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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km를 뛰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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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집 작성일04-11-09 19:50 조회2,8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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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서울울트라마라톤 참가후기]


“100km를 뛰었는데........”

춘천마라톤이후 2주 동안은 뿌듯함과 성취감으로 정말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아내가 첫 풀코스 도전에 성공하여 드디어 부러워하기만 했던 부부마라토너가 되었고. 1주일 후에 나도 그동안 생각만 하고 있었던 울트라 100km를 완주했기 때문이다. 거실 탁자위에 떡 자리 잡은 완주패를 그날의 감격을 떠올리며 바라보고 있노라면 옆에서 아내가 “나도 내년에는 기필코 울트라 뛸 거다!” 라면서 질투(?)한다. 운동하고는 담을 쌓고 사는 대학생 아들 녀석은 제 친구 아버지들은 어쩐데 하면서 아버지를 존경한다며 닭살 돋는 소리를 한다. 친척들, 직장 동료들의 축하전화를 받으며 조만간에 한번 쏘겠다고 약속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좋은 기분이 지속될까?

풀코스 완주 20회를 넘어서던 올해 초부터 한번쯤 100km를 경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신청마감 시한이 거의 다된 7월 하순까지도 쉽게 결심이 되지 않았다. 반달에서 30km LSD를 할 때마다 주로바닥에 마크된 70km, 80km 표시를 보면서 30km도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100km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서울마라톤 홈페이지에 있는 전년대회 참가자들의 후기를 읽어도 보고(실제로 유행애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의 후기가 결심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리직장 마라톤클럽 회장이자 이미 울트라를 두 번이나 일본 니치난에서 완주한 서울마라톤 정예회원인 이영수님과 상의도 해보았지만, 거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부상이나 입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계속 신청을 미루고 있었다.

처음엔 당신 나이를 생각하라며 한사코 울트라 참가를 말렸던 아내는 남편 고집으로 보아 말려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했던지 아니면 그동안 뛴 거리가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되었던지 우선 신청부터 해놓고 고민하라고 한다. “풀코스 4-5회를 4시간 30분 이내 뛴 사람이면 완주할 수 있다”는 말만 철썩같이 믿으면서 마감을 며칠 앞둔 날 울트라 주사위를 던졌다.

전야제의 분위기가 참 좋다. 마라톤의 매력을 아는 사람들.......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오랫동안 알고지낸 사람들처럼 정겹게 느껴진다. 여흥 순서도 즐거웠지만 내일 우리 모두 완주하자고 서로 격려하는 분위기가 더 좋았다. 번호표와 칩, 기념셔츠 등을 받아드니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린다. 번호표를 붙이고, 칩을 달고, 64km 지점에서 갈아입을 민소매 상의와 양말 등을 챙기고.......매번 대회 전날이면 하는 일이지만 오늘 저녁은 유난히 긴장이 된다.

대회 날 아침은 언제나 그렇듯이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깬다. 새벽 2시 반, 잠이 좀 부족한 듯싶었지만 지난 주 춘천마라톤을 울트라를 위하여 조심스럽게(?) 뛰어선지 몸 상태는 매우 좋다. 오늘 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 자원봉사에 데뷰(?)하는 아내는 지난주 춘천마라톤 완주의 감격이 덜 가셨는지 페이스메이커 해준 남편의 첫 울트라 완주를 위해 그리고 그날의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처럼 자기도 오늘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겠다는 등 갸륵한(?) 말까지 하며 한층 들떠있다.

새벽 3시20분 대회장에는 아직 주자들은 많이 보이지 않지만 진행요원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물품들을 이리저리 나르고 자원봉사자들을 배치하고 주자들이 출발 전에 먹을 음식을 준비하느라 여성자원봉사자들의 움직임이 바쁘다. 아내가 건네주는 따뜻한 순두부 한 그릇을 먹은 후 슬슬 몸을 풀어본다.

아직 주위가 캄캄한 새벽 5시 몇 분전, 드디어 출발선에 선다. 난생 처음 경험해보는 100km!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최대한 등속으로 달리자고 다짐하며 거리별 페이스를 다시 확인한다. 반환점인 64km까지는 km당 6분30초, 후반 36km는 7분30초, 10km마다 스트레칭 1분, 64km에서 옷 갈아입기 등 휴식 20분 총 12시간 이내 완주가 오늘의 목표다. 아내가 힘차게 외쳐주는 화이팅 소리에 “힘”으로 화답하며 출발신호와 함께 12시간 달리기 대장정의 첫 발을 힘차게 내딛는다.

양재천의 새벽공기가 조금 차갑다. 물안개가 피어오른 사이로 노란 가로등 불빛, 천변 아파트 창가로 띄엄띄엄 보이는 불빛.....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콤한 새벽잠에 빠져있을 이 시간에 나는 왜 이 길을 달리고 있을까. 더 건강해지고 싶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모두 이유가 조금은 되지만 그보다는, 나는 마라톤을 하면서 경험하는 일련의 과정들 ㅡ 대회진행, 코스 등을 살펴 나갈 대회를 정하고, 그날의 목표시간을 세우며, 그것을 달성하기위해 매일 꾸준히 연습하고, 몸이 나날이 강인해짐을 느끼며, 골인할 때 말할 수 없는 성취감과 쾌감을 맛보며, 기록을 1초라도 단축하였으면 좋고, 아니면 다시 다음 대회를 기약하고 ㅡ 이 그저 즐겁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덧 5km지점을 통과하고 탄천으로 접어든다. 새벽공기를 가르며 모두들 잘들 달려 나간다. 전반 km당 6분30초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주자들을 먼저 보낸다. 어둠속에서 공사 중인 주로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일일이 달려오는 주자에게 조심하라고 알려주는 자원봉사자들과 인사로 화답한다. 12.3km 반환점을 돌아 한강둔치 주로를 향해 달려 나간다. 이제 몸도 어느 정도 풀렸고 주위가 서서히 밝아지니 기분이 더욱 상쾌해진다. 탄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자원봉사자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목을 축이고 스트레칭을 한다. 어느덧 21km를 달려 온 것 같다.

반달 하프코스 반환점을 지나 잠실대교를 향해 달린다. 아내의 첫 풀코스 도전과 나의 첫 울트라 도전을 위해서 지난여름 새벽 이 길을 일출을 감상하며 얼마나 달렸던가. 검단산 위로 붉게 떠오르는 태양이 오늘따라 더 아름답게 보인다.

암사동 28km지점에서 주먹김밥으로 속을 채운다. 자주 먹는 김밥이지만 지금처럼 맛있게 먹어본 적이 있었던가. 쉴 새 없이 꾹꾹 손으로 눌러 만든 김밥이 이렇게 꿀맛 같다니...... 여성 자원봉사자의 손이 경이롭다.

30km 표지판이 보인다.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구나...아직 그리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이제부터 서서히 고통의 시간이 다가오리라. 이제 이 고통과 대화하며 달려야하는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42.195km를 4시간19분에 통과한다. 지난주 아내와 함께 뛴 춘천마라톤이 생각난다. 동네 학교운동장에서 30분 걷기부터 시작한 아내가 풀코스를 완주하다니...그것도 4:11분이라는 좋은 기록으로....아내가 세삼 대견스럽다. 불과 3년 전만해도 대수술과 통원치료, 3개월마다 받는 검진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심신이 만신창이었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마라톤이 우리부부에게 준 참으로 값진 선물이다.

반포대교 언덕에 올라서니 정겨운 반달 출발지가 보인다. 일요일 새벽 늦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새벽공기를 가르며 달리기의 참맛을 느끼게 해주는 반달, 어떤 사람도 편안한 마음으로 와서 달릴 수 있는 반달........ 주로에는 조깅하는 사람, 인라인 스케이터들이 꽤 많아졌다. 운동장엔 축구경기로 열기가 뜨겁고 강아지와 산책하는 노부부의 행복한 모습도 보인다. 아.... 이 평화로운 한강 풍경 속에서 내 다리만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구나.

63.3km부문 반환점 풍선아치가 멀리 보인다. 46km정도 온 것 같다. 40km를 넘어서부터는 2,5km마다 만나는 급수대(아니 급식대가 옳을 것 같다)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배, 귤, 토마토, 메론, 수박 등 온갖 과일에다 떡, 빵, 김밥, 약식까지.... 뒷주머니에 찔러둔 파워겔이 오늘은 무용지물이 될 것 같다. 시원한 토마토 쥬스 한잔을 들이키고 다시 무거운 다리를 추스른다.

5시간 35분 만에 여의도 53km 제1관문에 무사히 도착한다. 다행이 아직까지 특별히 아픈 데는 없다. 이 속도 이 기분으로 끝까지 뛸 수 있으면 좋으련만......잠시 스트레칭으로 기분전환을 하고 있는 사이 반대편 주로에서 자전거 선도를 받으며 1위 주자가 달려온다. 아니 벌써....나보다 21km나 앞서 가고 있구나. 나는 반환점까지 아직도 11km나 더 가야하는데.... 정신을 다시 가다듬는다. 여의도 서쪽으로는 자주 달리지 않아서 그런지 주로가 눈에 익숙지 않다. 강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아저씨가 힘들게 뛰고 있는 나를 무심히 쳐다본다. 저 아저씨는 나를 부러워하고 있을까 아니면?..........

한낮의 햇볕이 따갑다. 5km씩만 생각하며 뛰기로 했는데 5km가 왜 이리도 먼가.... 반환점엔 맛있는 전복죽이 기다리고 있다는데..... 멀리서 노란 풍선 아치가 반환점을 알린다. 64.4km 반환점까지 7시간이 목표였는데 6시간 52분에 도착한다.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 때마다 반환점의 명물로 소문난 전복죽..... 두 그릇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해치우며 그 많은 양의 전복죽을 준비하느라 수고한 손길에 감사한다. 또 한 가지 잊을 수 없는 것은 여성자원봉사자들의 정성어린 맛사지 봉사다. 어떻게 그 많은 주자들에게 자기 가족에게 해주듯이 저렇게 정성을 다하여 하실까. 염치(?) 불구하고 엎드려 자세로 종아리, 허벅지 맛사지를 받고나니 한결 몸이 가벼워진 것 같다. 민소매 상의와 양말을 갈아 신으며 20분의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 후 새로운 기분으로 출발... 이제 남은 거리 36km, km당 7분 30초로 천천히 뛰자. 그리고 최대한 걷지는 말자.

세삼 마라톤은 참으로 정직하며, 아울러 정신력이 많이 작용하는 운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시간 등산은 평소에 준비하지 않아도 다녀올 수 있겠지만 한 시간 뛰는 것은 준비 없이는 어림없지 않은가. 40km 까지 겨우 왔는데 나머지 2.195km는 어떻게 10분 만에 뛰었을까? 풀코스 뛸 때는 30km까지는 힘들다는 생각을 미처 못 하는데, 30km LSD때는 왜 20km 만 와도 힘들게 느껴질까? 앞으로 36km는 전적으로 정신력으로 뛰어야 한다!

가끔씩 학생들, 아주머니들의 화이팅 응원을 받으며 여의도를 지나고 동작대교를 지난다. 83km 제2관문을 몇 백 미터 앞두고 어제 전야제에서 인사를 나눈 이장호님을 만난다. 조금 힘들어하시는 모습이다. 울트라가 처음이 아닐 텐데 초반에 오버페이스하신 것일까? 제2관문을 9시간 27분에 통과한다. 언제 준비하였는지..... 급수대에서 받아먹은 시원한 얼음과자가 다시 기운을 차리게 해준다.

앞으로 17km!.... 뛰면서 힘들 때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 비법(?) ㅡ 언제라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에피소드 기억하기. 재미난 유머 되살리기, 즐거운 공상하기 ㅡ 을 가동한다. 무의식적으로 무겁게 앞으로 나가는 내 다리와는 상관없이 내 머리 속은 온통 즐거운 기억 되살리기와 공상으로 분주하다. 이제나 저제나 고대하던 90km를 지나 드디어 한강을 벗어나 다시 탄천으로 주로가 바뀌니 기분이 새로워지면서 다리도 조금 가벼워진다.

한낮에 더위를 느끼게 했던 늦가을의 태양도 어느덧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8km 남았습니다. 힘내세요! 다 왔습니다” 노란 쟈켓 천사들이 외쳐주는 응원소리에 응답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벌써 골인지점의 풍경으로 가득 차 있다. 다 온 것 같은데 가도 가도 거리표시판이 나타나지 않는 마지막 7-8km..... 그러나 신기하게도 “남은 거리 4km" 표시판을 만나고부터는 나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는 게 아닌가. 저 앞에서 아내가 반가운 기색을 하면서 달려오고 있다. 마지막 2km를 같이 뛰어 주고 싶어서 마중 나왔단다. “이렇게 빨리 들어 올 줄은 몰랐어... 당신 정말 대단해... 오늘부터 울트라맨이라 불러 줄께” 옆에서 뛰면서 계속되는 수다가 싫지 않다.

멋있는 아치 돌다리를 건너 공원에 들어선다. 이영수님이 입구까지 나와 화이팅을 외치며 반갑게 맞아준다. 골인 500여 미터를 앞두고 있을 때 느끼는 쾌감과 성취감.....마라톤은 진정 이 맛에 하는 것일 게다. 아내와 손을 잡고 빨간 결승 테이프를 끊으며 11시간 32분의 대장정을 마친다.

완주메달을 아내의 목에 걸고 멋있는 완주패를 들고 머리에는 월계관을 쓰고 단위에 올라 멋있는 포즈로 사진 한 장, 그리고 뛴 후 회복에 좋다며 주시는 포도주도 한잔...
아! 이보다 더 기분 좋은 순간이 있을까?

오늘 100km를 뛰었는데
이 체력과 이 다리로 할 수 없는 일이 있을까?
이 끈기와 인내심이라면 풀지 못할 갈등이 있을까?
마라톤을 준비하듯 매일 매일 성실하다면 못 이룰 일이 있을까?

나는 내일 아침에도 마라톤으로 새로워지기를 기대하며 또 뛰러 나갈 것이다.



2004. 11. 8
배번호 B 275
김 성 집


서울마라톤클럽의 명성답게 치밀한 준비와 마라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완벽하게 대회를 치르신 서울마라톤클럽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여러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즐겁게 그리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게 해주신 수많은 자원봉사자 여러분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그랬듯이 울트라를 망설이고 계신 분들에게 이 후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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