 반달의 언덕이라는 잠수교 위를 넘기 전부터
왼쪽 무릎 뒤쪽이 팽팽하게 당기면서 뻣뻣해졌다.
언덕을 오른 후 두 손으로 그 부위를 주무르고 스트레칭을 해보았다.
그런데 그때 어떤 남자분도 나와 똑같이 왼쪽 다리가 이상하다며
저 앞에 있는 급수대까지 서서히 걸어가자고 했다
46킬로 지점에서 자원봉사하고 계시던 노고운해 윤상문 선생님께서
수지침 책을 찾아가며 침을 건네주며 달리다가 손등에 자극을 주라고 했다.
겁이 나 도저히 그것으로 내 손을 찌를 수가 없어 그냥 그것을 들고 걷다 뛰기를
반복하니 53km 지점인 여의도 제 1관문이 보였다.
그곳에서 서울삼성병원 부부런너스 이장호, 김선화 부부를 다시 만났다.
찡그리며 어색하게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자상하신 이장호 선생님께서 쥐가 났을 때의 자세를 일려주었다.
53km 지점에서 자원봉사 하시던 서울마라톤 정영철 선생님께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옆에 있던 런클 여성분이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보고 타이즈를 갈아입으라며 권하면서
옷과 양말을 갖다 주며 도와주고 나서 쥐가 난 다리 부위를 침으로 찔러 주었다.
그런데 아무런 통증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더 찔러보라고 했더니
찌른 부위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며 겁먹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다시 달리려 하니 그동안 16분이 소요되고 말았다.
10시간 이내에 골인하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은데
속도를 내서 달리려하면 여전히 똑같은 마비 증상이 반복되어 나타났다.
침으로 찌른 안쪽 허벅지 부위에서 밴드를 붙었지만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처음 있는 일이라 당혹스러워 포기를 해야 하는 건지, 참고 계속 뛰어야 할지
고통과 함께 심한 갈등이 일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렇지만 가양대교가 참으로 멀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픈 다리를 달래며 한참을 달린 것 같은데 계속해서
달리기에 불편한 콘크리트길만 이어지고 있었다.
반환점은 어디쯤에 있을까?
고개를 빼고 힘겹게 찾고 있는데,
이번 대회에서 6위를 한 서울마라톤 윤덕하 선생님께서 "송파 힘!"을
뒤이어 진재봉 선생님도 "유행애 화이팅!"을 외쳐 주신다.
달려가는 몸매도 자세도 모두 고수님들이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저쪽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쥐난 다리가 괜찮으냐고 묻더니
급수대마다 물과 음식을 먹고 반드시 스트레칭을 하라는 말을 남기곤
그냥 횅하니 뛰어 가버렸다.
아무리 9시간 이전에 골인할 목표로 뛰고 있다고 해도 그렇지
어찌나 서운한 마음이 앞서던지 순간적으로 눈물이 핑 돌았다.
거리상 함께 할 수 없다지만 같이 좀 뛰어주겠다고 말하면 안 될까?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면 내가 먼저 가라고 했을 텐데…….
가도 가도 끝없을 것 같은 콘크리트 주로가
서울마라톤 깃발과 함께 64.82km 지점인 마지막 반환점이 보였다.
시간을 보니 6시간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다리에 쥐만 아니라면 아직까지도 10시간 이내에 완주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었다.
그때 지난 9월 서울마라톤 12시간 연습주에서 만난
이영재 선생님께서 힘을 외쳐주지 않는가?
서로 힘든 과정을 겪어서인지 진한 동지애 같은 것이 느껴졌다.
노란 쭈꾸미 모자를 둘러 쓴 문정복 사장님께서 끓여준 전복죽을 먹고 나서
가능하면 먹지 않겠다던 진통제 두 알을 삼켰다.
그리고 쥐가 난 부분에 소염제 로션을 바르고
좀 더 쉬고 싶다는 약한 마음을 털고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일어섰다.
얼마쯤을 달려가는데 그때서야 우리 아파트 이웃인 임광선 님께서
상당히 힘들어하는 표정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초반에 같이 달렸기에 다시 만나니 반가웠지만
다리 부상으로 무척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자,
끝까지 같이하지 못 한 것이 못내 미안한 감이 들었다.
양화대교를 지나 여의도 못 미친 곳에서 자원봉사하신 분들이
소염제 로션으로 다리 마사지를 해주었다.
처음에는 민망스러웠지만 시원한 감이 들어 한결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다시 조금 속도를 내서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부쩍 늘어난 자전거 일행들 때문에
주로를 정리하고 계시던 서울마라톤 거리의 신사 신동희 선생님께서
내게 괜찮은지 물어왔다.
고마운 마음에 손을 흔들어 답례를 보내면서 "좋습니다!"라고 힘을 주었다.
다시 63빌딩이 있는 곳에 이르자
어여쁜 런클 언니들이 다리 마사지를 해주며 침 맞았던 다리가 괜찮은지 물어왔다.
달리기에 온전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정성 덕분에 완주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이 건네주는 수박을 들고 다시 뛰기 시작하자
열혈남아 정영철 선생님께서 달려와 “힘”을 외치며 격려를 보내주었다.
노량대교 밑을 통과하여 동작대교 부근에 이르렀을 무렵,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인라인과 비킬 치면서 나와 부딪칠 뻔 했다.
너무나 순간적이었다.
아찔하고 오싹해서 갑자기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리면서
온몸에 힘이 쭉 빠져 버린 것 같았다.
마라톤대회 하는 날만큼이라도 주로 통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 2관문인 반포대교 밑을 통과하니 문성재 화백께서
11시간 이내에 골인지점에 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일려 주었다.
안타까운 생각이 몰려왔다.
10시간 이내에 완주하고 싶었는데 뜻하지 않게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은 거리도 힘은 들겠지만 최선을 다해 달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 부부런너스 이장호 선생님도 다리에 쥐가 났는지
김선화 언니께서 선생님을 이끌어 주신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저려오는 다리를 불편하게 이끌고 계속 달려서 인지 이제 허리 통증까지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동호대교 급수대에서 그 통증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해
한손으로 허리를 받치며 엎드려서 물을 마시고 있으니까
서울마라톤 송진우 선생님께서 허리를 두드려 주시면서 어깨 마사지까지 해주었다.
내가 100km를 달리기 위해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미처 몰랐었다.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시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그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왼쪽 다리와 허리 통증을 참아가며
아무런 생각 없이 오직 달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탄천에 이르렀다.
새벽녘의 여명과 함께 물안개가 피어오르던 탄천 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후 2시를 넘긴 맑은 가을 햇살이 사선을 그으며 내리쬐고 있다.
이제 8km만 가면 골인 지점에 이르게 된다.
넓지 않은 길을 따라 실개천처럼 흐르는 물은
익어가는 가을의 풀잎들을 노래하면서도 마지막 고통으로 나를 몸부림치게 했다.
이렇게 힘든 여정은 내면의 자신을 찾아 떠나는 수행일까?
울트라마라톤까지 달려야 하는 자신에게 새삼스런 질문을 던져보지만
땀으로 얼룩진 자국들이 지금껏 달려온 것에 대한 전리품처럼
검은 타이즈에 허옇게 베어있을 뿐이었다.
외양적인 결실보다 내면에 흐르는 성숙을 달리기를 통해서 얻고 싶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자신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없다면
그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결실을 자신에게만 예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마라톤을 통해서 알 게 되었다.
고통스럽지만 참고 달릴 수 있다는 것은 완주 후에 오는 희열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과 수많은 약속을 하지만 그중에 지켜지는 것은
극히 일부분일 뿐, 대부분의 것들은 기억의 편린 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우리의 생도 그러하리라.
기나긴 나날을 살아온 것 같지만
되돌아보면 한줌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 얼마나 될까?
그렇기에 우리는 지난날에 자신이 이룬 것을
단 몇 줄로도 떳떳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 아파하는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렇게 점점 왜소해져 가는 자신을 괴로워하기보다
내면에서 울어 나오는 즐거움을 통해 내 생활의 한 형태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나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내면의 자신을 추스를 수 없을뿐더러
그것을 스스로도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내게 다가온 마라톤은 내면의 자신을 찾는 도구로 느껴졌다.
달리면서 포기하고 싶은 수많은 갈등들을 이겨내고
무사히 완주했을 때 찾아오는 쾌감은 분명히 최고의 선을 추구하는 어떤 종교적
신념처럼 자신을 향한 자신감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까지 극심한 고통을 참아내며 달려왔고 앞으로도 달려갈 것이다.
교육문화회관으로 향하는 탄천 주로는
새벽녘에 달려 나올 때보다 훨씬 멀게만 느껴졌다.
달려도 달려도 엿가락을 늘려놓을 것처럼 거리 표지판은 더디게만 나타났다.
결혼1주년의 의미를 자축하기위해 달린다는 울트라부부 이영숙, 길천재 님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보니, 어느 덧 교육문화회관으로 향하는 다리가 보였다.
오르막의 다리를 건너자, 이미 골인 했던 남편이 나와 함께 달려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달려오는 나를 보자마자 쥐가 난 다리를 걱정하며 괜찮은지 물어왔다.
무심하게 홀로 달아났을 때를 생각하면 원망스러웠지만
골인점이 저 앞에 보여선지
그 모든 것들이 울트라 여정의 한 부분으로 용해되어 사라져 버리고
완주를 축하해주는 방송소리만 가슴 벅차게 들려왔다.
우리는 맞잡은 두 손을 머리위로 벌리며 골인 지점을 통과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부로 거듭나고 있었다.
(완주기록 10시간 36분 32초)
고독한 100km울트라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나는 수확을 마친 들녘에 서 있다.
무모하게 나 자신을 울트라에 내던졌지만,
도전하였기에 얻을 수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삶에 대한 값진 열매로 되돌아 와 있다.
그렇기에 100km울트라마라톤은 풀코스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단,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들을
확실한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그것에 임한다면.......
반달에서 울트라까지 뛸 수 있게 도와주신 반달가족 들과
서울마라톤 박영석 회장님, 그리고 대회 관계자님들을 비롯하여 자원봉사자분들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모두모두 달리기로 항상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서울울트라마라톤 A116 유행애 올림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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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에서 울트라까지" [03울트라후기/가작]
적지 않은 나이에 늦둥이 출산과 더불어 세 아이의 엄마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았자만
근원적인 치료는 되지 못했다.
그때 마침 남편의 권유로 반포 달리기 모임에 큰 용기를 내어 나가 보았다.
서울마라톤클럽 박영석 회장님의 자세한 달리기 이론 설명과 더불어 직접 뛰어
보이시며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점차 달리기에 흥미를 가질 수 있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먼저 일어나 서둘러 준비하고 남편을 깨워 반달모임 장소로 향했다.
반달에 참가할 때마다
항상 건강미가 넘쳐 보이시는 박 회장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고희를 훌쩍 넘기신 박 회장 님을 뵐 때마다
우리 부부도 70세가 넘을 때까지 저렇게 달리기 생활을 계속하려면
먼저 부상이 없이 즐기면서 절대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0km, 하프, 풀을 뛰기까지 즐겁게 달릴 수 있도록
각 마라톤 사이트에서 선배님들의 소중한 경험담과 조언을 참고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100km울트라마라톤을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여 5km 대회를 2회 뛰고 난 후,
10km 대회를 달리려다 남편과 실랑이를 벌렸던 게 바로 2년 전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해 보고 싶은 충동은
잃어버린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찾고 싶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휴직을 하고나서 언제 다시 복직할 수 있을지 모르게 불투명한 주변 환경과
완벽하지 못한 전업주부로서 무늬만 엄마가 아닌지…….
자꾸만 멀어져만 가는 것 같은 자신에 대한 어떤 확신감을
울트라를 통해서 새롭게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00km을 어떻게 달릴 것인가?
단순한 완주로만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목표시간을 정해 그것을 향해 달려 갈 것인가?
많은 생각 끝에, 완주 시간을 10시간 이내로 잡기로 했다.
그것은 지난 춘천마라톤에서 3시간 38분에 골인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남편도 풀코스 기록이 그 정도이면
100km를 10시간 이내에 충분히 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게 용기를 주었다.
10월 25일 전야제 때 만난 서울마라톤 박희숙 님께 이번에 참가하느냐고 물으니
"자원봉사 해야죠."하셨다.
바보 같은 질문에 어찌나 민망하고 송구스러웠지만 한편으로 허망했다.
박희숙 님이 지난해 9시간대에 골인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기에
이번 대회에서 한번 따라 뛰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100km 울트라를 뛸 거면 확실하게 즐기자는 생각으로
완주의 목표시간을 다시 한번 9시간대로 달리겠다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왠지 그렇게 해야만 자신에 대한 어떤 믿음이 더욱 확실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2003년 10월 26일 새벽,
이번에도 이웃에 사는 수영친구 조성진 님의 도움으로 편하게 대회장에 도착했다.
매일 새벽, 수영으로 이시간이면 나는 항상 깨어 있어 신체적으로 별 무리는 없었다.
정확히 5시에 서울마라톤 윤현수 님의 힘찬 출발소리가 들려왔다.
중간 위치에서 화이팅을 외치며 서서히 울트라 여행길로 접어들었다.
어둠에 깔린 탄천은 고요히 우리를 반겨주었다.
5km를 31분대로 통과하고 10km 지점에서 시간을 보니 1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초반에 오버하지 않고 예상대로 잘 맞춰가고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앞에는 언제보아도 다정한 이장호 김선화 부부께서 나란히 발맞춰 달리고 있었다.
김선화 님께 어떻게 이렇게 남편과 함께 달릴 수 있는지 그 비법을 물으니
이장호 선생님께서 혼자 냅다 달리는 남편을 3일만 굶겨보란다.
두 분을 뒤로하고 달려가자,
5km 지점부터 함께 달려왔던 한 중년러너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분은 어렵게 재혼하신 사모님께 100km완주로 청혼하려 했는데,
시간상 먼저 결혼하게 되었다며 고뇌에 찬 한 말씀을 하셨다.
완주의 기쁨을 사모님과 함께하여 두 아드님과 더불어 행복한 가정 이루셨으면 한다.
얼마가지 않아 포항그린넷마 전해광, 김진미 부부를 만났다.
12월에 있을 호미곶마라톤대회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뽀얗게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새하얗게 머리를 수놓은 갈대꽃과 어울리면서
탄천의 아침은 가벼운 햇살에 그 속살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한강으로 접어들기 전 함께 달리던 러너들과 모두 헤어지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가볍게 느껴져 속도를 조금 더 내서 달려 보았다.
그런데 그때 탄천 세월교 급수대에서 자원 봉사를 하고 계시던
천달사 김대현 선생님께서
"송파세상이 지나간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송파를 잡으세요."
언제 뵈도 넉넉한 인상에 여유가 있어 보여 편안한 느낌이 드신 분이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남편을 따라 잡을 수 있겠는가?
날이 밝자, 암사동의 반환점을 돌아오는 주자들의 모습을
이제 표정까지 확연히 알아 볼 수 있었다.
반달에서 항상 1위를 하시는 채성만 선생님께서 밝은 미소와 함께
내 이름을 불러주며 힘을 외쳐 주시니 가슴에 기쁨이 가득 넘친 것 같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모습이 보이기에
“서방님 화이팅!”을 외쳐주니 빙긋이 웃으며 손만 들어 보이고 지나쳐 갔다.
내게 어떤 격려의 말이라도 한번 소리쳐 주면 어디 덧나나 보다.
암사동 30킬로 지점인 반환점에 2시간 47분에 도착했다.
아주 만족스런 페이스였다.
달리는데 조금 익숙하지 않는 콘크리트 주로를 지나자
반달에서 30km를 뛸 때 수없이 달려 보았던 길이 저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갑자기 편안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머님의 품처럼 포근하게 감싸주는 한강을 벗 삼아
달리는 이순간의 행복감에 마냥 취하고 싶어졌다.
청담대교 밑을 지나자 부드러운 미소가 일품인 런하이 조대연 선생님께서
서울마라톤 깃발을 흔들며 힘차게 응원을 해 주신다.
손을 흔들어 고마움을 전하고 동호대교 밑에 이르자
그곳에서 자원봉사 중이신 문성재 화백님의 사모님께서 꿀맛 같은 김밥을 주시기에
급하게 받아먹고 신이 난 아이처럼 그냥 뛰쳐나갔다.
그런데 한남대교 밑을 통과하면서 왼쪽 다리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속도를 줄여 천천히 달려보니 조금 괜찮아 진 것 같았다.
하지만 반달의 언덕이라는 잠수교 위를 넘기 전부터
왼쪽 무릎 뒤쪽이 팽팽하게 당기면서 뻣뻣해졌다.
언덕을 오른 후 두 손으로 그 부위를 주무르고 스트레칭을 해보았다.
그런데 그때 어떤 남자분도 나와 똑같이 왼쪽 다리가 이상하다며
저 앞에 있는 급수대까지 서서히 걸어가자고 했다
46킬로 지점에서 자원봉사하고 계시던 노고운해 윤상문 선생님께서
수지침 책을 찾아가며 침을 건네주며 달리다가 손등에 자극을 주라고 했다.
겁이 나 도저히 그것으로 내 손을 찌를 수가 없어 그냥 그것을 들고 걷다 뛰기를
반복하니 53km 지점인 여의도 제 1관문이 보였다.
그곳에서 서울삼성병원 부부런너스 이장호, 김선화 부부를 다시 만났다.
찡그리며 어색하게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자상하신 이장호 선생님께서 쥐가 났을 때의 자세를 일려주었다.
53km 지점에서 자원봉사 하시던 서울마라톤 정영철 선생님께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옆에 있던 런클 여성분이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보고 타이즈를 갈아입으라며 권하면서
옷과 양말을 갖다 주며 도와주고 나서 쥐가 난 다리 부위를 침으로 찔러 주었다.
그런데 아무런 통증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더 찔러보라고 했더니
찌른 부위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며 겁먹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다시 달리려 하니 그동안 16분이 소요되고 말았다.
10시간 이내에 골인하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은데
속도를 내서 달리려하면 여전히 똑같은 마비 증상이 반복되어 나타났다.
침으로 찌른 안쪽 허벅지 부위에서 밴드를 붙었지만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처음 있는 일이라 당혹스러워 포기를 해야 하는 건지, 참고 계속 뛰어야 할지
고통과 함께 심한 갈등이 일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렇지만 가양대교가 참으로 멀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픈 다리를 달래며 한참을 달린 것 같은데 계속해서
달리기에 불편한 콘크리트길만 이어지고 있었다.
반환점은 어디쯤에 있을까?
고개를 빼고 힘겹게 찾고 있는데,
이번 대회에서 6위를 한 서울마라톤 윤덕하 선생님께서 "송파 힘!"을
뒤이어 진재봉 선생님도 "유행애 화이팅!"을 외쳐 주신다.
달려가는 몸매도 자세도 모두 고수님들이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저쪽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쥐난 다리가 괜찮으냐고 묻더니
급수대마다 물과 음식을 먹고 반드시 스트레칭을 하라는 말을 남기곤
그냥 횅하니 뛰어 가버렸다.
아무리 9시간 이전에 골인할 목표로 뛰고 있다고 해도 그렇지
어찌나 서운한 마음이 앞서던지 순간적으로 눈물이 핑 돌았다.
거리상 함께 할 수 없다지만 같이 좀 뛰어주겠다고 말하면 안 될까?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면 내가 먼저 가라고 했을 텐데…….
가도 가도 끝없을 것 같은 콘크리트 주로가
서울마라톤 깃발과 함께 64.82km 지점인 마지막 반환점이 보였다.
시간을 보니 6시간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다리에 쥐만 아니라면 아직까지도 10시간 이내에 완주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었다.
그때 지난 9월 서울마라톤 12시간 연습주에서 만난
이영재 선생님께서 힘을 외쳐주지 않는가?
서로 힘든 과정을 겪어서인지 진한 동지애 같은 것이 느껴졌다.
노란 쭈꾸미 모자를 둘러 쓴 문정복 사장님께서 끓여준 전복죽을 먹고 나서
가능하면 먹지 않겠다던 진통제 두 알을 삼켰다.
그리고 쥐가 난 부분에 소염제 로션을 바르고
좀 더 쉬고 싶다는 약한 마음을 털고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일어섰다.
얼마쯤을 달려가는데 그때서야 우리 아파트 이웃인 임광선 님께서
상당히 힘들어하는 표정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초반에 같이 달렸기에 다시 만나니 반가웠지만
다리 부상으로 무척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자,
끝까지 같이하지 못 한 것이 못내 미안한 감이 들었다.
양화대교를 지나 여의도 못 미친 곳에서 자원봉사하신 분들이
소염제 로션으로 다리 마사지를 해주었다.
처음에는 민망스러웠지만 시원한 감이 들어 한결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다시 조금 속도를 내서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부쩍 늘어난 자전거 일행들 때문에
주로를 정리하고 계시던 서울마라톤 거리의 신사 신동희 선생님께서
내게 괜찮은지 물어왔다.
고마운 마음에 손을 흔들어 답례를 보내면서 "좋습니다!"라고 힘을 주었다.
다시 63빌딩이 있는 곳에 이르자
어여쁜 런클 언니들이 다리 마사지를 해주며 침 맞았던 다리가 괜찮은지 물어왔다.
달리기에 온전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정성 덕분에 완주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이 건네주는 수박을 들고 다시 뛰기 시작하자
열혈남아 정영철 선생님께서 달려와 “힘”을 외치며 격려를 보내주었다.
노량대교 밑을 통과하여 동작대교 부근에 이르렀을 무렵,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인라인과 비킬 치면서 나와 부딪칠 뻔 했다.
너무나 순간적이었다.
아찔하고 오싹해서 갑자기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리면서
온몸에 힘이 쭉 빠져 버린 것 같았다.
마라톤대회 하는 날만큼이라도 주로 통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 2관문인 반포대교 밑을 통과하니 문성재 화백께서
11시간 이내에 골인지점에 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일려 주었다.
안타까운 생각이 몰려왔다.
10시간 이내에 완주하고 싶었는데 뜻하지 않게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은 거리도 힘은 들겠지만 최선을 다해 달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 부부런너스 이장호 선생님도 다리에 쥐가 났는지
김선화 언니께서 선생님을 이끌어 주신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저려오는 다리를 불편하게 이끌고 계속 달려서 인지 이제 허리 통증까지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동호대교 급수대에서 그 통증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해
한손으로 허리를 받치며 엎드려서 물을 마시고 있으니까
서울마라톤 송진우 선생님께서 허리를 두드려 주시면서 어깨 마사지까지 해주었다.
내가 100km를 달리기 위해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미처 몰랐었다.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시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그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왼쪽 다리와 허리 통증을 참아가며
아무런 생각 없이 오직 달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탄천에 이르렀다.
새벽녘의 여명과 함께 물안개가 피어오르던 탄천 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후 2시를 넘긴 맑은 가을 햇살이 사선을 그으며 내리쬐고 있다.
이제 8km만 가면 골인 지점에 이르게 된다.
넓지 않은 길을 따라 실개천처럼 흐르는 물은
익어가는 가을의 풀잎들을 노래하면서도 마지막 고통으로 나를 몸부림치게 했다.
이렇게 힘든 여정은 내면의 자신을 찾아 떠나는 수행일까?
울트라마라톤까지 달려야 하는 자신에게 새삼스런 질문을 던져보지만
땀으로 얼룩진 자국들이 지금껏 달려온 것에 대한 전리품처럼
검은 타이즈에 허옇게 베어있을 뿐이었다.
외양적인 결실보다 내면에 흐르는 성숙을 달리기를 통해서 얻고 싶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자신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없다면
그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결실을 자신에게만 예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마라톤을 통해서 알 게 되었다.
고통스럽지만 참고 달릴 수 있다는 것은 완주 후에 오는 희열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과 수많은 약속을 하지만 그중에 지켜지는 것은
극히 일부분일 뿐, 대부분의 것들은 기억의 편린 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우리의 생도 그러하리라.
기나긴 나날을 살아온 것 같지만
되돌아보면 한줌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 얼마나 될까?
그렇기에 우리는 지난날에 자신이 이룬 것을
단 몇 줄로도 떳떳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 아파하는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렇게 점점 왜소해져 가는 자신을 괴로워하기보다
내면에서 울어 나오는 즐거움을 통해 내 생활의 한 형태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나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내면의 자신을 추스를 수 없을뿐더러
그것을 스스로도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내게 다가온 마라톤은 내면의 자신을 찾는 도구로 느껴졌다.
달리면서 포기하고 싶은 수많은 갈등들을 이겨내고
무사히 완주했을 때 찾아오는 쾌감은 분명히 최고의 선을 추구하는 어떤 종교적
신념처럼 자신을 향한 자신감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까지 극심한 고통을 참아내며 달려왔고 앞으로도 달려갈 것이다.
교육문화회관으로 향하는 탄천 주로는
새벽녘에 달려 나올 때보다 훨씬 멀게만 느껴졌다.
달려도 달려도 엿가락을 늘려놓을 것처럼 거리 표지판은 더디게만 나타났다.
결혼1주년의 의미를 자축하기위해 달린다는 울트라부부 이영숙, 길천재 님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보니, 어느 덧 교육문화회관으로 향하는 다리가 보였다.
오르막의 다리를 건너자, 이미 골인 했던 남편이 나와 함께 달려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달려오는 나를 보자마자 쥐가 난 다리를 걱정하며 괜찮은지 물어왔다.
무심하게 홀로 달아났을 때를 생각하면 원망스러웠지만
골인점이 저 앞에 보여선지
그 모든 것들이 울트라 여정의 한 부분으로 용해되어 사라져 버리고
완주를 축하해주는 방송소리만 가슴 벅차게 들려왔다.
우리는 맞잡은 두 손을 머리위로 벌리며 골인 지점을 통과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부로 거듭나고 있었다.
(완주기록 10시간 36분 32초)
고독한 100km울트라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나는 수확을 마친 들녘에 서 있다.
무모하게 나 자신을 울트라에 내던졌지만,
도전하였기에 얻을 수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삶에 대한 값진 열매로 되돌아 와 있다.
그렇기에 100km울트라마라톤은 풀코스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단,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들을
확실한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그것에 임한다면.......
반달에서 울트라까지 뛸 수 있게 도와주신 반달가족 들과
서울마라톤 박영석 회장님, 그리고 대회 관계자님들을 비롯하여 자원봉사자분들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모두모두 달리기로 항상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서울울트라마라톤 A116 유행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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