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의 기쁨을 어머님 영전에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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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명직 작성일03-11-01 20:35 조회3,50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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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0/31일) 어머님 삼우제를 마치고 담담한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그리고 어머님께 다시 한번 용서를 빕니다.
"어머니!!!"
"임종을 앞둔 어머님을 병원에 모셔놓고
울트라마라톤에 참가한 불효자식을 용서하십시오"
지난 봄 동호회원들과 자연스런 대화도중 울트라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날 대화도중 어느 회원이 50을 넘은 나를 보고
"형님은 63키로에 도전하시지요" 한다.
나이든 것도 섭섭한데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무슨 소리야 나도 100키로다". 하고 객기를 부린 기억이 새롭다.
한편으로는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울트라를 완주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객기를 부린 덕에 어쩔 수 없이 100키로를 신청해 놓고는 마음 한켠은 늘 부담이 있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그래 연습만 착실히 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 하면서 남 모르게 자신을 다졌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주말이면 되도록 많은 거리를 달렸고,
틈틈이 울트라에 대한 기록들을 찾아 안목을 넓혔다.
연습으로는 주 3회 정도의 20키로를 달렸고 대회 감각을 위해서
7월 서울마라톤 풀코스, 혹서기대회, 강화65키로 울트라, 부여동아마라톤,
그리고 50키로 정도의 lsd두번 대회 2주전 75키로 장거리 주 등 연습을 마쳤다.
훈련이 좀 과했는지 장거리 주 이후에는 매번 무릎 주변에 극심한 통증으로 며칠을 쉬어야 하는 상태가 반복됐다.
추석이후는 어머님의 병환이 위중해 지기 시작했다.
올해 84세이신 어머님은 평소 건강하셨는데 갑자기 건강이 악화돼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게 됐고 어머님이 병원에 계신 때는 간병을 위해 야간은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결국 어머님은 대회를 앞둔 금요일(10/24일)에 임종이 가까워 지셨고
다시 병원에 입원하시게 됐다.
힘들게 호흡하시던 어머님은 병원에 입원하자 다행히 상태가 다소 호전되셨다.
어머님의 상태가 약간 호전되자 임종을 지키기 위해 생업까지 포기하신 형님이
봄부터의 훈련을 아깝게 생각하셨는지 대회출전을 종용하신다.
집사람까지도 대회참가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달리기로 마음을 결정하고
의식이 없으신 어머님의 귀에다 큰 목소리로
"엄마 나 100키로 달리고 올 때까지 돌아가시면 안돼요" 한다.
의식이 없는 어머님은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잘 다녀오라는 뜻인지
허공에 대고 손짓을 하신다.
형님과 집사람에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만약 어머님이 돌아가시기나 한다면 평생 불효를 가슴에 담고 살아야겠지....
형님께는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양재동으로 무거운 발길을 돌린다.
대회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함께 출전하는 오병무(814번 김포마라톤 동호회원)와 교육문화회관에서 여장을 푼다.
내일의 대회를 위해 일찍 잠을 청했으나 여러 생각으로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퍼뜩 일어난 시간이 새벽1시 15분,
세시간 가량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대회전 매번 느끼는 소풍전날의 들뜬 마음이 아니다.
병실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허공에 뜻 모를 손짓을 하고 계실 어머님생각과
막연한 두려움 등으로 밤새 뒤척이다 결국 3시 15분에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밤새 뒤척이던 병무도 내가 일어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서 일어난다.
둘은 병무가 준비한 깨죽과 약밥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출전채비를 챙긴다.
쌀쌀한 날씨에 대비해서 상의는 긴 팔 셔츠를 입기로 하고
하의는 반 타이즈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휴대 전화기를 넣을 수 있는
주머니 달린 보스턴 팬츠를 입는다.
드디어 출발 축포는 터지고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간다.
1키로를 7분 30초 속도로 달린다.
물안개가 피어있는 탄천을 접어들면서부터는 모든 주자들이 나를 앞지르는 것 같다.
밝아오는 새벽하늘이 정말로 아름답다.
10키로 지점을 지나자 벌써 선두가 반환점을 돌아 나오기 시작한다.
조금 뒤 병무도 50등 내외로 달려오고 주로 에서 첫 대면이 이루어진다.
반환점을 돌아 17.5키로 지점 얕은 내리막에서 무릎이 빠지는 느낌이 오면서 시큰해진다.
무릎의 통증이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당초 통증을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심하게 찾아올 줄 몰랐다.
절룩여지는 다리를 억지로 참으면서 자세를 바로 잡는다.
양재천 합 수 지점 급수대에서 준비한 진통제 한 알을 먹어둔다.
잠살 운동장 건너편 탄천을 벗어날 무렵 어김없이 밀어내기에 걸려든다.
주차장에 세워진 간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마친다.
진통제 효과가 미약한지 아니면 통증이 심한 건지 통증이 계속된다.
한강변에 접어들어 붉게 물든 동쪽하늘을 바라보며
어머님을 부르며 아픔을 참고 달린다.
오른발 어머니!!! 왼발 윤실아!!!(수능을 앞둔 고3 작은딸)를 부르며 호흡을 맞춘다.
날이 밝아지자 주변에는 거의가 달리기 세상에서 명성이 높은 분들이 달리고 있다.
어머님 생각에 멀건이 그분들의 달리는 모습만 바라볼 뿐 제대로 인사도 건네지 못한다,
무릎의 통증은 계속되고......
아 어머니, 우리엄마!!!
나이가 오십이 넘어도 난 아직도 어머니라 하지 않는다.
그저 엄마다.
머리가 허얘지고 조카들 손주를 본지도 오래됐건만 나는 아직 엄마라 부른다.
전쟁을 겪은 우리 또래들이 그러하듯이 우리 어머니도 참 고생을 많이 하셨다.
옛날 어머니들은 아버지가 능력이 없어도 억척스럽게 집안을 꾸려오셨다.
불우한 어린 시절과 어려운 집안의 내력을 이야기하는 것은 쑥스러워서 밝힐 수 없지만
막상 어머님의 임종이 다가오니 옛날의 아픈 기억들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돈다.
언제쯤인가
지금의 아내와 연애시절 동네 입구를 돌아들 무렵
장사를 마치고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오시는 어머님을 마주친 적이 있었다.
창피한 생각에 아내의 팔목을 잡아끌고 급히 골목으로 피한 기억에 그때까지 참고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25키로 지점쯤인가 선두와 두 번째 마주치고 잠시 후 병무와도 두 번째 상면한다.
큰소리로 "병무 화이팅"을 외쳐 주자 병무도 "형 힘내" 하면서 달려나간다.
한강변의 맞바람이 제법 있다.
암사동 반환점 까지는 맞바람을 맞으며 뛰었으나 반환점을 돌자 따듯한 기운이 돈다.
출발 전 복장을 준비할 때 긴 타이즈를 입으려고 몇 번을 망설였는데 반 타이즈를 선택 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릎의 통증이 너무나 심해 암사동 급수대에서 다시 진통제 두 알을 먹는다.
지난 7월과 8월 혹서기 마라톤에서 느낀대로 이번 울트라 마라톤도 자원봉사자 분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아픔도 슬픔도 잊게 한다.
성수대교 지나 표시된 풀코스 지점을 4시간 50분에 통과한다.
명수대 아파트 옆 올림픽도로 아래 50키로 지점도 5시간 45분에 통과한다.
당초 목표한 키로 당 7분 속도가 유지되고 있다.
진통제 덕인지 생각하지 않으면 통증은 느껴지지 않는다.
원효대교 아래 제1관문 53키로 지점 도착시간이 6시간 4분이 경과됐다.
급수와 간식을 마치고 양말만 갈아 신고는 스트레칭을 하고 이내 출발한다.
채 10분도 지체하지 않은 것 같다.
일어나서 몇 발작 걷다가 천천히 달린다.
무릎의 통증은 약하게 있으나 이내 참을 만 해 진다.
국회 뒤 주차장을 돌아날 무렵 병무와 세 번째 상면이 이루어진다.
서로 엇갈리면서 "힘"을 외치면서 손을 마주 대본다.
병무는 현역 해병 원사로 마라톤 동호회에서 만나
여름내 같이 연습하고 서로를 격려한 사이다.
나는 이제 55키로 지점을 통과하는데 병무는 벌써 반환점을 돌아 75키로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그도 나이가 50인데 어디서 저런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지....
반포부터 여의도를 지나 방화대교 까지는 울트라를 대비해 늘 연습하던 코스라서
거리에 대한 불안감은 없다.
다만 오랜 시간을 달리다 보니 지루하다는 느낌이 든다.
양화지구 운동장을 지날 무렵 반대편에서 동호회 일원인 "조복영" 아우가 달려오고 있다.
성산대교 아래서 일요 정모를 마치고 병무와 나를 응원하기 위해 주로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병무보다 두시간이나 늦은 나를 기다리느라 얼마나 지루했을까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나오려한다.
기다리고 있던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의 얼굴도 마주 바라보지 못하고 간신히 손뼉만 마주치고 가양대교를 향해 달려나간다.
안양천 입구를 지날 무렵 요즘 인터넷상에 "내 마누라는 마라토너 난 밤이 무서분 남자"라는 소설을 연재해서 인기를 끌고 있는 "원조자라님"이 힘겹게 달려가고 있다.
평소 같으면 인사도 나누고 잠시 이야기도 나누면서 동반해서 달렸으련만 모든 신경이 병원에 계신 어머님께 가 있어 그냥 지나친다.
65키로 반환점을 7시간 28분에 통과한다 지난 강화마라톤보다 5분여 빠른 시간이다.
시간은 12시 30분이 가까워진다.
마련된 급수대마다 한가지씩은 계속해서 먹었지만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시장기가 돈다.
올라오는 길 문정복 사장님의 전복죽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문정복 사장님은 전복죽을 퍼 주면서 아주 신이나 계시다.
전복죽이 너무나 맛있어 두 그릇을 게눈 감추듯 비우고 아플 것에 대비해 아예 진통제 두 알을 먹어둔다.
가양대교를 지나서부터 전복죽과 진통제를 먹어서인지 다리는 묵직하지만 속도가 붇기 시작한다.
오버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속도를 올려본다.
많은 주자를 앞지르자 100회 마라톤에 소속된 분(성함을 잊어서 죄송)이 다가와 성산대교 입구까지 발을 맞춰 신나게 달렸다.
계속해서 같은 속도를 유지한다.
73키로 지점인 국회 뒤에서는 작년 울트라 완주자인 회사 동료 "조태환"씨를 만나 손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잠시 후 75키로 순복음교회 음수대에서 "조태환"씨가 다시 반가운 얼굴로 나타난다.
고맙게도 나를 동반주 해 주기 위해 다시 온 것이다.
이후 "조태환"씨는 노량진, 반포 83키로 제2관문,청담동을 지나 탄천 입구 92키로 지점까지 때론 구령도 부치고 격려하면서 끌어 주었다.
그 덕분에 지루한 줄 모르고 90키로를 넘겼다.
그는 탄천 입구에서 나와 헤어지면서 "자신의 기록이 11시간 40분"이니 이 상태로 간다면 자신의 기록을 깰 수 있다는 격려로 나를 압박했다.
이제 꾀를 부릴 수도 없다.
지루하기로 악명 높은 양재천 갈대밭을 그저 묵묵히 달린다,
앞선 주자들은 모두 하나 같이 걷는다.
간혹 뛰는 주자도 있지만 걷는 것만도 못하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지만...
간간이 아프던 다리가 저절로 꺾어질 듯 휘청한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그만이다.
지루함 때문인지 잠시 잊었던 어머님 생각에 가슴에서 오열이 북받쳐 올라온다.
휴일이라 그런지 지나는 사람도 많다.
울음을 들킬까봐 땅을 보고 달린다.
한 주자를 앞지르자 그 주자가 뒤에서 "힘 안 드십니까?" 하면서 묻는다.
울음석인 목소리로 "왜 힘이 안 들겠습니까" 하면서 가슴속 깊이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온다.
엄마, 윤실아!!!
엄마, 윤실아!!!
얼마나 달렸는지 앞에서 "형"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동호회 "김창교" 아우가 마중을 나왔다.
간신히 울음을 참고 태연한 척 동반해서 달린다.
창교와 3키로를 동반하고 99키로 지점에 당도하자
이번엔 병무 제수씨께서 울먹이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 공원입구 다리를 뛰어 오른다.
드디어 결승점이 보이고 병무가 두 손을 높이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좋은 사진은 남기고 싶다는 욕심에 안면에 웃음을 머금고 테이프를 끊는다.
그리고 병무의 가슴에 안기어 통곡한다.
어머니!!!
대회를 마치고 병원에 당도해서 어머님께
"엄마 나 100키로 먹었어" 말씀 드리고
그리고 자랑스런 완주패와 메달을 보여드렸다.
그 밤이 새기도 전에 어머님은 운명하셨다.
자식을 위해 죽음까지 연기하셨던 우리 어머니
다시 한번 어머니를 불러본다
엄마~~~~~~~~~~~~~~~~~~~~~~~~~~~~
B834 새벽달 이명직(김포 마라톤 동호회)
그리고 어머님께 다시 한번 용서를 빕니다.
"어머니!!!"
"임종을 앞둔 어머님을 병원에 모셔놓고
울트라마라톤에 참가한 불효자식을 용서하십시오"
지난 봄 동호회원들과 자연스런 대화도중 울트라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날 대화도중 어느 회원이 50을 넘은 나를 보고
"형님은 63키로에 도전하시지요" 한다.
나이든 것도 섭섭한데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무슨 소리야 나도 100키로다". 하고 객기를 부린 기억이 새롭다.
한편으로는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울트라를 완주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객기를 부린 덕에 어쩔 수 없이 100키로를 신청해 놓고는 마음 한켠은 늘 부담이 있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그래 연습만 착실히 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 하면서 남 모르게 자신을 다졌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주말이면 되도록 많은 거리를 달렸고,
틈틈이 울트라에 대한 기록들을 찾아 안목을 넓혔다.
연습으로는 주 3회 정도의 20키로를 달렸고 대회 감각을 위해서
7월 서울마라톤 풀코스, 혹서기대회, 강화65키로 울트라, 부여동아마라톤,
그리고 50키로 정도의 lsd두번 대회 2주전 75키로 장거리 주 등 연습을 마쳤다.
훈련이 좀 과했는지 장거리 주 이후에는 매번 무릎 주변에 극심한 통증으로 며칠을 쉬어야 하는 상태가 반복됐다.
추석이후는 어머님의 병환이 위중해 지기 시작했다.
올해 84세이신 어머님은 평소 건강하셨는데 갑자기 건강이 악화돼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게 됐고 어머님이 병원에 계신 때는 간병을 위해 야간은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결국 어머님은 대회를 앞둔 금요일(10/24일)에 임종이 가까워 지셨고
다시 병원에 입원하시게 됐다.
힘들게 호흡하시던 어머님은 병원에 입원하자 다행히 상태가 다소 호전되셨다.
어머님의 상태가 약간 호전되자 임종을 지키기 위해 생업까지 포기하신 형님이
봄부터의 훈련을 아깝게 생각하셨는지 대회출전을 종용하신다.
집사람까지도 대회참가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달리기로 마음을 결정하고
의식이 없으신 어머님의 귀에다 큰 목소리로
"엄마 나 100키로 달리고 올 때까지 돌아가시면 안돼요" 한다.
의식이 없는 어머님은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잘 다녀오라는 뜻인지
허공에 대고 손짓을 하신다.
형님과 집사람에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만약 어머님이 돌아가시기나 한다면 평생 불효를 가슴에 담고 살아야겠지....
형님께는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양재동으로 무거운 발길을 돌린다.
대회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함께 출전하는 오병무(814번 김포마라톤 동호회원)와 교육문화회관에서 여장을 푼다.
내일의 대회를 위해 일찍 잠을 청했으나 여러 생각으로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퍼뜩 일어난 시간이 새벽1시 15분,
세시간 가량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대회전 매번 느끼는 소풍전날의 들뜬 마음이 아니다.
병실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허공에 뜻 모를 손짓을 하고 계실 어머님생각과
막연한 두려움 등으로 밤새 뒤척이다 결국 3시 15분에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밤새 뒤척이던 병무도 내가 일어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서 일어난다.
둘은 병무가 준비한 깨죽과 약밥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출전채비를 챙긴다.
쌀쌀한 날씨에 대비해서 상의는 긴 팔 셔츠를 입기로 하고
하의는 반 타이즈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휴대 전화기를 넣을 수 있는
주머니 달린 보스턴 팬츠를 입는다.
드디어 출발 축포는 터지고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간다.
1키로를 7분 30초 속도로 달린다.
물안개가 피어있는 탄천을 접어들면서부터는 모든 주자들이 나를 앞지르는 것 같다.
밝아오는 새벽하늘이 정말로 아름답다.
10키로 지점을 지나자 벌써 선두가 반환점을 돌아 나오기 시작한다.
조금 뒤 병무도 50등 내외로 달려오고 주로 에서 첫 대면이 이루어진다.
반환점을 돌아 17.5키로 지점 얕은 내리막에서 무릎이 빠지는 느낌이 오면서 시큰해진다.
무릎의 통증이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당초 통증을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심하게 찾아올 줄 몰랐다.
절룩여지는 다리를 억지로 참으면서 자세를 바로 잡는다.
양재천 합 수 지점 급수대에서 준비한 진통제 한 알을 먹어둔다.
잠살 운동장 건너편 탄천을 벗어날 무렵 어김없이 밀어내기에 걸려든다.
주차장에 세워진 간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마친다.
진통제 효과가 미약한지 아니면 통증이 심한 건지 통증이 계속된다.
한강변에 접어들어 붉게 물든 동쪽하늘을 바라보며
어머님을 부르며 아픔을 참고 달린다.
오른발 어머니!!! 왼발 윤실아!!!(수능을 앞둔 고3 작은딸)를 부르며 호흡을 맞춘다.
날이 밝아지자 주변에는 거의가 달리기 세상에서 명성이 높은 분들이 달리고 있다.
어머님 생각에 멀건이 그분들의 달리는 모습만 바라볼 뿐 제대로 인사도 건네지 못한다,
무릎의 통증은 계속되고......
아 어머니, 우리엄마!!!
나이가 오십이 넘어도 난 아직도 어머니라 하지 않는다.
그저 엄마다.
머리가 허얘지고 조카들 손주를 본지도 오래됐건만 나는 아직 엄마라 부른다.
전쟁을 겪은 우리 또래들이 그러하듯이 우리 어머니도 참 고생을 많이 하셨다.
옛날 어머니들은 아버지가 능력이 없어도 억척스럽게 집안을 꾸려오셨다.
불우한 어린 시절과 어려운 집안의 내력을 이야기하는 것은 쑥스러워서 밝힐 수 없지만
막상 어머님의 임종이 다가오니 옛날의 아픈 기억들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돈다.
언제쯤인가
지금의 아내와 연애시절 동네 입구를 돌아들 무렵
장사를 마치고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오시는 어머님을 마주친 적이 있었다.
창피한 생각에 아내의 팔목을 잡아끌고 급히 골목으로 피한 기억에 그때까지 참고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25키로 지점쯤인가 선두와 두 번째 마주치고 잠시 후 병무와도 두 번째 상면한다.
큰소리로 "병무 화이팅"을 외쳐 주자 병무도 "형 힘내" 하면서 달려나간다.
한강변의 맞바람이 제법 있다.
암사동 반환점 까지는 맞바람을 맞으며 뛰었으나 반환점을 돌자 따듯한 기운이 돈다.
출발 전 복장을 준비할 때 긴 타이즈를 입으려고 몇 번을 망설였는데 반 타이즈를 선택 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릎의 통증이 너무나 심해 암사동 급수대에서 다시 진통제 두 알을 먹는다.
지난 7월과 8월 혹서기 마라톤에서 느낀대로 이번 울트라 마라톤도 자원봉사자 분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아픔도 슬픔도 잊게 한다.
성수대교 지나 표시된 풀코스 지점을 4시간 50분에 통과한다.
명수대 아파트 옆 올림픽도로 아래 50키로 지점도 5시간 45분에 통과한다.
당초 목표한 키로 당 7분 속도가 유지되고 있다.
진통제 덕인지 생각하지 않으면 통증은 느껴지지 않는다.
원효대교 아래 제1관문 53키로 지점 도착시간이 6시간 4분이 경과됐다.
급수와 간식을 마치고 양말만 갈아 신고는 스트레칭을 하고 이내 출발한다.
채 10분도 지체하지 않은 것 같다.
일어나서 몇 발작 걷다가 천천히 달린다.
무릎의 통증은 약하게 있으나 이내 참을 만 해 진다.
국회 뒤 주차장을 돌아날 무렵 병무와 세 번째 상면이 이루어진다.
서로 엇갈리면서 "힘"을 외치면서 손을 마주 대본다.
병무는 현역 해병 원사로 마라톤 동호회에서 만나
여름내 같이 연습하고 서로를 격려한 사이다.
나는 이제 55키로 지점을 통과하는데 병무는 벌써 반환점을 돌아 75키로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그도 나이가 50인데 어디서 저런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지....
반포부터 여의도를 지나 방화대교 까지는 울트라를 대비해 늘 연습하던 코스라서
거리에 대한 불안감은 없다.
다만 오랜 시간을 달리다 보니 지루하다는 느낌이 든다.
양화지구 운동장을 지날 무렵 반대편에서 동호회 일원인 "조복영" 아우가 달려오고 있다.
성산대교 아래서 일요 정모를 마치고 병무와 나를 응원하기 위해 주로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병무보다 두시간이나 늦은 나를 기다리느라 얼마나 지루했을까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나오려한다.
기다리고 있던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의 얼굴도 마주 바라보지 못하고 간신히 손뼉만 마주치고 가양대교를 향해 달려나간다.
안양천 입구를 지날 무렵 요즘 인터넷상에 "내 마누라는 마라토너 난 밤이 무서분 남자"라는 소설을 연재해서 인기를 끌고 있는 "원조자라님"이 힘겹게 달려가고 있다.
평소 같으면 인사도 나누고 잠시 이야기도 나누면서 동반해서 달렸으련만 모든 신경이 병원에 계신 어머님께 가 있어 그냥 지나친다.
65키로 반환점을 7시간 28분에 통과한다 지난 강화마라톤보다 5분여 빠른 시간이다.
시간은 12시 30분이 가까워진다.
마련된 급수대마다 한가지씩은 계속해서 먹었지만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시장기가 돈다.
올라오는 길 문정복 사장님의 전복죽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문정복 사장님은 전복죽을 퍼 주면서 아주 신이나 계시다.
전복죽이 너무나 맛있어 두 그릇을 게눈 감추듯 비우고 아플 것에 대비해 아예 진통제 두 알을 먹어둔다.
가양대교를 지나서부터 전복죽과 진통제를 먹어서인지 다리는 묵직하지만 속도가 붇기 시작한다.
오버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속도를 올려본다.
많은 주자를 앞지르자 100회 마라톤에 소속된 분(성함을 잊어서 죄송)이 다가와 성산대교 입구까지 발을 맞춰 신나게 달렸다.
계속해서 같은 속도를 유지한다.
73키로 지점인 국회 뒤에서는 작년 울트라 완주자인 회사 동료 "조태환"씨를 만나 손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잠시 후 75키로 순복음교회 음수대에서 "조태환"씨가 다시 반가운 얼굴로 나타난다.
고맙게도 나를 동반주 해 주기 위해 다시 온 것이다.
이후 "조태환"씨는 노량진, 반포 83키로 제2관문,청담동을 지나 탄천 입구 92키로 지점까지 때론 구령도 부치고 격려하면서 끌어 주었다.
그 덕분에 지루한 줄 모르고 90키로를 넘겼다.
그는 탄천 입구에서 나와 헤어지면서 "자신의 기록이 11시간 40분"이니 이 상태로 간다면 자신의 기록을 깰 수 있다는 격려로 나를 압박했다.
이제 꾀를 부릴 수도 없다.
지루하기로 악명 높은 양재천 갈대밭을 그저 묵묵히 달린다,
앞선 주자들은 모두 하나 같이 걷는다.
간혹 뛰는 주자도 있지만 걷는 것만도 못하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지만...
간간이 아프던 다리가 저절로 꺾어질 듯 휘청한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그만이다.
지루함 때문인지 잠시 잊었던 어머님 생각에 가슴에서 오열이 북받쳐 올라온다.
휴일이라 그런지 지나는 사람도 많다.
울음을 들킬까봐 땅을 보고 달린다.
한 주자를 앞지르자 그 주자가 뒤에서 "힘 안 드십니까?" 하면서 묻는다.
울음석인 목소리로 "왜 힘이 안 들겠습니까" 하면서 가슴속 깊이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온다.
엄마, 윤실아!!!
엄마, 윤실아!!!
얼마나 달렸는지 앞에서 "형"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동호회 "김창교" 아우가 마중을 나왔다.
간신히 울음을 참고 태연한 척 동반해서 달린다.
창교와 3키로를 동반하고 99키로 지점에 당도하자
이번엔 병무 제수씨께서 울먹이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 공원입구 다리를 뛰어 오른다.
드디어 결승점이 보이고 병무가 두 손을 높이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좋은 사진은 남기고 싶다는 욕심에 안면에 웃음을 머금고 테이프를 끊는다.
그리고 병무의 가슴에 안기어 통곡한다.
어머니!!!
대회를 마치고 병원에 당도해서 어머님께
"엄마 나 100키로 먹었어" 말씀 드리고
그리고 자랑스런 완주패와 메달을 보여드렸다.
그 밤이 새기도 전에 어머님은 운명하셨다.
자식을 위해 죽음까지 연기하셨던 우리 어머니
다시 한번 어머니를 불러본다
엄마~~~~~~~~~~~~~~~~~~~~~~~~~~~~
B834 새벽달 이명직(김포 마라톤 동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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