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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삼 한뿌리 보다 훨씬 더 좋은 보약.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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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경석 작성일04-11-03 16:08 조회3,5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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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안와사에서부터 마라톤 입문까지
1994년 무렵 시작된 구안와사(안면신경 경련 증세)로 인하여
용하다는 한의사를 찾아서
침도 맞고, 뜸도 뜨고, 한약재도 먹어보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왼쪽 눈이 파르르 떨리고, 심할 때에는 왼쪽 입까지 달려서 올라간다.
전혀 아프지도 않고 거북하지도 않지만,
직업이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고객과 상담할 때에 법정에서 변론할 때에는 보기도 안 좋고,
발음이 정확하지 않을 때에는 곤혹스럽기만 하였다.

1995년 가을부터 가까운 친구의 권유로
헬쓰장에 등록하고 런닝머신을 달리기 시작했다.

운동이라고는 보건체조도 과외를 하면서 배워야 하는 한심한 자가
운동이라는 것을 시작한 것이다.
40년이 넘어서까지 농구 슛 한번 안하고
물구나무서기도 못하고
띔틀도 중간에 걸터앉았다가 넘는,
운동, 체육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처지에
달리기라는 운동을 처음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5분 10분 달리기가
30분 정도로 늘어나면서
신체구조가 몰라보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신도 맑아지고,
자신도 모르게 떨리던 눈과 입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30분 정도 달리기 생활을 계속하던
2000년 초 어느 날
조선일보에 제3회 서울마라톤대회 기사가 났다.
5㎞, 10㎞, 하프, 풀코스 중에서 어느 코스를 택할까 하다가,
어차피 뛰어야 할 풀코스라면
처음부터 풀코스로 들어가보자고 하여,
겁 없이 풀코스를 신청하였다가
죽을 고생에 고생을 거듭하다가 5:25분에 완주하였다.
이렇게 하여
나의 마라톤 인생은 시작되었다.

2. 산삼을 캐는 심정으로
지난 추석에
제사 지내면서 작은집 종형님께서
장뇌산삼 자랑을 한다.
“17년전 인삼씨를 뒷산 아무도 모르는 깊숙한 곳에 심었었다. 얼마 전에 몇뿌리를 캐서 애들에게 먹였다. 이후로 감기 한번 안한다. 자식이 뭐길래. 우리 부부는 잔 뿌리 하나 먹지 않고 다 자식에게 먹였다.”

나는
“산삼이 뭐 별거냐, 아무리 좋은 보약이라도 먹는 사람이 받아들일 수 없다면 백약이 무효인데”
하고, 속으로 웃어 넘기고 말았다.

그렇다. 산삼 보다 더 좋은 보약이 바로 마라톤이다.
그 까짓 산삼 몇뿌리 먹는다고 뭐가 좋아지겠는가.
산삼 처럼 숨겨두고, 남에게 주는 것을 아까워할 것도 없고,
가족, 친지, 선후배, 남녀노소 모두가 다 같이 나눌 수 있는
마라톤이라는 보약이 있지 않는가.

한강변, 탄천, 호수공원, 양재천, 중랑천 사람들은 바로 눈앞에, 발밑에 산삼이 있는 것을 모른다.
그 산삼을 캐노라면 심신 수련과 건강유지는 저절로 되고 감기 한번 안걸린다고 전도사처럼 권유해도 들어 먹히지 않는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산삼이지만 눈앞에 있다고 한다면
새벽부터 줄을 설 사람들이

정작 산삼보다 백배 천배 더 좋은 것을 눈앞에 두고서도
스스로 심마니가 되기를 거부한다.

뭣 하러, 고생스런 풀코스, 울트라를 뛰느냐고 하면서
마라톤 심마니들을 한심한 인간으로 치부하고 만다.

그들 스스로는 도시의 공해에 찌들고, 험난한 세파에 시달리며 고달픈 인생살이를 살아가고 있으면서
마라토너들을 오히려 안스럽게 대한다. 안타깝다.

3. 울트라 3번째 도전
2002.6.23.
일본 돗토리현 니치난정에서 개최된
니치난오로찌울트라마라톤대회에 나갔다.
해발 최저 300m 최고 900m 오르막, 내리막 산길을 5차례 넘어야 한다.
콕콕 쑤시는 무릅관절을 끌고서 4번째 해발 900m 고지를 목전에 두고,
넘어설 엄두가 나지 않아서,
63㎞ 관문에서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63㎞ 관문까지 거뜬히 주파하고 주최측의 만류로 그치고 마시는 박영석 회장님,
완주하고 들어오는 선후배, 동료들 보기가 민망스러웠고,
세세한 부분까지 배려해준 니치난정 주최측 분들에게 부끄럽기만 하였다.

2003.10.26. 개최된 제4회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는
갈비뼈 부상으로 충분한 연습도 못하고 출전하였다가
45㎞지점 반포지구 토끼굴로 빠지고 말았다.

2004.10.31. 제5회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
이번이 세번째 울트라 도전이다.
게을러서 새벽 반달도 못 나가고,
금년 들어 동아마라톤 강화마라톤 2번 밖에 폴코스를 달리지 못한 처지라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결코 물러설 수 없다고 다짐하면서,
가끔 늦은 저녁에 이웃 아파트 외곽 500m 가파른 오르막길을
1시간 정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독립군으로서의 전의를 다졌다.

4. 새벽 기우는 보름달에 비취는 양재천, 탄천 물안개 속을 헤치고
2004년 10월 31일. 일요일
음력 9월 18일 이른 새벽 5시
화무는 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盈滿之咎;영만지구 성자필멸盛者必滅) 노래가사 처럼
십오야(十五夜) 밝았고 가득찼던 보름달이
밑 부분부터 조금씩 가득참을 비워가면서
휘영청 서쪽 중천에 떠있다.
그 달빛 아래 양재천, 탄천의 갈대와 억새풀 사이로
물안개가 피어 오른다.
희뿌연 물안개 속을 헤치고,
이른 새벽의 정적을 깨뜨리고 쉼 없이 달려나가는 600 여명의 울트라맨들.

이들은 무엇을 찾으려고
그 고생스럽고 처절한 400리 고생길을 시작하였는가.

5. 무섭게 달리는 의사들
양재천 지점에서 아장 아장 걷듯이 가볍게 달려나가는
화자(和子), 아자(雅子) 두 일본 여인을 만났다.
그녀들과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하면서 나란히 보조를 맞추는 윤모님의 꽁무니를 탄천반환점 지점까지 뒤따라 달렸다.
일본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외국어 하나 제대로 구사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이 들기도 하였다.

탄천 반환점을 지나서는
지석산, 조현홍, 이태재 고수들과 동반하게 되었다.
탄천, 한강 합류지점에서 주로안내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천달사 김대현 님이 우리 일행을 반겨준다.

조현홍 님은
“김대현씨가 '천천히 달리는 사람'으로 마라톤계에 데뷔했을 때, 내가 그러지 말고 '천달사'로 하라고 권유해서 그 다음부터는 '천달사'가 되었다”고 하신다.

대구 향기부부의 명성은 한강변에서도 그 이름이 높다.
스치는 주자들, 자원봉사하시는 분들 마다 향기부부의 반쪽 이태재 님을 보고는
“한쪽은 어디에다 두고 혼자서 달리느냐”고 묻는다.

향기 남편 왈
“마누라 다른 남자와 바람 피우느라고 일찌감치 앞서 갔노라”
고 즐겁다는 듯이 일일이 대답한다.

달리는 의사들 지석산, 조현홍 이분들은
금년 10개월동안 4,000㎞를 달렸고,
10월 들어 매주 풀코스를 3주 연속 달리다가 막바로 울트라로 왔다고 한다.

순간적으로 잘못 걸렸다 싶었다.
매월 200㎞도 안되는 주력으로 고수들을 따라가다가는 과부하가 걸릴 것 같았다.
이런 분들과 호홉, 보조를 맞추는 동안 어느새 나도 모르게 기가 꺽여 버린다.

올림픽대교를 넘어서서 부터는
무섭게 달리는 의사들을 따라가다가는 또 다른 달리는 의사들 이동윤 형님의 신세를 질 것 같아서 서서히 뒤로 처졌다.

조현홍님은 발목, 장단지에 이상이 왔다고 하면서
잠시 손수 응급처치한다고 옆으로 새어 버렸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는 자들은 반드시 헤어진다.
부모형제, 부부, 연인, 자녀, 친지, 동학년생들 모두가 언젠가는
사별로, 이혼으로, 졸업 등으로 헤어져야 한다.
평생을 같이 할 수 없다.
마라톤이 그렇다.
무섭게 달리는 의사들팀과 헤어지고 부터는 혼자서 독립군으로 달렸다.
고수들에게 기가 한풀 꺽인 독립군으로서 처절하게 달렸다.

6. 시각장애인 동반주
시야에 손목을 끈으로 묶고 달리는 2인 1조 달림이가 눈에 들어온다.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와 도우미 마라토너이다.
나 자신이 시각장애인이라면 어찌하였을까.
잠시 눈을 감으면서 앞서 달리는 시각장애인 처럼 달려본다.
몇 걸음도 내달릴 수가 없다.
나 자신을 행복하다고 해야 할 것인가.
시각장애인의 장애를 동정하여야 할 것인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멀고도 먼 100㎞ 역정을 힘차게 달려나가는 이분들은 참으로 대단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는 나 자신도 한치 앞(미래)도 못 보는 장애자에 불과하다.
오늘 새벽 5시 울트라마라톤을 달리기 위하여 신은 신발을 스스로 벗을 수 있을지 여부도 모르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이다.
저녁에 벗어 놓은 신발을 다음날 아침에 다시 신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앞을 못보는 시각장애인이나 앞(미래)를 못보는 시각 정상인이나
장애인임에는 다름이 없다.

누구를 동정하고 누구가 더 행복하다고 할 것인가.
앞 못보는 인생세간에서 험난한 세파를 극복해 나가기 위하여,
사람들은 부부라는 인연을 만들고,
친구, 동호인이라는 관계를 갖는다.

외로울 때에는 종교에 귀의한다.
기복신앙이든 대승신앙이든, 점집을 찾아가든 이 모든 것은 종교적인 행위이다.

종교를 개창한 석가모니, 공자, 예수그리스도, 마호멧은
아마 스스로의 고행 끝에
인생의 눈, 미래에 대한 눈을 열었는지도 모른다.
심봉사 눈뜨듯이 말이다.

그러지 못하는 우리는 스스로 맺은 인연에서
그날 그날을 충실하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종교, 선각자의 지식, 부모, 부부, 형제, 친지라는 도우미를 통해서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고
불안하고 불확실한 보이지도 않는 앞길을
달려나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7. 반포지구에서 만난 반달 동지들
암사동 강동대교에서 돌아서서 가양대교-방화대교까지 내려오는 길은 거의 독립군으로 달렸다.

동호대교를 벗어나는 지점에서 황진영 형님을 만났다.
니치난오로치에서 못해낸 완주를 이번에는 해내라고 격려하여 주신다.

조금 더 가니 철탑을 못 미친 지점에서
문성재 화백 부부가 급수대 한살림 차려놓고 손님맞이를 하고 있다.

반달캠프에서 한강변으로 돌아가는 지점에서 홀로 주로 안내를 하고 계시는 ---님(반달에서 자주 뵈었는데 존함이 기억나지 않습니다)님은
달리는 우리보다 더 외로웠을 것 같았다.

8. 쓸림 현상 (거시기가 한쪽으로 위치한 것이 천만 다행이다)
나는 마라톤에 처음 입문하게 된 2000년 3월 5일 3회 서울마라톤대회 때부터 지금까지 독립군 정신으로 무식하게 나 자신의 기본복장을 고집해왔다.

삼각 면팬티 위에 테니스 반바지를 입고,
상의는 노브라에 반소매 런닝셔츠,
발에는 조금 두툼한 큐션 좋은 조깅화를 신는다.

이번에도 그런 복장으로 풀코스 거리까지는 그런대로 편하게 달렸다.
동호대교를 지나는 지점부터는 젖꼭지가 쓸림현상으로 따가워지기 시작한다.
반달캠프 지점을 지나서 한강변으로 굽어드는 지점에서 주로안내 봉사를 하고 계시는 ---님에게 쓸림현상을 이야기하니
다음 급수대에 반창고가 있으니 붙여달라고 하라고 하신다.

다음 급수대에서 젖꼭지에 반창고 대일밴드 브라자를 붙이고 나니
젖꼭지 쓸림현상은 없어졌지만,
50㎞를 지난 지점부터는
사타구니에 쓸림현상이 와서 걸음을 옮기기가 거북하다.

거시기가 왼쪽으로 위치하다 보니,
오른쪽 사타구니가 쓸림현상으로 아프다

면 팬티를 추켜 올려보기도 하고 반바지를 올려보기도 하지만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한참을 짱구를 굴리다가
이번에는 손을 넣어서 거시기를 오른쪽으로 옮겨 놓아 보았다.
신통하게도 쓸림 현상이 없어져 버렸다.
쓸렸던 자리에 부드러운 거시기가 위치하니 자연히 따갑지 않게 되고,
반대쪽 왼쪽은 그 동안 쓸리지 않았기 때문에 편안하게 뛸 만하였다.

제1관문 53㎞ 지점을 무난히 통과하고,
63㎞ 반환점에서 옷을 갈아입으면서
사타구니에 바셀린을 듬뿍 바를 때까지는 편안하게 달렸다.

남자의 거시기가 정 가운데로 위치하지 않고,
한쪽(남자 90% 이상이 왼쪽으로 15도?)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
울트라마라톤을 달리는데 있어서는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9. 다시는 울트라 안 뛴다.
반화대교를 지나서 63.3㎞ 반환점 텐트 안에서 옷을 갈아 입으면서
“다시는 울트라 안 뛴다. 새벽 별에 나와서 저녁 별까지 이 무슨 고생이냐. 너무나 힘들다”
라고 혼자서 떠들었더니,
주위에서 모두 웃는다.
누가 거든다.
“아무리 그래도 열흘이 지나면 다시 뛴다고 할 것입니다.”

옷을 갈아입고 전복죽을 배터지게 먹고 싶었는데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압구정동에서‘배터지는집’을 경영하면서 마라토너의 배를 터지게 하시던 문정복 사장께서 이번에는 울트라맨의 배를 터지게 만들려는지 전복죽을 맛있게 만들어서 제공하고 계신다.

반환점을 돌아서 70㎞ 부근 지점 급수대
이경렬님 부부가 한 살림 차려놓고 반갑게 맞이하여 준다.
2002년 니치난오로치에서는 80여㎞ 지점에서 포기한 동지라서 더 없이 반갑기만 하다. 그후 울트라를 완주한 선배로서 힘내라고 격려하여 준다.
더 이상 못달리겠다고 하였더니, 70㎞가 저 앞인데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한다.

여의도를 벗어난 길목에는
‘동쪽 주점에 번쩍 서쪽 주점에 번쩍’ 한다는 홍길동 같은 정영철 열혈남아가 길목을 지키고 기다리고 계신다.
이 자(죄송)는 항상 두려움의 대상이다.
시도 때도 없이 술먹자고 한다.
걸리면 같이 술을 먹어야 한다.
술 먹는 자리에서도 열혈 파편이 튀어서 부상당하기 쉽다.
이윤희 사장님에게서 삥땅을 쳐왔는지 ‘파워런’을 컵에 풀어서 먹으라고 준다.
그 정은 더 없이 고마웠지만 혼자 먹을 수가 없다.
이름 모를 주자가 부러운 듯이 쳐다본다.

겨우 반포지구 초입에 위치한 제2관문을 무난하게 통과하니
손수 자원봉사하시던 박영석 회장님이 반겨주신다.
“양변호사가 통과한 시간으로는 계속 걸어가도 마지막 Finish Line에 들어설 수 있다 힘내라” 고 하신다.
손수 벗겨 주시는 아이스크림을 배탈이 날까 봐 사양하고 다시 달리는데
회장님의 성의를 무시한 것 같아서 죄송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외롭게 주로안내 자원봉사하시는 ---님의 격려를 뒤로하고
반달캠프 지점으로 들어섰다.
잠수대교 위로 올라가기 위하여 약간 오르막길 경사진 주로로 들어서는데,

웬 여장남자가 어여쁘신 여인과 주로 좌우에 서서 주자들을 환영,격려하고 계신다.
그 이름하여 그 유명하신 박연호 부부.
사모님의 속옷 잠옷을 대낮에 하루종일 입고 계시면 없던 정까지 솟아나시겠지만,
사모님이 밤에 입을 옷이 없어져서 어찌하실려나.
주취측에서 자원봉사하시는 박연호 부부에게는 특별히 선물을 해드려야하지 않나,
아니면 나라도 선물을 해드려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뒤로 하고 잠수교 내리막길을 내리달렸다.

10. 눈물은 자연산 진통제인가.
그곳에서 철탑을 지나서 문성재 화백 부부, 황진영 선배님이 계신 곳까지는 무릎관절 쑤심으로 인하여 계속 달리기가 어려웠다.
이름 모를 자원봉사자 님에게 정중하게 휴대폰 좀 빌려달라고 하였다.
집에 전화하였더니 처가 받는데
너무나 힘이 들고 처절하여서 목이 메어 말문을 열 수 없었다.
이상한 전화라고 생각하였는지
처는 그냥 전화를 끊어 버린다.

다시 전화하여 가까스로
"양재천 탄천 경계선 주로 지점에 진통제 한알 가지고 나오라"
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 스스로 사서 하는 고생이지만, 너무나 처절하여 눈물이 나와 눈시울을 적신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이후 1㎞정도는 힘차게 달려도 무릎이 쑤시지 않았다.
거의 불편한 점을 느끼지 못하였다.
인간에게 있어서 눈물은 진통제 역할을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은 자연산 진통제인가. 참으로 신기했다

문성재 화백 부부가 다시 반겨주신다.
“이번에는 꼭 완주하고, 완주 후기도 올려 달라”고 한다.
“제2관문에서 박영석 회장님이 걸어 들어가도 시간내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시던데” 하고 대꾸하였더니,
“그래도 13시간 30분 이내에는 들어가야 되지 않겠느냐”
고 한다.

다시 달려서 동호대교 급수대
황진영 형님이 “이번에는 거뜬히 완주하겠네” 하면서 격려하여 주신다.
주머니에서 보스톤에서 가지고 왔다면서 봉지를 뜯어서 짜먹으라고 하신다.
파워런이란다.
처음보는 파워런을 짜먹고 “형님 격려를 생각해서라도 계속 달려야 되겠네요”
하고는 성수대교, 영동대교를 항하여 절룩거리면서 내달렸다.

11. 노당익장 (老當益壯)
걷다 뛰다 반복하고 있는데 백발이 성성한 주자 한분이 힘차게 앞질러 가신다.
배번호에는 ‘공준식’ 이라는 함자가 보인다.
빨리 달려서 가까이 가서 “춘추가 어떻게 되십니까” 하고 여쭈어 보았다.

“육십일곱살”

그 어른 가볍게 한마디 하시고는 계속 달리신다.
한마디로 노당익장을 몸으로, 기개로 실천하고 계시는 어른이시다.

나는 뭣인가.
그 연세에도 정정하게 달리시는데,
걷는 것 조차 힘들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마음만으로 의지만으로 안되는 것이 마라톤이고 인생이다.
평소에 삶이 성실하지 못한 자로서는
걷다 뛰다 하는 수 밖에 없다.

12. 지금 속도로 계속 달리세요
한강-탄천 경계선에서
지난 강화울트라에서 거뜬히 완주한
천달사 김대현 님이 반가이 맞아준다.
“이제는 울트라를 넘어서는군요” 하면서

한강, 탄천을 뒤로 하고 양재천으로 들어섰다.
거의 대부분의 거리를 걸었다.
계속 달린다면 12시간대에는 들어갈 수가 있겠는데, 아쉬웠다.

마지막 투혼을 진통제를 먹어가면서 불살라 볼려고
진통제를 가지고 나오라고 하였는데,
정작 길이 엇갈려서 처는 만나지도 못하였다.
도착지점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아서 Finish Line에서도 볼 수 없었다.

남은 거리 3㎞ 표지부터는 이대로 걸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깅, 산보나온 시민들이
배번호의 ‘100㎞울트라마라톤’ 글씨를 보고는
힘내라고 격려하여 준다.

100㎞ 코스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기도 하는 분들의 면전에서
걷는다는 것은
마라토너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다시 뛰기 시작하였다.
2㎞ 지점에서 어여쁘신 처자께서
서울마라톤 깃발을 흔들면서
배번호의 이름을 보고는
“양경석씨 당신은 영원한 우리의 호프이십니다 지금 속도로 계속 달리세요”
하고 외친다.

그 말에 힘을 얻어 이후 Finish Line 까지 풀코스 속력 시속 10-11㎞로 계속 달렸다.
앞길을 막는 주자와 산보객들에게
길 좀 비켜달라고 하면서
기관차처럼 달렸다.

반포지구부터 걷는 것도 힘들어서 기우뚱 하면서 걷다 뛰다가 하였는데,
어디에서 무슨 힘이 났는지 모른다.
열혈남아의 파워런, 박영석 회장님, 문화백 부부의 격려, 황진영 형님의 파워젤, 천달사의 격려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여쁜 처자의 계속 달리라는 격려에 힘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김무조 대선배님께서 앞에 달리고 계신다.
죄송스럽지만 추월하지 않을 수 없다.

13. 심봤다.
드디어 Finish Line이다.
힘차게 도착하였는데, 자원봉사자가 제지한다.
“사진을 찍어야 되는데, 앞에 두분 주자가 대기하고 있다. 잠시 대기하고 있다가 들어가라”
고 한다.

스피드칩 초 읽기 시간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뛰어오던 힘이 남아서 잠시 제자리 뛰기를 계속하다가

이봉주 처럼 두 손을 하늘로 치솟아 들면서
Finish Line을 힘차게 통과하였다.

'심봤다'
하고 외치는 심마니 처럼,
울트라마라톤 심마니로서
12시간 53분 54초 만에
산삼 한뿌리 캐낸 것이다.

14. 결자해지(結者解之; 스피드 칩은 묶은 자가 푼다)
Finish Line을 통과하고 나니,
법조인 1호 울트라맨이라고 축하도 하여 준다.

절룩거리는 나에게 자원봉사자 한분이 다가와 고맙게도
스피드칩을 풀어준다고 하신다.
그 분에게 좀 건방지게 들렸는지 모르지만 한마디 하였다.

“결자해지 스피드칩은 묶은 자가 푼다 라는 말은 제가 만들었는데, 제가 풀어야지요”

월계관을 쓰고,
멋지게 사진 한 장 찍고,
국밥 한그릇 비우고,
쑤시는 다리를 이끌고 귀가하여 늘어지게 잤다.

달리는 도중,
돌아오는 내내,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에도
맴도는 그 무엇이 있다.

“박영석 회장님. 신동희 대회장과 사모님, 윤현수 조직위원장님 부부, 황진영님, 조삼영님, 문화백 부부, 이경렬 부부, 열혈남아 정영철, 천달사님, 박연호 부부, 박희숙 부부, 최성순, 문정복 사장님, 허범녕 상무님, 서창원님, ...................... 무수한 이름 모를 자원봉사자 님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 무엇으로 울트라 내내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베풀어주신 배려와 다정한 정성에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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